퇴사를 결심하다

회사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엄마에게 내 결심을 알린 것이었다.

 

입사 5년차의 어느 봄날, 나는 어두컴컴하게 불이 꺼진 사무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불빛을 번쩍이고 있는 건 내 모니터뿐이었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전화가 연결되었고, 나는 엄마에게 담담히 퇴사 결정을 알렸다.

 

평소 '서울에서 직장생활하는 딸'을 자랑스러워하던 엄마를 잘 알았던 만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대답은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엄마는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라는 말과 함께 '청년 실업'이니 '경력 단절'이니 하는 냉정한 현실을 철없는 딸에게 어떻게든 알려 주려 애썼다. 엄마의 초조한 설득을 듣던 나는 별안간 버럭 성을 내며 울었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이러다가 크게 아프기라도 하면 그때 가서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냐고 비수 같은 말로 엄마의 마음을 찔렀다. 수화기 너머로 혼란스러워하는 듯한 침묵이 이어졌다. 평소 장난처럼 퇴사를 언급한 적은 있어도, 직장생활이 힘들다는 티는 거의 내지 않던 딸이었기에 갑작스레 쏟아져 나온 5년 치의 눈물과 하소연은 엄마를 적잖이 당황시킨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사실은 매번 이런 식이었다는 걸.

 

겉으로는 담담한 척, 잘 지내는 척해도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면 나도 모르게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을 냈다. 정작 나를 힘들게 한 사람들 앞에서는 한마디도 못하고, 괜히 소중한 내 사람들에게만 화풀이를 해댔다. 회사에 다닌 시간이 길어질수록 짜증은 늘어 갔고, 뒤이어 밀려오는 후회와 죄책감도 점점 커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퇴사를 결심한 후에도 결국 나는 이렇게 죄 없는 엄마에게 성을 내고 있었다.

ⓒ서메리

엄마는 미안하다고 했다. 그렇게 힘들면 당장 그만두라고, 일단 그만두고 당분간 고향에 내려와서 쉬라고 말했다. 나는 고맙고 미안하다고 대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가슴이 답답한 밤이었다. 내가 실제로 퇴사를 한 것은 그로부터 몇 개월 뒤였지만, 그날 밤 그 어두운 사무실에서 내 마음은 완전히 회사를 떠났다.

 

그때까지의 나는 어떻게 보면 성실하게, 또 어떻게 보면 아무 생각 없이 살던 사람이었다. 평범하게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남들처럼 대학에 갔고, 졸업할 무렵엔 정해진 수순대로 취업했다. 어릴 적부터 꿈꿔 왔던 직업도 아니고,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대기업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4대 보험에 가입돼 있고 매달 25일이면 따박따박 월급이 나오는 회사였다. 그나마 한 번도 멈추거나 턱에 부딪히지 않은 채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 나의 소소한 자부심이었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한 번도 멈추지 않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