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노스의 스승, 맬서스

퍼블리 독자 여러분, '어벤져스: 엔드게임'(이하 '어벤져스') 보셨나요? 호오가 갈릴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슈퍼히어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즐거운 세 시간이었을 것이고, 별 관심 없는 사람에겐 세상에서 가장 지루하고 지겨운 세 시간이었을 수도 있겠죠.

 

파이낸셜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팀 하포드*가 영화 '어벤져스'에 주목한 이유는 조금 특별합니다. 1년 전, 전편인 '인피니티 워'에서 악역 타노스는 원하는 건 무엇이든 이루어주는 마법의 장갑을 끼고, 손가락을 튕기면서 소원을 빌었죠. 그 순간 마법의 장갑은 타노스의 바람처럼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50%를 '삭제'해버렸습니다.

* 베스트셀러 <경제학 콘서트(The Undercover Economist)>, <당신이 경제학자라면(The Undercover Economist Strikes Back)의 저자로 유명한 경제학자

 

팀 하포드가 타노스를 19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의 후계자라고 칭하는 이유입니다. 맬서스라는 이름은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보셨을 겁니다. '인구는 기하급수적(1, 2, 4, 8…)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1, 2, 3, 4…)으로 증가하므로 인구증가 속도를 식량 생산 증가 속도가 따라갈 수 없다'고 주장했던 사람이죠. 인간이란 종은 가만두면 무책임하게 번식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조절하지 않으면 파국이 온다는 얘기이니, 타노스의 스승 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맬서스는 세계 최초의 직업 경제학자였습니다. 지금이야 경제학으로 밥 벌어 먹고 사는 사람이 많지만(매일 평균 5명의 경제학 박사가 인천공항으로 입국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맬서스가 살았던 200여 년 전에는 경제학이 독립적인 학문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맬서스 본인도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다닐 때 전공은 수학이었죠.

 

그는 1805년 이스트 인디아 컴퍼니 칼리지(East India Company College)*의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 교수로 임명됐습니다. 인류 최초의 경제학 교수입니다. 경제학의 아버지가 애덤 스미스(Adam Smith)라면, 경제학자라는 직업의 시조는 맬서스입니다.**

* 동인도회사(East India Company)의 관리자들을 교육하기 위해 설립된 교육기관

** 애덤 스미스 당대에는 경제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없었으므로 스미스는 정치학자 겸 철학자로 불렸다.

맬서스는 '거짓 예언자'였을까

이후 200여 년이 흐르는 동안 맬서스의 주장은 많은 비판을 받았고, 실제로도 틀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인구가 너무 빨리 늘어 문제가 될 것이라던 맬서스의 예측과는 달리, 인류의 식량 생산 증가 속도는 인구증가 속도를 감당하고도 남았습니다. 과학기술과 산업의 발전 덕분이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석탄과 석유 등 화석에너지를 사용하는 법을 깨우쳤고, 품종 개량으로 곡물 생산성을 증가시켰습니다. 이를 통해 식량뿐 아니라 공산품의 생산량도 폭증했습니다.

 

반면 인구증가 속도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그래서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안전한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음식을 먹지 못해 영양실조로 죽는 사람의 수보다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비만과 당뇨병으로 죽는 사람의 수가 훨씬 많아졌을 정도죠. 식량 부족으로 파국이 올 거라 믿었던 맬서스는 거짓 예언자로 전락했습니다. 산업혁명과 기술진보의 힘을 과소평가한 탓입니다.

ⓒiamlukyeee/Shutterstock그런데 여전히 맬서스를 변호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미국 UC 데이비스(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의 경제사학자 그레고리 클라크(Gregory Clark)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비맬서스시대(non-Malthusian age)라 부릅니다. 클라크는 맬서스가 틀린 게 아니고, 단지 20세기가 인류 역사에서 특별히 예외적인 시기였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최근 들어서는 맬서스의 암울한 예측이 너무 시대를 앞서갔을 뿐, 결국은 그가 옳았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다만 맬서스가 예측했던 식량부족의 문제는 아닙니다. 식량은 여전히 풍족합니다. 지금 인류가 직면한 문제는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입니다.

 

바다거북의 콧구멍에 플라스틱 빨대가 꽂힌 끔찍한 사진*을 다들 보셨을 겁니다. 바다에는 해양쓰레기와 미세플라스틱이, 하늘에는 미세먼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육지도 급속히 오염되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들이 쓰레기 수입을 금지하면서 갈 곳을 잃은 쓰레기 더미가 대한민국의 강산에 쌓여갑니다. 그리고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한 기후변화 역시 미래를 알 수 없게 만드는 위험 요인입니다. 

* 관련 기사: 지금 세계가 플라스틱 빨대를 퇴출하자고 하는 이유 (한겨레, 2018.6.6)

 

인간이 배출하는 폐기물이 자연의 정화능력을 넘어선 지는 오래입니다.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 등 개발도상국의 소비 수준이 높아지면서 앞으로 더 심각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모든 지구인이 미국인만큼 소비하며 살기 위해서는 지구가 다섯 개 정도 필요하다고 하는데요. 무한한 소비와 GDP 성장을 바람직하게 여기는 현재 우리 지구인들의 모습을 보건대, 인류가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입니다.

 

환경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개발도상국 국민들에게 더 이상 경제발전을 하지 말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다 보면 전 세계적으로 자원 소비와 환경 오염이 증가하다가 최악의 경우 지구환경이 순식간에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파괴될 수도 있습니다. 지구는 다섯 개가 아니라 딱 하나니까요. 

 

영화 '어벤져스'의 악당 타노스가 왜 맬서스 학파의 최종 후계자로 불리는지 이제 아시겠죠? 타노스는 100%가 공멸하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미리 50% 인구를 조절해주겠다는 아이디어를 낸 것입니다.

 

물론 타노스의 핑거스냅은 영화적인 상상이고 현실에 적용하기엔 여러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비슷한 일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긴 나라가 있습니다. 중국입니다. 중국은 1가구1자녀 정책*을 오랜 기간 펼쳐서 인구증가를 억제했습니다. 타노스와 중국 정부의 차이가 있다면, 타노스는 이미 태어난 생명의 절반을 소멸시켰고 중국 정부는 태어날 수 있었던 생명의 절반을 소멸시켰다는 것뿐입니다.

* 관련 기사: 위반하면 벌금 12억원? 이것 없었다면 지금 中인구는 20억 (중앙일보, 2017.3.31)

 

결과적으로 이 정책이 지구인 모두에게 득이 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중국의 1자녀 정책이 없었다면 지구의 인구는 지금보다 10억 명 이상 많았을 수 있고, 그랬더라면 중국이 쏟아내는 해양·대기 오염물질을 받아내는 위치에 있는 한국의 상황은 더욱 끔찍했을 것입니다.

더 많은 맬서스와 타노스가 필요한 이유

맬서스학파의 후계자로서, 타노스는 지금 인류가 처한 문제를 보다 심각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던집니다. 어쩌면 타노스는 '자연'을 의인화한 캐릭터 같기도 합니다. 인류 스스로 소비적이고 환경 파괴적인 물질문명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결국은 자연이 인류의 50% 정도를 말살하게 될 날이 올 테니까요.

 

영화 속의 타노스는 그래도 양반입니다. 타노스가 '인피니티 스톤 장갑'을 끼고 인류 중 50%를 제거할 때의 선정 기준은 완전히 랜덤입니다. 핑거스냅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가리지 않습니다.

 

반면 타노스의 스승이자 인류 최초의 경제학자인 맬서스는 자연이 타노스보다 훨씬 냉혹하고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생존자 50%를 골라낼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즉, 생존 환경이 어려워지면 가난한 하층민부터 죽어 나간다는 거죠. 부자들은 돈을 써서 어떻게든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19세기 중반 아일랜드에는 치명적인 감자 전염병이 퍼졌는데요. 당시 생산량이 급감하고 식량 가격이 폭등하면서, 4년 만에 아일랜드 인구 800만 명 중 약 100만 명이 굶어 죽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부터요. 전염병이나 기후 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방비로 위기에 노출된 가난한 사람들과 달리, 부자들은 고가의 치료도 받을 수 있고 이사를 할 수도 있죠. 자연은 타노스처럼 공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칼럼의 저자 팀 하포드는 타노스와 같은 급진적 처방에 반대합니다. 그는 인류가 생활양식을 바꾸지 않는 이상, 타노스가 인구 50%를 줄인다 해도 얼마 안 가 인구수가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 말합니다. (영화에서처럼 상당 시간이 지난 다음에 어벤저스 영웅들이 소멸됐던 50%까지 다시 살려내면 지구는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겠죠!)

 

그러고 보면 대한민국 사람들이 현명한 축에 속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한국은 지난 20여 년 동안 스스로 출생률과 인구증가율을 급격하게 낮췄습니다.

ⓒGuitar photographer/Shutterstock이호철의 소설 <서울은 만원이다>가 출간된 게 1966년입니다. 한 집에 자녀를 일고여덟씩 낳았던 농경사회의 관습 때문에 인구가 지나치게 빠르게 증가하고, 삶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경고였습니다. 한국인들은 이미 50여 년 전에 우리의 국토 면적과 자연환경에 비해 인구가 너무 많아지고 있음을 자각한 것입니다. 정부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계도했고, 꼭 정부가 시켜서가 아니라 시민들 스스로도 자녀를 셋, 둘, 혹은 하나만 낳는 문화를 만들어갔습니다.

 

그로부터 한국 사회는 불과 한 세대 만에 농경시대 가족구조에서 산업화시대 가족구조로 전환됩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약 10년 후부터 인구가 순감소 하기 시작한다고 하는데요.* 다시 말해, 한국인들 스스로가 한 세대에 걸쳐 '핑거스냅'을 사용한 셈입니다. 우리 스스로 인구를 조절한 덕분에, 환경오염과 자원 고갈로 인한 종말을 예방하거나 최소한 파국의 시기를 상당히 늦출 수 있게 됐습니다.

* 외국에서 들어오는 이민자를 포함한 예측으로, 이민자를 제외하면, 2019년부터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2029년 총인구 감소 전망"... 인구 위기 3년 앞당겨졌다(연합뉴스, 2019.03.28) 

 

앞으로 인구학자뿐만 아니라 경제학자들도 인구와 자원 소비, 환경 파괴의 문제에 관심을 쏟을 필요가 있습니다. 현대의 경제학은 지나치게 금융이나 주식, 채권, 금리, 환율, 임금 같은 '돈'의 문제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화폐라는 단위를 통하지 않으면 경제를 분석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본래 경제학이란 돈보다 거대한 사회 문제나 인류의 생존 문제를 다루면서 시작된 학문입니다. 앞으로 맬서스나 타노스처럼 넓은 시야를 가진 경제 철학자들이 더 활발히 활동해주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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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포트는 2019년 5월 9일에 발행된 것으로, 일부 참고 링크의 경우 만료될 수 있습니다. help@publy.co로 말씀해주시면 빠르게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