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재고에서 시작한 로컬 실 브랜드

교토 중심지에서 약 30분 떨어져 있는 이치조지(一乗寺)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동네였습니다. 관광지라기보다는 일본인 친구가 사는 작은 동네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나중에 교토에 온다면 이곳에 숙소를 잡아야겠다고 결심할 정도였습니다. 만약 교토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여행을 하고 싶은 독자분들께는, 이치조지를 추천드립니다.

 

아브릴(AVRIL)은 한적한 이 동네의 골목을 걷다가 만난 가게입니다. 이 가게는 큰 창이 나 있어 내부가 훤히 보였는데, 멀리서도 형형색색 아름다운 색채가 눈에 띄어 그 정체가 몹시 궁금했습니다. 가게에 들어선 순간,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놀랐습니다. 100개도 훌쩍 넘는 다양한 털실이 벽을 한가득 채우고 있었거든요.

 밖에서도 잘 보이는 AVRIL의 수백 가지 실 ©생각노트털실이 가득 걸려 있는 벽을 기준으로 오른편에는 실을 뽑는 대형 방직기가 있었습니다. 제가 갔을 때는 방직기가 돌아가고 있지 않았지만, 실을 뽑아내는 모습이 큰 창을 통해 고스란히 보일 거라 상상하니 생동감이 느껴졌습니다.

가게 안에는 커다란 실 방직기가 있는데, 이곳에서 작업을 볼 수 있다. ©생각노트아브릴은 1992년 교토에서 시작된 로컬 실 브랜드로, 지금은 도쿄에도 매장이 있습니다. 이곳의 실은 일반적인 실과 다른 점이 있는데요. 보통 실에는 잘 쓰이지 않는 개성 있는 소재들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양털, 면, 실크, 삼베 등 천연 소재는 물론이고 대나무, 창호지, 스테인리스 같은 소재도 실로 만들어냅니다.

 

왜 이렇게 다양한 실을 만들어내는지 궁금했는데, 힌트는 이 브랜드의 출발점에 있었습니다. 아브릴은 불량 재고로 버려졌던 열 종류의 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모양이 균일한 실만 팔리던 시기에, 실 생산 업계에서는 굵기나 컬러가 기존 실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상품이 될 수 없었는데요.

 

아브릴의 창업자 후쿠이 마사키(福井雅己)는 표준에서 벗어나는 불량 실도 얼마든지 개성 있고 재미있는 실이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이런 개성을 원하는 고객이 앞으로 많아지리라 생각했죠. 그 당시 업계에서는 누구도 하지 못했던 '발상의 전환'을 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후쿠이 마사키는 개성 있는 실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실험적인 소재로 실을 만들기도 하고, 여러 실을 함께 엮어 믹스 실을 만들었습니다. 또 같은 색이라도 실의 굵기를 다르게 해 변주를 주기도 했죠. 그 덕분에 아브릴은 다른 실 가게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실을 판매할 수 있었습니다. 독특한 실로 만든 제품의 개성이 인정받으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실을 구매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브릴은 실 판매 방식에도 고객 중심적인 변화를 줬습니다. 한 통 단위로 판매하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10g 단위로 판매함으로써, 고객이 소량으로 다양한 실을 살 수 있도록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