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경험에도 준비가 필요하다

금각사(金閣寺, 킨카쿠지)은각사(銀閣寺, 긴카쿠지)는 수많은 관광객이 교토 방문의 이유로 꼽을 만큼 무척 인기 있는 사찰입니다.

 

금각사는 금빛으로 둘러싸인 사찰과 드넓은 연못을 볼 수 있어 화려한 일본 정원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이에 반해 은각사는 그리 크지 않은 규모로, 소박하면서도 모래·이끼·대나무숲 등 자연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공간인데요. 작은 요소에서 큰 감흥을 얻고 싶어 하는 저로서는 은각사에 더 마음이 끌렸습니다.

 

버스를 타고 은각사 바로 앞에 내려 짧게 이어진 상점 거리를 지났습니다. 은각사 입구에 들어선 순간 돌로 만들어진 길과 양옆의 나무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조금 전까지 걸어 올라왔던 상점 거리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현실과 은각사 사이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장벽이 존재하는 듯했습니다.은각사로 들어가는 입구 모습. 올라오는 상점 거리와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생각노트그 느낌은 작은 중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꺾었을 때 보이는 나무 울타리 길에서 더 강해집니다. 반듯하게 가위질한 7~8m 정도 높이의 동백나무가 길 양쪽에 길게 늘어서 있어 웅장함을 더하기 때문입니다. 약 50m에 걸쳐 한치의 튀어나옴도 없이 정갈하게 세워져 있는 나무 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사찰 안으로 인도하는 길을 참도(参道, さんどう)라고 하는데요. 이 길이 바로 은각사의 참도입니다.

 

참도의 목적은 '준비'입니다. 사찰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마음을 추스르고 신에게 참배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만들어 주는 거죠. 잠깐만이라도 삶의 짐을 덜고, 신을 모시고 사찰을 둘러볼 수 있도록 해주는 배려가 담긴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게 펼쳐진 참도길. 반듯하고 일관된 모습이 디테일 넘치는 길을 만들었다. ©생각노트

이 길에도 디테일이 숨어 있습니다. 양쪽 길이 같은 듯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동백나무 아랫부분이 서로 다릅니다. 길 한쪽은 돌담 위에 대나무 울타리가 둘려 있고, 다른 한쪽은 동백나무와 비슷한 치자나무로 울타리가 쳐져 있죠.

 

그런데 걷다 보면 길 한쪽에서 미묘한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치자나무 사이의 빈 곳으로 건너편 대나무숲 모습이 살짝살짝 보이는 것입니다. 철저히 관리되어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참도길에서, 언뜻 비치는 대나무숲은 색다른 구경거리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