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부터 대구가 뜨거운 이유는?

안녕하세요 퍼블리 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앞으로 파이낸셜 타임스 기사를 소개하게 된 조진서입니다.

 

그동안 퍼블리의 필자로 '1.5번' 참여한 적이 있지만 (한 번은 정식 프로젝트로, 한 번은 데모 프로젝트로) 이렇게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글을 쓰는 건 처음입니다.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경제신문 기사를 부드럽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역시 편지가 아닐까 싶었어요. 처음엔 좀 낯설겠지만, 어색함을 참고 한 번 읽어봐 주세요.

 

파이낸셜 타임스 큐레이터로서 제가 고른 첫 번째 기사는 축구 이야기입니다. 기사에서 세계적인 축구 기자 사이먼 쿠퍼(Simon Kuper)*는 FC 바르셀로나의 최첨단 훈련장을 찾아갔는데요. 거기에 덧붙여서 저는 대구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맞습니다. 경상북도에 있는 그 '세계 치맥 수도' 대구요.

* 인류학적 관점에서 스포츠 기사를 쓰는 영국 언론인. 전 세계 22개국의 축구 현장을 취재한 내용을 담은 저서 <축구 전쟁의 역사(Football Against the Enemy)>가 대표작이며, <사커노믹스(Soccernomics)>의 공저자로도 유명하다.

 

먼저 대구로 가보죠.

 

대구는 원래 프로야구팀 삼성 라이온즈로 유명했는데요, 올해는 프로축구팀 대구FC가 뜨겁습니다. 2018년에는 경기당 관중 수가 3500명이었습니다. EPL(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같은 유럽 리그 수준과는 거리가 멀죠. 대구FC는 K리그 내에서도 비인기 구단으로 분류되는 팀이었습니다.*

* 2018년 K리그1 전체 경기당 평균 관중은 5445명

 

그런데 올해는 이상해요. 지금(4월 6일)까지 대구 홈에서 4경기를 치렀는데, 4경기 모두 1만 2000석이 매진됐습니다. 선수 구성도 거의 그대로인데 2018년에 비해 갑자기 관중이 3배 이상 늘어났네요.

 

이유는 경기장입니다. 새 경기장을 지었거든요. 돈을 많이 써서 크고 멋지게 지었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5분의 1로 규모를 줄였습니다.

출처: 대구FC / 그래픽: 퍼블리갑작스런 인기의 비결은 분위기입니다. 경기장 규모를 확 줄여서 이제 관중들은 꽉 찬 느낌을 받습니다. 또 독일의 축구장들처럼 좌석이 앞으로 쏟아지는 듯한 느낌을 주어서 관중이 경기에 더 집중하게 했고, 미국 NFL(National Football League) 구장을 벤치마킹해 관중의 발소리가 크게 들리도록 알루미늄 스탠드를 설치했다고 합니다.* 각종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입소문이 퍼지면서 이젠 티켓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 관련 기사: 조광래 대구FC 대표 "한번 오면 200% 만족시키겠다"(한겨레, 2019.4.2)

 

왜 지금까지 한국에는 좋은 축구장이 없었을까요? 돈이 없어서는 아닙니다. 앞서 보셨다시피 예전 경기장에는 더 많은 돈이 들어갔습니다. 2002년 월드컵을 준비할 당시에는, 이제 한국에서도 영국이나 독일처럼 5~6만 명을 수용하는 대형 축구장 시대가 열리겠다고 기대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후 TV 중계 화면에 비춰지는 썰렁한 관중석의 모습은 축구 인기에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오랜 시행착오 끝에 인천과 창원, 대구 같은 도시들이 작고 실용적인 축구장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문을 연 대구FC의 '포레스트 아레나(Forrest Arena)'*는 그 모범답안이 됐습니다. 이제는 야구 도시가 아니라 축구 도시로 불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 국내 축구장 최초로 네이밍 라이츠(Naming Rights)를 판매해 리그 경기에서는 'DGB대구은행파크'로 불린다.

대구FC의 홈 경기장 'DGB대구은행파크' ⓒ대구FC이번에는 쿠퍼가 소개하는 바르셀로나로 가봅니다. 대구에 치맥과 축구가 있다면 바르셀로나에는 가우디와 축구가 있습니다. 리오넬 메시가 있는 FC 바르셀로나는 대구FC와는 레벨이 다릅니다. 기사에도 나오듯 선수 평균 연봉이 1000만 파운드(약 150억 원)로 대구의 150배입니다. 또 바르셀로나의 홈 경기장은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대구 경기장의 거의 10배 크기죠.

 

기사 안에는 FC 바르셀로나가 글로벌 탑 클럽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과학이론과 경영기법을 도입했는지 잘 나와있는데요,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클럽은 아마 전 세계에 서너 곳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1등의 지위는 오르기보다 지키기가 더 어렵죠. 성공에 취해 느슨해질 수 있으니까요. 유럽 축구의 역사 속에는 짧은 기간 영광을 누렸지만 2부, 3부로 추락해버린 클럽들이 수두룩합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는 지난 수십 년간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세계 최고의 클럽, 세계 최고의 축구 브랜드라는 지위를 유지할 것 같습니다.

 

바르셀로나 선수와 스태프는 올해 우승이 아니라 앞으로 100년 내내 우승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또 이들은 축구만 잘하는 게 아니라 축구를 통해 더 위대한 무언가를 이루겠다고 합니다. 경영진과 시민주주들의 관계도 특별합니다. 그래서 메시 같은 세계 최고의 선수들은 바르셀로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혁신의 비결은 따로 있다

축구는 인생과 같다고 합니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세상엔 FC 바르셀로나처럼 사는 길도 있고, 대구FC처럼 사는 길도 있으니까요. 만화처럼 완벽한 바르셀로나식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조현우 골키퍼를 중심으로 한 대구의 끈질긴 수비, 짜릿한 역습을 보면서 '아 저 팀은 왠지 내 인생 같아'라며 동질감을 느낀다는 축구팬도 많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두 팀의 공통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혁신'일까요? 맞습니다. 대구와 바르셀로나는 고객(서포터)을 위한 혁신, 클럽의 미래를 위한 혁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혁신을 하기 위해 먼저 해야 하는 숙제가 있습니다.

바로 주제를 파악하는 능력입니다

바르셀로나는 팬들이 기대하는 바를 잘 알고 있습니다. 1위 아니면 실패입니다. 실전에서도, 훈련에서도 최고만을 고집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팀의 코칭스태프와 분석팀은 자신들의 역할이 팀의 승패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단 0.01%의 승률을 올리는 것이 본인들의 목표라는 자세로 일을 하고 있죠. 그래서 선수들의 자존감과 창의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머니볼'이라는 말이 유행한 이후 스포츠산업에서도 석박사급 수학자와 데이터과학자(이른바 '퀀트')를 스태프로 고용해 데이터 분석을 하는 게 유행이 됐습니다. 하지만 데이터 분석이 스포츠에서 해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관객의 가슴을 뛰게 하는 데에는 데이터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그런 감동을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은 데이터 분석가가 아닌, 잔디 위에서 뛰는 선수들뿐입니다. 사이먼 쿠퍼의 바르셀로나 탐방 기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이 팀의 감독과 스태프들이 보여준 겸손함이었습니다.

 

대구FC 역시 혁신을 추구했습니다. 그 혁신의 바탕에는 내외부 상황에 대한 재인식이 있었습니다. 대구FC는 자신들에게 필요한 경기장이 6만 석이 아니라 1만 2000석이라는 걸 깨닫는 데 10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광역시 구단'인데…", "언젠가는 가득 차지 않을까?"라는 자존심을 버려야 했죠.

 

다시금 상황을 인식하고 절박한 혁신을 추구하자 클럽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시민들이 친근감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6만 석의 텅 빈 경기장을 가진 구단이 아니라 1만 2000석의 꽉 찬 경기장을 가진 구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시즌 초반이긴 하죠! 제가 너무 김칫국을 마시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2019년도 벌써 25% 넘게 지나갔네요. 저는 남은 상반기 동안 저 자신의 주제를 파악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그리고 인생의 혁신 로드맵을 찬찬히 다시 그려보려구요. 아마도 그 결과물은 FC 바르셀로나보다는 대구FC에 가까운 무언가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 달 후에 더 재미있는 기사를 가져오겠습니다.

 

- 대구 여행을 기획중인 큐레이터 조진서 드림

 

P.S.
대구FC가 떠난 6만 석의 월드컵경기장은 앞으로 육상 등 다른 종목 선수들과 생활체육인들을 위해 쓰일 예정이라 합니다. 그 옆에는 대구미술관이 있습니다. 5월 26일까지 열리는 화가 알렉스 카츠의 전시회는 입장료가 무려 1000원입니다. 올봄 대구에 가야 할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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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포트는 2019년 4월 11일에 발행된 것으로, 일부 참고 링크의 경우 만료될 수 있습니다. help@publy.co로 말씀해주시면 빠르게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