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온 재미씨

재미씨는 나이 마흔 된 대만인 싱글 여성입니다. 럭셔리 호텔에서 살죠. 거대 외국계 은행 중국 데스크로 근무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지원을 듬뿍 받기 때문입니다. 젊은 시절 싱가포르 에어라인 승무원 생활을 하면서 전 세계를 누볐습니다. 전 직장의 습속이 몸에 남은 모양인지 호호 웃음이 콧소리와 더불어 시종 입가에 장착돼 있습니다.

인도에 온 지는 4년. 취미는 말 타기. 주중에 일이 끝나는 대로 교외 지역에 있는 승마장에서 말 타기를 즐깁니다. 달리는 동영상을 보여줬는데 품새가 몽골 기마병 못지않습니다. 주말엔 한국문화원 어학당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죠. 한국말을 곧잘 하고, 듣기는 더 잘합니다. 한국 사람이 얘기하면, 70%는 알아들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그녀는 "재미가 재밌어요" 따위의 실없는 말장난을 구사할 정도로 천진한 구석이 있죠. 보다 솔직히 말하자면 푼수기가 다분하죠.

그녀의 영어 이름은 재미 린,
한자 본명은 임배녀.

배녀라....... 산골 밭뙈기 할매들에 어울릴만한 옛 이름들 - 이를테면 금녀 성녀 순녀 등-이 생각나더군요. 한국에 있는 작은 엄마들 생각도 나고. 서울에 사는 큰 작은 엄마 장점례씨는 10여 년 전 장도희로 개명했고, 지방에 사는 작은 작은 엄마인 한계자씨는 아직도 그 이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재미씨, 배녀는 안됩니다. 배려를 잘하시니 앞으로 임배려가 나을 것 같습니다." "호호호호호. 좋아요. 임배려~."

 

배려씨가 한국말을 배우는 이유는 한국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사랑한 이유는 한국 남자 때문입니다. 아니, 한국 남자 연예인 때문이죠. 그녀의 이상형은 천정명. 그가 나오는 드라마를 보고 그녀는 한국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한국남자와 결혼해야겠어요~."
"대만에도 남자가 있지 않습니까?"
"호호, 대만 남자들은 다들 어린애 같아요, 여자 같아요. 남자 같은? 남자 다운! 경상도 싸람 좋아요~."
"......"

 

짧은 탄식이 튀어나왔지만, 인도에서 동아시아 한류의 위력을 실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자기 예언적인 자조를 웃으면서 하기도 하죠. "난 결혼 못 할 거예요~." "왜요?" "호호호, 혼자, 사는 게, 좋아요~" "재미씨, 아이 앤비 유. 재미씨는 신선같이 사시니깐요. 신선 아십니까?" "씬씨옌(중국 발음)! 알아요." "신선보단 선녀가 낫겠군요." "썬니예, 오호호호 썬녀 좋아요~"

 

그도 그럴 것이 발은 지상에 딛고 머리는 하늘에 담근 것처럼 삽니다. 티벳 수행 고승이 오후 3시부터 금식을 하며 1일 1식, 혹은 2식 하는 것처럼 일단 저녁식사를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네 발 달린 짐승의 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두 발 달린 닭고기는 먹죠.

 

중국 식당에서 새우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봤습니다. "새우는 드시는군요." "새우는 발이 여러 개입니다~ 오호호호." 네 발 달린 해산물이 뭐가 있을까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마땅히 떠오르는 생명체가 없었기에 '재미씨는 해산물을 먹는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왜 하필 네 발입니까?" 
"말, 소, 돼지, 개 같은 네 발 동물은 사람과 친구입니다~"

최근에 재미씨는 소개팅을 했습니다. 클라이언트가 무턱대고 남자를 소개해준다고 약속을 잡아 속는 셈치고 가게 됐다고 했습니다. 영국인과 대만인 혼혈의 부티나는 사업가는 재미씨를 만나기 위해 뭄바이에서 델리까지 비행기를 타고 날라왔습니다. 소개팅 장소는 한국 식당으로 잡았습니다.


"아 소개팅 어떻게 됐어요?" "짜증이 나요~ 오호호. 이혼하고 아이도 있는 남자였는데 가서 알았어요."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사람이 괜찮으면 되죠." "최악의 농담을 했어요~. 이상한 남자예요."

 

재미씨를 본 그 남성은 "스물 다섯살처럼 보인다"고 말했대요. 그리고 그 남자 아들은 알고 보니 스물일곱이었죠. "'그럼 니 아들을 소개해주던가~'라고 하고 싶었어요. 오호호~" "대만 남자를 왜 싫어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아하하~천정명~ 천쩡명!" 그랬던 재미씨가 요샌 "송중기~ 송쭝기~" 하고 다닙니다.

코끼리와 낙타는 우리의 친구

재미를 알게 된 건 하숙집 사모 덕입니다. 두 사람이 전 직장 동료였거든요. 재미와 하숙집 모녀와 함께 라자스탄주 자이푸르와 푸시카르를 다녀왔습니다. 자이푸르는 전에 한번 다녀온 곳이지만 다시 갔습니다. 그녀 덕분입니다. 호텔에 기거하기 때문에 포인트가 엄청나게 쌓여서 자이푸르 고급 리조트 호텔을 공짜로 묵을 수 있었거든요.

여행을 함께한 사람들: 재미씨(왼쪽), 하숙집 사모님(가운데), 하숙집 따님(오른쪽)

집에서 차로 4시간 거리의 자이푸르에서 하루를, 그곳에서 차로 3시간 거리 푸시카르에서 또 하루를 묵었어요. 주말을 이용해 그녀의 7인승 차량과 운전사와 함께 새벽에 출발해 자이푸르에 도착했습니다.

자이푸르에서 북동쪽으로 11㎞ 떨어진 언덕에 지어진 암베르 성(Amber Fort)은 예로부터 지방 왕족의 성으로 기능했습니다. 12세기부터 카츠와하(Kachhwaha) 왕국의 왕 28명이 600년동안 기주했다고 하죠. 후에도 라자스탄 왕국은 무굴제국의 외척으로 승승장구.

전에 가보지 못한 암베르 성 입구에 당도하니 코끼리 10여 마리가 귀를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관광 상품인 코끼리 떼들은 코 주변에 형형색색의 물감으로 떡칠 화장을 했어요. 물감에 바늘처럼 박힌 강렬한 햇살은 코끼리의 맨 거죽살에서보다 느릿느릿 떨어지려는 듯 보였습니다. 코에 뭍은 물감의 채도는 화려히 증폭되어 관람객의 발길을 유혹했습니다.

코끼리 등에 오르기 위해선 입구에 설치된 2층 높이의 탑승대에 계단을 타고 올라야합니다. 잘 조련된 코끼리는 목에 탄 운전수 아저씨의 뜻대로 움직였습니다. 내가 철제 안장에 쉽게 오를 수 있도록 탑승대 바로 옆으로 몸을 착 붙였죠.

섭씨 42도가 넘는 찜통 같은 공간에서 철제 안장을 등에 이고서 능선을 따라 지어진 성의 꼭대기까지 관광객 2명을 반복해서 실어날라야 하는 일은, 여기 짐승의 천형(天刑)처럼 여겨져 마음이 아렸습니다. 네 발 동물은 인간의 친구니까요.

"코끼리는 오전만 일한다"는 말은
내 마음을 달래줬습니다.

몇년 전까지 여기 코끼리들은 해가 떨어질 때까지 하루 종일 일했대요. 어느 날 성난 코끼리 하나가 사람을 코로 잡아 내동댕이 쳐버렸습니다. 사람이 죽는 사고가 벌어진 겁니다. 인도 정부에서 코끼리의 행동 원인을 연구해보니 '업무 스트레스'란 결론이 났습니다.

 

또한 마실 물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쉽게 병에 감염되고, 등이 부풀어오르며 우울증 증세까지 보이는 코끼리들의 사정도 드러나게 되었대요. 정부는 "이거 안 되겠다, 이제 코끼리들을 오전에만 일하게 하자"란 지침을 세웠습니다. 우리의 친구 코끼리가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코끼리의 쉴 권리'에 대한 여론이 조성됐습니다. 과도한 업무량에 난폭해진 코끼리들이 사람들을 공격하는 사건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거든요.

 

급기야 인도 대법원은 작년 말 야생동물 구조·보존센터 청원을 받아들여 주 정부에 "코끼리들이 고문을 당하거나 주인들에 의해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는지 철저히 검사하라"는 명령을 내렸죠.

라자스탄주는 왕(라자)의 동네답게 화려하고 장식적인 '라자스탄 스타일'이라는게 있습니다. 운전수 아저씨가 쓴 터번도 라자사탄 사람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스타일입니다.

그래서 코끼리 등에 안 탔느냐고요? 탔습니다. 재미와 조를 이뤄 코끼리 위에 올라 사진 찍고 낄낄대며 15분을 즐겼죠. '코끼리야, 곧 정오가 올 거야. 이제 쉴 수 있으니 조금만 힘내'라면서 뻔뻔하게 자기합리화를 해버렸습니다.

다음날 푸시카르에선 사막 비슷한 곳에선 낙타를 탔죠. 네 발 달린 낙타의 업무 환경은 옆 동네 코끼리보다도 황량하고 초라했습니다. 석양을 바라보며 한적하게 1시간 동안 낙타를 탔거든요. 2층 높이의 낙타 등에서 몇 분 동안은 두 발 짐승 인간의 집요함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근면하고 강인한 사막의 왕자 낙타야,
일부러라도 난리를 피고 등에 탄 인간을 죽이지 않으면 넌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해 질 녘까지 일하는 하루를 반복하게 될 거야."

낙타의 언어가 있다면 이렇게 귓속말을 해주고 싶다는 불온한 충동이 들었습니다. 낙타는 심드렁하고 느긋해지는 약물이 스민 껌을 씹는 듯 입을 쌜룩 대며 나를 실어 날랐습니다.

우리 일행이 탄 낙타 두마리를 안내했던 낙타몰이꾼. 헐리우드 배우 크리스 파인을 닮았습니다. 과묵한 그는 낙타 코의 코뚜레에 매인 줄을 잡고 1시간동안 낙타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낙타와 함께 모래를 밟았습니다.

모래벌판을 지나는 낙타를 탄 관광객들이 눈에 띄자 몇 몇 아이들이 달려들어 구걸했습니다. 'Hello sir'라며 상냥한 인사를 건네거나(위쪽 사진), 현악기로 음악적 재능을 뽐내기도 합니다(아래 사진). 다들 귀여워서 몇푼 쥐어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꾸 주다 버릇하면 오히려 애들 버릇만 나빠질텐데.

곡성(哭聲), 생애 첫 아유르베딕 마사지

더운 날이었습니다. 모자를 쓰지 않아 불덩이를 정수리에 인 듯 했어요. 이러다가 죽겠다 싶어 암베르 궁을 구경하자마자 곧장 예약된 고급 리조트 호텔로 피신했습니다. 내 방만한 화장실이 딸려 있고, 호텔 방 옆엔 손님을 위한 작은 정원까지 있었어요.

남자가 나 하나뿐이라 커다란 방을 혼자 썼습니다. 나머지 한 방에 추가 침대를 들여 놓고 여자 셋을 자게 해서 좀 미안했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사진에 라자스탄식 호텔 방의 호화로움이 덜 담겨진듯 해서 아쉽군요. 방안 목재 가구며 탁자, 의자 등이 섬세하고 고풍스러운 문양으로 장식돼있었습니다.

'라자(인도의 왕)'가 된 듯 킹사이즈 침대에 대자로 누워 있다 호텔 안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했습니다. 이후 다같이 호텔에 있는 자쿠지를 구경하러 갔습니다.

"인도 전통 아유르베딕 마사지 서비스가 있네요. 델리에 잇는 호텔보다 저렴하니 한 번 해보세요."

하숙집 사모가 제안해 날름 하겠다고 했습니다. "남자는 여자가 해줘야 기(氣)가 맞는 법인데, 아유르베다 방식은 남자가 남자를 해줘요"라며 사모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아니 사모님, 저를 뭘로 보시고'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살짝 낙심했습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또한 별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아 저야 더 좋죠. 남자 손으로 세게 마사지를 받아야 근육도 풀리고요"라고 답했습니다. "나도 할래요~ 마사지 좋아요~ 오호호." 재미까지 가세했죠. 재미도 아유르베다 마사지는 처음이라더군요.

 

재미가 먼저 한쪽 방으로 인도 아주머니와 함께 들어갔습니다. 저는 밖에서 한 10분을 대기하고 있는데 "악!"하는 재미의 짧고 높은 톤의 귀곡성이 들렸습니다.
슬슬 불안해졌죠.
뭔가가 있다.
저 방에 비명을 짧게 지를만한
뭔가가.

인도 전통 아유르베다식 마사지 시술대. 벌거벗겨져 불투명 부직포로 간신히 중요한 곳을 가린 채 누워서 마사지사를 기다려야 합니다. 짧은 시간이었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다들었죠.

이윽고 인도 아저씨가 오더니 나를 데리고 다른 방을 안내했습니다. 커튼을 통과해 희미하게 볕이 스민 밀실에 얇은 천을 깐 침대가 놓여 있었습니다. 매끈한 푸줏간 도살대 같다는 쓸데없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습니다. 위에는 철제 램프와 이상한 그릇들이 있었고요. 마사지용 아로마오일 향내가 코 점막에 계속 붙어 들었습니다. 오일이다. 이 기름 덩이들로 몸을 칠하나 보다.

 

 

마사지사 아저씨는 내게 비닐로 싸인 팩 하나를 던졌습니다.

"뭡니까?"
"(힌디어라 이해불가)"

"뭐예요 이게?" 라며 포장을 뜯었더니, 반투명한 부직포로 된 일회용 삼각팬티가 있었습니다. "입으라고?" 힌디어로 또 뭐라고 솰라솰라해요. "이걸 입으라고?" 팬티를 성기 쪽으로 같다 대자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러면서 영어로 한마디 하고 나가더라고요.

"네이끼드(Naked), 네이끼드."

패잔병이 적진에 투항하기 전 갑옷과 장신구를 벗어놓는 것처럼 걸친 옷을 주섬주섬 벗었습니다. 옷걸이도 없었어요. 커튼쪽 난간에 대충 옷을 놓아두고 반투명의 일회용 삼각팬티를 입고서 해체를 기다리는 냉동 돼지처럼 가만히 누웠습니다. 태국이나 한국에서 받았던 건식 마사지를 생각하자 치욕감이 밀려왔습니다.

'거기에선 반팔 셔츠와 반바지는 줬어.'

몇 분 후 마사지 아저씨가 왔어요. 손에 기름을 붓고서 내 발바닥을 미친 듯이 비벼댔습니다. 뭔가 전통요법의 시작인가봅니다. 그리고서 내 전신은 기름 범벅이 됐습니다. 맨 처음 내 더럽고 까칠한 발을 비비던 바로 그 손바닥은 내 뭉친 근육을 풀어주기는커녕 그냥 쓱쓱 밀고 지나가기만 했습니다. 반투명한 팬티가 오일을 머금고 점점 투명해지는 만큼 내 마음은 탁해졌습니다.

'목욕탕 때밀이라고 생각하자.'

목욕탕 목욕관리사는 손에 때밀이 천을 끼는 데 말이죠. 난생처음 내 몸에서 외간 남자의 맨손이 미끄러져 나가는 데에 수치감을 느꼈습니다. 미광에 비친 먼지가 느리게 움직이는 조용한 밀실에서 나는 더욱 어두워져 갔습니다.

'그래, 미용실이야.
여긴 미용실이야.'

나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를 때 편하게 있질 못하는 데, 목에 둘러 몸을 덮는 천 때문입니다. 저항할 수 없는 듯이 손발이 제압된 채 차가운 금속성 가위가 쓱싹거리며 눈과 귀를 지나가는 것에 까닭없는 무력감을 느끼거든요. 그와 비슷한 무력감에 더해 수치심까지 덧발라진 내 몸은 경직된 채로 한 시간이나 기름 마사지의 형벌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난도질당한 고깃덩어리가 된 기분으로 방을 나서자 재미가 있었습니다. "바로 샤워하지 마세요. 30분 뒤에 하세요. 오일이 몸에 충분히 스며들어야 좋아요." "재미씨, 당신도 팬티만 입고 마사지를 받았나요? 저는 몹시 수치스러웠습니다." "그래도 남자는 낫죠~ 여자는 가슴까지 보인 상태에서 기름칠을 당하니까요, 오호호." 방에 들어왔습니다. 온몸의 기름기 때문에 킹사이즈 침대에 라자처럼 누워 있지도 못했습니다. 침대 모서리에 비스듬히 걸터앉은 내 모습이 15분 만에 한심해져서 샤워를 해버렸습니다.

 

해가 어느 정도 땅 쪽으로 떨어지고 나서야 우리는 다시 채비를 하고 호텔을 나왔습니다. 이후 펼쳐진 2박3일의 일정에서 나는 쇼핑에 대한 세 여자의 광신적인 사랑과 집착, 성스런 강가에서 신에 대한 기도 의식을 상품화하는 일부 힌두교 사제들의 천박함과 코믹함을 경험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더위가 절정을 향해 치달아가고 있는데 요즘 전두엽 속 일부 회로가 그을려 손상을 입은 것 같거든요. 정신이 혼미합니다.

 

오늘 뉴델리의 낮 최고기온은 섭씨 43도였습니다. 한국의 봄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