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싸기로 유명한 스위스 물가

스위스에 다녀왔다는 얘기에는 '스위스 물가가 참 비싸더라'는 말이 따라온다. 흔히 물가를 비교할 때 예로 드는 빅맥지수*가 6.44달러로 세계 1위인 스위스. 혹시나 빅맥이 와 닿지 않는다면, 커피 한 잔에 기본 5천 원, 한 끼를 때울만한 한 그릇 음식은 2만 원 정도이다.

Sources: McDonald's; Thomson Reuters; IMF; The Economist

* 빅맥지수: 맥도널드 햄버거인 '빅맥(Big Mac)' 가격에 기초해 120여 개국의 물가 수준과 통화가치를 비교하는 주요 지수로서,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매 분기 작성·발표한다. (출처: 매일경제용어사전)

 

하지만 IMF 2016년 4월 기준으로 1인당 GDP는 7만 8천 달러(한화 9,250만 원 정도), 시간당 기본 급여는 약 22달러(한화 2만 6천 원 정도)인 나라인 걸 감안하면 그 정도는 되어야 사회가 돌아가지 않을까 싶긴 하다.

 

이렇다 보니 스위스는 '시간이 돈'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나라다. 기본적으로 사람 손이 가겠다 싶은 것 대부분 비싸다고 보면 된다.

 

몇 달 전에 전등은 설치하려고 사람을 부르려 했지만 비용이 전등 값보다 두 배는 더 비싸서 아직도 못 달고 있고,  '나가서 사 먹는 게 싸다'는 얘기는 스위스에서 전혀 해당사항이 없는 얘기가 되었다.

스위스 슈퍼마켓 이야기

그렇다면 슈퍼마켓의 물가는 어떨까. 상품마다 다르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한국 보다 대략 20% 정도 비싼 것 같다. 그중 유난히 육류가 유난히 비싼데, 한국에서 닭 한 마리를 살 돈으로 스위스에서는 닭 가슴살 정도 살 수 있다고 보면 된다.

 

여기 스위스의 슈퍼마켓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 기차역, 시내, 동네 가는 데마다 있는 미그로스(Migros)와 코옵(Coop)이 슈퍼마켓 체인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아마 두 체인의 마켓 점유율이 80%는 족히 될 걸로 예상된다.
  • 글로버스(Globus)라는 백화점의 슈퍼마켓은 그냥 모든 게 더 비싼-연어 한 덩어리에 10만 원짜리도 찾을 수 있는-곳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북적북적 붐빈다. 알고 보면 미그로스 그룹 소속이다.
  • 저가형 슈퍼마켓으로는 데너(Denner, 역시 미그로스 그룹 소속), 독일 저가 슈퍼마켓 체인인 알디(ALDI)나 리들(Lidl)이 있지만 그렇게 인기가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슈퍼마켓 체인의 양대 산맥인 미그로그(좌), 코옵(우) ⓒ하이디 K.

 

저가형 슈퍼 대신 다른 나라의 슈퍼로!

인터넷에 떠도는 스위스 서바이벌 팁 중에 재밌었던 건 '스위스에 사는 사람들이 국경 인근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로 원정 쇼핑을 간다'는 거였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략 10-30% 정도 싸고, 면세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스위스 내에서 굳이 저가 슈퍼를 가는 것보다 낫다는 얘기였다.

 

회사 동료는 5인 가족으로 매달 독일 원정 쇼핑을 가는데 아마 매달 백만 원 가량은 절약하는 걸로 추정. 이렇게 꼬박꼬박 가는 사람들과 주말 나들이 겸 한 번씩 가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원정 쇼핑을 하는 인구가 상당해서 '스위스에서 쇼핑을 하자'는 캠페인이 있었다고 한다.

 

국경에서는 세관(Zoll)을 통과하게 되는데, 주로 이렇게 쇼핑하러 오가는 스위스 차량들을 검사한다. 특히 축산업이 스위스 보호 산업이다 보니 생육 반입에 민감해서 인당 1kg로 제한되어 있다. 초과 시 kg당 17Sfr 세금(약 2만 원)이 부과된다.

스위스 국경 세관(Zoll) ⓒ하이디.K

그 정도라면 독일에 가는 기름값이 더 들겠다 싶지만, 세관에서 하나하나 물품을 검사하지는 않고 영수증을 검사하기 때문에 고기 결재를 여러 영수증으로 나눠서 하고 하나만 보여주는 트릭을 다들 쓴다고 한다. 이 나라에서 그런 꼼수가 통한다니 놀랍지만, 가끔은 정말 물품을 하나하나 검사하기도 한단다. 육류 외에도 버터/마가린, 유지류, 담배, 주류 반입에 엄격하다.
 

나같이 혼자 사는 사람들은 사실 크게 금전적인 득을 볼게 없는데다, 차도 없이 국경 넘어 생필품 쇼핑을 하러 가는 게 대장정처럼 느껴져 남 얘기처럼 듣고 있었다.

그러다 두어 달 전에 회사 동료가
퇴근하고 차로 독일에 쇼핑을
간다고 해서 한번 따라가 보았다.

스위스 국경이 퍼즐 조각 같다 보니 독일이 생각보다 가깝다. 회사에서 차로 고작 10여 분 거리 밖에 되지 않는데 이 정도면 한국에서 지역 마트 가는 수준.

 

독일 슈퍼마켓 주차장에는 과연 듣던 대로 스위스 번호판을 단 차들이 꽉 차 있었다. 한국 마트도 주말에 차가 막히듯, 여기도 주말 되면 오가는 길목이 꽉 막힌다고 한다. 독일 슈퍼마켓이 확실히 전반적으로 가격이 낮았는데, 특히 공산품이 눈에 띄게 저렴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다시 가야겠다는 생각이 아직 들지 않는 걸 보면, 역시 오가는 노력에 비해 사실 대단한 메리트는 없었던 듯하다. 그냥 국경을 넘어 아무렇지 않게 슈퍼에 다녀온 것 자체가 생경하면서 재밌는 경험이었달까.

스위스 물가는 왜 비쌀까?

다시 가야겠다는 생각 대신에 스위스가 왜 비싼지를 좀 생각해 보게 됐다.

스위스의 물가가 비싼 이유로는
제일 먼저 '인건비'와 '관세'가 꼽힌다.

시간당 인건비가 22달러인 나라에서 아직까지 직접 농축산물을 생산하니 오죽하겠는가. 아무리 기계의 힘을 빌린다 해도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인구는 8백만 밖에 안되니 규모의 경제가 나올 크기도 아니고. 유럽의 한복판에 있지만 EU가 아닌 터라 섬 아닌 섬나라이다 보니 관세도 높을 수밖에 없다.

 

고기의 경우 축산업이 스위스 보호 산업이기 때문에 수입 관세도 더 높고, 스위스 농장들이 소규모로 운영되는 터라 막대한 정부 보조금에도 불구하고 고기가 비쌀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


하지만 이것 말고도 어느 순간 깨달은 게  영국이나 한국에서는 거의 물건을 정가에 사는 일이 없었다. 한국 마트에 가면 프로모션이 정말 많은데다가, 영국 같은 경우는 4-5개의 대형 슈퍼가 마켓 셰어 전쟁이라 최저가 전쟁이 붙어서 소비자 입장에서는 갈수록 싸진다고 느낄 정도였다.

반면에 여기는
제살 깎기 경쟁이 거의 없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스위스 마트가 비쌀 수밖에 없는 듯하다. 마트 양대 산맥인 미그로스와 코옵은 정말로 짠 듯이 비슷한데 (하물며 로고도 비슷하다) 둘 다 생활협동조합(생협)의 형태다.

 

정확히 그 영향이 뭔지는 알아봐야겠지만, 예상하기로는 상장기업보다 실적, 마켓셰어 압박이 덜 하지 않을까. (미그로스의 경우는 창업자가 애초에 술과 담배를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아직까지도 팔지 않는다.)

 

현대 사회의 대량 생산과 유통의 틀 안에 살면서 무엇이 상품의 제값인지 모호하다는 생각을 했다. 스위스 국기 스티커가 붙은 비싼 가격표를 보면서 "그래, 스위스의 누군가는 시간을 들여서 이걸 생산했겠구나"하고 스스로를 납득 시키다 보니, 오히려 이전의 내 기준 가격들이 "과연 누군가의 시간을 충분히 보상하는 가격이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재 종료 안내]
이 글을 마지막으로 하이디 K.의 '스위스 라이프'가 종료되었습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