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치,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찾는 투자자

머릿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당신은 텁텁한 공기에 잠이 깼다. 마른 혀를 적시기 위해 침을 삼켰는데 흙 맛이 난다. 눈을 떠보니 다락방의 창문으로 빛이 들어오는데, 그곳에는 몇 주 전에 겨우 얻은 천으로 짠 텅 빈 캔버스가 보인다. 문득 어젯밤 꾼 꿈속의 경관을 그리고 싶어 영감이 떠올라 얇고 해진 이불을 던져 캔버스 앞으로 달려간다.

 

캔버스 앞에 서니 다시 꿈을 꾸는 것처럼,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파도가 모여 부서지는 절벽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인간의 아름다움! 강인한 육체와 뜨거운 심장, 우리의 살아있는 몸을 표현하고 싶다. 그렇다. 당신은 르네상스 화가인 것이다!

 

이 형상을 잊기 전에 당장 그림을 그리고 싶다. 하지만 캔버스 옆을 보니 삐죽삐죽 털이 튀어나온 붓뿐이다. 어떻게든 그리려고 했는데,  페인트가 없다.

 

ⓒ임수민

메디치 가문(Medici family)은 13세기부터 17세기 사이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귀족 가문이다. 이들은 은행업을 통해 부와 명예를 얻었으며, 귀족들과 평민들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파격적인 정책을 제시해 다양한 계층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들은 공화국의 실제적인 통치자였다.

 

메디치 가문은 당대의 문화 융성에도 큰 역할을 했다. 돈이 없어서 재료조차 살 수 없는 상황의 예술가들에게 가문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거나, 더 나아가 그들이 다양한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금전적인 지원을 제공했다.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를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가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았다. 이들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학문과 예술은 전성기를 이루었고, 르네상스 시대의 막을 열었다. 이를 통해 예술과 스폰서십은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메디치는 예술가의 후원자를 비유하는 말로 널리 쓰이고 있다.

로렌초 데 메디치의 초상. 메디치의 후원을 받았던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의 작품으로 현재는 우피치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그렇다면 자유 시장 경제 체제에 들어서면서 예술과 스폰서십의 구조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자유 시장의 원칙은 가격이 상승하면 수요는 줄고 공급이 늘고, 반대로 가격이 하락하면 수요가 늘고 공급이 주는 것인데, 이것을 반하는 것이 바로 베블런재(veblen goods)*이다. 사람들의 선호가 가격 형성에 직결되고, 가격이 상승할수록 그 가치가 높아져 오히려 수요가 급증하는 자유 시장의 돌연변이다.

* 사람들의 선호가 가격형성에 직결되고, 가격이 오르면 오히려 선호도가 높아지는 재화를 일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