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마존이 필요 없다

2018년 말, 아마존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제2본사 설립 예정지로 워싱턴 D.C.와 뉴욕을 최종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시애틀 본사와 같은 규모로 제2본사를 짓는다고 했기 때문에, 아마존이 들어설 도시에는 약 5만 명가량의 새로운 고용이 일어나게 된다. 엄청난 규모의 경제적 횡재인 것이다.

 

후보지를 둘로 나누었기 때문에 산술적으로는 고용 규모가 약 2만 5000명으로 줄어들었지만, 그 숫자는 아마존이 미국 전역에 세운 물류창고(풀필먼트 센터)*의 직원 수와 비교할 수 없다. 이들은 블루칼라가 아닌, 평균 연봉 1억 원이 넘는 고소득 직원이기 때문이다.

* 관련 기사: 창고 넘은 아마존, 풀필먼트가 커머스의 미래인 이유 (CLO, 2017.11.30)

 

쉽게 말해 한 도시에 총연봉 2조 5000억 원이 쏟아지는 셈이다. 이 횡재를 차지하기 위해 많은 도시가 창피함을 무릅쓰고 경쟁에 뛰어들었다. 몇 년 동안 세금을 면제해주겠다는 것은 물론이고, 도시 이름을 아마존으로 지어주겠다고 제안한 곳*도 있을 정도였다.

* 조지아 애틀랜타 인근 스톤 크레스트가 그랬다.

 

이 모든 경쟁 과정을 거치고 선정된 뉴욕에서는 발표 직후부터 선정에 반대하는 기류가 형성되었다. 특히 발표 시점에 이루어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당선된 최연소 여성 후보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Alexandria Ocasio-Cortez)를 중심으로 조직적인 아마존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결국 선정 3개월 만인 2019년 2월 14일, 아마존은 뉴욕에 제2본사 설립을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 관련 리포트: [정치] 미국을 흔든 밀레니얼 정치인, 오카시오 코르테즈의 데뷔 (PUBLY, 2019.1.30)

 

뉴욕시로서는 아마존의 번복이 몹시 당황스러운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아마존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뛰었던 뉴욕주지사 앤드류 쿠오모(Andrew Cuomo)와 뉴욕시장 빌 드블라지오(Bill de Blasio)는 모두 오카시오 코르테즈와 같은 미국 민주당 소속인데다, 드블라지오 시장은 그 못지않게 서민을 위한 시정으로 인기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요즘 오카시오 코르테즈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고 하더라도 신출 하원의원 한 명이 이뤄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아마존의 침투를 반대하는 지역 노조와 시민단체의 조직적인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반대의 면면을 좀 더 살펴보자면 이렇다. 아마존 임원은 뉴욕 시민과의 대화에서 "아마존은 시애틀에서와 마찬가지로 뉴욕의 제2본사 직원들의 노조 설립을 불허하겠다"라고 밝혀 지역 노조원들의 분노를 샀다. 또한, 실리콘밸리를 비롯해 거대 테크 기업의 고액 연봉 직원이 몰린 지역의 집값 상승, 즉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지역사회가 붕괴되는 것을 익히 보아온 선정지*의 주민도 강하게 반대했다.

* 뉴욕 퀸스의 롱아일랜드시티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요소가 더 있다. "우리는 아마존이 필요 없다"는 뉴욕 시민의 자부심이다.*

* 관련 기사: Reactions Pour in After Amazon's Stunning Decision to Drop Long Island City Campus (Licpost, 2019.2.14)

이 자부심은
이미 뉴욕이 중요한 테크 도시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에 기반한다

이번 뉴욕타임스 기사가 설명하는 것처럼, 뉴욕은 실리콘밸리에 이어 벤처 자본가 관심을 보이는 지역으로 꼽히고 있으며 수천 개의 스타트업이 왕성히 자라고 있다.

테크 도시로 진화 끝낸 뉴욕

얼마 전 뉴욕대학교에서 멀지 않은 로어 맨해튼 근처의 타이 레스토랑을 찾았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분과 점심을 먹으며 회사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바로 옆 테이블에서는 (간간이 들리는 내용으로 보아) 뉴욕대학교 대학원생으로 생각되는 사람이 (옷차림으로 보아) 투자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무언가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이런 대화는 실리콘밸리가 있는 팔로알토나 산호세 주변 스타벅스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다. 작은 테이블에 놓인 노트북 화면을 보여주며 침이 튀도록 이야기하는 모습은 그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뉴욕에서도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살짝 놀랐다.

 

하지만 큰 놀라움은 아니었다. 구글은 이미 맨해튼 안에서 가장 넓은 대지면적을 자랑하는 건물을 사무실로 가졌으며, 700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아마존 뉴욕 지사에는 5000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다.

 

뉴욕의 정치인과 시민이 아마존 제2본사를 몰아낸 배경에는 계속 커지는 아마존 뉴욕 지사의 추세를 볼 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2만 명이 넘을 것이기에 굳이 세제 혜택을 주면서 모셔올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다고 한다.* 이미 뉴욕은 중요한 테크 허브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 관련 팟캐스트: How New York Lost Amazon (The New York Times, 2019.2.19)

'뉴욕은 아마존이 필요 없다'는 말에서 뉴욕 시민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Shutterstock실리콘밸리가 그렇듯 큰 테크 기업의 그늘에서는 이런저런 작은 스타트업들이 버섯처럼 자라게 되어 있다. 구글과 아마존이 뉴욕에서 덩치를 키우는 한, 재능 있는 인력은 뉴욕으로 몰려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뉴욕이라는 도시가 '실리콘앨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테크 대기업의 사무실이 들어섰기 때문만은 아니다.

 

뉴욕타임스 기사는 그 요인으로 미국의 컴퓨터 산업이 1960년대 서부로 옮겨가기 전까지 뉴욕과 뉴저지, 보스톤 같은 동부에서 싹을 틔웠던 역사와 2008년 미국 금융위기 때 블룸버그 시장을 중심으로 펼친 테크 산업 유치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들 사이에서 뉴욕이라는 대도시가 가진 매력을 차근차근 설명한다.

 

특히 '구글이 뉴욕에서 출발한 더블클릭을 인수하기로 한 이유' 등은 실리콘밸리를 흉내 내려는 모든 도시가 명심해야 할 내용이 담겨 있다. 구글이 더블클릭에 매력을 느꼈던 이유는 기술적인 가치뿐 아니라, 광고와 미디어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더블클릭이 브랜드 및 광고 에이전시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그렇기에 더블클릭은 광고 매출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구글에는 더 없이 매력적인 인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 역시 뉴욕시가 동부의 테크 허브로 자리 잡는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리콘밸리를 재현하는 방식보다도, 기존에 강점을 보인 산업이 테크와 만나는 지점에서 자생적이고 유기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