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드업'의 보편화

현재 축구팬들에게 빌드업(build-up)*이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어휘입니다. 교양을 과시하는 칼럼이나 전술적인 분석을 할 때 동원되는 용어가 아닌, 경기 중계를 보면서 채팅창에서 서로 수다를 떨 때 자연스레 쓰는 말이기 때문이죠.

* 상대편의 압박을 무력화하며 공격을 전개하기 위한 패스 워크 혹은 움직임

 

사실 200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빌드업은 익숙한 개념이 아니었지요. 물론 그에 해당하는 행위 자체는 있었지만, 보통은 '플레이메이킹'이나 '패싱'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대 후반부터 점차 빌드업이라는 어휘가 쓰이기 시작해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빌드업이라는 어휘가 일반적으로 쓰인다는 것은 이 현상이 사람들에게 더 자주 관찰되었고 반복적으로 인지되면서 훨씬 실체감 있게 다가왔음을 의미합니다.

축구가 달라지면,
말도 달라지는 것이죠

빌드업 혁명기 이전: 전술보다 선수 개인의 능력

과거 축구에서는 빌드업이라고 할 만한 체계적인 플레이 플랜이 미진했습니다. 2000년대 초 정도만 하더라도 최후방에서 볼을 전개할 때 꼭 지근거리부터 순차적으로 볼을 전개해 나가면서 중원을 정교하게 거쳐가는 축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빌드업이 아예 없진 않았지만, 11명의 플레이어가 아니라 플레이메이커 한 명이 모든 걸 관장하는 식이었죠.

 

이전에는 그 정도가 더 심했습니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플레이 메이킹이라고 할 수 있는 작업은 보통 하프라인 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프라인을 넘어간 이후부터도, 팀에서 가장 볼을 잘 다루고 관리하며 위협적인 공격을 할 수 있는 스타플레이어 1인이 독점적으로 경기를 지휘하고, 나머지 선수들은 그를 대신해 발로 뛰어 다니며 오프 더 볼 무브먼트를 활발히 행한다든가 수비에서 허슬 플레이를 수행한다든가 하는 궂은일을 담당했습니다. 이렇듯 빌드업은 팀 단위가 아니라 개인 단위에서 수행되는 것이었기에 경기에서 볼이 유려하게 회전되는 모습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혁명기의 태동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1992년, 골키퍼에 대한 수비수의 고의 백패스에 페널티를 가하는 룰이 제정되면서 예전처럼 골키퍼가 손으로 언제든지 볼을 캐칭하고 경기를 중단하는 식으로 경기를 운영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