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자처럼 생각하는 법

한때 미래사회를 예측하는 학자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은 책을 연초마다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저 상상을 확대해석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 예측과 묘사가 너무도 멀게 느껴지고, 한편으로는 "'미래학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이렇게 허황된(?) 것들을 연구하는 일을 업으로 삼다니"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TED에서 게임 개발 전문가로 접한 적 있는 제인 맥고니걸(Jane McGonigal, TED 강연 영상)이 이번에는 '미래학자'라는 타이틀로 SXSWedu 무대에 섰다. 그를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게 자못 설레면서도 "이 '미래학자'라는 분은 과연 무슨 말을 할까" 의구심을 품고 자리에 앉았다.

 

 

통통 튀는 자신감이 넘치는 그녀는 마치 '냉장고에 코끼리를 넣는 법'처럼 들리는 강연 

1. 오늘날의 변화가 의미하는 미래사회의 신호를 수집하라

2. 이 신호들을 조합하여 예측을 도출하라

3. 10년 후 자신의 인생을 예측해보라

4. 미래를 의심하고 상상하라

역시나 허황된 이야기... 만은 아니었다. 3D 프린터, 가상현실과 가상체험 등 기존의 질서를 뒤흔드는 최근의 첨단 기술을 예로 들어가며 전혀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이 허황된 상상들이 어떻게 그럴듯한 미래사회의 모습으로 진화할 수도 있는지 엄청난 양의 정보를 쉼 없이 쏟아냈다.

 

예를 들어보자.

미래사회의 모습 엿보기: 신비한 마법의 식당

- 요즘은 3D 프린터로 음식도 찍어낸다.

장난감이나 각종 모형 정도나 만드는 줄 알았는데 진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찍어낸다! 사람의 손으로는 도저히 구현할 수 없는 조형도 가능해서 심미적으로 보기 좋고 아이디어도 기발한 음식을 3D 프린터로 디자인한다는 것. 작년 런던에서는 3D 프린팅 레스토랑까지 선보였다고 한다.

 

 

- 가상현실이 맛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있다.

시각, 후각, 미각, 촉각 등 여러 감각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중에서도 시각을 통해 얻는 정보가 다른 감각에 앞서 인식을 형성할 때가 많다. 친구의 페북에서 멍게비빔밥 사진만 봐도 짭조름하니 향기로운 멍게의 맛이 느껴지듯 말이다. 그래서 오큘러스 리프트(Oculus Rift) 같은 가상현실 디바이스를 활용해 특정한 이미지를 보여주면 음식의 맛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변화를 줄 수 있다고 한다. (관련 영상: CAN VIRTUAL REALITY CHANGE THE WAY WE EAT?)

 

- 스탠퍼드 대학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가상현실에서 '소'의 입장이 되어 생활하고 변화를 관찰하는 것.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가상현실 디바이스를 쓰고 실험실 바닥을 네 발로 기어 다니며 가상의 초원에서 풀을 뜯었다. 그리고 그 실험의 마지막에 그들은 도살장에 끌려가 죽음을 맞았다. 이 기묘한 실험의 결과는 놀라웠다. 참가자들의 육류 소비량이 전에 비해 줄어든 것. 가상체험이 실제 식습관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 첨단 기술과 저탄수화물 식단 트렌드가 결합되면 미래의 식당은 어떤 모습이 될까?

최근 저지방 식단을 대체하는 건강 식이요법으로 저탄수화물 식단이 등장했다. 저탄수화물 음식을 3D 프린터로 조형해서 가상현실 디바이스를 쓴 채로 밥을 먹는다면, 우리가 늘 유혹에 빠지는 자극적인 음식들이 빠진 밥상이라도 푸짐한 한상처럼 먹을 수 있지 않을까? 맥고니걸은 게임을 좋아하는 발랄함을 듬뿍 얹어 이 미래의 식당에 '신비한 마법의 식당(mystery magical diner)'라는 이름을 붙였다.

국경을 초월하는 교육인증의 시대

이런 식으로 첨단 기술이 가져오는 변화의 흐름을 조합하면 지금과는 무척 다른 미래의 모습이 그려진다. 맥고니걸은 금융, 음식, 스포츠, 게임을 넘나들며 전개되던 연설의 초점을 교육으로 옮겼다.

교육이지만 그 출발은 금융이다.

몇 해 전 '디지털 화폐'로 불리는 비트코인의 등장에 세상이 한번 들썩였다. 보안 상의 위험 때문에 상용화되지 못하는 듯했으나 최근 거래 처리와 잔고 관리, 내역발급 등 은행의 역할을 하는 데이터 베이스 '블록체인'이 개발되면서 그 잠재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앙집권적인 관리 시스템이 따로 없고 네트워크 상의 누구에게나 화폐와 내역을 전송할 수 있기 때문에 각종 행정절차를 단축하는 데서 오는 편의성과 효율성이 큰 장점이다. (관련 기사: "비트코인 이상을 넘보는" 블록체인의 개념과 작동 원리)

 

학교와 학위 중심의 교육도 블록체인과 같은 유연한 시스템을 통해서 이뤄질 수는 없을까? 능력과 자격을 인정받으려면 대학교에 진학하고 박사학위를 받아야 하는 걸까? 현장에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경험을 쌓으며 그 분야의 키플레이어로 성장한 사람들을 우리는 자주 본다. 빌 게이츠도 스티브 잡스도 대학을 마치지 않았고, 아이비리그를 들어갔어도 제 발로 나와 스타트업으로 대박을 내서 크게 성공하기도 하는 세상이다.

 

불확실한 미래와 평생학습의 시대에 무슨 책을 읽고, 어떤 과정을 수료하고, 직장에서 어떤 프로젝트를 수행했는지 이력서에 미처 다 담지 못하는 이 모든 지식과 경험과 역량을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MIT 미디어랩이 이런 시스템의 현실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블록체인을 활용한 새로운 교육 시스템이 정말로 개발된다면 스스로를 성장시키려는 모든 노력이 공개 가능한 역량으로 축적되고, 지식과 능력을 가진 개인이라면 누구나 교육자가 될 수 있다.
 

그런 시스템 안에서 교육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질까? 학위가 지금과 같은 의미를 지닐까? 졸업은 할 수 있는 걸까? 승진의 기준은 무엇이 될까? 교육의 질은 어떻게 측정해야 할까?

 

이 대목에 이르러 나는 허겁지겁 타자를 치는 와중에도 '어마어마하다! 저게 미래야! Mind-blown'이라는 감상을 적어 넣기에 이르렀다.

미래사회의 신호를 수집해 도출한 예측대로라면 미래의 교육은 나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까.

어떤 문제와 과제가 생길까.

[교육의 미래, 미래의 교육 - 2016 SXSWedu]
2016 SXSWedu에서 보고 느낀 더 많은 내용들이 궁금하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