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국내 최초의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인 『채식주의자』는 다름에 대한 다수의 폭력을 다룬 「채식주의자」, 예술과 욕망으로 점철된 외설의 경계를 말하는 「몽고반점」, 그리고 과연 우리 모두는 정상인가를 묻는 「나무 불꽃」을 묶은 연작 소설이다.
어느 날 꾼 꿈으로 인해 채식주의자가 된 영혜를 2년의 시간 차를 두고 그녀의 남편, 형부 그리고 언니의 시점으로 그린 「채식주의자」는 구성 역시 인상적이다. 윌리엄 포크너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처럼 채식주의자가 된 영혜를 남편, 형부, 그리고 언니의 시선으로 연차적으로 풀어낸다.
그러나 세 사람은 영혜를 자신의 관점을 투영하여 바라보고 이야기할 뿐, 그 시선 안에는 '왜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했는지', '그녀에게 있어 그 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영혜의 이야기는 없다.
그들의 시선 속의 영혜는
껄끄러운 비정상인 일 뿐이다.
오직 무난했기에 그녀와 결혼한 남편은 영혜의 갑작스러운 채식주의자 선언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에게 있어 결혼은 사랑의 결합이 아닌, 욕구를 채워주고 평범한 일상을 연장하게 하는 남녀 사이의 파트너십이기에, 영혜의 채식주의 선언은 무난한 일상을 깨뜨리는 행위다. 육식을 즐기는 영혜의 가족 역시 영혜의 결정은 번복되어야 하는 잘못된 선택에 불과하다.
채식주의자를 정신병자처럼 여기는 가족은 그녀를 결박하여 억지로 고기를 먹이고, 이를 거부하는 영혜는 손목에 자해한다. 모든 갈등이 고기를 더 이상 먹지 않겠다는 식성의 변화 한 가지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생각하면 영혜에 대한 다수의 시선과 간섭, 그 뒤 비화되는 그들의 폭력은 섬뜩할 정도다.
모두가 강요하듯 영혜가 다시 고기를 먹기로 결정했다면 그녀의 바뀐 삶은 그들의 말처럼 옮은 것인가? 그리고 영혜는 그제야 한 인격으로서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것인가? 모두가 영혜를 걱정하지만 영혜가 갈등을 빚으면서까지 왜 채식주의자가 되기를 고집하는지 알려는 사람은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를 불편해하고 거부하는 그녀의 가족의 내재된 악함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생각나게 한다.
정상이란 과연 무엇인가? 다수가 동의하고 취하는 행위를 정상이라 말할 수 있는가? 정상은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선(善)인가? 명목적으로 부여된 개인의 선택과 선언은 어디에서 존중받을 수 있는가?
영혜와 영혜를 향한 날선 시선은 어디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 비정상과 예외에 대한 다수의 폭력이 우리네 일상 속에서도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 소설의 껄끄러움은 참담함이 된다.
2부 「몽고반점」은 그로테스크하다. 처제 영혜의 몽고반점에 페티시가 있는 형부는 예술을 빌미로 그녀를 새 작품의 도구로 활용하며 나중에 그녀와 살을 섞는다. 형부는 소설에서 거의 유일하게 모두의 기대와 역할에 부응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욕망과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방종은 처제와의 불륜이라는 사회적 타부를 넘어선 순간 끝난다. 그는 쌓아온 모든 것을 잃는다.
3부 「나무 불꽃」은 처제와의 불륜을 저지른 남편과 정신병자가 된 둘째 딸을 버린 부모와 연을 끊은 채 혹은 끊긴 채, 아픈 동생을 챙기는 영혜 언니 인혜의 독백이다. 영혜는 이제 먹기를 거부하며 오로지 햇볕과 물로 삶을 연명하는 나무가 되고 싶다 말한다.
인혜는 모든 것이 버겁다. 추문으로 얽힌 그녀의 삶은 언제든 끈을 놓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아슬하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뿐인 어린 아들과 온전치 못한 동생을 보호할 유일한 보호자이기에 꼿꼿하게 버틴다.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받았으나 삶을 견뎌내야 하는 인혜는 정상이라는 가면 속에 숨겨진 우리 모두의 단면이기도 하다.
영혜, 남편, 형부, 인혜 - 이 모두가 겪는 일들은 우리가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극단성을 지닌다. 그러나 약육강식에서 벗어나 누구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고 싶은 나무가 되고 싶은 영혜, 인정받되 모나지 않게 살고 싶은 영혜의 남편, 일그러진 욕망까지도 자신의 욕망이기에 밀어붙이는 형부, 그저 역할에 충실하며 책임감을 감내하는 인혜는 '모든 이가 가진 얼굴'이다.
출간한 지 10년도 더 된 책이 영미권에서 번역본으로 출간되면서 평단의 극찬을 받고 있다. 이미 채식주의자가 많고 보편화된 서양 문화권에서 이 책의 어떤 부분에 주목했을까 하는 질문이 든다. 생경한 한국적 갈등의 어떤 부분이 흥미로운 호기심으로 다른 문화권 독자에게 다가갔을까? 그런 질문에 독자들이 답을 해가며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마지막으로 맨부커상은 비영어권 작가가 수상할 경우 작가와 번역자에게 함께 수상한다. 한강의 막힘없는 문체와 한국인의 정서의 미묘한 부분까지 잘 잡아내어 고루하지 않게 번역한 영문판 역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