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모이는 곳에 기업이 온다

2017년 9월, 아마존은 매우 파격적인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시애틀 전체 오피스 부동산의 약 19%를 차지하며 약 4만 명의 직원이 일하는 본사에 이어 아마존 제2본사를 설립할 도시를 공모한 것이었죠.

 

아마존 제2본사를 유치하기 위해 이름을 '아마존'으로 바꾸겠다는 도시도 있었고, 10년간 70억 달러(약 8조 원)의 세제 혜택을 주겠다고 나선 곳도 있었습니다. 2018년 1월, 각양각색의 제안과 찬반 의견으로 요란했던 238개 도시의 치열한 경쟁 끝에 20개의 후보가 추려졌습니다. 2018년 11월에는 최종적으로 뉴욕시와 버지니아 알링턴시 두 곳이 선정돼 모든 사람이 놀라곤 했죠.*

* 뉴욕시에 제2본사를 설립할 계획은 2019년 2월 14일 철회하였다. / 관련 기사: Update on plans for New York City headquarters (Amazon Blog, 2019.2.14)

 

여기서 주목할 것은 아마존이 제2본사를 설립한 배경, 그리고 두 개 도시로 나누어 선정한 이유 모두 '인재 유치'라는 명분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점입니다.* '아마존의 도시'라 불리는 시애틀에선 이미 많은 인재를 흡수한 데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해마다 상승하는 부동산 비용과 물가가 거주 부담으로 작용해 외부 인재의 유입을 막았습니다. 새로운 도시 물색이 불가피한 상황이었죠.

* 관련 기사: 뉴욕·워싱턴DC에 아마존 제2본사…베이조스, 인재 몰린 곳 택했다(한국경제신문, 2018.11.14)

 

인재의 중요성은 아마존이 제2본사 설립을 위해 제시한 도시공모조건에서도 드러납니다. 총 여덟 가지 중 세 가지 항목이 '사람'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 실력 있는 이공계(Technical) 인력을 끌어들이는 도시
  • 직원들이 삶의 질(Quality of Life)을 즐길 수 있는 도시
  • 다양한 사람이 모이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커뮤니티가 살아 있는 도시(대학, 지자체 협력 등 포함)

출처:Pennsylvania Economy League, Greater Philadelphia Regional Review Fall/Winter 1997, p.15 / 그래픽: PUBLY조사 결과는 인적 자원이 기업의 생존과 성장에 필수불가결한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기업에게 매력적인 도시란, 좋은 인재가 많은 곳입니다. 인재 역시 문화적 인프라가 풍부하고, 삶의 질을 보장하는 도시를 선호하기 마련이고요.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뉴욕이나 시카고의 비싼 땅값을 감당하겠어요? 다른 사람들과 가까이 살 수 없다면 말이죠.

 

- 로버트 루카스(Robert Lucas),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

눈덩이가 굴릴수록 커지는 것처럼 사람이 많은 도시는 더 많은 사람을 끌어당깁니다. 특히, 1인 가구 비율이 증가한 탈가족 시대의 밀레니얼 세대는 직장과 가깝고 교통, 생활 편의시설, 문화적 인프라를 잘 갖춘 도시를 선호한다고 합니다.

출처: 머니투데이&KB부동산 리서치(2016) / 그래픽: PUBLY위 리서치는 왜 사람들이 대도시에 살고 싶어하는지 보여줍니다. 가장 큰 이유는 직장에 대한 접근성으로 '먹고사는' 문제와 연관됩니다. 제가 집중한 부분은 그다음인데요. 사람들이 문화 혜택을 자녀 교육과 풍부한 기반 시설을 뛰어넘는 커다란 장점으로 본다는 사실 말이죠. 즉, 도시는 일차적으로 경제 활동이 일어나는 물리적 공간이지만, 동시에 내면의 정신적·문화적 욕구를 채워주는 장소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문화 혜택이란 대규모 콘서트나 전시부터 길거리 공연까지 다양한 경험을 포괄합니다. 도시가 이토록 다양한 콘텐츠를 담을 수 있는 근본적인 동력은 사람이고요. 도시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며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 문화를 창조할 때 도시는 활력을 얻고 더욱 단단해집니다. 그런 도시는 점차 더 다양한 사람들을 끌어당기기 마련이고, 기업 또한 그들을 찾아 도시로 옵니다. 도시는 이런 선순환 구조를 통해 계속 성장합니다.

도시가 성장하면 우리도 행복할까?

도시는 거대한 경제 시스템의 집합체입니다. 전 세계 GDP의 80%가 도시에서 발생하며, 그중 50%가 300개 도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메가시티가 늘어난다는 전망은 경제도 그만큼 성장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규모나 영향력 면에서 웬만한 국가보다 입지가 커지는 메가시티가 계속해서 늘어난다는 이야기죠.

* 참고 자료: Urban world - How can cities become big and successful, not just big? (EY, 2016)

 

편리한 인프라와 경제적 혜택을 제공하는 도시에서 우리는 분명 과거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시는 높은 주거 비용과 물가, 교통체증으로 인한 스트레스, 노후화와 범죄 등 감당해야 할 문제 역시 안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삶의 질'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는 부분이죠.

 

미국의 여론 조사 및 컨설팅 기업 갤럽(Gallup)은 매년 146개 국가의 '글로벌 정서 보고서(Global Emotions Report)'를 발표합니다. 2018년 보고서에서 눈에 띄는 점은 과거 10년 동안 '부정적 경험 지수(Negative Experience Index)'가 꾸준히 올라 2017년 최고치를 찍었다는 것입니다. 부정적 경험 중에서는 걱정(38%)과 스트레스(37%)가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출처: 갤럽 웹사이트 / 그래픽: PUBLY

갤럽의 조사 결과와 도시화가 직접적 관련이 없어 보인다고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전원 지역에 사는 이들에 비해 우울증 노출 위험이 40% 이상, 불안장애 노출 위험이 20% 이상 높고, 기분장애를 겪을 확률도 2배 가까이 증가한다는 리서치* 결과를 참고하면 위 수치를 수긍할 수 있을 겁니다. 세계는 분명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행복지수는 경제 성장과 별개라는 뜻이죠.

* 관련 기사: City dwellers are more prone to stress (Anxiety.org, 2013.4.9)

경제적 성장과 정신적 만족감을
함께 충족할 수 있는
도시 환경이 가능할까요?

해마다 도시를 평가하는 새로운 지표가 하나둘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금껏 경제 성과로만 판단했던 도시의 가치를 다양한 시각에서 재평가하려는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주목할 점은 최근 10년 사이에 도시의 삶의 질과 환경에 관한 평가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다양합니다. 아래 자료에서 삶의 질을 평가하는 항목의 공통분모를 정리하면 1) 정치적 안정, 2) 경제적 안정, 3) 사회 커뮤니티, 4) 쾌적한 자연환경, 5) 도시 인프라 정도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이중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는 무엇일까요?

삶의 질 관련 도시 평가 지표와 최초 등장 시기 (출처: Guoping Huang, 2017, Indexing Human-Nature Relationship in Cities / 그래픽: PUBLY)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도시는 그동안 '잘 살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 노력은 결실을 맺었지만, 성장과 소비라는 두 축을 기반으로 커버린 도시는 해마다 늘어나는 온실가스 배출량과 쓰레기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외출을 두렵게 만들어버린 미세먼지, 지난여름의 극심한 더위를 떠올려 보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 문제는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의 우선순위를 바꿔 놓았습니다. 기본적인 생존을 보장하는 자연환경이 가장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말이죠. 자연환경은 삶의 필수 조건입니다. 오래전부터 자연에 적응해온 인류 또한 본능적으로 생존에 적합한 환경을 알고 있습니다.

 

1984년 미국의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sborne Wilson)이 발표한 이론인 바이오필리아 가설(biophilia hypothesis)*은 이런 인간의 본능을 설명합니다. 인간에게는 '자연(life) 또는 자연을 닮은(life-like) 프로세스를 선호하는 본능적 성향'이 있으며, 자연 속에 있을 때 인간은 가장 큰 만족감을 얻는다고 주장하죠.

* 관련 기사: Biophilia: Does Visual Contact with Nature Impact on Health and Well-Being? (Int J Environ Res Public Health, 2009.8.31) / How biophilia can improve your life (Mnn, 2018.10.27)

출처: EY Urban Worlds, 2016 / 그래픽: PUBLY

위 통계에서 살펴보듯, 1950년대만 하더라도 전 세계 인구의 67%가 농촌에 살았습니다. 불과 반 세기만에 도시 인구가 급증한 것이죠. 특히 한국의 경우 1920년과 1944년 사이 도시 인구가 6배 이상으로 급격히 성장했습니다. 1960년대에 28%였던 도시 인구 비율은 2017년 82%까지 늘어났고요. 인간이 도시 환경에 적응한 기간은 인류 전체의 역사에 비해 너무나 짧습니다. 그렇기에 생체 리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인공적 도시 환경이 익숙해진 지금, 우리는 바이오필리아 가설에 주목해야 합니다.

자연과 가까이 있고 싶은 본능

인간은 자연과 멀어질수록 병과 가까워진다.

 

- 괴테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자연과의 접촉은 줄어들었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요? 다음 참고 자료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자연과 가까이 있고 싶은 본능에 대한 연구' 관련 참고 자료

1. Social isolation and population density: Impact of race/ethnicity (Innovation in Aging, Volume 2, Issue suppl_1)
2. Sick cities: why urban living can be bad for your mental health (The Guardian, 2014.2.25)
3. More green space is linked to less stress in deprived communities: Evidence from salivary cortisol patterns (Landscape and Urban Planning, Volume 105, Issue 3)
4. How Green Spaces Reduce Stress (welldoing.org, 2017.7.8)
5. How Walking in Nature Prevents Depression (The Atlantic, 2015.6.30)
6. Green Space Will Lower Stress For City Dwellers, Reduce Heart Risks (Medical Daily, 2015.3.22)

  • 도시의 인구밀도(Social Density)가 높을수록 사회적 고립감(Social Isolation)을 느낄 확률도 상승한다는 연구 결과는 도시의 딜레마를 보여줍니다. 이는 우울증 같은 현대인의 정신질환과도 연결됩니다.
  • 뇌에서 위협, 두려움 등의 감정을 관장하는 편도체의 활성화 정도가 도시 규모와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 또한 대도시에 살수록 더 많은 스트레스에 노출된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특히, 도시에 살수록 편도체를 조절하는 pACC(perigenual anterior cingulate cortex)가 강한 자극을 받는데요. 이로 인해 pACC의 조절 기능이 원활하지 못하면 심각한 정신장애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집니다.
  • 녹지 공간의 비율이 낮을수록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코르티졸 레벨이 올라갑니다.

반대로, 자연과 가까워진 환경과 관련된 사례는 무엇이 있을까요?

  • 미국 국립공원의 내부 보고에 의하면, 9·11테러 사건 이후 뉴욕 공원의 방문객 수가 크게 늘었다고 합니다. 공원을 거닐며 당시 겪었던 사회적 트라우마를 돌아보고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 자연 속 산책은 우울증이나 기타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부정적 생각과 반추(rumination)를 줄이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환경심리학자 캐플란(Kaplan)의 주의집중회복이론(Attention Restoration Theory)에 따르면 녹색 공간과 자연에 노출되는 것만으로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되며, ADHD 증상이 있는 아이들의 증상 완화에 효과가 있었습니다.
  • 초목과 나무를 심은 개방 공간을 걷는 일만으로 심박수가 약 15 bpm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바이오필릭 디자인, 도시와 자연이 공존하는 법

위 연구 결과에 이어 최근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밀레니얼 세대가 하우스플랜트 시장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는 기사도 종종 등장합니다. 2016년 미국 하우스플랜트 시장 매출의 31%가 밀레니얼 세대로부터 발생했고, 2017년 핀터레스트에서 하우스플랜트 관련 검색어는 90%*나 증가했습니다.

* 관련 기사: 90% Of Millennials are Searching For Indoor Plants To Boost Mental Health Wellbeing (Gobal Banking & Finance Review, 2018.6.27)

 

밀레니얼 세대는 그 어느 세대보다 도시에 사는 것이 익숙하고 도시를 좋아합니다.* 도시가 제공하는 세련된 편의시설과 문화 혜택을 가장 풍요롭게 누리는 동시에 비혼(非婚)률 및 1인 가구 비율이 높은 세대이기도 하고요.

* 관련 기사: Millennials Are Happiest in Cities (Citylab, 2018.6.29)

 

이들이 식물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생명과 접촉하고 싶어합니다. 밀레니얼 세대 역시 자신들의 DNA 어딘가 긴밀히 연결된 자연, 그리고 자연이 주는 안정감을 그리워하며 되찾기를 원하죠.

 

도시를 떠날 수 없는 우리는 오늘날에 적합한 생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바이오필리아 가설이 등장하기 전인 1950년대 미국의 모던 건축가 리처드 뉴트라(Richard Neutra)는 도시환경이 인간의 신체, 그중에서도 신경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지적했습니다. 그는 이 문제를 건축 디자인으로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리처드 뉴트라가 1958년에 디자인한 교회 ©Shutterstock

뉴트라는 공간을 개방해 자연경관을 들이는 것이 도시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안과 밖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자연 채광을 최대한 활용하며, 미니멀한 라인의 창을 되도록 크게 내어 녹색경관을 담은 건축물을 짓는 것이 그의 해법이었죠.

 

뉴트라의 가장 유명한 저서 <디자인을 통한 생존(Survival through Design)>의 제목처럼, 본 리포트에서는 디자인에 방점을 두고 도시 문제의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단, 뉴트라가 자연을 통한 건축물의 경관(vista)에 중점을 두었다면, 저는 시각뿐 아니라 오감을 두루 활용한 공간 디자인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자연과 더 가까이 연결되는 삶을 살려면, 도시 공간은 어떤 조건을 필요로 하는지 고민하면서요.왜냐하면 우리가 디자인을 통해
도시와 자연을 조화시키며,
상생하는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