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회사 홈페이지에 '사랑'이 등장하는 이유

글로벌 IT 기업이 인공지능(AI)에 활발히 투자하고 활용 방안을 모색한다는 뉴스는 이제 새롭지 않습니다. 특히 2018년은 AI 관련 소식이 더욱더 풍성했던 한 해로 기억됩니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외에도 중국 기업의 AI 투자 소식을 접하노라면 이들이 인공지능에 사활을 걸었다는 표현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최근 넷플릭스로 시청하는 <블랙미러>*에나 등장할법한 AI 시대가 머지않았다는 생각에 막연한 두려움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두려움 때문에 뉴욕타임스의 기사가 더 반갑게 다가왔습니다. AI와 인간적 감성이 결합한 긍정적인 예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가까운 미래를 그린 옴니버스 드라마

 

기사에 소개된 후무는 구글 HR 부서의 수장이었던 라즐로 복이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설립한 스타트업입니다. 조직문화와 피플 애널리틱스로 명성을 얻은 구글 HR 부서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복이 머신러닝으로 일에서 행복을 찾아주는 비즈니스를 한다고 하자, 많은 사람이 시작 전부터 큰 기대를 했다고 합니다.

 

저 또한 기사를 통해 후무를 알게 되면서 AI의 긍정적인 역할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삶의 절반을 차지하는 일에서 행복을 찾고 높은 만족도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면, 개개인과 조직이 AI의 활용을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요?

그런데 정말 가능한 일일까요?

호기심 반 의구심 반으로 먼저 후무의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았습니다. 'Make Work Better'라는 문구가 가장 먼저 눈에 띕니다. 그리고 '사랑(love)'이라는 말도 자주 등장합니다. 첨단기술에만 의지하는 게 아니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심, 즉 사랑을 통해 사람들의 행동 변화를 만들겠다는 후무의 철학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사랑이라는 말만큼 기억에 남는 키워드는 '넛지'입니다. 리처드 탈러가 집필한 책이자 행동경제학의 바이블로 불리는 <넛지(Nudge)>에서 나오는 바로 그 넛지입니다. 리처드 탈러는 넛지로 노벨경제학상을 받기도 했죠. 이 책에서 소개하는 넛지는 사전적 의미인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에서 확장한, '부드러운 개입으로 타인의 행동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넛지는 강압적으로 요구하거나 주입하는 게 아니라, 당사자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행동을 유도하는 일입니다. 암스테르담 공항 남자 화장실 소변기에 그려진 파리 모양 스티커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암스테르담 공항은 사람들이 화장실을 깨끗하게 쓰도록 만들기 위해 엄격한 벌금 정책 대신 소변기에 파리 모양 스티커를 붙여놓자는 아이디어를 실행했습니다. 소변기에 파리가 앉은 줄 아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파리를 향해 소변을 조준했습니다. 그 결과, 소변기 밖으로 새어나가는 소변량을 80%나 줄일 수 있었습니다.

ⓒShutterstock후무는 암스테르담 공항의 사례처럼 작은 행동 변화를 통해 큰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조직에 맞는 넛지를 찾아주는 비즈니스를 합니다. 머신러닝을 통해 직원의 행동과학을 분석하는 방법을 사용하면서요. 그런데 문득, 후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떨지 궁금했습니다.

회사의 행복과 성과를
찾아주는 후무는
직원들을 어떻게 대할까요?

이번엔 홈페이지 밖에서 후무를 좀 더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우연히 후무에서 피플 사이언티스트(People Scientist)로 일하는 한국 직원 이피어나 씨를 알게 되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후무의 직원은 얼마나 행복하게 일할까?

후무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인터뷰를 부탁했을 때, 회사에서의 하루하루가 행복하다며 그 이야기를 들려줄 기회가 생겨 매우 즐겁다는 답을 먼저 들었습니다. 그의 대답을 듣자마자 '이 회사, 엄청나게 잘 하는구나'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사회심리학(Social Psychology) 박사로 스탠퍼드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일찌감치 후무라는 회사에 관심을 두고 지켜봤다고 합니다.

 

그의 개인적인 관심사 역시 '어떻게 하면 개개인이 더 의미 있고 즐거운 일을 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당시 구글 조직문화를 이끌던 후무 공동창업자 라즐로 복의 트위터를 팔로우하면서 '회사에서 특별한 환경을 조성한다면, 직원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조직 안에서의 개인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후 복이 창업한다는 소식을 듣고 후무에 지원한 그는 피플 사이언티스트라는 역할로 입사했습니다.

 

저의 첫 질문은 후무가 직원의 행복에 얼마나 관심이 있고, 실제로 어떻게 넛지가 실행되는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후무는 직원과의 소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직원들의 기대나 요구를 1주 혹은 2주 안에 반영한다고 합니다. 회사에서 직원들의 삶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느낌을 매일 받는다고도 합니다. 무엇보다 넛지가 정말 많이 활용된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고요. 듣기만 해도 부럽습니다.

최근에는 새로운 직원의 자리 근처에
머핀을 두는 넛지를 실행했습니다
새로운 직원과 자연스럽게 인사하고 친해지기 위해서지요. 새로운 직원의 데스크로 찾아가 인사를 건네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쑥스럽고 어색할 수 있다는 관찰과 분석에서 나온 넛지입니다. 참 깜찍하고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피플 사이언티스트라는 역할에 대해서입니다. 한국에서는 생소하지만 실리콘밸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꽤 알려진 직무입니다. 후무 직원의 4분의 1이 피플 사이언티스트로, 매우 핵심적인 일을 합니다. 이들은 클라이언트 조직을 위한 상품을 개발하는데, 작은 행동 변화를 통해 큰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요소들을 분석하여 구체적인 결과물을 만듭니다. 예를 들어 직원을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질문지를 만드는 것도 그들의 몫입니다.

 

이피어나 씨의 핵심 분야는 다양성(diversity)인데요. 다양한 인종이 일하는 미국 조직의 특성상 모든 직원의 행복을 위해 다양성을 고려하는 일이 꽤 중요한데, 이를 위한 전문 분야가 있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그러나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후무는 데이터에 의존하지 않아요. 데이터를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할 때, 사랑으로 대표되는 인간 중심의 접근 방식을 택합니다. 파트너사* 직원들도 클라이언트라고 생각하지 않고, 인간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직원들의 경험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 후무는 고객사를 파트너사로 표현한다.

바로, 후무의 비즈니스가 데이터가 아닌 인간을 향한다는 점입니다. 인간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고자 노력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Tyler Nix/Unsplash인공지능으로 사람들의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후무의 사업을 '비인간적인 비즈니스'라고 오해할 수 있겠지만, 인간에 대한 애정과 데이터를 함께 활용한다면 놀라운 성과를 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데이터가 가진 맥락을 이해하고 이를 비즈니스 철학에 맞게 활용한다면, 인공지능 시대에 인문학이 추구하는 가치를 되살릴 수 있는 새로운 시도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브랜딩은 직원의 행복에서 시작한다

뛰어난 브랜드는 내부 직원을 대상으로 한 브랜딩도 훌륭합니다. 외부 고객이 브랜드를 사랑하게 만들려면, 직원부터 그 브랜드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런 인터널 브랜딩(internal branding)*의 기본은 직원이 행복한 조직문화와 연결됩니다.

* 브랜드의 문화와 철학이 직원들에게 스며 있는 것. 내부 브랜딩이라고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후무는 브랜딩을 효과적으로 추구하는 회사입니다. 직원이 회사의 철학과 비전을 인식하고 즐겁게 일한다면, 브랜딩의 첫 단추가 이미 끼워진 것이니까요.

 

기사에 소개된 스윗그린은 직원의 성장과 행복이 브랜드의 가장 큰 요소라는 점을 인식했습니다. 매일 고객과 만나는 직원들이 스윗그린의 조직문화 안에서 즐겁게 성장한다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테고, 그러면 고객들도 자연스레 스윗그린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이 속한 조직의 고민은 무엇인가요? 밀레니얼이 조직 내 실무자로 등장하면서, 여러 조직의 고민 중 하나는 이렇다고 합니다. 어떻게 밀레니얼과
일을 잘할 수 있을까?

밀레니얼은 이전 세대와 달리, 물질적 혜택이나 조직에 대한 충성심보다는 개인의 행복과 발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대입니다. 후무의 비즈니스 철학이 작은 해답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큐레이터로서 덧붙이자면, 물리적 혜택 또는 조건부 혜택보다는 개인의 행동을 존중하고 그들이 자발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일, 그리고 일하는 방식의 구체적인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쪼록 이번 뉴욕타임스 기사로 조직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변화가 무엇일지 생각해보는 기회가 생기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