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티그룹은 어떤 회사인가

Editor's Comment

'숫자 너머의 진짜 이야기 - 글로벌 금융위기를 회고하다' 세 번째 미리보기에서는 2008년 씨티그룹 구제금융을 둘러싼 해결사들의 치열한 갈등을 맛보기로 보여드립니다. 전문이 실린 리포트는 12월 27일(목) 오후 5시까지 예약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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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년 씨티 뱅크 오브 뉴욕(City Bank of New York) 창립 이후 지속적인 인수합병으로 성장한 씨티은행. 1998년 지주회사 씨티코프(Citicorp)와 보험, 증권업 등을 영위하던 트래블러스 그룹(Travellers Group)이 합병하여 씨티그룹으로 거듭났다. 이 합병에 따라 씨티그룹은 1998년 당시 기준으로 자산 7500억 달러, 고객 1억 명, 100여 개국 3200개 지점을 갖춘 세계 최대의 금융서비스 회사가 되었다.

 

하지만 시작점이 곧 정점이었다. 이후 회사의 주도권을 놓고 씨티코프 출신과 트래블러스 출신이 아귀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역량 있는 리더들이 축출당했다. 훗날 JP모건의 CEO가 되는 제이미 다이먼도 이 시기에 해고되었다. 그런가 하면, 국가와 업종을 가리지 않고 인수합병에 몰두하다 경영 역량 대비 기업 규모가 과하게 커지기도 했다. 게다가 엔론 회계부정 사건 등 온갖 금융 스캔들에 휘말리기 일쑤였다. 그 과정에서 보험사업 부문(손해보험, 생명보험)이 떨어져 나갔고, 회사의 성장이 계속 지체되자 고수익 사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하필 그 대상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상품,
특히 부채담보부증권(CDO)
이라는 점이었다
골드만삭스나 JP모건이 이미 문제를 눈치채고 던진 쓰레기를 씨티그룹이 얼씨구나 하고 받은 셈이었다. 결국, 씨티그룹은 2007년 3분기부터 거액의 손실을 보기 시작했고, 2008년 9월 리먼 붕괴 이후에는 파산설이 나돌 정도로 부실이 심화되어 있었다.

* 관련 기사: '씨티 너마저…' 192년 역사 존폐위기 (한겨레, 2008.11.23)

출처: 씨티그룹 웹사이트 (그래픽: PUBLY)

씨티그룹 1차 구제: 가이트너는 씨티그룹의 하수인?

2008년 10월 씨티그룹을 포함한 9개의 대형은행은 TARP(Troubled Asset Relief Program,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를 통해 총 165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1650억 달러 중 씨티그룹의 지분은 250억 달러였다. 베어는 당시 씨티그룹을 제외한 다른 대형은행들의 경우엔 자본이 넉넉해서 지급불능 상태가 될 가능성이 작은데, 왜 대형은행 모두에게 정부 자금을 통해 증자를 하는 것인지 의심했다.

혹시 이건 씨티그룹을 돕기 위한 위장책이 아닐까?

- 실라 베어, <정면돌파> p. 216

베어의 이런 의심은 당시 뉴욕 연준 행장인 티모시 가이트너를 향한 것이었다. 가이트너는 재무부 공무원 시절, 그의 상관인 로버트 루빈(Robert Rubin) 재무부 장관(1995~1999)의 인정을 받아 고속승진했다.* 그런데 루빈은 재무부 장관 퇴임 이후 1999년 씨티그룹 이사회에 합류하여 경영에 참여했다. 이후 그는 씨티그룹 이사회 의장(2007)을 역임했으며, 이후에도 이사회 멤버이자 수석 고문으로서 씨티그룹의 경영에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 베어는 가이트너가 루빈이 재직 중인 회사를 위한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 벤 버냉키, <행동하는 용기>, p.102

씨티가 위기에 처하지 않았다면 정부가 그토록 대대적인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시행했을까 하는 의문이 아직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씨티라는 금융회사 한 곳을 구제하겠다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어 그 많은 결정이 내려졌다고 본다.

 

- 실라 베어, <정면돌파> p.23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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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의 이러한 의심과 비난에 대해 가이트너는 물론 버냉키도 회고록에서 별도로 언급한 바가 없어 실체적인 진실에 다가가기는 어렵다. 그러나 루빈의 씨티그룹 이사회 의장 경력은 직무대행이었으며, 기간 또한 2개월(2007년 11월~12월)에 그친 점을 고려하면 씨티그룹 경영에 대한 루빈의 영향력이 그렇게 절대적이었는지 의심스럽다. 또한,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자신을 재무부 장관으로 뽑으면 안되는 다섯가지 이유를 말할 정도로 강단있는 사람*이 전 상관의 부탁을 쉽게 들어줬을 거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 티모시 가이트너, <스트레스 테스트> p.283

 

정부가 모든 대형은행에게 TARP를 통한 증자를 실시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취약한 은행만 증자를 실시할 경우, 해당 은행이 위험하다는 사실이 공인되어 오히려 예금이 인출이 급증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벤 버냉키, <행동하는 용기> p.420

씨티그룹 2차 구제: 머리는 잘라도,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

1차 구제금융이 실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씨티의 위기는 잦아들지 않았다. 리먼 브라더스 파산 이후 미국 저축은행업계 5위 은행인 워싱턴 뮤추얼(Washington Mutual)도 파산위기에 처하자, 베어가 이끄는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는 워싱턴 뮤추얼을 19억 달러에 JP모건에 매각했다. 이 결정은 주주와 채권자들에게 큰 손실을 안겼다.

 

부실해진 금융기관의 회생 또는 파산 진행을 위한 제반작업(출자, 매각, 합병 등)을 '정리(Resolution)'라고 한다. 또한, 정리 과정에서 금융기관 채권자와 주주에게 보유 지분을 100%가 아닌 일부만 인정하여 손실을 부담하게 하는 것을 가리켜 헤어컷(Haircut)이라 부른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헤어컷 10%를 당한다고 하면, 해당 기업의 채권을 보유한 주주는 보유 채권의 10%는 받지 못하는 것이다.

 

가이트너는 연방예금보험공사가 단행한 방식의 헤어컷은 주주와 채권자들이 다른 금융기관이 부실화될 때에도 손해를 본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이들이 유사한 위기에 처해있는 기업의 채권과 주식을 팔아버리거나, 원금상환을 요구해서 '런'*이 연쇄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이트너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워싱턴 뮤추얼 사태 이후 금융가에 번진 불은 와코비아 은행(Wachovia Bank)를 집어삼켰고, 결국 웰스 파고(Wells Fargo)가 와코비아 은행을 인수했다.* 씨티그룹이 와코비아 인수 입찰에 실패하자, 예금 보호를 받지 못하는 해외예금 비중이 높은 씨티은행의 부실화 우려가 증폭하였다. 와코비아 인수 실패로 부실한 속내를 시장에 들켜버린 것이다.

* 관련 기사: 와코비아, 웰스파고에 매각 (매일경제, 2008.10.04)


베어는 씨티은행에 대해 손실의 일부를 주주와 채권자에게 부담시키는 헤어컷을 다시 고려하고 있었다. 당시 씨티은행은 해외예금 의존도가 20%에 달했다. 이런 예금은 연방예금보호공사가 신경쓰지 않아도 되므로 씨티그룹이 파산하더라도 연방예금보호공사가 책임지고 예금주들에게 보상해줘야 할 예금은 씨티그룹의 규모 대비 큰 편은 아니었다.

베어에게 씨티그룹은
상대적으로 부담없이
본때를 보여줄만한
만만한 상대 아니었을까
하지만 폴슨과 가이트너는 극렬히 반대했다. 금융시장 전체의 안정성을 고려할 때 또 하나의 거대 금융기관 파산은 시장에 미증유의 경제 재앙을 가져올 것이었기에 어떻게든 이를 막아야 한다고 여겼다.


2008년11월 23일 일요일 밤 늦은 시간, 결국 미국 정부는 TARP 기금 중 200억 달러를 우선주 형태로 씨티그룹에 투자하되 배당률은 1차 구제금융에서 적용된 5%가 아니라, 8%로 높여 수익 발생시 더 많이 회수 할 수 있도록 결정했다.* 또한, 씨티그룹이 보유한 주택 및 상업용 부동산 MBS를 포함한 3060억 달러에 달하는 부실자산에 대해 손실 발생 시 보증지원을 실시하기로 했다.

* 관련 기사: Citi dodges bullet (CNN Money, 2008.11.23)

 

(씨티그룹의 구제방안은 3차까지 이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베어와 가이트너, 버냉키까지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 본 리포트에서 공개합니다.)

실라 베어, 2018년에 2008 씨티그룹에 대해 이야기하다

베어는 2018년 8월 인텔리전서(Intelligencer)와의 인터뷰*에서 10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구제금융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2009년 초 금융위기가 잠시 수그러들었을 때 씨티그룹의 구조 조정 기회를 정부가 놓쳤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오히려 대형금융기관의 대마불사를 강화시켰다고 생각했다.

* 관련 기사: 'Sheila Bair on What Hasn't Changed Since the Great Recession' (Intelligencerfluencer, 2018.8.9)

 

만약 씨티그룹을 구조조정했다면 월스트리트에 강력한 신호을 보내어 시장의 규율을 세울 수 있었을 것이며, 이는 채권자들이 정부의 구제금융에 의존하지 않고 자구책을 마련해 금융시장을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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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작 그에게 가장 아쉬운 부분은 따로 있었다. 언더워터* 상황의 집주인들에게 구제책을 제공하지 못한 점이었다. 주택 보유자들이 재평가된 주택가격에 맞게 주택담보대출의 원금을 탕감하거나, 대출자와의 지분공유**등을 통해 상환이 가능한 대출로 채무를 재조정할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 주택담보대출 잔액보다 주택가격이 더 낮아져 집을 팔아도 대출을 갚을 수 없는 상태

** 대출자와 채권자가 주택 가격 상승하락에 따른 이익과 손실을 공유

 

그는 금융위기의 실제적인 원인은 금융기관의 파산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지출감소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을 갚느라 지출을 극도로 억제하지 않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여겼다. 만약 주택담보대출 보유자들에 대한 원금 탕감이 있었더라면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토록 심각하게 전개되지는 않았으리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또한 그는 은행자본금을 확충하고 유동성 기준을 강화하는 등 많은 개선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지금의 금융시스템은 2008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특히 최근의 금융정책 완화 움직임에 대해 큰 우려를 보였다.

 

(10년이 지난 지금, 베어, 가이트너, 버냉키, 실러는 2008년의 사태와 결정을 어떻게 회고하고 있을까요? 구체적인 내용은 본 리포트에서 이어집니다. 4명의 소방수 뿐 아니라 JP모건, 맥킨지 등 해외 주요 매체 및 금융 기관의 금융위기 분석 및 향후 예측 자료도 리뷰합니다.)

 

[숫자 너머의 진짜 이야기 - 2008 글로벌 금융위기를 회고하다]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던 2008 미국발 금융위기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 2008년을 바라보는 시각은 제각각입니다. 개인과 사회 모두 크게 영향을 받았던 이 위기와 우리 삶은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을까요? 위기를 겪었고, 위기를 다루며, 위기를 공부하는 김동길 저자는 숫자만으로는 다 알 수 없는 당시 상황을 최대한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기록하고자 수많은 이야기를 모았습니다. 우리가 지나간 위기를 발판 삼아 앞으로의 위기를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