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시작
2박 3일의 여정으로 뭄바이에 다녀왔습니다.
자잘하게 넘어져서는 조롱과 웃음거리가 돼버리기 십상입니다. 내 고통의 연쇄에 대해 이야기하면 다들 웃어버리더군요. 아무도 내 깊은 슬픔을 헤아려 주지 않았습니다.
뭄바이를 넘어 인도를 대표하는 최고 호텔인 뭄바이 타지마할 팰리스.
이슬람과 르네상스 양식을 혼합한 아름다운 건물로, 호텔이 아니라 예술작품 같았습니다.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 맞은 편에 바닷가를 바라보고 서 있습니다. 초기 건물주는 인도 최고 재벌인 타타 그룹의 창업주 잠셋 타타였어요. 당시 뭄바이 도시 특급 호텔인 왓슨스에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했대요. 백인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죠. 잔뜩 열 받은 타타는 자기 돈으로 제일 목 좋은 곳에 최고의 호텔을 지어버렸습니다. 1903년 호텔 개관식을 본 뒤 1년 만에 사망했습니다.
뭄바이에 온 유명인사라면 누구든 묵고 가는 호텔로, 최근 인도에 방문한 영국 윌리엄 왕세손과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빈도 자고 갔습니다. 최고급 스위트룸을 거절하고 소박한 방에서 묵었다는 내용이 뉴스로 나오더군요. 인도의 자존심과 부를 상징하기에 테러범의 표적이 되곤 합니다. 지난 2008년 이슬람 과격파의 테러로 31명이 사망했어요. 호텔 내부에 사망자들의 이름을 새긴 대리석이 세워져 있더군요. 델리로 돌아오는 날 오전 짬을 내 호텔을 찾아 짜이 한잔했습니다.
타지마할 호텔 앞 항구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인도의 문(Gateway of India). 1911년 영국왕 조지 5세 부부의 인도 방문을 기념해 세워져 1924년에 완공됐습니다. 높이 26m로 인도 구자라트 양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뭄바이 '인도의 문' 앞 바다에 놓인 선박들.
불행 1과 2. 설사와 개똥
뭄바이로 떠나기 전날 저녁이었습니다. 새로 개봉한 영화 '정글북'을 보기로 한 날이었어요.
하숙집 13살짜리 꼬마 - 요샌 'thirteen'이 됐다고 '청소년(teen)' 취급을 해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 주희의 오랜 숙원사업이었죠.
하숙집 모녀와 11살 된 이 집 친척 아이 영아, 그리고 새롭게 친구가 된 40세 대만인 여성 '재미'씨와 함께 영화관으로 향했습니다. 쇼핑몰 꼭대기에 영화관이 있대요. 오후 8시 30분에 시작하는 영화를 예매해놨죠. 저녁식사를 위해 쇼핑몰 안에 있는 남인도 음식점에 갔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신나게 여러 음식을 시켰죠. 탄두리 치킨, 쌀가루 반죽을 철판에 바삭하게 익힌 도사(Dosa), 치킨 카레, 해물 카레 등등. 특히 버터 발라 구워낸 도사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기름 묻은 손끝을 닦아낼 겨를도 없이 게걸스럽게 해치웠죠.
기름기 있는 식사에 코카콜라는 빠질 수 없습니다. 나 홀로 콜라를 주문했습니다. 얼음과 함께 캔 콜라를 내오더군요.
멀티 플렉스 영화관은 한국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백개는 넘어 보이는 좌석에 레그룸도 넉넉했습니다. 스크린 밝기는 한국보다 확연히 떨어졌어요. 청소년 주희는 내게 말도 없이 3D 영화를 예매했어요. 서른 된 나는 투덜댔습니다. 안경 위에 안경을 다시 얹는다는 게 우스꽝스럽고 싫거든요.
10분 정도 광고를 봐야 하는 한국 영화관과 달리, 인도 영화관은 바람직스럽게도 제시간에 영화를 시작하더군요. 인도 상영 업체에 특급 칭찬을 속으로 하고 1시간 뒤, 영화를 실컷 보고 있는데 스크린에 갑자기 'intermediate'이란 단어가 뜨면서 실내조명이 켜지는 겁니다. 알고 보니 중간에
무조건 쉬는 시간이 있대요.
15분간 주구장창
광고들이 스크린을 덮더군요.영어 자막이 깔려서 그나마 살았습니다. 겨우겨우 내용을 이해하면서 봤어요.
영화관에서 음악만 나오면 몸을 흔들어 제끼는 풍경은 이제 옛날 얘기입니다. 인도 사람 대부분이 세련된 관람 에티켓을 갖추고 있었어요. 앞자리에서 가끔 떠들고 휴대폰 꺼내 보던 청춘남녀 5명을 제외하고선 말이죠.
'정글북' 영화는 썩 좋았습니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정글북 이야기를 실사처럼 만들었어요. 정글북이 1894년 영국 소설가 J. 러디어드 키플링(J. Rudyard Kipling)이 썼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습니다. 7개의 단편동화를 묶은 게 정글북이래요.
인도에서 태어난 키플링은 영국에서 수학하며 대학을 졸업한 뒤 영국과 인도를 오가며 신문사 기자 일을 했습니다. 덕분에 정글북 배경도 인도의 어느 정글이죠. 영화 주인공 모글리도 귀여운 인도 아이 같습니다. 인도계 미국인인 닐 세티란 아역 배우인데 빨간 팬티 입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이 발랄하고 사랑스러웠어요.
원숭이 왕이 사는 유적지는 내가 전에 가본 엘로라 석굴의 사원들을 그대로 본뜬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친숙했습니다. 성질 고약하고 나쁘게만 그려지는 악역 호랑이 이름이 '시어칸(Shere Khan)'입니다. 너무 대놓고 이슬람식 이름이라 너무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모글리는 동물들 사이에서 '붉은 꽃'이라 불리우는 '불'을 가지고 시어칸에 대항하죠. 어쨌든 '동물들의 의리와 신의, 우정이 인간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어 만족스러웠습니다. 모글리가 사는 정글보다도 더 생존하기 어려운 정글이 돼버린 인간세계는 마구 까주는 게 시대정신입니다.
"이제 모글리가 크면 타잔이 되는 거예요?" 같이 간 영아가 물어보더군요. "타잔은 미국 애야" 라고 말해줬지만 '애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져 웃음이 났습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어렸을 때 봤던 TV 만화 시리즈 '정글북' 주제가를 수십번 들었습니다. 사실 나는 종종 이 노랫말을 흥얼거리곤 하거든요. 가사와 멜로디가 너무나 평화롭고 또 아름답죠. 어릴 때 느끼기에도 강렬했는지, 나이가 먹어서도 좀체 잊어버리지 않고 외우고 있습니다.
잠을 자거라 마음을 놓고/ 꿈을 꾸어라 아름다운 꿈을/ 언제나 내 곁에 함께 있고/ 하늘의 별이 되고 달이 되어서 /눈부신 푸른 밤 흐르는 강물도/ 너와 모두 함께 살며(시) 잠이 든단다/ 조용히 조용히 잠이 들거라/ 달리다 지친 천사들이여/ 잠에서 깨어나면 정글의 왕자 /잠에서 깨어나면 정글의 왕자
정글에서 잠을 청하는 소년 모글리가 실제 내가 된 듯한 착각이 들게 하는 감동스러운 노래예요.
원곡에서 가수는 중간 대목의 '너와 모두 함께 살며(시) 잠이 든단다'에서 실제 가사 '살며시'를 '살며'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되면 '살며시(gently)'라는 원 뜻에 '살면서(living)'라는 뜻이 첨가되어 보다 중의적으로 노랫말이 풍성하게 해석되는 효과가 생겨나죠. 밤이 되면 스르르 잠에 드는 나를 닮아, 강물은 잠에 듭니다. 그리고 그 강물은 나와 함께 사는 강물이기도 하죠.
'달리다 지친 천사들이여'에서 '천사'가 '전사'로도 들립니다. 정글의 지친 전사들은 사실 천사일 수도 있을 것이란 낭만적 해석. 마지막으로 '정글'을 '쟝글'로 발음하는 게 재미 포인트입니다. 실제로 원곡 가수도 이렇게 부르죠. '역시 명곡이구나!' 감탄을 하며 눈을 감고 정글에서 잠을 자는 모글리를 그리며 잠에 들었습니다.
갑자기 새벽에 눈이 떠졌어요.내 창자에 붉은 꽃이 붙은 것 마냥 배가 부글부글 끓었습니다. 화장실 문을 열고 화장실 안에 있는 전등 스위치에 손을 갖다대려는 데 발바닥에서 '물컹'하는 느낌이 이상한 겁니다. 불을 켜보니 뭘 밟고 있어요. 똥이었어요. 개똥.
처음엔 눈앞에서 갑자기 펼쳐진 초 현실에 발에 묻은 물질이 도대체 무언지 해석이 곧바로 되지 않았습니다. 화장실 바닥과 발을 살펴보고 나서야 잠이 확 깨더군요. 저녁때 영화 보러 나간 틈새 애완견 꼬꼬가 똥을 내 방 화장실에 싸 놓은 겁니다.
하숙집 애완견 꼬꼬. 장모 시츄 종인데 여름을 맞아 짧게 털을 밀었습니다. 침대에 누운 채로 배 위에 올려놓고 혼을 내면 이런 표정을 짓습니다. 날 비웃는 건지 혹은 무서워하는 건지 알 수 없어요.
불이 나는 배를 부여잡고, 우선 정신 줄부터 잡아야 했습니다. 미친 듯이 발바닥을 휴지로 문대고 물로 발을 씻고서 급하게 변기에 앉았습니다. 좍좍 쏟았습니다.인도에 오고선 "먹는 거, 특히 물 조심해라"라는 말을 귀에 인이 박히게 들었는데요. 인도에 오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한다는 배앓이를 지난 4개월간 한 적이 없었는데, 왜 갑자기 이날. 그것도 개똥을 밟은 뒤란 말입니까.
처음엔 웃기지도 않고, 짜증이 나지도 않았어요. 아팠죠. 변기에서 찡그리며 앉아있다 화장실 바닥에 덜 치워진 개똥의 흔적을 바라보는 데 갑자기 격한 분노가 밀려왔습니다. 욕을 나직이 뱉고서 바닥 물청소를 했어요. 이날 동이 틀 때까지 침대와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며 설사를 계속 했습니다. 이날 새벽 안온했던 내 방은 생명의 위협이 느껴지는 정글이 됐습니다.
불행 3. 약속 브레이크
뭄바이행은 한국에서 온 장관 일행과 같이 가는 출장이었습니다. 뭄바이에서 인도 정부와 행사가 있었거든요. 주인도대사관 사람들과 함께 오전 11시 10분에 한국 식당에서 밥을 함께 먹고 공항으로 가기로 예정돼 있었죠.
뭄바이 국제공항 활주로 전경. 카메라에 미니어처 기능이 있어서 찍어봤는데 시원치않군요.
델리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 식당은 '궁'이예요. 빈 창자와 탈수 증세를 얻은 나는 힘겹게 옷가지들을 대충 캐리어에 쑤셔 넣었습니다. 비행기에 직접 싣고 갈 노트북이나 카메라는 백팩에 별도로 넣었어요. 문제는 궁이 델리와 인근 도시 구르가온, 두 곳에 있다는 겁니다. 난 당연히 공항과 가까이 있는 도시 구르가온에 있는 궁에서 먹는 줄 알고 구르가온 궁에 갔어요.
캐리어 들고 낑낑대며 2층 음식점에 가니까 직원들 눈이 땡그래졌어요. 예약된 손님이 전혀 없대요. 단체 카톡방을 뒤져보니, 델리 궁으로 약속 돼 있었습니다. 부랴부랴 전화를 걸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머저리예요. 구르가온 궁 식당으로 와버렸어요. (배도 아픈데 잘 됐다) 이렇게 된 이상 점심은 같이 못 하고 공항에서 뵙겠습니다."
"안돼요, 같이 VIP 라운지 이용해서 수속하셔야 하기 때문에 혼자 공항에 가시면 안 됩니다. 점심 못 드시는 한이 있더라도 꼭 델리 궁으로 오세요."
어쩌겠습니까, 알았다고 하고 다시 델리 궁으로 차를 타고 향했습니다. 도착까지 40분 걸리는 길인데 전화가 계속 와요. 화물 수속을 맡은 여성 서기관이었습니다.
"언제 오세요, 급합니다. 뭄바이로 보낼 캐리어 먼저 부쳐야 할 것 같아요. 지금 짐만 실은 버스는 출발해야 하는 데 기다려 드릴게요."
미안한 마음에 통사정을 했죠. "아오, 죄송합니다. 10분만요"가 "5분만요"가 되고 "다 왔어요, 저 안 보이세요?"가 됐습니다. 사실 이때도 도착하기 3분 전이었죠.
"아주 인도분이 다 되셨네요. 다 도착하셨다는 분이 보이질 않아요. 덕분에 짐을 비행기에 못 부치는 사태가 생길지도 모르겠어요."
들려오는 우는 소리에 뼈가 있었죠. 겨우겨우 도착해 식당 앞에 주차된 버스에 내 캐리어를 던지다시피 했습니다. 비행기로 부칠 짐을 실은 버스가 공항으로 먼저 떠났습니다. 식당에 들어서자 식사자리는 거의 끝이 났어요.
"오느라 고생하셨어요. 좀 드세요."
"어제 설사를 해서 못 먹을 거 같습니다."
"에이~ 그래도 늦게 오신다고 더 시켰는데 드셔야죠. 심하세요?"
"아뇨. 먹고 싸겠다는 각오입니다."
궁은 인도에서 가장 비싼 한국 음식점입니다. 거지 근성이 있는 나는 갈비와 두부 김치, 돼지 수육을 조심스럽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장관과 함께 델리 공항 VIP라운지를 이용해 수속도 거치지 않고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권력이란 달콤하더군요. 항공사 직원이 짐 검사도 하지 않고 비행기까지 에스코트해주더라고요. VIP 라운지에서 내가 이용한 시설이라곤 화장실이었습니다. 독버섯 잘못 먹은 모글리처럼, 아주 고통스러우면서도 시원하게, 안의 것을 모조리 비워냈습니다.
변기에 앉은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결심했죠. '이젠 안 먹어야지.'
불행 4. 오지 않는 짐
뭄바이 국제공항 내부 전경인데 나무를 모티프로 한 기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인간 생체 에너지와 전기를 함께 먹고 자라는 미래 나무 같지 않습니까.
2시간을 비행한 뒤 뭄바이 공항에 내렸어요. 얼른 호텔로 이동해서 일해야 하는 데, 수화물 컨베이어 벨트에 내 캐리어만 안보여요. 까만 고무때기 벨트만 하염없이 돌아갈 때까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짐을 보낸 서기관에게 전화했습니다.
"제 짐만 안 왔어요."
"그럴 리가요."
"진짜예요. 한 번 확인해주세요."
지은 죄가 있어서 화를 꾹 누르고 웃으며 말을 건넸습니다. 나 때문에 정신없이 바쁘게 화물 수속을 했으니깐요. '짐을 부치는 걸 도왔던 인도 가이드가 따로 핸드 캐리를 한 것 같다'란 반가운 소식이 들렸지만 확인해보니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문자가 와요. '하드케이스였죠? 가방 안에 특이한 물품이나 귀중한 뭐가 있었죠ㅠ' '없습니다. 정장이랑 배터리 기기 샴푸 빤쮸 양말 티셔쯔 등등이요 ㅎ' 라고 귀엽고 의연하게 답은 했는데, 그때 누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기만 했다면 아마 울어버렸을지 몰라요.
뭄바이 공항에 상주하는 항공사 직원한테 의뢰해보는 등 아무리 수소문을 해도 내 가방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최종 책임은 짐을 부친 대사관 쪽에 있으니 우선 공항을 나왔습니다. 짐은 확실하게 부쳐지지 않았고, 누가 밀고 들고 다니다가 어딘가 놓고 온 것 같다는 사실만 남았죠. 내 캐리어의 행방은 감감무소식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전화해서 '내가 볼 때 비행기가 오다 떨어뜨린 거 같아. 끅끅. 델리에서 뭄바이 오다가 어디 사막에다 떨어뜨렸을 수도 있지요. 으하하'라고 시답잖게 태평한 농담하는 다른 외교관에게 한소리 쏘아 부칠뻔한 걸 간신히 웃어 넘겼네요.
결과적으로 난 뭄바이에서 3일간 같은 옷(검은 셔츠와 갈색 면바지), 속옷(쿨매쉬 소재 푸마 스포츠 트렁크), 양말을 신어야만 했습니다. 더불어 망할 설사병으로 끊임없이 고통받았죠.
그러다 델리로 돌아오기 바로 전날 밤 '공항 유실물센터에 옷가지와 속옷, 운동화가 들어 있는 파란색 가방을 보관하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는 메시지를 접하자 난 만세를 부릅니다. 내 가방일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죠. 당사자가 직접 가서 증명해야 한대요.
반가웠던 델리 국제공항 실종 수화물 센터.
델리 귀환
오후 9시. 델리국제공항 3 터미널 1층 5번 게이트에 가보니 'Lost&Found' 센터가 있더군요. 문을 여니 검은색 시크교 터번을 쓴 인도 아저씨가 날 본체만체 합니다. 벽장 맨 위에 놓인 하늘색 하드캐리어가 단숨에 눈에 들어오더군요. 내 것이었어요. 너무 반가워 소리 지를 뻔했죠.
시크교를 나타내는 터번을 쓴 직원. 내 마음도 몰라주고, 그는 스핑크스같이 내게 여러 가지 시험을 선사했습니다.
보고 싶던 싸구려 하드케이스.
"저 위에 짐이 내 것 같군요." 직원은 느릿느릿 가방을 꺼내 내 앞에 놓더군요. 아주 사무적이고 퉁명스러운 태도의 직원이었어요. 빈정이 약간 상했습니다.
"언제 잃어버렸지?" "3일 전에요." 구구절절하게 그간의 사정을 설명해야 했습니다. "비밀번호를 어디 한번 풀어봐." "비밀번호가 없습니다. 그냥 열릴 거예요." "그럼 안에 뭐가 들어 있지?" "검은 여름 정장이랑, 하얀색 셔츠, 파란 스트라이프 셔츠랑, 티셔…." "됐고, 이제 열어봐." 열어보니까 딱 정장이 나와요.
아니 무슨 취조도 아니고,
괜히 나도 덩달아 진지해져서
캐리어를 여는 순간
'정장아 제발 있어줘'란
말도 되지 않는 걱정을 했습니다.
역시 있었죠. "흠. 이건 뭐지?" 시크교도가 손으로 카메라 충전기를 가리켜요. "충전기랑 카메라 배터리인데요, 지금 내 백팩에 이 카메라가 있습니다." 백팩까지 열어서 카메라를 보여주고 브랜드가 일치해서야 믿더군요.
"뭄바이로 갈 때 쓴 비행기 티켓을 줘봐." "뭄바이에서 진즉 버렸어요. 아, e-ticket은 있어요." 핸드폰으로 저장해놓은 티켓을 보여주니까 그걸 또 굳이 항공사 부스까지 가지고 가서 티켓을 새로 뽑아야 한대요.
'그래. 가방만 다시 찾았으면 됐어.
난 충분히 행복해.'
3일간의 탈수증상으로 아이큐가 곰 정도로 변한 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고분고분 그의 지시를 따랐습니다.
티켓을 다시 출력해서 여권과 함께 바치고, 책상 앞에 달린 카메라에 어색하게 찍히고 나서야 드디어 캐리어를 받아 들 수 있었습니다. 얏호.
델리 도착해 이틀을 또 설사했습니다. 한국에서 엄마가 사준 지사제부터 인도 약까지 온갖 약제들을 내 위장에 투하했습니다. 같이 인도 음식을 먹은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데 나만 배앓이를 했어요.
아마도 인도음식점에서 캔 콜라와 함께 제공된 얼음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변기 위에서 마음먹었죠. '이제 콜라 시킬 때 같이 나오는 얼음은 안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