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물정 모르던 청년들이 시작한 크루

Editor's Comment

'콘텐츠 기획자들 - 뜨는 콘텐츠, 어떻게 만들죠?' 두 번째 미리보기에서는 대중문화 분야를 10년 가까이 취재해온 박경은 저자가 최근 광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돌고래유괴단'의 단장, 신우석 감독을 만나 나눈 대화의 일부를 전합니다. 전문이 실린 리포트는 12월 19일(화)까지 예약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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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유괴단. 광고계에서 현재 가장 주목받는 제작사다. 캐논이마트, 유니클로 등 굵직한 광고주들의 광고를 만들었고, 얼마 전엔 삼성전자와 함께 만든 웹드라마 <고래먼지>도 호평을 받았다.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돌고래유괴단을 이끄는 신우석 감독을 만났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장소에서 그를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인터넷 어디선가 "리즈 시절의 안정환 선수를 닮았다"는, 신 감독에 대한 인상비평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 그랬다.

신우석 감독, 돌고래유괴단 단장

박경은(이하 생략): 돌고래유괴단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신우석(이하 생략): 원래는 영화를 할 생각이었어요. 영화에 관심 있는 친구들과 뜻을 모았죠. 초등학교 친구도 있었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 독립영화를 찍으러 다니다 만난 친구도 있었어요. 영화에 관심이 많은 엄마 친구 아들도 있었고요. 2008년 즈음, 무엇이 됐든 영화를 찍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모인 친구들이 10명 정도 됐어요. 세상 물정은 모르고 열정만 있는 20대 초반 청년들이 그렇게 모인 거죠.

 

돌고래유괴단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정했나요? 정말 기발하다고 느꼈거든요.

그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정말 민망하게도 아무 뜻이 없어요. 그냥 술 먹다가 갑자기 떠오른 것으로 정한 거예요. 나중에 저희끼리 뜻을 가져다 이리저리 붙여 봤는데 그게 더 구차하더라고요. 요즘 제작사들은 이름을 정할 때 대부분 영어로 짓잖아요. 뭔가 있어 보이고 멋져 보인다고 생각하는진 몰라도, 전 그런 게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이 이름이 떠올랐을 때 바로 정해 버렸죠. 멋져 보이지는 않지만 좀 이상해 보이잖아요. 전 이상해 보이는 게 좋거든요.

 

그때부터 사업체로 구상한 건가요?

사실 돌고래유괴단은 회사보다는 크루 개념으로 시작했어요. 여기에 올인하는 게 아니라 각자 자기 일을 하면서 함께 영화도 만들자는, 좀 나이브한 생각이 있었죠. 그때만 해도 유튜브가 절대 강자가 아니었고, 국내에도 다양한 동영상 플랫폼이 있었어요. 엠군, 엠엔캐스트, 판도라TV, 싸이월드까지 그야말로 춘추전국 시대였거든요.

 

그때 저희끼리 '웨비소드(webisode)*'라는 형태의 시리즈도 만들고 미니어처를 이용해 촬영한 '스몰 어스(small earth)'라는 UCC(User Created Contents) 시리즈도 올렸어요.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지금처럼 영상을 손쉽게 만들거나 볼 수는 없었는데, 특정 플랫폼에 영상물이 집중돼 있었기 때문에 아는 사람들은 많이 찾아오더라고요. 조회 수도 높고 반응이 꽤 좋아서 저희는 팀이 금방 잘 될 줄 알았어요. 솔직히 말하면 대책 없는 행보였던 셈이죠.

* 웹(web)과 에피소드(episode)를 결합한 단어. 웹에서 유통되기에 적합한 짧은 드라마 형식의 콘텐츠

클리셰를 파괴해야 '터진다'

돌고래유괴단의 도약 발판이 된 것은 캐논 광고였다. 기회를 얻은 때는 2015년. 당시 캐논은 여러 제작사를 대상으로 광고 기획을 의뢰했다. 조건은 '진짜 바이럴 필름'을 만들고 싶다는 것.

스스로 확산되기 위해
최대한 많은 사람이 공유하며
보고 싶게 만들어진 것

이게 바로 신 감독이 생각하는 바이럴 필름이다. 신 감독은 나름의 기준 하에 최현석 셰프를 모델로 내세운 파격적인 기획안을 제출했고, 이것이 채택됐다.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광고는 며칠 만에 100만 회에 이르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이듬해 안정환을 모델로 찍은 광고는 조회 수 약 1000만 회를 돌파하며 돌고래유괴단을 대중적으로 각인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기존 TV 광고 제작의 문법을 모두 파괴한 돌고래유괴단의 바이럴 필름 ©Canon Korea

 

주인공이 죽는 광고라니 놀라웠어요. 어떻게 기획된 건가요?

웹의 바이럴 필름은 기존 TV 광고에서 하지 않는 이야기를 해야 살아남는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다를 수 있을까 고민했죠. 결론은 TV 광고의 클리셰를 다 파괴해야겠다는 거였어요.

 

원래 뻔하거나 과장된 광고를 싫어해서 기존의 문법을 무너뜨리고 뒤집는 방식을 좋아하거든요. 기존 광고라면 곰한테 잡아먹히고 독버섯을 먹고 죽는 식의 서사는 금기사항이었을 텐데, 그걸 부숴버린 거죠. 자막에 비속어를 해시태그로 넣고 광고 모델을 영정 사진으로 등장시켰어요. 전부 기존 광고에선 용납되지 않던 방식이에요.

 

기획안을 내면서 광고를 따낼 자신은 있었나요?

과연 채택해 줄까 싶긴 했어요. 물론 채택이 돼서 온에어만 된다면 무조건 터진다고 생각했지만, 채택되기엔 캐논 측에서도 위험 부담이 클 정도로 파격적이었어요. 다행히 캐논 측에서 제 기획안을 선택해 주긴 했죠. 사실 약간의 조건이 붙어 있었어요. 곰한테 잡아먹히는 그 에피소드는 찍지 말자고 하더라고요. 시나리오를 보고 나서 다들 '너무하다'는 반응이었나 봐요.

 

일단 채택이 됐으니까, 촬영에 들어갔죠. 촬영하러 갔을 때 곰 에피소드까지 몰래 다 찍고, 편집본에 슬쩍 끼워서 함께 넘겼어요. 당연히 처음엔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광고를 자세히 보면 뼈 씹는 소리도 들리거든요. 하지만 이 부분이 들어가야 파괴력도 갖추고, 강력한 흥행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설득했어요. 결국 상대편에서도 받아들였고요. 그전에도 작은 히트작들은 있었지만, 그때부터가 돌고래유괴단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광고 모델도 신의 한 수였어요.

모델은 시나리오를 짜면서 결정했어요. 최현석, 안정환을 모델로 쓴 것도 기획안 그대로 받아들여진 거였죠. 업계 관행적으로는 드문 경우예요. 저희가 처음부터 영상의 방향성을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짜다 보니 거기에 맞는 모델이 떠올랐기 때문에 먼저 제안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안정환이 그 광고에 최적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내용의 주요 요소가 '반전'이었기 때문이에요. 현역 선수 시절엔 굉장히 샤프하고 차가운 이미지였잖아요. 그런데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면 몸매도 많이 바뀌었고,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한 이미지로 변했어요. 그 자체로 반전의 이미지가 있다고 본 거죠. 그래서 광고를 통해 과도한 반전을 만들어도 사람들이 재미있고 쉽게 받아들일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신우석 감독 &#9426;돌고래유괴단

캐논 광고 성공 후엔 다른 광고주를 설득하는 과정이 좀 쉬워졌나요?

그런 편이죠. 일단 저희가 특이한 기획이나 과감한 시도를 많이 하는 팀이라는 소문이 났어요. '돌고래유괴단은 새롭고 이상한 걸 찍는다'는 각오를 처음부터 하고 찾아오시는 거예요. 간섭하지 않고 맡겨도 효과 좋은 바이럴 필름을 만들어낸다는 믿음도 심어준 것 같고요.

덕분에 오히려 저희가 하고 싶은,
저희만의 색깔을 가진
특이한 작업들을 계속할 수 있게 됐어요

그들의 각오가 저희에겐 자율성을 주었고, 그 자율성이 창작에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에 다행히 좋은 결과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돌고래유괴단이 일하는 방법

감독님이 생각하는 돌고래유괴단만의 강점은 무엇인가요?

저희 팀의 특별한 점은 두 가지예요. 하나는 영업을 안 한다는 거예요. 제작사라면 광고 수주를 위해 영업을 해야 하는데, 저희는 작품이 바이럴에 성공하면서 이름을 알리게 됐어요. 입소문을 타고 퍼져나간 영상들을 본 광고주들이 의뢰를 해오는 식이었죠.

 

다른 하나는 광고를 만들고 접근하는 방식이 조금 남다르다는 것인데요. 저희는 원래 영화를 하려고 모인 사람들이잖아요. 광고를 하려는 생각도 없었고, 광고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 모인 것도 아니죠. 전원이 다 그래요. 기존 광고 작법에 익숙한 사람도 없고, 광고 제작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없어요. 오히려 광고를 만드는 입장보다는 소비하는 입장에 더 가까운 사람들이랄까요. 전문가가 아닌 외부인의 시선으로 광고를 만들기 때문에 다른 결과물을 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9426;돌고래유괴단

그 부분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지점이에요. 대부분 같은 업계에서 잘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살필 수밖에 없잖아요.

돌고래유괴단이 처음부터 광고 회사로 출발했다면 이 업계에서 통용되는 방식이나 트렌드를 따르거나 참고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당시에는 저희가 제작하는 영상이 광고가 될지 아예 몰랐으니까 그런 생각 자체가 없었어요. 저희는 웹에 영상물을 올리고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바로 성패가 결정되는 야생에서 줄곧 작업해 왔어요.

뭔가를 만들어 올렸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없으면
그건 실패인 거예요

이런 식으로 작업을 오래 해오다 보니 대중의 반응을 살피는 감각이 생긴 것 같아요. 무엇의 어떤 부분을 좋아하고 어디서 반응하는지, 뭘 원하는지를 알게 된 거죠.

 

돌고래유괴단이 팀으로 일해온 방식이 궁금해요.

내부적으로는 경쟁 시스템을 활용해요. 의뢰가 들어오면 다 같이 모여서 광고주의 의뢰를 공유한 뒤 2시간 정도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요. 그 시간 안에 각자 자기만의 완결된 시나리오를 짜 와야 하죠. 그 후 돌아가면서 본인의 시나리오를 발표하고, 그중에서 광고주가 채택한 시나리오로 진행해요. 아이디어가 채택된 사람은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풀어가요. 다른 사람들은 서포트해주고요. 10명 중에 연출하는 사람이 4명인데, 이들이 주도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는 편이에요.

저희에게 유일한 영업 수단은
포트폴리오예요

광고주들이 의뢰할 때 포트폴리오들을 보고 연락을 해오니까요. 그게 유일한 살길이라고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작업해 왔던 게 저희 팀의 비결이라면 비결이에요. '우리가 믿을 것은 우리 작품밖에 없다'는 절박함 같은 거죠. 이런 상황을 오랫동안 공유하고 반복하는 과정에서 저희 팀 구성원 모두가 비슷한 부담감을 느끼게 됐어요. 부담일 수도, 동기부여일 수도 있죠.

 

채용공고에도 레퍼런스를 보는 것이 금지라고 되어 있어서 인상적이었어요. 레퍼런스가 없는 상태에서 팀원들 간 의사소통은 어떻게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나요?

각자가 최종적으로 뭘 내놓을지는 알 수가 없어요. 아무리 잘 설명하고 충분히 이해한다고 해도 최종 결과물이 나오기 전까지는 완벽한 그림을 공유할 수가 없죠. 상대가 설명하는 시안을 이해했다고 해도 실제로 구현했을 때 모습은 다를 수 있어요. 하지만 저희 팀은 그동안 이런 식으로 작업을 꽤 많이 해왔어요. 그래서 서로가 말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더라도 누군가가 자신이 있다고 하면 되도록 믿어주고 밀어주는 편이에요.

아이디어는 결과물로 증명하면 됩니다
실제로 그렇게 믿고, 또 증명해 왔고요

나의 작품, 결과물로 남을 설득하는 일은 정말 중요해요. 그건 내부에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누군가 기획안을 발표했는데 다른 팀원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럴 때 역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른 팀원들을 설득하는 감독에게는 믿고 맡기는 편이에요.

 

저는 우리 팀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요인을 꼽자면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매번 작업하면서 그 결과물이 대중들에게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에 대한 불확실함과 불안함은 항상 있어요. 그럼에도 그 불안감을 이기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용기라고 말하고 싶어요. 혹자는 맹목적이고 무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서로를 믿고 용기를 내는 것이 우리를 지탱해 온 힘이라고 봅니다. (독특한 결과물로 자신만의 색깔을 유지하는 돌고래유괴단이 일하는 방법은 최종 콘텐츠에서 이어집니다.)

 

[콘텐츠 기획자들 - 뜨는 콘텐츠, 어떻게 만들죠?]

 

뜨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은 어떻게 일할까요? 요즘 가장 주목받는 크리에이터 6명이 들려주는 '콘텐츠라는 밥상을 차리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중에서 돌고래유괴단 단장, 신우석 감독과의 인터뷰 일부를 미리보기로 먼저 공개합니다. 6명의 크리에이터와 나눈 풍성한 이야기가 담긴 인터뷰 전문이 궁금하다면, 이 리포트에 주목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