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만약 사람이 '단 한 권의 책'만 읽을 수 있다면

나는 「스토너」를 읽을 것이다.

「스토너」는 작년 크리스마스에 선물 받았는데, 사실 그렇게 눈길이 가는 책이 아니었다. 검은 연필로 투박하게 스케치된 표지 속 인물의 눈빛은 처연해 보였다. 나는 생기와 빛을 쫓는 사람이라서 주인공의 무채색 삶은 내가 읽고 싶은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았지만, 막상 책을 다 읽고 난 뒤, 나는 이토록 완벽한 소설을 선물해준 분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보냈다.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는 19세기 후기, 미국 작은 주의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신식 농사 기술을 배워오라는 부모님의 권유로 고향을 떠나 미주리의 작은 대학에 진학한다. 그런데 우연히 들은 영문학 수업에서 셰익스피어의 일흔세 번째 소네트(정형詩)를 접한 후, 스토너는 영문학도의 길을 가게 된다.

 

세계대전이 벌어지는 동안 그는 다른 청년들과 달리 전쟁터가 아닌 학교에 남아 박사 학위까지 마치고, 첫 눈에 반한 은행가의 딸 이디스와 결혼해 가정을 이룬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희망찬 이야기로 끝나는 줄 알았지만 그의 삶은 이내 불화와 부조리로 일그러진다.
 

결혼 생활은 불행했고, 대학에서도 정치력 있는 동료와 척을 지면서 조교수 이상으로는 승진하지 못한다. 체념과 절망으로 점철된 스토너의 인생은, 결국 말기 암에 걸려 변변한 투병생활도 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며 끝이 난다.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법

 

책 「스토너」는 명치를 둔탁하게 치는 씁쓸하고 절망적인 이야기들로 가득하지만, 저자가 감정의 과잉 없이 쓴 깔끔하고 일관된 문장과 전개가 주인공을 마치 나의 아버지 또는 나 자신의 삶으로 이입시켜 끝까지 글을 읽게 한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법이죠. 세월이 흐르면 다 잘 풀릴 겁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에요."

이 말을 하고 나자 갑자기 그것이 정말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순간적으로 자기 말에 담긴 진실을 느낀 그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던 절망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절망이 그토록 무거웠다는 것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이 들뜨다 못해 현기증이 날 것만 같고,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질 것 같은 기분으로 그는 다시 말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p.264

우리가 살면서 순간순간 마주치는 불합리한 일, 압박감, 내 뜻대로 펼쳐지지 않는 전개, 진의가 전달되지 않아 생기는 외로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진실된 벗의 부재로 인한 슬픔은 우리 모두의 삶 속에 자잘하게, 그러나 짙게 배곤 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한 순간, 처음으로 빠져든 학문의 즐거움, 나보다 더 사랑하고 아끼는 누군가와 함께한 순간, 사실은 누구보다 서로를 위하는 걸 알았을 때 느낀 안도감, 악몽 같은 시간이 지난 후, 그 모든 것들이 결코 헛되거나 나쁘지 않았다는 자의적 위로 역시 삶을 켜켜이 쌓아올리는 장면임을 주인공 스토너 혹은 저자 존 윌리엄스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삶의 끝자락에서 스토너가 끊임없이 질문하는 "무엇을 기대했느냐"의 답이 '삶의 매 순간'이었음을 그의 일생을 통해 증명한다. 매 순간을 버텨내고 이겨내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스토너는 우리의 초상인 동시에 우리가 닮아가야 할 표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