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모든 것이 다 있던 시어스의 몰락

2018년 10월 18일 미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백화점 업체 중 하나인 시어스 홀딩스(Sears Holdings)가 파산보호를 신청했으며, 회사 CEO이자 최대 채권자인 사모펀드 ESL 인베스트먼트(ESL Investments)의 창업자 에드워드 램퍼트(Edward Lampert, 이하 에디 램퍼트)도 시어스 최고경영자직에서 사임했습니다.*

* 관련 기사: 125년 역사 시어스 백화점 파산의 교훈 (WEEKLY BIZ, 2018.10.19)

 

2005년 K마트와의 합병을 통해 시어스 백화점을 인수한 램퍼트는 이후 수년간 비용 감축과 자산 매각 등의 노력을 통한 경영합리화를 시도해왔으나, 실적을 개선하지는 못했습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내리막길을 걷는
백화점 업태의 이야기는
꾸준히 들려왔습니다

장기간 내수 부진이 이어지던 일본에서는 긴자의 세이부 백화점을 포함한 다수의 백화점이 2010년대 초반 폐점을 결정한 바 있고*, 2016년 영국에서도 100여 개의 백화점 점포를 운영하던 BHS가 파산했습니다.**

* 관련 기사: '도쿄의 심장' 긴자 세이부백화점도 폐점 (한국경제, 2010.1.28)

** 관련 기사: 英 백화점 BHS 결국 파산…1만1천명 실직 운명 (연합뉴스, 2016.6.2)

 

2018년 1월, 시어스 홀딩스도 점포 100여 개의 폐점을 발표하였으며, 또 다른 대형 백화점 체인인 메이시스도 2017년 100여 개 점포를 닫았습니다.
ⓒSears

현재 아마존(Amazon)으로 대표되는 이커머스의 고속 성장에 따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백화점 업태도 한때는 유통업계의 개척자였습니다. 20세기 중반, 미국 유통업을 혁신하며 높은 성장을 이끌어온 핵심에는 시어스가 있었지요.

 

'모두의 선구적였던 시어스, 왜 버림받았나' 기사에서 살펴보듯, 시어스 역시 당대의 혁신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이었던 카탈로그, 철도, 우편 제도에 힘입어 성장하였으며, 1960년대에는 미국 내 최대 규모의 유통업체로 성장했습니다.

 

그렇기에 시어스의 몰락을 두고 신규 업태의 성장에 따라 경쟁력을 잃은 오프라인 유통의 몰락으로 읽기보다는, 특정 시대의 혁신자들도 핵심 고객과의 교감을 잃고 새로운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변화를 모색하는 백화점들

시어스의 파산보호 신청 뉴스를 접하며, 이번 큐레이션에서는 파이낸셜 타임스의 기사 중 백화점 업계의 어려움을 다룬 기사들,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 노력하는 백화점의 사례를 모은 기사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온라인 쇼핑의 상승세로 죽어가는 영국 백화점들' 기사에서 언급하듯, 백화점 업계가 어려움을 겪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백화점이 제공하던 '무엇이든 파는 공간'이라는 효용이 온라인 공간으로 대체되었다는 점입니다. 새로운 채널의 등장으로 인한 구조적 변화 속에서 특히 중간급 백화점들(mid-market department stores)은 매출을 견인할 소비층의 이탈과 상품 및 가격 차별화의 어려움, 즉 수요와 공급 양측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영국 BHS 백화점 파산 이후, 백화점 업태를 유지한 곳은 새로운 임차인을 구한 60여 개 점포 중 단 3곳이었습니다. 또한 많은 점포가 24시간 피트니트 센터나 천원샵(pound shop)으로 채워졌다는 '파산 후 공백,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기사는 백화점 채널이 직면한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인더스트리 리더들은
어떤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가

위기 속에서 백화점 업계의 리더들은 여전히 의미 있는 변화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번 큐레이션에서는 프랑스의 백화점 르봉 마르셰(Le Bon Marché), 갤러리 라파예트(Galeries Lafayette), 르 쁘렝땅(Le Printemps)의 사례를 소개한 '유통업의 전통을 개편하는 프랑스 백화점' 기사도 엮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에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이 있습니다.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의 최고경영자 니콜라 우제(Nicolas Houzé)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점포의 미션이 거래의 논리에서 고객과의 관계 논리로 변화하였다. 우리는 웹사이트가 제공하지 못하는 특별한 경험을 위해 고객들을 놀라게 하고, 그들에게 조언을 건네며, 즐거움을 선사해야 한다.

ⓒRei Kim/Unsplash이를 위해 프랑스 백화점 업체들은 투자와 개보수 프로젝트 등을 진행했습니다. 플래그십 점포*들의 인테리어를 개보수하는 한편, 대형 도시 위주로 점포를 운영하며 더 매력적인 쇼핑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죠. 또한, 신진 디자이너의 소개, 예술가와의 협업 등을 통해 차별화된 경험을 고객에게 제공하고, 특정한 소비자에게 맞는 제품을 큐레이션 하여 제시하는 움직임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 일반 점포(매장)와 달리, 브랜드 이미지에 부합하는 인테리어와 다양한 체험 등이 가능해 전체 브랜드 성격과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점포(매장)

 

백화점들은 고객이 쇼핑 공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하기 위해 음식료와 식당 공간을 차별화하는 일에도 더욱 힘쓰고 있습니다. 즉, 고객이 '좋은 시간을 보내고, 친구와 만나며, 새로운 물건들을 발견하는 공간'으로 포지셔닝하는 것이 백화점의 새로운 목표입니다.

 

시어스가 다년간 비용 감축, 저효율 점포 및 자산 매각 등 경영합리화 노력을 했음에도 실패한 본질적인 이유 역시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지 못한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경영합리화 노력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은 단기적인 효과가 있었으나, 장기적인 해결책은 아니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파이낸셜 타임스는 '판매 상품에 대한 감각'과 '브랜드가 상징하는 바를 명확히 표현하는 능력'의 부재로 인해 고객들은 시어스 점포에서 쇼핑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진단합니다.

한국 백화점 업태의 과제

한국 백화점 업태의 상황은 어떨까요? 2009~2011년 럭셔리 소비의 확대에 힘입어 10% 이상의 높은 기존점 성장을 기록하던 한국 백화점 산업은 2012~2015년에는 역신장까지 기록하였으나, 최근 다시 소폭 회복하여 낮은 한 자릿수 대의 기존점 성장률을 보입니다.

출처: 산업통상자원부, 주요유통업체 매출동향조사 (그래픽: PUBLY)그러나 이미 대규모 폐점과 몇몇 업체의 파산을 겪은 미국, 유럽의 유통업체들이 겪은 구조적 변화와 위기 상황에 비하면, 한국의 백화점 채널은 성장률 저하를 겪었음에도 아직은 상대적으로 탄탄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 백화점 업계는 업태의 경쟁력 하락에 대비해 다양한 포맷(format)을 도입했습니다. 전통적인 백화점 포맷에 대한 소비자 선호도 하락에 대응하기 위함이었죠. 2011년 이후 백화점 업체들은 프리미엄 아울렛, 대형 쇼핑몰, 그리고 면세점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포맷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며 고객의 발걸음을 붙잡는 노력을 지속해 왔습니다.

 

또한, 최근 한국 백화점 업체들은 신규점 개점을 자제함으로써 업태 내 건전성 제고 효과도 보고 있습니다. 2018년 11월을 기준으로, 2016년 신세계 동대구점 개점 이후 주요 3사(롯데, 신세계, 현대)의 대형 백화점 점포 오픈이 없었으며, 2018~2019년에도 신규 백화점 개점 예정은 없는 터라 업태 내 경쟁 강도가 완화된 측면이 있습니다. 최근 백화점 업태의 기존점이 소폭 신장으로 회복한 부분 역시 신규점 개점을 중단한 영향도 일부 받았으리라 추정됩니다.

 

마지막으로 상품 구색 측면에서도 해외 유명브랜드나 생활용품 등 탄탄한 성장을 지속하는 카테고리들이 있습니다. 이에 따라 백화점 업계에서도 해당 카테고리의 매장 면적 확대나 신규 브랜드 유치 등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체 채널의 영향이 크게 나타난 일반 패션류 카테고리에 비해, 고가이자 대체재 역할을 할 만한 채널이 적은 해외 유명브랜드나 프리미엄 생활용품에 대한 수요는 여전한 것이죠. 이러한 경향은 소비의 양극화 추세 속에서 백화점 업태가 여전히 혜택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출처: 산업통상자원부, 주요유통업체 매출동향조사 (그래픽: PUBLY)물론, 극단적인 어려움을 겪은 몇몇 해외 업체들과 대비할 때 한국 백화점 업체가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으나, 전통적인 백화점 형태의 전망이 밝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한국 백화점 업태도 장기적으로는 온라인 채널과 해외 직구 같은 대안 채널의 확대, 그리고 브랜드 업체들의 협상력 강화에 따른 유통시장 내 점유율 하락과 같은 상황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는 방식이 쉽지 않을뿐더러, 고통스러울 가능성마저 높다는 점이겠지요. 비우호적인 구조적 변화와 더불어, 한국 백화점 업태는 기본적으로 자체 재고를 사들여 판매하는 모델이 아닌, 매장 공간을 임대하여 운영하는 수수료 모델(concession model)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상품 차별화와 자체 온라인 서비스 강화에 있어서 빠른 대처가 어렵다는 한계도 보입니다.

 

유통업체와 브랜드 간 협상에서 유통업체는 과거보다 협상력이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추세입니다. 따라서 백화점 업체들은 핵심 플래그십 점포를 중심으로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명료화, 자체 상품성 역량 강화를 통한 차별화, 공간 혁신을 통한 특별한 경험 제공, 그리고 자체 온라인 채널 강화를 위한 노력을 함께 추진해야 하며, 이러한 상황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큐레이션이 변화하는 유통 환경과 그에 대응하는 전략을 함께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 큐레이터, 김제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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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포트는 2018년 11월 7일에 발행된 것으로, 일부 참고 링크의 경우 만료될 수 있습니다. help@publy.co로 말씀해주시면 빠르게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