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캐릭터 뽀통령
'우는 아이 뽀로로 틀어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뽀통령'의 위력은 대단하다. 결혼식, 지하철, 식당에서 투정 부리는 어린아이 앞에
120여 개 수출국 중 하나인 네덜란드도 사정은 비슷한 모양이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120여 개 국 아이들의 혼을 쏙 빼놓는 콘텐츠 비즈니스가 아닌 발달심리의 렌즈로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주변에 아이를 둔 분들께 의견을 물었다.
출처: <뽀롱뽀롱 뽀로로> 3기 스틸컷
귀여운 친구들
뽀로로 캐릭터를 처음 개발할 때 디자인 방향을 '대여섯 살 정도의 귀엽고 천진난만한 꼬마 펭귄'으로 잡았다고 한다.
작은 키, 큰 머리, 동그란 얼굴, 짧은 팔다리. 크롱, 에디, 루피, 패티, 포비 등 뽀로로의 친구들도 공유하는 신체적 특징이다. 아주 잘 봐줘야 2등신이라고 할만한 체형과 외모에는 사실 자연의 섭리가 뒷받침하는 '마력'의 비밀이 녹아있다.
동물행동학의 이론에 따르면, 포유류 새끼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큰 머리, 큰 눈, 둥글둥글한 체형, 볼록 튀어나온 이마와 볼, 부드러운 털이나 피부 등 유아도해(baby schema)*의 특징을 보면 귀엽고 사랑스러운 마음이 들면서 '행복 호르몬'인 도파민이 솟구친다.
성인(성체)으로 하여금 보호본능을 느끼게 하여 안전을 확보하고 생존할 수 있도록 그렇게 진화했다는 것.
인간은 자신과 비슷한 존재에게
끌리는 심리를 갖고 있다.
아이들도 자기랑 비슷한 모습을 한 뽀로로와 친구들을 '귀엽다' 여기고 친근감을 느끼면서 동화되는 것이 아닐까? 한 부모는 "아이들이 동물에 많은 호기심을 갖는데, 특히 귀여운 뽀로로의 캐릭터들이 '말하는 동물'이라는 점이 아이들의 호감을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까만 머리 갈색 눈만 보다가 다른 색의 머리카락과 눈을 지닌 외국인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 신기해서 눈을 못 떼다가 졸졸졸 따라다니게 되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 유아도해(baby schema , 幼兒圖解)
: 사람이나 다른 영장류에 육아행동을 일으키는 건자극(key stimulus)의 조합을 나타내는 도식. 돌출부가 작은 둥그스름한 머리, 큰 눈 등이 유아임을 강조한다고 한다. 다른 동물군에도 이 도식이 통용되는 경우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각각의 종에 따라 서로 다른 유아적 특징이 나타난다. (출처: 네이버 생명과학대사전)
눈 덮인 뽀로로 동네
출처: 뽀로로 극장판 <눈요정 마을 대모험> 스틸컷
대다수의 아이들이 흔히 접하지 못하는 공간을 배경으로 함으로써 '정말 그런 곳에 동물 친구들이 살고 있을지 모른다'는 환상을 심어주기 때문.
만약
애초에 해외시장 진출을 목표로 한 만큼, 세계적인 미국 유아교육 TV 프로그램
나만 그런 게 아니네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은 재미를 더하기 위해 평면적인 캐릭터를 다소 과장되게 그리는 경우가 많은데, 뽀로로는 일상적이지 않은 환경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사실적인 성격과 행동을 다양하게 그린다.
엔딩 타이틀곡 가사에 드러난 각 캐릭터의 성격을 보면,
- 꼬마 펭귄 뽀로로는 밝은 성격의 '개구쟁이'
- 아기 공룡 크롱은 말을 잘 못하는 '장난꾸러기'
- 소녀 펭귄 패티는 운동을 좋아하는 '발랄하고' 성숙한 친구
- 꼬마 여우 에디는 '영리한' 발명왕으로 잘난 척하다가 사고 칠 때가 많다.
- 소심하고 '수줍은' 비버 소녀 루피는 친구들을 배려하고 격려한다.
- '우람한' 꼬마 백곰 포비는 친구들 부탁을 잘 들어주는 맏형 유형이다.
위와 같이 실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만날 법 한 사실적인 성격 유형이 다양하게 반영되어 있다.
식탐 많고 엉뚱하고 공주병이 있기도 한 캐릭터들의 성격과 행동에 친근감도 느끼고, '나만 그런 게 아니네' 하는 일종의 안도감도 느끼는 게 아닐까?
6개월 된 아기도
'착한' 것을 좋아하고
'악한' 것을 싫어한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있다.
대화를 나눈 부모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지적한 점이, 뽀로로와 친구들이 못된 짓을 할 때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악하다기보다는 아이들이 실제로 행할 수 있는 정도의 미성숙한 수준이고, 또 그것을 양심에 비춰 해결하려고 노력하려는 착한 마음을 아이들도 좋아한다는 것이다.
캐릭터에 자신을 대입하며 감정과 욕구를 조절하고, 남을 배려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아이들이 진심으로 이해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경험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자신 혹은 주변 친구들과 겹치는 다양한 성격의 캐릭터를 보며 'OO랑 비슷하네', '나만 그런 게 아니네' 하고 공감할 것이다. 마치 어른들이 무릎을 치며
친구랑 얘기하듯
교육용 TV 프로그램에 관한 이전 글에서도 언급된 바 있듯이, TV 속 목소리 중에 주의가 분산돼 있던 아이들의 눈길을 끌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은 어린아이의 목소리다.
그래서 교육적으로 중요한 내용은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뽀로로와 친구들은 각자 외모와 성격에 어울리는 어린아이의 목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몰입하기 좋다. 시작과 중간에 나오는 상황 설명은 성인 남성의 내레이션으로 처리되고, 나머지는 모두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전달된다.
물론 애니메이션이라 비현실적인 부분이 없지 않지만, 흥분하거나 짜증 내거나 눈치 보며 둘러대는 등 대화 내용과 화법도 어린아이들의 실제 모습과 비슷한 편이다.
아이들은 '어린아이의 목소리 = 아이들을 위한 내용', '어른 남자 목소리 = 어른들을 위한 내용'으로 짝지어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간혹 에피소드 마지막 부분에 성인 남성의 내레이션으로 원인과 결과를 정리하고, 그 의미를 해석해서 교훈을 말해주는데, 내레이션 대신 캐릭터 간 대화로 풀어내는 편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아이 재미나다
'아이들을 집중시킬 수만 있다면 뭔가를 가르칠 수 있다'는 획기적인 깨달음을 얻으면서 TV가 아이들에게 유해하다고만 여긴 당시의 인식을 완전히 바꾸었다.
또 페이스(pace)와 얼굴 표정도 돋보인다. 유머에서 페이스(pace)는 내용 다음으로 중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점과 선만으로 이뤄진 단순한 형태의 눈이지만 상황에 맞는 감정을 적절히 잘 전달해서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얼굴을 보듯 그 즐거움이 크다.
어른들이 보기에도 귀엽고 재미난데 아이들 눈에는 얼마나 재미있을까?
To See is To Learn
캐나다 출신의 심리학자 반두라(Albert Bandura)는 유명한 사회학습이론(social learning theory)을 세웠다.
사람은 사회적 맥락 속에서
주변의 사람이나 현상을 관찰하고
이를 모방하면서 학습한다는 것.
아이들이 폭력적인 TV를 본 후 성별 불문하고 어떻게 공격성을 학습하는지 보여주는 충격적인 실험 결과로 세상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아이들의 혼을 쏙 빼는 마성의
뽀로로, 크롱, 에디, 포비 등 다수의 남자 캐릭터 사이에 루피만 '유일한' 여자 캐릭터로 끼어들어가 있어서, 오히려 다른 캐릭터와 동등하게 다뤄지지 않는 '특별한 주변성'이 부각된다.
루피는 요리를 좋아하고 친구들을 살뜰히 챙기는 전형적인 여성의 역할을 보여주는데, 겁이 많고 수줍음을 타는 성격의 소유자인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나중에 운동을 좋아하는 활달한 여자 캐릭터 패티가 추가되지만, 3기 11화 '루피 공주님' 에피소드에서 극대화됐듯이 이 두 여자 캐릭터의 정체성은 외모, 요리 실력, 친절함, 배려심, (남자)친구들 사이에서의 인기 경쟁 이상의 범위를 크게 넘어서지 못한다. 뭔가를 잘 만들고 고치는 과학·공학적 재능을 가진 남자 캐릭터 에디와 포비와 그 전형성이 대조된다.
합리성과 자제력이 부족한 어린아이들은 성별과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공격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여자아이들은 '얌전해야 한다, 상냥해야 한다, 차분해야 한다, 배려해야 한다'는 성적 고정관념 때문에 남자아이들처럼 신체적으로 해소하지 못한다.
그 결과, 여자아이들은 성적 고정관념으로 억눌린 공격성을 험담, 질투처럼 관계 속에서 해소하려는 성향이 생기기도 한다. 또한 자기감정을 억제하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반복되면서, 위축되거나 우울해지는 심리적 부작용을 겪을 수도 있으니 '참하고 얌전한 딸내미'의 굴레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뽀롱뽀롱 뽀로로
비록 상업적인 애니메이션이지만 수익과 시장 크기만으로 세계를 제패하려고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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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 최종일·김용섭, 『집요한 상상 뽀로로 기획자 최종일의 크리에이티브』, 샘앤파커스 2012
- Sesame Street. Retrieved April 10, 2016, from https://en.wikipedia.org/wiki/Sesame_Street
- D. R. Anderson and others, "Watching Children Watch Television," Attention and Cognitive Development, edited by G. Hale and M. Lewis (New York: Plenum, 1979), pp. 331–61.
- Bandura, A. (1977). Social learning theory.
- Hay, D. F. (2007). The gradual emergence of sex differences in aggression: alternative hypotheses. Psychological Medicine, 37(11), 1527-15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