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을 담은 태도 매뉴얼

Editor's Comment

무인양품(無印良品, 이하 무지)은 의식주 분야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며 성장하는 회사입니다. 무지는 2018년 1월 중국 선전에서 첫 번째 호텔을 오픈했습니다. 'MUJI HOTEL에 다녀왔습니다' 두 번째 미리보기에서는 간결함과 유연함을 추구하는 무지의 철학을 어떻게 호텔 서비스에 반영하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전문이 실린 리포트는 11월 28일(수) 오후 5시까지 예약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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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는 현장 경영과 근무 태도에 대한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은 점포 운영 매뉴얼 '무지그램(MUJIGRAM)'을 만들었다. 전 매장에 무지그램을 비치하고, 일하는 기준으로 삼는다. 

 

무지 호텔의 호텔리어가 준수해야 하는 매뉴얼 또한 다르지 않다. 그러나 호텔의 운영 방식은 매장과는 차이가 있다. 철저한 공정에 따라 생산된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고객의 요구사항에 신속하게 대응해야 하는 서비스업이기 때문이다. 호텔리어는 무지의 철학에 맞게 서비스가 제공되는지 확인하고, 가이드를 제시한다. 호텔을 대외적으로 소개하는 것도 그들의 역할이다.

 

무지 호텔에 머무는 일주일 동안 호텔리어와 함께 총 세 차례 투어를 했다. 이틀은 캐리 가오(Carrie Gao)가, 하루는 켈빈 첸(Kelvin Chen)이 맡았다.

 

투어를 맡은 캐리 가오에게 '무인양품이 선전을 첫 번째 도시로 선정한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중국의 IT 혁신을 주도하는 선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CEEC(Consumer Electronics Exhibition and Exchange Center)로 나를 안내했다. 전시관을 둘러보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는 꼭 소개해주고 싶은 카페가 있다며 대만식 티 카페, 경성우(京盛宇)에 들렀다.

무지 호텔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대만 전통식 티 카페, 경성우(京盛宇) ©이승준

경성우에서는 찻잎의 종류에 따라 사용하는 다기의 종류와 크기가 무려 열 가지에 이른다. 차 본연의 맛을 섬세하게 우려내는 데 그만큼 신경을 쏟는다는 의미다. 얼음을 사용할 때에는 그 양을 동일하게 하기 위해 1인분씩 잘게 나누어 얼려둘 만큼 정확함을 추구한다.

 

켈빈 첸과 함께 호텔 투어를 하며 MUJI Diner, 플래그십 스토어, 숙박동을 방문했다. 그는 각 시설의 디자인 컨셉과 역할 뿐만 아니라, 어떤 자재를 왜 사용했는지도 설명했다. 그는 학창시절 '지워지는 볼펜'을 사용한 이후 무지의 팬이 되었다고 말했다. 무지가 선전에 첫 번째 호텔을 연다고 했을 때, 켈빈 첸은 망설임 없이 5성급 호텔을 그만두었다. 무지가 만드는 호텔에서 일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실제로 일하면서 그의 생각이 변했을지 궁금했다. 그는 바람직한 삶을 고민하는 동료들과 함께 일하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원활할 뿐만 아니라, 업무 성과가 좋다고 이야기했다. 

 

무지 호텔 직원에게는 현장에서 상황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재량권이 있다. 서비스업의 모든 상황에 명확한 기준을 세우면,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제품과는 달리 상황에 따라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해야기에 오히려 느슨한 가이드가 필요한 것이다. 무지는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철학을 기준으로 삼되, 현장 상황에 따라 일하는 위치와 방식을 유연함을 줄 수 있도록 호텔 운영에 여백을 만들었다.

철학을 구현한 섬세한 기술

무지 호텔은 비전문가 10명 대신 전문가 2명의 협업으로 운영한다.
 

- 켈빈 첸, 무지 호텔 수퍼바이저

무지가 합리적인 공정을 통해 간결한 상품을 생산하는 것처럼, 무지 호텔에도 꼭 필요한 인력만 근무한다. 27명의 최정예 호텔리어들이 교대로 79개의 객실과 투숙객의 요구사항을 마주한다. 꼭 필요한 포지션에 전문가를 뽑고 적재적소에 배치한 덕분에, 직원들은 동급 호텔 대비 1.5~2배의 급여를 받고 있다.

 

북경, 상해 등 중국 대도시 5성급 호텔에서는 손님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로비 안팎으로 직원들이 상주한다. 각자의 위치에서 짐을 차에서 내려주거나, 객실까지 짐을 올려주거나, 짐을 맡아주는 등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무지 호텔은 달랐다.

고객 차량의 문을 열어주거나 짐을 옮겨주는 직원이 상주하지 않는 무지 호텔 ©이승준

호텔에 도착해 디디추싱(滴滴出行, 중국 최대 차량 공유 서비스) 차량에서 내렸을 때, 짐을 받아주는 직원이 없었다. 평소 호텔에 가면 짐을 차에서 내려주고 객실까지 올려주는 벨보이에게 팁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 늘 고민했던 터라, 무지 호텔의 서비스가 오히려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로비에 들어섰을 때는 체크인·아웃을 돕는 프론트 직원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직원은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넸지만, 다른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내가 근처에 추천할 만한 마사지숍을 물어보자 인근 다섯 점포의 장·단점을 정리한 출력물을 전달해주었다. 마치 키다리 아저씨처럼, 멀지 않은 곳에서 지켜보다가 적절한 때에 나타나 친절을 베푼다는 느낌을 받았다. 

 

체크인을 마치고 객실에 들어섰을 때, 나를 맞이하는 것은 호텔의 섬세한 기술이었다. 입구 천장에 는 동작 감지 센서 두 개가 설치되어 있다. 시차를 두고 커튼이 자동으로 열리면서 따뜻한 채광이 객실을 가득 채웠다. 투숙객에게 환영의 인사를 건네는 컨셉이다. 

 

동작 감지 센서에는 낮과 밤, 두 가지 모드가 있다. 투숙객이 들어오면 시간에 따라 센서가 다르게 작동하며 적정한 조명과 온도, 커튼 상태를 맞춘다 .

 

* 객실에 들어서는 모습 ©이승준

 

투숙객이 객실을 나선 후 30분 동안 동작이 감지되지 않으면, 스마트폰 충전을 제외한 나머지 전원은 차단된다. 에어컨도 적정 온도와 풍량을 조절하고, 간접 조명만 켜서 에너지를 절약한다. 이처럼 사람이 머무는 때와 머물지 않을 때를 구분하기 위해 객실 내에는 출입, 조도, 습도, 온도 등의 센서가 설치되어 있다.

 

또한 무지 호텔 직원 중 절반은 자원을 절약하기 위해 명함을 만들지 않았다. 연락이 필요하면, 위챗을 사용한다. 나는 명함을 교환하는 대신 켈빈 첸, 캐리 가오와 QR코드로 위챗 친구*가 됐다.

* 위챗은 QR코드 혹은 주변에 있는 사람을 GPS로 검색해서 친구를 추가할 수 있다.

위챗으로 캐리 가오와 나눈 대화 ©이승준

'잘 자는 것'과 '잘 먹는 것'이
전부인 호텔
스스로 무지가 지향하는 삶을 살아가며, 그 삶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자부심을 지닌 직원들. 어떻게 하면 유행에 영향 받지 않고 그들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할 수 있는 걸까? (더 나은 고객 경험을 위한 무지 호텔의 이야기는 최종 리포트에서 이어집니다.)

 

[MUJI HOTEL에 다녀왔습니다]

 

2018년 1월 중국 선전에 문을 연 무지 호텔은 무지의 고객 경험 철학이 집약된 공간입니다. 이 리포트는 고객경험을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로 연결하기 위해 늘 고민하는 서비스 디자이너의 무지 호텔 체험기입니다. 서비스 디자이너의 눈에는 어떤 고객경험의 순간이 눈에 들어왔을까요? 어떤 디테일이 무지다운 호텔을 만들고 있는 걸까요? 서비스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무지의 첫 호텔을 샅샅이 탐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