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BLY 멤버십 — 일하는 사람들의 콘텐츠 구독 서비스

한 달에 책 한 권 가격으로 모든 콘텐츠를 만나세요
멤버십 더 알아보기

PUBLY 멤버십 — 일하는 사람들의 콘텐츠 구독 서비스

한 달에 책 한 권 가격으로 모든 콘텐츠를 만나세요

멤버십 더 알아보기

올바르지 않은 내용, 오탈자 등 수정이 필요한 부분을 알려 주세요. 보내주신 내용은 저자에게 검토를 요청하겠습니다.

검토 결과는 독자님의 이메일로 회신 드리겠습니다. 내용을 입력해주세요.

  • 이메일

    {{ userEmail }}

  • 챕터 제목

    기고글: 위기와 다시 만나기 전, 위기를 알아야 한다

{{ errors.first('content_error_request_text') }}

#1

기고글: 위기와 다시 만나기 전, 위기를 알아야 한다

기고 이진우 콘텐츠 제공 파이낸셜 타임스 편집 임보라
기고글: 위기와 다시 만나기 전, 위기를 알아야 한다

2008년, 대공황이 재현되다

Editor's Comment

파이낸셜 타임스 X PUBLY의 다섯 번째 큐레이션 콘텐츠 '세계 금융위기 이후 10년, 우리는 교훈을 얻었는가?'의 기고자 이진우 기자(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의 진행자)가 작성한 글입니다.

2008년 9월 15일은 세계 4대 투자은행 중 두 개가 동시에 침몰하며 세상을 경악과 공포에 몰아넣은 날이다.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했고, 가까스로 파산을 모면한 메릴 린치(Merrill Lynch)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Bank of America, BoA)에 인수되면서 간판을 내렸다. 이날을 출발점으로 전 세계는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긴 터널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사건에서 시작된 실물경제의 침체는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한국의 은행 정기예금 이자율이 여전히 연 1%대에 머물고 있는 것은 10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의 흔적이다.

2008년 당시의 충격은
1930년대 대공황에 못지않았다
2008년 미국의 가계자산은 금융위기로 인해 2007년보다 16%나 감소했는데, 이는 대공황 당시의 -3%보다 훨씬 큰 충격이었다. 2007년에 4.4%였던 미국의 실업률은 금융위기가 발발한 지 1년 후인 2009년 10월에는 10%에 이르렀다.

 

이런 일이 벌어진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시계를 거꾸로 돌려 2000년대 초로 돌아가야 한다. 닷컴 버블이 꺼지고 뒤이어 발생한 9.11 테러 등으로 경기가 극도로 위축된 시절이었다. 미국 중앙은행은 이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금리를 급격히 낮췄다. 6.5%에 이르던 기준금리는 2001년 말 1.75%로 낮아졌고, 이 기록적인 저금리는 2004년까지 3년간 계속됐다. 경기는 그 이후 빠르게 회복됐다.

 

금리는 낮은 데 반해 중국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저가 상품들 덕분에 인플레이션은 발생하지 않는, 그래서 저금리의 편안함을 아무 걱정 없이 누리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경기 과열을 걱정한 미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려도 시중금리는 올라가지 않았다. 당시 '그린스펀의 수수께끼(Greenspan's Conundrum)*'라고 불리던 이 현상은 미국으로부터 무역흑자를 많이 내던 중국 등이 그렇게 벌어들인 달러로 미국의 장기 국채를 사들인 탓에 나타난 것으로 추정됐다.

* 2005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이 미 상원에 제출한 통화보고서에서 이 현상이 수수께끼 같다고 언급하면서 나온 표현이다.

 

금리가 낮은데 경기는 좋아지니, 사람들은 돈을 빌려 집을 구입하기 시작했고 집값은 꾸준히 상승했다. 여기에 모든 미국인에게 자가주택을 보급하겠다는 미국 정부의 정책까지 겹치면서 과거에는 집을 구입할 엄두를 내지 못하던 저소득층도 대출을 받아 집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Chris Liverani/Unsplash

흔히들 미국에서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라고 부르면서 돈을 갚을 능력이 부족한 서민들에게 과도하게 주택 구입용 대출을 해줬다가 생긴 위기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과연 집값이 조금 떨어지고,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약간 늘어났다고 해서 미국의 금융시장 전체가 흔들리고 투자은행들이 하루아침에 쓰러질 수 있는 것일까. 전 세계를 대공황에 버금가는 위기로 몰아넣은 사건의 원인이 겨우 미국의 집값이 조금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니, 이게 그리도 심각한 문제였단 말인가.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미국의 주택대출 시스템이 한국의 주택담보대출과는 다소 다르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이 은행에 가서 서류를 작성하고 대출을 받는 것까지는 한국과 미국의 시스템이 같은데, 그다음부터가 다르다.  

 

한국에서는 은행이 은행 돈으로 대출을 해주고 수년에서 수십 년간 그 이자와 원금을 나눠서 상환받는다. 그 과정에서 이자나 원금을 갚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도 은행이 그 손실을 떠안는다. 설령 대출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늘어나더라도, 은행은 빌려준 돈 가운데 얼마를 받지 못하게 될지에 따라 은행이 받을 충격과 여파가 어느 정도일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대출받은 사람의 모든 상황을 은행이 손바닥 들여다보듯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갑자기 집값이 내려가 이자나 원금을 갚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도 은행이 당장 대출을 회수하거나 집을 압류하지 않아도 된다. 은행이 조금만 참고 견디면 위기를 넘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택저당증권으로 시작된 그림자 금융

그러나 미국의 대출 시스템은 다르다. 은행은 고객에게 돈을 빌려준 후 바로 며칠 안에 고객에게 받은 대출 서류를 시장에 매각한다. 고객으로부터 원금과 이자를 받을 권리를 주택저당증권(Mortgage Backed Securities, 이하 MBS)이라는 이름의 금융 상품으로 포장해서 팔아버리는 것이다. MBS를 매입한 투자자는 그 고객이 매달 갚는 이자를 은행 대신 받는다. 이런 구조에서 은행은 대출자가 아니라 대출 중개자에 불과한 셈이다. 또한 실제 고객에게 대출해준 돈도 은행의 것이 아니라, MBS에 투자한 투자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Raw pixel/Unsplash

이때 대출을 받아간 고객이 이자를 연체하기 시작하면 고객이 내는 이자에 수익 원천을 둔 MBS의 가치도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새로 MBS에 투자하려는 투자자들이 줄어들고, 그들의 투자가 감소하면 주택대출을 해줄 재원도 감소한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사려는 새로운 소비자들 역시 대출을 받기 어려워지는 셈이다.

결국, 집 구매 수요가 줄어들고
집값이 하락하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이렇듯 은행 이외의 기관들이 은행 흉내를 내면서 소비자에게 대출을 해주는 것을 가리켜 '그림자 금융'이라고 부르는데, 미국의 주택대출시장이야말로 전형적인 그림자 금융에 해당했다. 예금자의 돈으로 대출해주는 은행과 달리 그림자 금융은 투자자의 돈으로 대출을 해주는 구조라, 투자자들이 불안해하기 시작하면 뱅크런(Bank Run)*이 쉽게 발생한다는 차이가 있다.

* 경제 상황 악화로 금융시장에 위기감이 조성되면서 은행의 예금 지급 불능 상태를 우려한 고객들이 대규모로 예금을 인출하는 사태 (출처: 두산백과)

 

은행에 맡긴 돈은 예금자보호제도가 있어서 은행이 문을 닫아도 보호받을 수 있다. 은행이 혹시 대출을 잘못했다가 돈을 떼이더라도 은행이 망하지 않는다면 내 예금은 안전하다. 그러니 집값이 내려간다고 해서 은행에 맡긴 예금을 갑자기 인출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림자 금융에 투자한 투자자는 결과가 잘못될 경우 아무런 보호장치도 없는 상태에서 투자 손실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수상한 조짐이 보이면 자금을 회수하고자 발 빠르게 움직이게 된다. 내가 은행에 돈을 예금했는데 은행에서 이런 전화가 온다고 생각해보자.

손님께서 맡기신 예금을 김OO 님께 대출해드렸는데 이분이 몇 달째 이자를 못 갚고 있습니다. 그래서 손님이 맡기신 예금도 일부는 돌려드리기 힘들 것 같습니다.

은행에 예금한 경우라면 이럴 가능성이 전혀 없지만, MBS에 투자한 투자자 입장에서 돈을 빌려 간 고객들이 '연체'하기 시작한다는 건 이러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투자자들은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 MBS를 내다 팔려고 한다. 그러면 MBS 가격이 떨어지고, 가격이 떨어질 것 같은 MBS를 사는 투자자들은 줄어든다. 이렇게 되면 은행은 주택담보대출을 줄여야 한다. 고객에게 대출해준 채권을 MBS로 포장해서 팔아야 하는데, 그 시장에서 MBS를 받아줄 투자자가 줄어드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주택 대출 재원이 줄어들고 대출이 위축되면 은행에서 돈을 빌려 집을 구매하는 사람들도 감소한다. 부동산 가격은 매수자가 계속 생기지 않으면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처럼 그림자 금융은 평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예금보호장치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위기가 닥치면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불이 난 극장에서 서로 먼저 빠져나가려다가 오히려 피해가 커지듯, 작은 위기에도 투자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면 그 때문에 위기가 더 크게 증폭된다.

 

국가가 일정 금액의 예금을 보장하는 예금보호제도는 예금자들이 작은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은행에 달려오는 뱅크런을 막고자 만든 제도인데, 은행 예금이 아닌 다른 시중자금을 활용해서 돈을 빌려주는 그림자 금융 시스템에서는 이런 보호장치가 작동하지 않는다.

금융위기는 이러한 그림자 금융을
규제 없이 허용한 것에서 비롯했다

그림자 금융 덕분에 은행은 일단 돈을 빌려준 후, 대출 증서를 시장에 내다 팔아서 빌려준 돈만큼의 자금을 회수했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 돈을 빌려줄 수 있다는 편리함과 돈을 빌려 간 고객이 제때 갚지 못하는 위험을 떠안지 않아도 된다는 홀가분함을 발판 삼아 주택 대출을 더 활발하게 늘렸다. 이것이 '모든 국민이 자신의 주택을 소유하게 하자'는 정부 정책과도 맞물리면서 주택 대출의 위험성은 계속 높아졌다.

위험을 가려버린 부채담보부증권의 범람

MBS가 위험을 전이시키는 효과로 대출 심사를 무디게 만드는 요인이었다면, 부채담보부증권(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CDO)은 위험의 계산 자체를 어렵게 만든 금융상품이었다. 또한 MBS가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대출자들의 차용증 다발을 한 상자에 넣어서 판매하는 금융상품이라면, CDO는 그 차용증들을 다시 신용등급이나 만기구조 등으로 재분류해서 투자자들의 입맛에 맞게 만든, 즉 한 번 더 가공한 금융상품이었다.

 

신용도가 낮은 고객들에게 대출된 서브프라임 대출 상품도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면 신용도가 높은 금융상품으로 바뀌었다. 신용도가 낮은 고객이라도 6개월 안에 부도를 낼 확률은 희박하니 그들이 빌려 간 대출 가운데 6개월 이내에 상환될 대출만 따로 모아서 상품을 만드는 식이었다. 소고기로 비유하자면 3등급 고기 중에 괜찮은 부분들을 일일이 발라내서 따로 포장한 후 1등급 고기로 파는 식이다.

재분류 과정에서 주택 관련 상품들은
그 위험이 얼마나 큰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품으로 바뀌었다
금융상품의 등급을 평가하는 신용평가사들은 나름의 이론으로 각 금융상품의 부도 가능성을 매겼다. 하지만 나중에 드러난 사실은 이런 계산과 이론들이 아무 근거가 없는 기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었다. 여러 사람의 대출 차용증 조각들이 섞여 있는 금융상품에서 손실이 발생하려면, 캘리포니아에 사는 데이비드가 주택대출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뉴욕의 샐리도 그 영향을 받아 동시에 빚을 갚지 못하게 될 가능성을 계산해야 하는데, 그러한 계산법과 이론은 없었다.

 

누군가는 주택금융상품이 갖는 위험성과 신뢰도를 숫자로 표현해야 한다. 그래야 그 상품이 제대로 된 유통과 투자를 거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CDO의 범람은 '아무도 진실을 모른다면 내가 매기는 숫자가 옳은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으로 계산식을 만든 결과였다. 이 상품이 얼마나 위험한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금융상품은 경기가 좋을 때는 막연한 믿음으로 팔리지만, 의심이 들기 시작하면 그 실체 이상으로 막연한 불안을 유도한다.

©Stefano Pollio/Unsplash미국의 금융위기는 금융회사들이 투자한 주택 관련 금융상품들에서 생긴 손실 때문에 발발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 손실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 파악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거래 상대방을 믿지 못하는 신용경색이 발생하면서 불거진 위기였다.

누구도 계산치 못한 상품의 규모

미국의 경제학자 벤 버냉키(Ben Shalom Bernanke)는 회고록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은 규모가 작았고, 나와 연준 총재들은 서브프라임 문제가 주요 관심사이긴 했지만 경제에 커다란 손상을 입히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금융위기 당시 뉴욕 연준 총재였던 티모시 가이트너(Timothy Franz Geithner)의 회고도 눈여겨봐야 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전체 모기지 시장의 7분의 1에 불과하며 미국의 55조 달러(한화 약 6경 2,452조 원)의 금융자산 중 1조 달러(한화 약 1,135조 5,000억 원)일 뿐이어서 다른 부문으로 영향이 파급될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규모가 크지 않은 서브프라임 대출이었지만, 그러한 대출상품이 금융회사들의 보유 자산에 어느 정도 포함되었는지 서로 파악할 수 없게 되자 금융시장은 혈관이 막히기 시작했다. 금융기관들이 단기자금을 빌릴 때 상대방에게 맡기는 '담보'에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섞여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하지만 애초에 워낙 잘게 잘려 섞여버린 탓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만 따로 발라내기도 불가능했다.

 

한편, 주택대출 상품들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금융상품으로 점점 진화하면서 유럽이나 아시아 국가들도 미국의 CDO 상품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미국 금융 당국이 왜 금융위기를 미리 막지 못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할 때 등장하는 설명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사는 어떤 청년이 집을 구매할 때 필요한 자금을 네덜란드의 은퇴 부부가 빌려주는 일이 과거의 은행 중심 금융구조에서는 좀처럼 발생하기 어렵지만, MBS나 CDO라는 금융상품을 통해서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은행을 통한 대출이었다면 미국 금융당국이 미국 은행들을 들여다보면서 대출 추이를 관찰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주택 시장에 공급되는 것은 국경을 넘나드는 외국자금이었다. 유럽의 금융회사가 미국 소비자들에게 머니 마켓 펀드(Money Market Funds, MMF)*를 팔고, 그 자금으로 MBS나 CDO를 구매하면 미국 금융당국은 주택 구입자금이 위험한 고객에게 대출되는 통로를 통제하기 어려워진다.

* 단기금융상품에 집중투자해 단기 실세금리의 등락이 펀드 수익률에 신속히 반영될 수 있도록 한 초단기공사채형 상품

©Stephen crowley/Unsplash앞서 살펴본 것처럼 미국의 금융위기는 규제를 제대로 하지 못한 금융 당국의 책임이 가장 크다. 당시 금융 당국 관계자들은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앞으로도 금융 당국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상상력'이 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다시 놀랄만한 일이 발생하기 전, 위기의 실상을 꿰뚫어 보고 미리 둑을 쌓을 줄 아는 상상력 있는 정책가가 우리 곁에 있기를 바랄 뿐이다.

위기에서 구해내기 vs 책임을 먼저 묻기

규제의 사각지대도 문제였다. 연방정부의 인가를 받은 대형은행들은 통화감독청이 감독하는 반면, 주택담보대출을 취급하는 저축기관은 저축기관감독청이라는 또 다른 감독기구 소관이었다. 그런가 하면 주정부 산하의 은행들은 지역 연준의 관할이었다. 대부분의 대출 재원을 조달해 온 비은행 금융기관들을 규제 감독할 기관은 따로 존재하지도 않았다.

 

정부가 은행을 규제할 수 있는 근거는 정부가 유사시에 은행을 보호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은행 금융기관들은 유사시에 정부가 그들을 보호할 근거가 없으니 평소에 규제하고 감시할 명분도 없는 셈이었다. 그러나 '유사시'가 되자 정부는 그들에게 구제금융을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관련한 논란의 커다란 줄기는 두 가지다. 지금까지 살펴본, '금융위기가 왜 발생했는가'와 함께 '금융위기를 극복한 과정은 문제가 없었는가'이다. 미국에서 발생한 일이어서 우리가 그 논란에 동참하지는 않았으나, 미국에서는 위기를 일으킨 금융회사를 구제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뜨거운 논란이 일었다.

 

벤 버냉키는 일단 구제하고 봐야 한다는 의견을 내세웠다. 1930년대 일어난 대공황을 연구해온 경제학자인 그는 대공황이 온 이유에 대해 당시의 중앙은행이 너무 엄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평소에는 엄격함이 질서를 유지하는 요소가 되지만, 비상시에는 중앙은행의 엄격함이 사태를 키우는 독약이 된다고 믿었다.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이웃이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 집에서 불이 났습니다. 그냥 타도록 내버려 두는 게 옳겠지만 당신의 집은 그 이웃의 집과 거의 붙어있고 목조주택입니다. 언론들은 침대에서 담배 피우던 사람을 구제하면 다른 사람도 침대에서 담배를 계속 피우게 될 테니 그냥 타게 놔두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일단은 불을 끄고 나중에 그 사람의 흡연을 처벌하는 게 옳습니다.

대혼란을 막고 경제를 위기에서 구해내는 것과 위기를 일으킨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어 재발을 방지하는 것 중 어느 쪽에 비중을 두느냐는 두 주장의 대립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선 구제 후 처벌을 주장하는 쪽은 정부가 긴급하게 투입한 자금으로 위기에 빠진 금융회사들의 지분을 사들였고, 나중에 그 지분 가치가 올라서 정부도 돈을 벌었다는 주장을 한다. 하지만 반대론자들은 '긴급하게' 투입하지 않고 '망한 후'에 투입했으면 그 회사 지분을 더 싸게 사들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 정부의 이익은 더 많아졌을 테고 그 차액만큼 정부가 금융회사 주주들의 이익을 보전해준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 FT의 특집 기사들의 곳곳에 등장하는,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논란은 이런 배경을 갖고 있다.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이 논란은 앞으로 비슷한 위기가 재발했을 때, 토론장을 다시 뜨겁게 달굴 것이다. 그리고 토론의 결과 역시 깔끔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위기의 봉합이 지연되거나 서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어 불편한 상황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위기는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자주 재연된다. 근로자를 많이 고용하는 대기업이 위험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정부가 구제금융을 제공해야 하느냐의 문제다. 대개 그 위험한 대기업을 그래도 제일 잘 아는 경영자는 지금까지 그 회사를 경영해온 옛 경영진이라는 논리이다. 경영진에게 경영권을 쥐여주고 경영 성과가 좋으면 다시 그 회사의 소유권을 가져갈 수 있게 인센티브 구조도 만들어놓곤 한다. 이것을 다른 시각에서 요약하면 회사를 망친 대주주를 정부 돈으로 도와주는 것이다.

 

이런 논란과 갈등 구도는 시장을 구제할 정부의 힘이 필요할 때마다 항상 여론을 분열시키고 시간을 지연시켜서 타이밍을 놓치게 만든다. 미국의 금융위기는 과거 대공황을 연구해온 과정에서 나름의 확신이 있던 벤 버냉키가 여론을 무릅쓰고 과감한 구제금융을 시행하면서 빠르게 안정되었지만, 앞으로도 그 솔루션이 모두에게 인정받으리라 확신하긴 어렵다.

이는 위기 과정을
다시 복기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미리 끌어내야 하는 부분이다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는 빠르게 진정되었지만, 그 여파로 인해 전 세계의 경제성장률이 한 단계 하락한 것은 뼈아픈 결과다. 이는 위기가 지속되는 동안 투자가 감소하고 생산성이 악화되었기 때문인데, 위기 이전 2.5% 내외였던 OECD 국가들의 잠재성장률은 2017년 기준으로 1.7%까지 떨어졌다. 금융위기 이후 부채 규모가 더 커졌다는 점도 위기가 해결이 아닌, 봉합된 것일 뿐이라는 지적에 설득력을 더하는 요인이다.

 

미국의 가계와 금융회사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채를 적극적으로 관리하면서 부채증가율이 둔화하였다. 하지만 정부는 위기 대응을 위해, 기업들은 낮은 금리 상황을 이용한 자금조달이 늘어나면서 부채비율이 더 높아졌다. OECD 국가들의 정부 부채는 지난 10년간 1.8배가 늘었고 GDP 대비 환산 비율도 62%에서 87%로 늘었다. 기업들의 부채도 절대액으로는 1.6배, GDP 대비로는 80%에서 91% 수준으로 높아졌다.*

* 챕터 4의 '안전해진 은행과 위험에 빠진 부채'와 챕터 5의 '협력이 약화되면 위기 대응 능력도 떨어진다'에서 부채의 감소가 없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은 이런 부분을 주목한 결과다.

결국 글로벌 금융위기는
부채가 늘다가 생긴 위기이다
부채의 증가는 시스템 전체의 위험성을 높이지만 늘 가장 취약한 부분에서 폭발한다. 신용도가 낮은 서민들이나 규모가 작은 기업들의 부채가 늘 신경 쓰이는 이유이자 이들에 대한 규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의 배경이기도 하다.

 

부채가 생기는 본질적인 이유는 양극화 때문이다. 부채가 아니고서는 자산 가격의 상승을 따라갈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한 이들에게 부채를 일으킬 권리조차 박탈하는 것은 금융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가 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의 사건들은 양극화를 부채로 덮고 부채를 또 다른 부채로 덮다가 최종적인 부담은 정부가 떠안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정부의 부채는 인플레이션으로 희석하는 아슬아슬한 과정이 진행 중이다. 인류가 생각해낸 최선의 현실적 대안이 과연 이런 방법뿐일까, 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지만 별다른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 또한 우리에게 남은 숙제다.

#1 기고글: 위기와 다시 만나기 전, 위기를 알아야 한다 마침.

독자 평가

현재까지 398명이 읽은 콘텐츠입니다

  • 박**

    금융 변동성과 향후 전망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좋은 내용이었음.

  • 황**

    파이낸셜 타임스를 번역해서 정제한 내용인만큼, 주관적인 메시지는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에서 평가를 보류하겠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점은 금융위기의 원인과 향후 전망에 대하여 통계적으로 잘 설명하였다는 것이며, 특히 초보 투자자들이나 금융 공부를 하는 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큐레이터의 말: 지금 2008년을 회고해야 하는 이유

다음 글 계속 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