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모기와의 전쟁

호텔 천장에 달린 선풍기 날개가 팽글팽글 돌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남인도의 폰디체리(Pondicherry)에 와 있어요. 벵골만의 바다를 옆에 낀 동네입니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영화 초반 동물원이 운영되던 바로 그 동네입니다.

 

아직 여름이 오지 않았는데 낮기온이 섭씨 34도까지 올라요. 습한 바닷바람 덕분에 열기가 살갗에 끈적이게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군요. 10분만 거리를 거닐어도 가래떡처럼 땀 줄기가 뽑아져서 티셔츠는 금세 축축해집니다.

폰디체리 골목길. 프랑스 지배를 받아 프랑스풍 가옥이 많았습니다. 프랑스에 가보질 않아 프랑스풍이 뭔지 알길이 없었지만, '이건 인도풍이 아니야' 싶으면 일방적으로 프랑스풍 취급을 해버렸습니다.

폰디체리는 인도가 1954년 영국에 독립할 때까지 300년간 프랑스 지배를 받은 바닷가 마을입니다. 약삭빠른 프랑스놈들이 영국이랑 어느새 짬짜미를 해서 인도 남부의 작은 시골 하나를 차지했나 봅니다. 프랑스풍 가옥과 상점이 오밀조밀 해변을 따라 늘어서 있어 보통의 인도와 다른 정취가 느껴지긴 합니다만, 자동차 경적소리와 수많은 사람으로 혼란스러운 거리는 너무나도 인도답군요.


더운 나라 인도에선 거실이든 방이든 천장에 선풍기가 최소한 한 개씩은 꼭 달렸습니다. 5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여름인데도, 남인도는 벌써 더운 바람이 솔솔 창문을 타고 옵니다.

 

에어컨이 있는 호텔이지만, 나는 선풍기도 틉니다. 모기 때문입니다. 천장 선풍기는 모기 퇴치에 신통한 효과를 내거든요. 날아다니는 모기는 선풍기 바람의 저항 때문인지 침대 위에 있는 나를 물지 않습니다. 모기도 살고, 나도 사는 거죠. 좋은 호텔 방엔 전자식 모기향이 구비되어 있기도 하던데, 여긴 없네요.

 

우선 방을 쓱 둘러보니까 모기가 보이진 않는군요. 그럼 이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선풍기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잠을 자고 아침에 찌뿌듯하게 일어날 것인가, 모기에 물릴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서 조용하고 편안한 잠자리에 한번 도전해 볼 것인가.

 

나는 이제 무조건 전자를 택합니다. 요즘 인도에서 모기의 침입은 변수가 아니라 그냥 상수예요. 모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못 본 겁니다.

인도 건축업자들이 타지마할을 만든 조상 반의반만이라도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마감'이란 개념도 타지마할 무덤에 같이 묻혔나 봐요.

건물들이 대개 허술합니다. 6층 내 방 옆에 달린 화장실에서 가끔 노란 도마뱀이 의연하게 벽을 타는 걸요. 환풍기 타고 넘어온 건지 어찌한 것인지, 짐작조차 가질 않습니다. 하물며 모기 입장에서야 창틀에 쳐진 모기장이 대수겠습니까. 속 편하게 '그래 올 테면 와라'라고 해 놓고선, 모기약으로 죽이던지 천장에 달린 선풍기를 이용할 생각을 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몰랐죠. 무방비로 자고 있다 윙윙대는 모깃소리에 잠에서 깼습니다. 이미 팔다리 몇 군데가 간지러운 상태에서 극도의 짜증과 귀찮음이 몰려옵니다. 비몽사몽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모기를 상대로 말하기도 부끄러운 자기파괴적인 짓을 몇 번 했습니다.

 

침대 위에서 얼굴만 내놓은 채 이불을 온몸에 뒤집어씁니다. 한쪽 볼기를 베개에 납작하게 밀착시킵니다. 이제 모기가 내 피를 시추할 장소는 오로지 한쪽 얼굴로 좁혀졌습니다. 조금 있으면 귀에 윙윙 소리가 들리죠. 얼굴 특정 부위에 망할 모기가 착륙했다고 느껴지는 순간, 손바닥으로 그 부위를 찰싹 때립니다. 보통 귀 주변이나 볼기짝에 자해 행위를 했는데, 다시 생각해봐도 아주 미친 짓이로군요. 나를 욕해도 됩니다. 내가 봐도 아주 한심스러우니까요. 다만 열번 시도하면 한 번은 걸린다는 것만 알아주세요. 어쨌든 이런 미련한 짓거리를 되풀이하다 발견한 아이템이 바로 천장 선풍기란 얘기입니다.

 

"모기가 많죠? 이거 쓰세요, 호호." 며칠 전 하숙집 사모가 보살 웃음으로 전자식 모기향을 건네 주면서 모기를 퇴치하려는 고민은 순식간에 끝이 났습니다. '아니, 이걸 왜 지금, 진작 좀, 주셨으면 내가...'라고 생각하면서 "감사합니다!"하고 받아들었습니다.

 

취침 전 1시간 정도 틀어놓으면 괜찮더니, 얼마 전 새벽 모깃소리에 잠을 깬 이후부터는 잘 때 주구장창 켜놓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면 모기약에 취해선지 느낌이 개운하진 않는데, 뭐 어쩌겠어요. 사모에 따르면 모기 스프레이는 인도에선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국 에프킬라와 다르게 약 성분이 아주 독하고 냄새도 고약하다고 하네요. 인정사정없는 인도식 에프킬라도 사달라고 부탁해놨습니다.

 

"그것까지 필요하세요?" 사모는 의아해했습니다. "예, 헤헤. 좀 사다 주세요. 한번 그것도 좀 써보게요..."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생각해봐도 역시 바보 같군요. "모기에 대해 여러 가지 수단을 조합하면서 최적의 대처법을 마련해 인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는 내 여름날의 효용을 최대한 높이려고 합니다!"라고 씩씩하고 당당하게 요구할 것을.

첸나이 & 마하발리뿌람

첸나이엔 기독교인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첸나이 산토메(San Thome) 성당에서 마주친 할머니. 예수 제자 가운데 도마가 순교했다고 알려진 성지입니다. 성당 지하 벽면에 '예수 제자 무덤 위에 지어진 성당은 우리 성당을 비롯해 세계에서 세 곳뿐'이라며 나머지 교회들 사진도 붙여놨더군요.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과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이 그것들이었습니다.

왜 폰디체리까지 왔느냐고요? 여기서 차로 4시간 거리의 첸나이에서 활동하는 한 회사에서 뉴델리 인근에 사는 나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을 초청했어요. 1박 2일 일정으로 공장을 견학하고 첸나이 시내를 관광하는 일정이었습니다. 비행기 편과 호텔 비용을 다 대준대요. 웬 떡인가 싶었습니다.

 

뉴델리에서 첸나이까지 비행기로 서너 시간이 걸려요. 하룻밤만 자고 돌아오기가 아쉬워 꾀를 냈습니다. "진짜 죄송한데요. 돌아오는 비행기 시간 좀 늦춰주시면 안 될까요? 일정 끝나면 제가 알아서 먹고 자고 할게요. 늦춰만 주세요." 얏호. 돌아오는 비행기 시간을 3일이나 늦췄습니다.

 

첸나이 도착 첫날 공장을 둘러봤습니다. 공장에 있는 로봇을 우리는 '한 대' '두 대'로 '대'란 단위로 세는데, 여기 공장장은 살아있는 생물체같이 '마리'라고 불렀습니다. 기름 밥 먹는 사람 특유의, 기계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느껴지는 말이었습니다. 자부심 넘쳐보이는 그의 인솔하에 나도 덩달아 즐겁게 공장 견학했습니다.

 

보통 나는 '업계 용어'를 수시로 써대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듣는 이를 배려하지 않거나, 자기 잘난 맛에 살짝 취해있는 인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특히 재수가 없는 건 영어 단어를 제멋대로 섞어 쓰는 회사 노예들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이라곤 모두 대학시절 경영연구동아리 따위에서 활동했다 정도겠군요. 얘네들 말하는 본새가 영 탐탁지 않죠.

 

몇 년 전 사당역 인근 노가리 뜯는 술집에서 경영연구동아리 출신 인간들이 모인 자리에 갔는데, 그날 화제가 회사 관두고 로스쿨에 가겠다는 후배였어요.

니 오퍼튜티니 코스트는 어떡할래?
정말 그게 네 이퀄리브리엄일까?
그건 맥시마이즈가 아니지.

진짜 이렇게 말하더군요. '뻑큐다. 얘들아, 뻑큐야......' 먹던 노가리를 그 인간들 코랑 입에 확 꽂고 싶었습니다.

 

맨햇은(맨하탄)에서 활동하는 컨설턴트 아닌 이상에야 사당역 거리에서, 그것도 허리 받침도 없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노가리 앞에 두고 이러지들 맙시다.


이날 공장 견학을 마친 뒤론 첸나이에서 이름난 사원을 구경했습니다. 남인도 사원은 건물 지붕부터 온갖 신상들을 빼곡히 박아놓고 색을 덕지덕지 입혀놓아서 유치하더군요. 서민적이고 친숙하긴 했습니다.

알록달록 색을 입은 첸나이 카팔레스와 사원. 공작새부터 소, 온갖 잡신들이 지붕 위에 올라가 있습니다. 추상적이면서 기하학적 느낌의 이슬람 사원들이 보다 내 취향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이후 저녁 식사에선 인도에서도 맛보기 어려운 회를 먹었습니다. 귀한 회에 감격했습니다. 바다를 접한 항구도시 첸나이답더군요.

마하발리뿌람 인근 해변에 있는 리조트 야외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양념장을 발라 구워낸 새우와 게를 맥주와 함께 양껏 섭취했습니다. 앉아만 있어도 바닷바람이 온 몸을 뚫고 지나가는 듯한 청량감을 맛볼 수 있는 근사한 곳이었어요.

식당 앞 해변에서 놀고 있었던 남인도의 소년들

식사 자리에서 다음날 차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마하발리뿌람에 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폰디체리 가는 길에 세계문화유산이 있는 마하발리뿌람이 있죠. 내 원래 계획이 마하발리뿌람을 들러 폰디체리로 넘어가는 것이었기에 잘됐다 싶었습니다.

 

"저는 마하발리뿌람에서 첸나이로 돌아오지 않고 곧바로 폰디체리로 가겠습니다." "흠, 안 될 텐데요. 거기선 대중교통편이 제대로 없어요. 차를 한 대 더 배치 해 드려야겠네요." 순전히 나 때문에, 다음날 일정에 인도 기사가 딸린 차 한 대와 회사 인턴 한명이 더 배치됐습니다. 마하발리뿌람에서 폰디체리까지 나를 데려다 주고, 다시 첸나이로 돌아오는 임무가 주어졌죠. 민폐를 끼친 거죠. '죄송하다' '감사하다'는 콤보 표현을 한 열 번 했습니다.

바다를 바로 뒤에 둔 마하발리뿌람의 해안 석조 사원. 소 석상 여러 개가 사원을 감싸고 있습니다.

마하발리뿌람은 푸른 바다를 병풍 삼은 해안 사원과 바위조각품들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해안가에 시바신을 모신 사원이 우뚝히 솟아있어 눈이 시원해집니다.

마하발리뿌람의 5개 사원. 가운데 석상은 물개 아니고요. 사자입니다. 전쟁을 관장하는 두르가 여신이 타고 다니는 동물 릭샤입니다.

마하발리뿌람에 있는 이름하여 '크리슈나의 버터 볼'로 불리는 바위입니다. 흔들바위는 아녜요. 곧 굴러갈 것처럼 위태롭지만 절대로 움직이지 않죠. 팔라바 왕조 당시 왕들이 코끼리를 이용해 굴려보려고 용을 썼지만, 꿈쩍도 안 했대요. 힌두교 크리슈나 신이 어렸을 때 버터를 참 좋아했대요. 그를 위한 지름 5m짜리 버터입니다.

따라온 인턴은 가이드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외대 인도어학과 졸업을 앞둔 1990년생인 그는 회사 인턴 이전에도 인도에 유학 및 여행을 1년 반이나 했다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인도에서 인턴 생활은 1년 동안 한다고 하더군요.

 

기름 덜 먹은 휴머노이드 로봇같이 어색한 폼세로 군기가 잡혀 있어서 '회사가 엄한 건지' 혹은 '원래 저런 사람인지' 궁금해지는 스타일이었죠. 나중에 알고 보니 원래가 교과서같이 딱딱한 젊은이였습니다. 인도 고대 서사시부터 역사까지 줄줄이 읊긴 하는 데, 설명이 모자를 때가 잦았어요.

 

"이 사원들은 고대 서사시 마하바라따에서 나오는 영웅 5형제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고요, 옛날 전차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손가락으로 한 사원을 가리키며) 이 영웅은 어떤 영웅인가요?"라고 물으면 답하지 못했습니다.

 

"인도에서 유학도 했다면서 공부 열심히 안 했네~!" 일행으로 간 아저씨들이 농을 건넸죠. 하지만 이 로보트 청년이 하는 대답이 아주 절묘했습니다.

주로 북부 인도에서 유학해서 남쪽은 공부가 덜 됐습니다. 인도는 넓습니다. 남부 인도 사람들은 북부 힌디어와 다른 지역언어를 쓰고, 피부색도 더 까맣지 않습니까?

사실상 다른 나라인 겁니다!

아저씨들도 웃어넘기더군요. 나도 나중에 유용하게 써먹어야겠어요. 요새 내가 인도에 있다고 하니, 한국에서 인도가 무슨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동쯤 되는 줄 알고 이것저것 묻는 인간들이 많은데 말이죠.

 

"야, 간다라 미술의 본산이 어딘지(어쩌고저쩌고)" "무굴제국 악바르가 주로 살았던 데가 혹시(어쩔시구)" "델리가 수도고 뭄바이는 경제 수도면 말이지, 캘커타는 그럼 (저쩔시구)" "델리에 들렀다가 어디 어디 들러서 바라나시로 가려면 어떻게 기차역을 (옹헤야)"

 

아니, 내가 다 어떻게 압니까.

앞으로 북쪽을 물어보면 남쪽에 있었다고 하고, 역사를 물어보면 변화하는 현재에 집중했다고 해야겠어요.  그리고 "인도는 넓습니다"를 꼭 뒤에 붙이고요.

그래도 인도에 해박한 인턴 친구 덕분에 마하발리뿌람을 깊숙이 즐겼습니다.

폰디체리, 가는 날이 장날

이날은 토요일 휴무 날이었어요. 나 때문에 쉬는 날 불려나온 인턴 친구가 가여워져서 나름 사례를 하고 싶었습니다. 내 동생이랑 비슷한 나이인 친구가 타지에서 고생한다 싶어 안쓰럽기도 했고요. 제법 친해져서 어깨에 팔을 올리고 말을 걸었습니다.


"제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겠습니다."
"....예?"


"내일 휴일이신데, 저랑 아싸리 폰디체리에서 같이 하루 정도 계실래요? 제가 숙식 다 해결해 드릴게요. 방 하나면 내가 불편하니까, 방 하나를 따로 내어 드리겠습니다. 내키지 않으시면 거절하셔도 됩니다. 일의 연장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게 절대 아니라, 할 거 없는 사내들끼리 바다 보면서 맥주나 마시자는 거죠. 근데 어차피 첸나이로 돌아가셔봤자 골방에서 예능이나 다운받고 유튜브로 노래 좀 들으면서 빈둥댈 거 아닙니까. 다 알고 있습니다."


"으... 저야 너무 좋죠. 하지만 부장님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오케이. 부장님정도야 제게 맡겨주십쇼."


로봇 인턴의 부장님에겐 재가를 손쉽게 얻어냈습니다. 마하발리뿌람에서 2시간 정도 달려서 폰디체리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이날따라 이상하게 숙소 예약 전문 어플에 방이 없더라고요. 역시 인턴은 인도 전문가였습니다.

가서 얼마든지 방은 구할 수 있어요. 

폰디체리에 다른 인턴들과 한번 와봤다며 능숙하게 바다가 보이는 주 거리에 나를 안내했습니다. 10미터는 돼 보이는 간디의 동상이 나를 맞아줬습니다.

폰디체리의 주도로.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오른쪽엔 바닷가가, 왼쪽엔 상점과 숙소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으로 가득 메워진 거리는 개미떼를 흉내 내는 인간 동물원처럼 보이더군요. 뭔가 잘못 돼 있었어요.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거든요. 바닷가가 보이는 호텔방과 게스트하우스는 모두 동났습니다.

이럴 리가 없습니다.
인도가 이럴 리가 없습니다.
방이 한두 개쯤은 꼭 있게 돼 있습니다

명령어처럼 이럴 리가 없다는 말만 반복하는 로봇 인턴을 데리고 바다 근처 숙소를 열 군데 넘게 돌아다녔습니다. "방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냥 같이 쓰자"라고 합의까지 봤어요. 들려오는 대답은 모두 "풀(full)"이었죠.

힌두교 축제인 홀리(Holi)는 겨울이 끝나고 봄의 시작을 알리는 봄맞이 축제입니다. 힌두신 크리슈나와 그의 연인 라다가 얼굴과 몸에 색을 칠하고 놀았다는 전설에서 유래해 어른, 애 할 것 없이 서로 물감 묻히고 물 찌끄리면서 즐깁니다. 내가 사는 구르가온 아파트 잔디밭에도 한바탕 벌어졌습니다. 내 코에 물감 가루가 통째로 들어가서 반나절 고생했습니다. 코를 풀 때마다 빨간 콧물이 사정없이 나왔어요.

알고 보니 갔던 날이 장날이었어요. 힌두교 축제 '홀리'와 기독교 부활절 시즌이 겹치면서 평시보다 예외적으로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렸다더군요. 할 수 없이 바다를 뒤로하고 시내 쪽으로 돌아섰죠. 오토 릭샤 운전수들과 주민들에게 물어물어 세 번 허탕을 치고 나서 제법 괜찮은 방 두 개를 겨우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사이 해는 졌고, 목덜미는 땀과 먼지로 범벅이 돼있었습니다. 차와 운전기사는 첸나이로 보내고 우리는 바다를 눈에 담으러 갔습니다. 어느새 친해져서 나는 그에게 반말을 쓰고 있었죠.

 

"난 여기서 세 밤 자지만 너는 오늘이 마지막 밤이니까, 오늘 이 밤을 아주 전투적이고 농밀하게 돌파해야 한다." "맞습니다, 형님. 우선 맥주 마시러 가시죠." 우선 맥주를 목에 걸치고 유명한 식당에서 고기를 썰기로 했습니다.

첸나이로 돌아가기 전 맥주를 들이켜고 있는 인턴. 뭔가 어색하지 않습니까. 내가 그 앞에서 셔터를 몇 번 누르다 '아, 쫌 자연스럽게 마시는 척이라도 해봐!'라고 사정하고 나서 취한 포즈가 저렇습니다.

로봇 인턴은 다음날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나와 함께 빵과 커피를 마시고, 바다 구경 좀 하다 로컬 버스를 타고 첸나이 일터로 떠났죠. 우린 1박 2일동안 이것저것 제법 많은 얘길 나눴습니다. 인도 경험이 많은 그가 대부분 말을 했고, 나는 듣는 쪽이었죠.

인상적이었던 몇 대목을 구성해보자면,


#1 인도 정부의 녹(綠)

"한국외대 인도어학과에 다니면서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인도 정부 장학생에 지원해서 합격했어요. 아그라에 있는 한 대학에서 1년 동안 어학연수를 받았습니다."


"역시 인도 정부가 보증하는 동량지재일세. 인도 정부의 녹을 받았구나."


"정말로 인도 대학생과 똑같은 취급을 받았습니다. 인도 정부는 한 달에 고작 2000루피(3만4540원)를 생활비로 지원해줬습니다.

녹(祿)을 받은 게 아니라
진짜 녹(綠)을 마셨어요.

기숙사에서 샤워기 틀면 녹물이 나왔어요. 기숙사라기보단 감옥같은 1평 크기 골방에서 거지처럼 살았습니다. 침대에 누웠는데 발가락이 근질근질 거려요. 처음엔 찢어진 벽지가 바람 때문에 닿은 것인지 알았죠. 그런데 계속 느낌이 이상한 거예요. 내려다보니 쥐가 제 발을 핥고 있었습니다."


"아 XX! 더러워."
"급식도 형편없어요. 쓰레기 같은 음식이 나와서 음식 담은 식판을 들고 외국인 학생들이 단체로 학장에게 가 따졌습니다. 네 대학생 아들이나 딸에게 이런 급식을 먹일 수 있겠느냐고요. 학장이 보기에도 음식이 아니었던지, 그 자리에서 요리사를 불러서 혼을 냈습니다. '니 가족들한테 내놓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라'면서요. 이후 급식은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우와, 성공했네. 감동적인 이야기야."
"문제는 딱 3일 만이었다는 겁니다. 3일 만에 급식은 제자리로 돌아가 쓰레기가 나왔어요. 저와 같은 외국인 장학생 모두가 혀를 내두르고 포기해버렸습니다. 제가 명색이 인도 정부가 지원하는 장학생인데 말이죠. 한국에 있는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생활했어요."
"..."


#2 사랑의 힘

"인도 유학 당시 지금의 중국인 여자친구를 만났습니다. 아그라 캠퍼스에 여자친구 손을 잡고 다니니 교수가 따로 부르는 거예요. '손을 잡고 다니지 마라. 손잡고 다니면 네 여자친구에 대한 인식이 나빠질 것이다'라고 충고하더군요. 알고 보니 정말로 인도 사람들은 남자 손을 잡고 다니는 여자를 쉬운 여자 취급하는 거예요. "


"아그라는 이슬람들도 많고, 다른 지역보다 더욱 종교적이라고 하면서 어떻게 그런 일들이 있을 수가 있지?"

델리 대학은 남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손잡고 다녀요. 오히려 종교적인 곳이 더 심한 거죠.

"조금만 성적 관습에 어긋나도 '함부로 몸을 놀리는 여자' '창녀'라는 식으로 인식합니다. 그런 여성들이 성희롱 당할 확률도 높아지죠. 항상 여자들만 피해자가 되는 겁니다."


"비극적이군. 그 뒤로 여자친구 손은 안 잡았겠네?"


"아뇨. 계속 잡았습니다. 여자친구에게 이런 사회적 시선을 설명했는데 '우린 외국인이니까 상관없다. 잡고 다니자'고 하더군요. 저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 손도 잡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고요."


#3 인도 개미 vs 한국 개미
"(땅을 가만히 보다가) 인도 개미들은 엉덩이를 들고 다닙니다."
"아침 댓바람부터 뭔 개소리도 아니고 개미 소리야."


"진짜예요. 한국 개미랑 다르게 인도 개미들은 엉덩이를 들고 다니는 종이 많습니다. 땅이 더워서 그런가 봐요."
"(5초간 땅을 응시) 야, 개미들이 진짜 똥꼬 들고 있다. 오오.(10초간 더 응시)"


#4 냄새나는 물의 소중함
"아오, 샤워기 물에서 녹 냄새 나더라. 일반 호텔은 배수시설이 안 좋아서 녹 냄새가 많이 나나 봐. 아니면 물탱크에 약품 처리를 많이 해놔선지 약 냄새 나거나."


"감사하게 생각하세요. 샤워기 물에서 실지렁이 나오는 것 안 보셨죠?"
"..."


#5 음식을 함부로 권하지 말 것

"저는 인도 친구들에게 함부로 한국 음식을 권하지 않습니다."
"난베지(Non-veg), 베지(veg) 만 가려서 권하면 되는 거 아냐?"


"아그라에서 채식주의자가 아닌 난베지 친구한테 '이것 먹어도 아무 문제 없다'며 한국식 돈까스를 권했던 적이 있어요. 소고기도 아니고 돼지고기였으니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죠.

근데 그날 저녁 친구가 '식당 아줌마에게 물어보니 돼지고기로 만들었다고 했다. 왜 돼지고기라고 말 안 했느냐'고 서럽게 울면서 저에게 달려오는 겁니다. 알고 보니 그가 속한 자티(더욱 세분화된 카스트)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계율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난베지라고 다 고기 먹는 게 아녜요. 닭만 먹는 부족도 있고, 어느 기간에만 닭이나 돼지를 먹을 수 있는 율법을 가진 자티도 있습니다. 너무 다양해요."


"야 진짜 웃기다."
"웃기다뇨. 무서웠어요.

그 친구가 평생 지켜온 신념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린 거죠.

'난 이제 어떡하느냐'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더군요. 진짜 그날 저녁에 목 매달고 죽을까 봐 걱정될 정도였어요."


"그래서 걔는 어떻게 됐어?"
"진짜 죽을까 봐 제가 거짓말로 어르고 달랬습니다. '식당 아줌마가 뭘 모르고 말한 거다. 그거 콩으로 고기맛 내는 거였다'고요. 정색하고 거짓말하니까 믿어주더라고요."
"걔는 그렇게라도 믿고 싶었던 것을 계속 믿고 싶었던 거 아니었을까. 근데 야 진짜 웃기다."


주말이 끝나자 사람이 썰물같이 빠져나가 바닷가 보이는 방을 비로소 얻었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객실이 다른 객실보다 2000루피(약 3만 5천원) 프리미엄이 붙더군요. 다시 오지도 못할 것 같은데 그것 아껴 뭐하겠습니까. 바다가 보이는 방에서 두 밤 자기로 정했습니다.

더워서 나가기도 싫네요. 내 키보다 큰 창문을 활짝 여니 바다가 통째로 내 방에서 넘실대는 듯 합니다. 천장 선풍기와 에어컨을 동시에 틀어놓고 낮잠이나 실컷 자야겠습니다.

 

이것이 지금 내 이퀄리브리엄이자 유틸리티 맥시마이즈인 초이스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