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토랑에서 밥만 먹어야 할까?
Editor'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17년 10월에 발간된 <맥락을 팔아라>의 본문 내용을 큐레이터의 시선으로 발췌하여 구성하였습니다. 큐레이터가 책 귀퉁이에 메모했던 내용은 회색 박스로 표시했습니다.
상품이 과잉인 시대에 상품의 본래 기능을 강조하는 것, 즉 필요를 소구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 레스토랑이 맛을 강조하거나, 서점이 보유 서적의 방대함을 자랑하는 것처럼 하나 마나 한 이야기는 없다.
지금 우리가 발견하거나
발명해야 할 것은
소비의 새로운 맥락이다
홍콩의 쿠오레 프라이빗 키친(Cuore Private Kitchen)은 셰프 안드레아 오세티(Andrea Oschetti)가 운영하는 프라이빗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2009년부터 그는 자신의 집이나 고객이 원하는 장소에서 고객이 원하는 다이닝을 선보이고 있다. 가끔씩 다이닝과 상관없는 주제를 연결하는 이색 조합을 시도하는데, 소규모 영화 상영 디너 이벤트 '얌얌무비(Yum Yum Movies)'도 그중 하나다.
그는 영화를 선정하고 어울리는 메뉴를 구성한 뒤, 상영할 영화를 공지하고 예약을 받는다. 고객은 상영하는 영화가 무엇인지만 알뿐 어떤 음식을 먹게 될지, 심지어 그 장소가 어디인지도 알 수 없다. 무엇을 먹게 될지, 그 맛이 어떨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은 식사를 예약한다. 고객이 원하는 것은 맛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이기 때문이다.
레스토랑에서 밥만 먹어야 할까?
Editor'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17년 10월에 발간된 <맥락을 팔아라>의 본문 내용을 큐레이터의 시선으로 발췌하여 구성하였습니다. 큐레이터가 책 귀퉁이에 메모했던 내용은 회색 박스로 표시했습니다.
상품이 과잉인 시대에 상품의 본래 기능을 강조하는 것, 즉 필요를 소구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 레스토랑이 맛을 강조하거나, 서점이 보유 서적의 방대함을 자랑하는 것처럼 하나 마나 한 이야기는 없다.
지금 우리가 발견하거나
발명해야 할 것은
소비의 새로운 맥락이다
홍콩의 쿠오레 프라이빗 키친(Cuore Private Kitchen)은 셰프 안드레아 오세티(Andrea Oschetti)가 운영하는 프라이빗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2009년부터 그는 자신의 집이나 고객이 원하는 장소에서 고객이 원하는 다이닝을 선보이고 있다. 가끔씩 다이닝과 상관없는 주제를 연결하는 이색 조합을 시도하는데, 소규모 영화 상영 디너 이벤트 '얌얌무비(Yum Yum Movies)'도 그중 하나다.
그는 영화를 선정하고 어울리는 메뉴를 구성한 뒤, 상영할 영화를 공지하고 예약을 받는다. 고객은 상영하는 영화가 무엇인지만 알뿐 어떤 음식을 먹게 될지, 심지어 그 장소가 어디인지도 알 수 없다. 무엇을 먹게 될지, 그 맛이 어떨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은 식사를 예약한다. 고객이 원하는 것은 맛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이기 때문이다.
얌얌무비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클레어 데인즈가 주연을 맡은 <로미오와 줄리엣>를 상영했을 때, 식사에는 총 다섯 가지 요리가 서빙되었는데 그중 하나는 '첫 번째 키스'다. 이 영화의 백미는 로미오가 파티장의 수족관에 감탄하다 수족관 너머의 줄리엣을 보고 단숨에 사랑에 빠지는 장면으로, 이들은 곧 첫키스에 이른다.
이 장면이 등장할 때 이 요리가 서빙 된다. 신선한 굴에 고르곤졸라 치즈를 더해 토치로 살짝 구워낸 굴 요리는 영화의 상징인 수족관과 첫 키스의 신선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영화의 감동을 더욱 극대화 시킨다. 이후 사랑하는 친구가 죽은 뒤 로미오가 자동차 추격을 벌이는 장면에는 강렬한 향이 인상적인 호박 레드 커리를,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씁쓸한 초콜릿 케이크를 서빙해 씁쓸한 결말을 부각시킨다.
이밖에도 쿠오레 프라이빗 키친의 이벤트는 매우 다양하다. 지금까지 그들은 전문 포토그래퍼가 고객의 초상화를 촬영해주는 이벤트, 식사를 하며 바이올리니스트의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이벤트 등을 선보였다. 메뉴와 테이블 세팅, 분위기 연출은 이벤트와 맞아떨어졌다.
여의도에 자리한 스카이팜(Sky Farm)은 '사대부집 곳간', '세상의 모든 아침', '곳간'까지 3개의 레스토랑을 한 자리에 모아놓은 공간으로, 콘셉트는 도심 속 텃밭이다.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도심 한복판, 전국경제인연합회 빌딩 옥상에 작은 텃밭을 마련해 '농(農)'의 이야기를, 50층에 자리한 레스토랑에서 '식(食)'의 이야기를 펼친다. 음식의 근간인 재료, 농업, 그리고 농가와의 상생에 중점을 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기 위한 시도다.* 이곳에서는 단 한 끼이지만 농과 식이 상생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 관련 기사: '노희영 대표의 新 식공간 - 서울의 배꼽에 곳간을 열다' (에쎈, 2016.2)
맛이 넘쳐나는 시대에 '맛'을 좌우하는 것은 낯선 이들과 한 식탁에 앉아 먹었던 한 그릇 요리, 가족과 함께 했던 평범한 밥상, 여행지에서 우연히 먹었던 길거리 음식처럼 그때의 상황과 맥락이다. 이것이 맛보다 맥락을 요리하는 마케터가 필요한 이유다.
조금 시끄러워도 괜찮은 영화관
2011년 뉴욕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Williamsburg)에 문을 연 나이트호크 시네마(Nitehawk Cinema)는 식사를 제공하는 영화관이다. 이곳에서는 한 끼 식사로 충분한 햄버거나 스테이크부터 각종 술과 치즈 플레이트와 같은 안주를 주문할 수 있다. 특별한 점은 영화와 관계된 메뉴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 특정 음식이나 술이 나온다면 그것을, 그렇지 않다면 어울리는 음식을 제안한다.
2016년 9월 나이트호크 시네마에서 흑백 영화 <냉혈한>을 봤다. 트루먼 카포티(Truman Capote)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개봉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기획이었다. 이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칵테일을 즐기며 입장을 기다렸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작은 이벤트가 열렸다. 50주년을 기념해 소설책과 기념 티셔츠를 미리 몇몇 객석 바닥에 놓아둔 것. 아쉽게도 필자의 의자 밑은 비어 있었지만, 친구는 책 한 권을 얻었다.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하고, 햄버거와 햄 치즈 플레이트 그리고 술을 주문했다. 부족하면 영화 상영 중간에도 주문할 수 있었다. 특정한 곳에 주문서를 꽂으면, 스태프가 귀신처럼 나타나 이를 가져가고 어느새 음식을 가져왔다.
영화의 서사를 스크린 밖으로 확장하는 장치는 비단 음식이나 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16년 연말, 나이트호크 시네마는 1988년 영화 <스크루지>를 상영작으로 골랐다.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영화가 만들어진 1988년에 맞춰 드레스 코드는 '어글리 스웨터(Ugly sweater)'였다. 옛날에 입던 두껍고 촌스러운 크리스마스 스웨터를 입고 오라는 주문이다. 영화에 어울리는 특별 메뉴를 네 가지나 선보였는데, '기브 미 어 구스(Give me a goose)'를 주문하면 구스베리 타르트가 나왔다. 추레한 스웨터에 어울리는 썰렁한 농담이다.
나이트호크 시네마는 영화를 즐기는 새로운 방법을 알려준다. 가만히 앉아서 눈으로만 즐기지 말고 영화에 어울리게 입고, 영화를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경험하라고 말이다. 즐겁다. 이들은 스크린 너머로 이야기를 확장하되 오감을 자극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변주한다.
무대 없는 연극
<슬립 노 모어>는 2003년 영국의 극단 펀치드렁크(Punch Drunk)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와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공연이다. 이후 2009년 보스턴에서 상연되었고, 2011년부터 뉴욕에서 계속해서 상연되고 있다. 2016년 말에는 상해에서도 공연을 시작했다. <슬립 노 모어>는 몰입형 연극이라는 개념을 제시해 관객이 좀 더 연극에 깊이 참여하고, 능동적으로 구성해나갈 수 있도록 유도한다.
<슬립 노 모어>의 공연장은 뉴욕 첼시에 위치한 매키트릭 호텔(McKittrick Hotel)이다. 대연회장이 있는 1층, 로비와 다이닝룸이 자리한 2층, 그리고 3층부터 5층에 위치한 객실이 모두 연극의 무대다.
호텔 전체가 무대이니 거꾸로 말하면 무대가 없는 셈이다. 평소 극장에 가서 하던 대로 지정된 좌석에 앉아 다 함께 바라보는 하나의 중앙 무대가 없다. 배우들은 1층의 대연회장에서, 2층의 바에서, 4층의 객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펼친다.
관객들은 흰 가면을 쓰고 입장한다. 입구는 엘리베이터. 관객들은 세 가지 약속을 지켜야 한다. 공연 내내 흰 가면을 벗지 않을 것, 말하지 않을 것, 배우를 방해하지 않을 것. 그렇게 관객들은 층마다 임의로 흩어지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며 공연이 시작된다.
당장 눈앞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텅 빈 통로만 있을 뿐, 어느 배우도 시야 안에서 일목요연하게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는다. 이 순간이 가장 당황스럽다. 알고 가도 그렇다.
당황스러움도 잠시, 멍하니 혼자 통로에 남겨진 관객은 정신을 차린다. 스스로 움직이기 전까지 아무리 기다려도 공연은 시작되지 않을 것이다. 가면을 고쳐 쓰고 운동화 끈을 동여맨다. 이제 배우를 찾아 뛸 시간이다!
겨우 배우를 찾아내면 배우는 로비 한복판에서 관객에게 둘러싸여 연기를 하고 있다. 무대가 없으니 경계선도 없다. 배우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관객은 충분히 원하는 만큼 다가선다. 서 있어도 되고 앉아도 된다. 배우들은 꽤 자주 관객을 끌어들인다. 관객과 포옹하거나 키스를 하고, 내기도 한다. 심지어는 군중 속에서 관객의 손을 잡고 객실로 도망친 뒤 문을 닫아버리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관객들은 새로운 공간의 법칙을 깨닫는다.
바로 이 공연의 주도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
이제 사람들은 각자의 룰대로 공연을 진행한다. 흰 가면은 능동성을 자극한다. 좋아하는 배우를 따라다니거나, 몇몇 공간에 주목하거나, 공간이 주는 단서들을 탐색한다. 그리고 각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의 조각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맞춰나가, 하나의 스토리로 완성한다. 물론 미완의 스토리다. 관객은 모두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같은 공연을 본 관객은 없다.
매키트릭 호텔에서의 경험은 충격적이다. 그곳에서는 고정관념과 습관, 역할이 모두 바뀌어 버린다. 하나의 완결된 서사가 펼쳐질 거라는 고정관념, 앉아서 서사를 즐기는 습관, 그리고 연극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관객의 역할, 이 모든 사실이 한 번에 깨져버린다.
생각노트의 메모
모두 완고해 보였던 기존의 틀에 의문점을 던진 사례입니다. 쿠오레 프라이빗 키친(시각, 미각, 후각, 청각), 나이트호크 시네마(시각, 미각, 후각, 청각), 슬립노모어(시각, 촉각)는 1개 이상의 감각을 중첩해 새로운 공간 경험 가치를 만들어냈습니다.
오감을 자극하는 방식은 오프라인의 강점입니다. 온라인이 결코 넘볼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하죠. 즉, 오프라인에서 잘되려면 '오감'을 자극할 방법을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업의 중심에 어떤 감각이 있는지 파악한 뒤, 새로운 감각을 더해보는 실험을 해보면 어떨까요?
2018년 8월 방문한 베이징 파크뷰 그린(Beijing Parkview Green) 쇼핑몰 내 CITY SHOP 식품 코너에는 쿠킹 클래스를 진행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었습니다. 쇼핑하러 온 고객은 쿠킹 클래스에서 요리하는 모습(시각)을 보고, 음식의 향(후각)을 맡으며, 쿠킹 클래스에 참여(촉각)해 요리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여러 감각이 중첩되는 '복합 경험'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죠. 앞으로는 한 가지 경험이 아닌 '복합 경험'을 선사해야 고객의 주목을 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점의 진화
도쿄 키테(KITTE) 쇼핑몰 내에 자리한 '마루노우치 리딩 스타일(Marunouchi Reading Style)'은 책을 중심으로 한 편집숍이다. 책뿐 아니라 다양한 생활 잡화를 판매하고 카페도 운영한다. '어른들의 지적 호기심과 장난기를 자극 한다'는 그들의 콘셉트처럼 이곳에서 백과사전식 진열이나 평범한 상품은 보기 어렵다.
이곳에는 두 가지 기획 도서가 있다. 하나는 버스데이 분코(Birthday Bunko), 즉 생일문고라는 뜻이다. 진열대에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날짜만 적힌 책이 꽂혀 있는데, 특이한 것은 책 제목이 없다는 것이다. 그 날짜에 태어난 작가들의 작품으로 작가는 알 수 있지만 사서 보기 전에는 제목을 알 수 없다.
또 다른 기획도서는 화이트 분코(White Bunko)다. 이 문고 역시 제목이 없는데, 아무런 선입견 없이 작품을 마주하기를 바라는 의도라고 한다. 그들이 의도한 지적 호기심과 장난기는 고객에게 충분히 전달되어 새로운 파급효과를 낳는다.
1세대 카피라이터이자 삼성의 첫 여성임원으로 이름을 떨쳤던 최인아 대표가 2016년 8월 오픈한 '최인아책방' 역시 기존의 서점과 조금 다른 모습으로 주목을 받았다. 2016년 강남에 문을 연 비교적 작은 규모의 이 서점은 서점에 카페와 문화 공간까지 결합되어 그야말로 자그맣다.
전직 두 광고인이 만든 서점답게 경영철학도, 책의 분류도 독특하다. 생각이 힘인 시대, 자기만의 생각이 중요한 가치를 만드는 시대인 만큼 생각의 깊이를 더해줄 '생각의 숲'이 되는 서점을 만들고자 했다는 것이다.*
* 관련 기사: '책과 문화 파는 '생각의 숲' 함께 걸어요' (여성신문, 2017. 2. 8)
책방의 취지에 맞게 책방 한 쪽에는 고민과 생각의 주제에 따라 분류한 12개 테마의 책이 진열되어 있다. '우리 사회가 나아지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이 깊어지는 마흔 살', '무슨 책부터 읽어야 할지 고민인 그대에게' 등이다. 평대에 놓인 책들의 분류는 더욱 눈길을 끈다. '요즘, 재미가 부족한 그대에게', '당신의 괜찮은 삶을 위해',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하면 잘 보낼까' 같은 친절한 가이드도 돋보인다.
심지어 개별 책들에 꽂힌 넓은 책갈피에는 '디자이너 ○○○가 추천하는 책', '카피라이터 ○○○가 권하는 책' 등의 인덱스가 첨부되어 영감을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 쉽고 직접적인 지침을 건네준다. 1,600권에 달하는 이 책들은 최인아 씨의 지인들이 추천한 책이다. 각 책에는 150명의 추천인이 직접 쓴, 책을 추천하는 이유를 담은 카드가 꽂혀 있다.
이곳에서 책을 선택한다는 것은 자신의 고민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먼저 고민했던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일이다. 추천을 받은 1,600권 외에도 다양한 책이 구비되어 있는데, 한편에는 최인아 씨가 읽은 책도 꽂혀 있어 개인의 서재를 들여다보는 색다른 경험을 주기도 한다.
맛있어서 하는 외식, 영화 보러 가는 극장, 책을 사러 가는 서점처럼 필요를 말하는 브랜드는 더 이상 끌리지 않는다. 새로운 경험을 주는 외식, 스크린 안과 밖을 연결하는 극장, 지적 호기심을 채우거나 고민을 발견하고 해결하는 공간으로서의 서점은 매력적이다.
새로운 맥락을
발견하고 발명하는 것은
오히려 본질에
가까워지는 일이다책을 판매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발달해온 것이 지금의 서점이 아니던가.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백과사전식으로 분류하고, 가나다순으로 배치하는 것 말이다. 앉을 자리 하나 없는 서점에서 고객이 할 수 있는 것은 필요한 책을 쉽게 찾고 재빨리 서점을 나가는 것뿐이다. 그러나 판매가 아니라 사람들이 왜 책을 읽는지, 언제 책을 읽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책의 진열 방법부터 서점의 공간 구성까지 많은 것이 달라진다.
생각노트의 메모
생일문고는 '사람들은 왜 책을 선물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했습니다. 책은 취향과 연관성이 높습니다. 상대방의 독서 취향을 모르는 경우에는 잘 선물하지 않게 되죠. 하지만 생일이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당신과 같은 날에 태어난 작가의 작품입니다"라는 한 마디는 신선한 궁금증과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니까요.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의미 있는 선물을 갖게 되는 것이고요. 생일문고의 기획과정은 <앞으로의 책방>이라는 도서와 <도쿄의 디테일> KITTE편*에서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 관련 글: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지점, KITTE 1' 참고
나만의 맥락을 드러내는 법
소비는
상징적 행위다
물건을 사면서 자신의 가치관을 깨닫거나 완성해나가기 때문에 그간 해온 소비의 총합은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단적으로 말해주기도 한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을 사는 사람과, 업사이클링 브랜드인 프라이탁을 사는 사람, 그리고 지속가능한 명품(Sustainable Luxury)을 주창하는 스텔라 매카트니(Stella McCart-ney)를 선택하는 사람은 다르다. 연령이나 경제적 여건도 다르겠지만, 가치관이나 생활 방식도 분명 다른 것이다.
지금까지는 소비로 자신의 특별함을 드러내는 것이 무척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사는 것만큼 쉽고 흔한 일은 없다. 구매만으로 자신의 특별함을 전달하는 게 어려워졌다는 말이다. 루이비통을 구매했다는 것이 경제적 능력을 말해주지 않는다.
지금은 경제적 여유가 많은 사람이나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대학생도 루이비통을 든다. 소득 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자신에게 가치 있는 물건에는 과감히 투자하는 가치소비 경향 때문이다. 프라이탁은 친환경적 가치관과 태도를 상징하긴 하지만 '나'를 표현하는 희소성은 약해졌다. 이 역시 돈만 있다면 누구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유통의 발달로 누구나 무엇이든 살 수 있게 된 세상에서, 구매는 특권이 아니다. 이제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특별한 경험, 희소한 상품이 필요하다. 남과 다름 혹은 남보다 나음의 나만의 맥락을 드러내기 위해서 말이다.
고객은 흔한 소비자이기를 거부한다
누구와도 다른 나를 보여주기 위해 단 하나의 브랜드, 혹은 제품을 택해야 한다면 필자는 단연코 청바지 브랜드인 '누디진(Nudie Jean)'을 택할 것이다. 청바지를 즐겨 입지 않음에도 말이다.
스웨덴의 데님 브랜드 누디진은 100% 오가닉 코튼으로 만든 드라이 데님(Dry Denim)을 생산한다. 그들이 100% 오가닉 데님에 집중하는 이유는 지속가능한 소비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면화 재배 및 청바지 생산 과정을 친환경적으로 만들고, 원료의 구매 등 각종 거래는 공정하게 한다. 워싱이 들어가지 않은 드라이 데님에 집중하는 이유도 워싱과 같은 가공 과정이 환경에 유해하기 때문이다.
생산 후에도 지속가능한 소비를 실천한다. '오래 입고 떨어지면 수선해서 입는다(Wear it, Tear it, Repair it)'는 그들의 모토처럼 말이다. 누디진은 누디진 리페어숍(Nudie Jeans Repair Shop)을 운영해 자사 제품을 무료로 수선해주고 있다. 또 신제품을 구매한 고객이 기존에 입던 누디진을 가져오면 20% 할인을 해주고, 그렇게 모은 옷은 재가공하여 중고로 판매한다.
누디진을 사는 것 자체가
친환경적 가치관을
보여주는 셈이다
그러나 특별한 경험은 구매 후 시작된다. 드라이 데님은 앞서 말한 것처럼 워싱하지 않은 청바지를 말한다. 그래서 판매할 때는 모두 비슷해 보인다. 어두운 남색의 데님은 시간이 지나면서 입는 사람을 닮아간다. 각자의 체형, 움직임과 습관에 따라 자연스럽게 워싱이 되는 것이다.
누디진은 이를 '두 번째 피부(Second skin)'가 되가는 과정이라고 표현한다. 우리는 모두 다른 체형으로 다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똑같은 청바지가 만들어질 수 없고, 그렇게 만들어진 청바지는 내 피부를 덮는 또 하나의 피부가 되는 셈이다.
그들의 장인정신이 드라이 데님을 만들었다면, 고객은 각자의 장인정신으로 나만의 드라이 데님을 만들어나간다. 나무의 나이테나 얼굴의 주름처럼, 데님의 구김은 자신만의 인생과 역사를 표현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갖는다.
누디진은 소비의 진화, 그 끝에 다다라 있는 모습이다. 구매만으로도 사람들과 다른 나를 보여줄 수 있는 데다, 나만의 방식으로 만들어나가는 세상에 하나뿐인 상품이라는, 궁극의 희소성이라는 맥락을 소유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업들은 더 쉽고 편리한 소비 환경을 만들고자 하지만, 고객이 원하는 것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정판을 만들거나 미션을 만들어 구매에 허들을 만들어 볼까라고 단순하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 왜 돈이 아니라 노력을, 노력이 아니라 능력을 고객 스스로 증명하도록 유도하는지를 돌이켜 생각해볼 일이다.
고객은 이미 흔한 소비자이기를 거부하고 있다. 브랜드로 상징되는 특정 성향을 지지하는 사람, 지지하는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고자 한다. 이들에게 온전한 노력과 능력으로 특정 브랜드 커뮤니티에서 인정과 보람을 맛보게 하는 것에 미래 소비 맥락의 중요한 비밀이 숨어 있다.
생각노트의 메모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로 유명한 파타고니아(PATAGONIA)도 누디진과 비슷한 브랜드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래 입는 옷을 지향하고 수선이 필요하면 고쳐 입는다'. 파타고니아 르노 물류센터 수선실*에는 수선 전문 직원 45명이 일하고 있습니다. 미국 내에서 가장 큰 수선실을 가지고 있는 의류 브랜드죠.
* 관련 영상: <파타고니아 옷 수선 트럭>
또한 성인용 의류를 만들고 남은 자원으로 아동용 의류를 만들며 매출의 1%는 꾸준히 환경 단체에 기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파타고니아의 의류를 입는 사람을 보면 환경을 아끼고 깨어 있는 소비자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듭니다. 브랜드의 올바른 가치가 소비자를 빛나게 하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