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나는 지난여름 이후 집사가 됐다. 직업을 바꾼 게 아니라 고양이를 모시고 살게 됐다는 뜻이다. 나이가 들수록 외로움에 취약해졌지만 정작 잘 맞는 동반자를 만나는 일은 요원했다. 그래서 반려동물을 맞이하게 된 것인데 대안이었던 게 무색하게도, 고양이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 삶의 가장 큰 기쁨이다.

 

혹시 눈치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나는 지금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소개하는 건 단지 내가 고양이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구구절절 고백하는 것이다. 표지 속 아깽이(아기 고양이) 때문에 홀린 듯 매대에서 이 책을 집어 들었고,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슬픔에 잠겨 세계가 멸망하는 것 외에 대체 무슨 일이 생긴다는 건지 궁금해서 끝까지 읽게 됐다.

주인공 '나'는 고양이 '양배추'와 사는 우편배달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사이가 틀어진 아버지와는 연락하지 않고 지낸 지 오래고, 사랑하는 연인은커녕 그녀와 헤어진 이유조차 잊어버렸다. 그런 '나'가 시한부를 선고받았다. 여기까지는 흔하디 흔한 이야기다.

 

그러던 차에 악마 알로하가 나타난다. 세상에서 무언가 하나를 사라지게 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생명을 하루씩 연장할 수 있다는 그럴싸해 보이는 제안과 함께 말이다. 주위를 조금만 둘러봐도 그다지 쓸모없어 보이는 물건들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오히려 성장을 위한 성장만 거듭할 뿐인 이 세상은 조금 정리될 필요가 있다. '나'는 악마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악마가 괜히 악마겠는가. 세상에서 무엇을 사라지게 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은 악마고, '나'는 그저 예 혹은 아니오로 결정을 내릴 뿐이다. 세상에서 전화를 없애고 하루를 더 살겠냐는 악마의 첫 번째 질문. '나'는 답한다. 좋아, 전화를 없애.

 

전화가 사라진 세상은 막상 평화롭지만 전화에 얽힌 추억까지 없애지 못한 '나'는 옛 기억에 괴로워한다. 사라진 전화, 사라진 메시지함, 사라진 달콤한 말들, 사라진 기억, 우리, 사라진 너, 너, 너. 그렇게 사라진 것들을 되짚는 '나'의 모습은 우리도 모르게 사라진 소중한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나를 떠나 사라졌다기보다는 내가 잊어버린 것들을 말이다.

전화는 결국 긴 세월에 걸쳐서 서서히 그 존재가 사라져가겠지. 길가의 돌멩이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 채, 그러면서도 확실하게 그 자리에서 소실되어 가듯이.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껏 알로하와 만난 107명이 무엇을 없앴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마다 분명 사라진 게 있었다는 뜻이겠지. 단지 우리가 그것을 알아채지 못 했을 뿐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좋아했던 컵이나 갓 사온 양말이 감쪽같이 자취를 감춰버리듯이.
그것은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는다. 절대 없어질 리 없는 물건이 없어지는 일은 그렇듯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늘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p.53

시계에 이어 영화가 사라졌고, 추가로 얻은 이틀 동안 '나'는 사라진 것을 그리워한다. 모두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으니 사라지게 해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상관없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 해파리조차도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영화에도, 음악에도, 커피에도, 그 어떤 것에도 존재하는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중요한 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는 것'이 무수히 모여서 '사람 형태를 본떠 만들어진 인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내가 봐온 수많은 영화와 그 영화와 연결된 추억들이 단적으로 표현된 모습이 바로 나 자체인 셈이다. (...) 그 영화를 함께 본 연인이나 친구나 가족과의 추억을 내포한 채 내 안에 자리 잡은 영화들. 우리가 수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그래서 나를 형성해온 무수한 영화의 기억들. 그 모든 것이 아름다워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p.102-103

하루하루 생명을 연장할수록 '나'는 다가올 선택에 확신을 잃는다. 과연 세상에서 사라져도 되는 게 있을까? 그러던 중 악마가 내민 제안은 바로 세상에서 고양이를 없애는 것. 그 어느 때보다 '나'는 고민한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과의 소중한 시간 그 자체인 반려묘 양배추를 잃게 될 테니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한낱 짐승에 불과할 양배추의 소중함을 사무치게 곱씹던 '나'는 생각한다. 고양이가 아닌 무언가를 없애는 대신 생명이 연장된다 할지라도, 누군가에게 소중했을 것을 빼앗고도 진정 행복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이 세상에서 뭔가를 없애는 일을 그만두기로 한다. 그리고는 마지막 남은 하루에는 그동안 못다 한 말을 전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달려 나가며 이야기가 끝난다.

 

예상 가능한 결말인 데다 흔한 교훈일 수 있지만, 딱 한 장 남은 달력을 자주 들여다보게 되는 요즘에는 제법 마음에 와 닿았다. (게다가 고양이가 사라지지도 않는다는, 안심이 되는 결말까지!) 나도 모르게 잊어버렸지만 좋고 귀한 것들이 내 곁을 지켜줬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어 보였던 시간들이지만 그래도 그 시간들 덕분에 이 겨울의 내가 된 거야! 그래, 올해도 내 나름 근사했다, 하고 다독일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부디 당신의 연말에서 과도한 음주와 후회는 사라지고 따뜻한 자리와 감사만 남기를 바라며 이 소설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