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만나야 알 수 있는 것들
Editor's Comment
아티스트 앤 레퍼토리(Artist & Repertoire, A&R)에게 미팅은 일의 시작이라고 말해도 과함이 없습니다. 'A&R: K-POP을 기획하는 사람들' 세 번째 미리보기에서는 배수정 저자가 11일간 4개 도시에서 왜 미팅을 했는지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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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단 이미지 ©John McArthur/Unsplash
A&R에게 미팅은 일의 시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비즈니스가 대개 그렇듯, 처음 연락할 때는 유선으로 연락할 수 있지만 이후에는 꼭 작곡가나 퍼블리셔와 대면하는 것이 좋습니다. 메일이나 메신저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요. 특히 A&R의 경우 메신저로는 보안상 보내지 못하는 레퍼런스나 비디오 등을 직접 보여줄 수 있어서 미팅이 매우 중요합니다. (중략)
해외 작곡가나 퍼블리셔를
만나는 방법도 같습니다
그 나라에 직접 가면 됩니다
사실 출장이 아니고서야 그들을 만나러 외국까지 갈 계획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일의 특성상 여름휴가 대신 앨범이 나오지 않는 후반기, 주로 10월을 넘겨 해외여행을 가게 됐는데요. 도착한 해외 도시 사진을 SNS에 업로드하면 그곳에 거주하는 업무 상 지인들로부터 많은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휴가 가서도 일처럼 작곡가와 퍼블리셔들을 만나곤 했습니다. 마치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요.
특히 베를린과 런던에서 그랬습니다. 런던에서는 기차를 타고 작은 도시로 들어가 한 퍼블리셔의 작업실과 사무실을 방문했고, 베를린에서는 어두운 시간에 구글 맵에만 의존해서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 건물의 작업실에도 가봤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두 사람은 제가 회사를 나와 사업을 시작한다고 말했을 때 먼저 도와주겠다고 말했던 사람들입니다. 각자 소속이 있으니 한 번에 많이 협업할 수는 없지만, 서울에 오면 언제나 제게 연락하는 사람들이죠. 일을 위해 만났지만, 이제는 이 업계에서 함께 살아남아야 할 '동지'이자 친구가 된 것이죠.
코펜하겐에서 미팅을 마친 후 나오던 길 ©배수정
11일 동안 4개 도시에서 미팅하기
제 회사를 만들고 얼마 뒤에 여러 곡을 컷(cut)*시켰습니다. 그러고 나니 막 시작한 회사와 저를 믿고 곡을 보내주고, 좋은 기회를 함께 만들어 낸 작곡가들을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메신저와 이메일로만 연락해온 프리스틴 V의 '네 멋대로', 'Spotlight' 그리고 AOA의 '빙글뱅글'을 만든 작곡가 등을 만나러 북유럽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 기획사가 피칭한 곡을 사용하기로 확정해 기획사에게 곡이 팔린(buy-out )상태
물가가 비싼 북유럽에, 심지어 관광 목적도 아니었기 때문에 모든 일정을 최소로 줄였습니다. 결국 4개 도시를 11일간 돌았습니다. 핀란드 헬싱키, 스웨덴 스톡홀름, 덴마크 코펜하겐을 거쳐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까지 도시마다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계획이었습니다.
온라인으론 계약이지만 오프라인으론 친구가 된다
첫 미팅은 헬싱키에서 진행했습니다. 헬싱키에서 만난 작곡가는 크리스타 시그프리즈(Krista Siegfrids), 크리스토퍼 칼손(Kristofer Karlsson), 사미 그론루스(Sami Gronroos)였습니다. 크리스타와 크리스토퍼는 AOA의 '빙글뱅글'을, 크리스토퍼와 사미는 프리스틴 V의 'Spotlight'를 쓴 작곡가들이죠.
헬싱키에서 만난 작곡가들에게 CD를 전달한 순간 ©배수정
사실 크리스타는 2013년 유로비전(Eurovision Song Contest)*에서 결승전까지 올라간 '국민가수'이기도 한데요. 이들은 케이팝 작곡에 처음 참여했기 때문에 궁금한 점이 많았습니다. 왜 한국에서는 스포티파이(Spotify)**를 쓰지 못하는지, 유럽에서는 CD를 거의 제작하지 않는데 왜 한국은 예쁜 패키징의 CD를 계속 만들어 내는지, 케이팝 뮤직비디오는 왜 그렇게 멋있는지 등 제게 많은 질문을 해왔습니다. 케이팝 앨범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오히려 저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기도 했고요.* 매년 개최하는 유럽 및 주변 지역 국가 대항 노래 경연 대회
** 2008년 스웨덴에서 시작한 전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가온차트*도 알고 있기에 제가 오히려 더 놀랐습니다. 이제 곡마다 랩 파트를 넣는 것도 신기하다는 이야기**, 지금 상황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르는 케이팝이라면서 더 많은 작업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하더라고요. 제가 CD를 전달하니, CD 안의 '포토카드'를 보면서 엄청 놀라기도 했습니다. 크리스토퍼와 크리스타가 '빙글뱅글'의 휘파람 소리를 서로 자기가 불렀다며 작업 과정을 이야기해줄 때는 흥미로웠습니다.
*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에서 만든 대한민국 공인 음악 및 음반 차트
** 일반적으로 팝 음악은 래퍼가 피처링하지 않는 한 랩 파트가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케이팝의 경우 팀 내 래퍼가 있어 랩을 넣어야 하기 때문에 케이팝을 처음 작곡하는 해외 작곡가들에게는 생소한 트렌드다.
두 번째 미팅 도시는 프리스틴 V의 '네 멋대로'의 작곡가와 이들이 속한 퍼블리싱 회사가 위치한 스톡홀름이었습니다. 매니저는 이미 서울에서 만났고 메일로 끊임없이 이야기하지만, 작곡가들은 온라인으로 이야기만 하다가 만난 것입니다. 이들은 뮤직비디오, 앨범 패키징들을 칭찬하며 어떻게 곡을 쓰게 됐는지 말해줬습니다. 곡을 제게 처음 보냈을 때 했던 생각부터 후에 제 수정 요청 사항까지 상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죠.
특히 제가 수정을 요청했던 부분이
곡이 팔리는 데(cut) 큰 도움이
됐다기에 매우 고마웠습니다
독립 A&R을 시작하고 나서 페이스북에서 찾아낸 스톡홀름의 뛰어난 작곡가 야드 엘(Jade Ell)도 만났습니다. 그는 2013년부터 이메일과 페이스북으로 숱하게 연락하면서 곡을 받고 서로 함께 곡도 만드려고 했던, 하지만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작곡가 겸 퍼블리셔입니다.
* 프리스틴 V '네 멋대로' 뮤직비디오 ©Loen Entertainment
야드는 아주 밝고 사랑스러운 분위기의 곡을 쓰는 작곡가입니다. 데모로만 듣다가 직접 만나니 그의 밝은 기운이 제게 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야드는 제게 본인이 새로 쓴 곡을 들려주는 리스닝 세션(listening session)을 했고, 이후 그의 퍼블리셔도 찾아와 인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 퍼블리셔는 얼마 전, 제게 이메일로 자신의 새로운 작곡가를 소개했습니다. 이렇게 해외에서 곡을 받을 수 있는 작곡가의 풀이 넓어진 것이죠.
5년 간 만나기만을 기다렸던 InnerV8 대표 오비(Obi)도 만났습니다. 처음 그와 연락할 때는 그도 영국의 한 퍼블리싱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독립하면서 스톡홀름으로 이동했죠. 그는 제게 케이팝 씬에서 작업하면서 힘들었던 점, 앞으로의 협업 가능성 등을 이야기했습니다. 저희 사이에는 5년이라는 시간이 있었기에 친구처럼 일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었어요.
코펜하겐으로 이동해 유럽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곡가 맥스(Max)를 만났습니다. 그는 케이팝에 관심이 많았기에 어떤 방향으로 작업해야 할지 이야기를 나눴죠. 최근 케이팝이 영미권의 팝 음악을 많이 따라간다면서, 더 멋있어진다고도 했습니다.
마지막 미팅을 위해 비엔나로 이동, 비엔나에서 4시간 30분 정도 기차를 타고 가야 하는 인스부르크에 도착했습니다. 인스부르크에서는 제 파트너 셰들러 뮤직(Schedler Music*) 관계자들을 만났습니다. 2015년 미뎀(MIDEM)**에서 만난 이후로, 저희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 주로 유럽에서 활동하는 오스트리아, 스위스를 기반으로 하는 퍼블리싱 회사
** 1966년에 시작한, 음악 산업 관계자들을 위한 국제 B2B 뮤직 마켓. 프랑스 깐느에서 매년 개최한다.
제가 다른 회사 소속일 때는 좋은 곡들을 받는 입장이었는데, 독립한 이후에는 제가 이들의 곡을 한국에 피칭하고 있습니다. 3월에는 이들의 곡이 한 기획사에 팔렸는데, 이 곡은 이들이 한국에서 첫 번째로 발매하는 곡이기도 했습니다. 이전까지 이들의 주된 활동 무대는 유럽이었는데 이제 한국과 일본으로 반경을 넓히면서 아시아에 진출하기 시작했고요.
이들은 자신들의 회사에 소속된 작곡가들이 케이팝에 대해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여러 레퍼런스를 예시로 설명해 주었죠. 이들 역시 케이팝이 영미권 팝의 공식을 가져가는 것 같다며,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유럽의 퍼블리싱 회사들은 이들처럼 점점 아시아, 특히 케이팝 시장에 많은 흥미를 가지고 진출하고자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스톡홀름의 작곡가들이 작업한 케이팝, 제이팝 CD들 ©배수정
너무 힘들었다, 그러나
살인적인 일정이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16시간을 잠들었을 정도로 체력 소모도 엄청났고요. 누군가는 쉴 새 없이 돌아다닌다며 유럽에 가는 의미가 있겠냐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 목적은 오로지 '미팅'이었기 때문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 같아 만족합니다. 제 사업이니 이 모든 출장 비용을 제가 충당해야 하기도 했지만요.
작곡가들을 직접 만나고
정서적 유대감을 만든 것은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제가 만난 작곡가들은 더 이상 온라인에서만 아는, '얼굴도 본 적 없는 한국의 배수정'에게 곡을 보내지 않습니다. 본인들이 만났던, '한국에서 직접 자신들을 만나러 온 친숙한 배수정'과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 출장에 기대한 결과입니다. 이메일로만 이야기하고 계약서만 주고받아본 아시아 사람이 아닌,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 본 A&R 배수정을 알게 하고 싶다는 것이요.
다녀온 후, 헬싱키에서 만난 사미는 이메일로 "너에겐 이제 헬싱키에 좋은 친구들이 생겼다"라면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해달라"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이제 제가 정말 '존재하는' 사람이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이 출장은 제가 회사를 설립한 후 6개월이 되어 떠난 출장이었습니다. 저를 통해 처음 케이팝에 발을 들인 작곡가들에게 신뢰를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케이팝에 대한 정보는 온라인 상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지만, 제가 기획사들을 직접 만나고 느낀 점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르니까요.
갓 독립한 회사라 계약서 작성을 비롯한 많은 부분에서 서툴 수 있지만, 이들은 이제 제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해해 줄 것입니다. 계약서 만으로 움직이는 사이라면 착오가 조금 있어도 크게 느껴질 테지만요. 물론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작업에도 훨씬 도움이 되기도 하고요. (이후 스웨덴 33년 차 퍼블리싱 A&R과 나눈 인터뷰 등 자세한 내용은 최종 리포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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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 K-POP을 기획하는 사람들]
JYP 엔터테인먼트에서 A&R로 원더걸스, 미쓰에이, 갓세븐, 트와이스 등의 앨범 제작에 참여하였고, 지금은 독립 A&R 회사를 차려 국내 여러 대형 기획사들과 작업하는 배수정 저자. 음악에 관해 다양한 매체에 꾸준히 글을 쓰며, 딘, 예서, 뉴이스트 W 등 여러 아티스트 앨범에 프로덕션 자문으로 참여한 박준우 저자. 음악을 직접 만들지는 않지만, 모든 영역에 관여하는 두 사람을 통해 무에서 유를 기획하는 A&R 이야기를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