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 디지털 혁신의 역사

어떻게 이 모든 디지털 혁신이 시작되었는지 차근차근 알아보기 위해 우선 기본적인 수치부터 살펴보자. 

인터넷 접속은 국민 기본권으로 규정
세금의 95%는 전자 세금 보드로 신고
행정 업무는 엑스로드로 온라인 처리
전체 투표의 31%는 전자 투표
에스토니아의 인구수는 불과 131만 명, 면적은 45,226㎢로 남한 면적의 45% 정도이다. 핀란드 수도 헬싱키와 불과 82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북유럽 국가이며, 동시에 발트해를 접한 발트해 연안국이기도 하다. 동쪽으로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남쪽으로는 라트비아가 있다. 에스토니아는 이처럼 북유럽도, 발트국도 아닌 애매한 지리적 위치 때문에 독일, 스웨덴, 러시아에 차례로 돌아가며 침략을 당한 슬픈 역사를 갖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지리적 위치 ⓒ비지트탈린

아무래도 에스토니아의 역사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노래 혁명일 것이다. 합창은 에스토니아인의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인데 이는 러시아에 침략당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869년 러시아에 지배당했을 때부터 에스토니아인들은 모여서 노래를 부르며 그들의 연대를 공고히 다졌다. 1988년에는 무려 전체 인구의 1/3에 해당하는 30만 명의 에스토니아인이 모여서 노래를 부르며 러시아에 대한 독립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 The Singing Revolution Film ©singingrevolution.com

 

이듬해인 1989년에는 발트해 이웃 국가인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사람들까지 참여하면서 640km에 달하는 인간 체인을 만들었다. 이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마침내 독립을 쟁취했다. 100% 비폭력으로 독립을 얻어냈으니 인도의 간디가 부러워할 만한 이야기이다.

 

에스토니아인에게 있어서 합창과 전통민요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을 만큼 역사적으로 중요하다. 그리고 합창은 노래 혁명 이후 그들의 삶에 더 큰 의미를 가지게 됐다고 한다. 실제로 핀란드에서 에스토니아로 향하는 배 안에서 나는 에스토니아인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몰랐다면 무심코 지나쳤을 장면이다.

 

1989년 구소련에서 막 벗어난 GDP 3천 달러의 신생 국가는 어떻게 29년 만에 오늘날 디지털 혁신의 아이콘이 된 걸까? 이는 독립 후 3년이 지난 1992년, 에스토니아 총리 마트 라르Mart Larr의 정책에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