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 계좌 개설에 도전하다

Editor's Comment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있지요. 법인 설립을 마치고 나니, 다음 관문인 은행 계좌 개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비해 외국인의 계좌 개설 요건이 까다로워진 에스토니아는 여전히 창업하기 좋은 나라가 맞을까요? 'e-네이션, 에스토니아를 가다 - 디지털 노마드의 창업기'의 마지막 미리보기를 통해 경험했기에 알 수 있었던 에스토니아의 창업 현실을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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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단 이미지 ©Urfan Hasanov/Unsplash

무사히 법인 설립까지 마무리했으니 이제 은행 계좌를 개설할 차례다. 에스토니아 전자 거주권 공식 웹사이트에는 계좌 개설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없다. 단, 홀비(Holvi)와 같은 핀테크 스타트업의 서비스를 사용하는 경우는 방문 없이 계좌 개설이 가능하고, LHV와 같은 기존 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할 경우는 대면 심사가 필수이기에 직접 방문해야 한다고 간략히 설명되어 있을 뿐이다.

즉, 웹사이트에 나온 설명으로는
은행에 방문하기만 하면
계좌를 개설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에스토니아 은행들이 전자 거주권자의 계좌 개설을 꺼린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는 전자 거주권 신청 당시인 2018년 1월에만 해도 소문에 불과했으나, 에스토니아를 방문했던 4월이 되자 소문을 증명하듯 기사화됐다. 에스토니아 은행들이 외국인의 은행 계좌 개설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기존 외국인 계좌의 거래 금지 조치까지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에스토니아 은행들이 외국인 계좌 개설을 취소함에 따라, 전자 거주권 프로그램 자체가 위기에 처했다는 내용의 기사 캡처 ⓒERR

그뿐인가. 법인 설립을 도와준 에이전시 담당자 역시 "아마도 법인 계좌 개설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은행 담당자의 예상 질문과 이에 대응하기 유리한 답변을 알려주었다. 불안했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밖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계좌 개설이 쉽고 빠르다고 기사에 소개된 LHV 은행을 먼저 방문하기로 했다. LHV 은행은 전자 거주권 프로그램의 공식 파트너 은행이며, 에스토니아 출신 ICT 스타트업을 공개적으로 지원하고 투자하는 진보적 성향의 은행이다.

 

탈린 시내에 위치한 LHV 은행에 직접 방문하여 법인 계좌 개설을 위해 왔다는 목적을 말하고 약 10분을 기다린 후 담당자와 미팅을 했다. 담당자는 세 가지 질문을 던졌다.

  • 어떤 종류의 비즈니스를 하는가
  • 왜 에스토니아에서 비즈니스를 하기 원하는가
  • 에스토니아에 비즈니스 파트너(connection to Estonia)가 있는가

마지막 질문이 문제였다. 나 역시 난생처음 에스토니아에 와서 에스토니아 사람을 처음 만났는데, 에스토니아에 비즈니스 파트너가 있을 리 없었다. 솔직하게 아직 아무런 비즈니스 커넥션이 없으며, 이제 막 법인을 설립했으니 앞으로 빠른 미래에 파트너가 생길 것을 기대한다고 답변했다.

 

담당자는 차분하게 대답을 이어갔다.

(당신은) 비거주권자로서, 에스토니아에 비즈니스 파트너가 없는 법인은 계좌를 개설할 수 없다.(As a non-resident, you cannot make a bank account without having any business connection in Estonia.)

무엇이 '비즈니스 파트너' 요건을 충족하는 것인지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자, 담당자는 덧붙여 설명했다.

에스토니아 사무실 계약서, 에스토니아인 고용 계약서, 회계·컨설팅 에이전시를 제외한 에스토니아 회사와의 비즈니스 계약서를 포괄하여 뜻한다.

이제 막 설립한 신생 법인이
어떻게 에스토니아에
비즈니스 파트너가 있을 수 있겠는가!

은행의 요구사항이 너무 과하다고 말하자 담당자는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다른 에스토니아 은행을 가도 같은 답변을 들을 것이라고만 답했다. 이는 사실이었다. LHV 은행과의 미팅이 끝난 후 스웨드뱅크(Swedbank) 등 인근의 다른 은행을 방문했으나 비슷한 문제에 부딪혔다.

탈린 시내는 매우 작아서 LHV, 스웨드뱅크 등 은행을 방문하기까지는 매우 쉬웠지만, 결과는 모두 부정적이었다. ⓒ박인

이대로 물러날 수 없다

은행 계좌 개설을 거절당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2018년 초부터 에스토니아의 대다수 은행은 돈세탁, 불법 자금 유통 등의 이슈가 불거지자 외국인 계좌 개설을 제한하는 등 계좌 개설의 벽을 높여 방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외국인 계좌 개설은 위험 대비 은행에 돌아오는 이익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에스토니아 전자 거주권자 커뮤니티에 문의하자 유사한 사례를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은행 계좌 개설 실패 사례들을 찾기는 쉽다. 개인별 차이는 있어서 1인 기업이나 EU 출신의 경우에는 계좌 개설이 좀 더 쉬운 편이라고 한다. (이미지 제공: 박인)

다른 전자 거주권자들이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처하고 있을지 몹시 궁금했던 나는 온라인 공식 커뮤니티에 꽤 공격적으로 공개 질문을 올렸다. 이 문제가 워낙 뜨거운 감자인지라, 댓글이 무려 150여 개가 달리는 등 열띤 토론이 펼쳐졌다.

은행에서 계좌 개설을 거절당한 직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공개 질문 (이미지 제공: 박인)

댓글 외에도 커뮤니티 멤버들은 메시지를 보내거나 통화, 미팅을 요청하는 등 나를 도와주고자 애썼다. 예상치 못한 도움의 손길들은 꽤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중 가장 열심히 도와주었던 두 명의 멤버에게 별도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에스토니아 전자 거주권과 법인 계좌 개설 등에 관한 이들의 인터뷰는 최종 리포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 목차 안내

'에스토니아 창업, 현실과 한계점'을 다룬 챕터에 어떤 인터뷰가 담길지 미리 공개합니다.

  • 은행 계좌 개설 관련
    - Ian Wagner(미국), e-resident
    - Olivier Aichelbaum, e-resident
  • 핀테크 기업 관련
    - Mika Setala, 핀테크 스타트업 홀비 부사장
    - Asad Zulfahri(말레이시아), e-resident
    - Ian Wagner(미국), e-resident
  • 전자 거주권 실제 활용 사례 관련
    - Christoph Huebner(독일), e-resident
    - Wissem Oueslati(튀니지), e-resident
    - Ian Thompson(캐나다), e-resident

[e-네이션, 에스토니아를 가다 - 디지털 노마드의 창업기]

 

창업했다고? 어디서? 에스토니아?! 왜 저자는 많고 많은 국가 중 에스토니아에서 창업을 시작했을까요. 도전과 좌절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생생한 창업 분투기가 당신을 기다립니다.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