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에 빠진 사람들

해외에 살면서 가끔씩 한국에 들르다 보면 그 안에서 매일 살았다면 크게 못 느꼈을 변화들을 감지하곤 한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스마트 기기 사용이다. 달리는 지하철에서도 빵빵 터지는 인터넷 덕에 스마트폰 안경을 쓴 장님 같은 사람들의 고요함은 섬뜩할 지경이었다.

 

한국을 떠나기 전부터 보았던 익숙한 풍경이지만 길을 걷는 걸음마저도 느려진 걸 보니 그 정도가 심해진 느낌이었다.

마법의 아이패드

스마트 기기가 자투리 시간을 장악해버린 듯한 도시에서 어린아이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한국에서 시댁 가족들과 식사라도 하러 가면 옆자리 아이들 손에 으레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가 들려있는 모습을 본다.

 

심지어 아이들용으로 작은 TV 모니터를 식탁 옆의 벽에 심어놓은 곳도 있었다. 혼자 밥 먹는 사람이 많은 일본의 식당에는 벽을 향해 일렬로 배열된 자리마다 앞 벽에 TV 모니터가 장착되어 있기도 하던데, 그와 비슷한 형국이었다.

 

이건 비단 인터넷 강국인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도 자동차 뒷자리에서 말썽을 피우는 아이들에게 스마트 기기를 던져주는 장면이 광고나 드라마, 영화에 종종 나온다. 지하철 안 피곤한 엄마 옆에서 게임 삼매경에 빠져있는 아이들도 흔히 볼 수 있다.

 

잠깐이나마 한 조각의 평화라도 누리고 싶은 어른들에게 스마트 기기의 마법만큼 아이들을 대처할 강력한 해결책은 한국에도 미국에도 없어 보인다.

 

손끝에 스마트 기기를 달고 태어난다는 요즘 아이들. TV를 기본으로 스마트폰, 태블릿 PC, 컴퓨터까지 요즘 아이들의 생활은 뉴 미디어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공부도, 여가도, 사교도 스마트 기기를 통해서 이뤄진다.

 

연령에 맞는 '어린이용' 게다가 '교육용' 콘텐츠이기 때문에 해롭지 않을 것이라는 부모의 바람대로라면야 얼마나 좋겠냐마는 사실 정말 연령에 맞고 교육적인지는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일이다.

TV 속 세상과 어린이

다양한 소득계층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값싸고 보편적인 매체, TV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보자.

교육용 TV가 교육적일 수 있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콘텐츠를 이용하는 아이의 나이와 이해 능력이다. 

1969년 미국의 대표적인 어린이 교육용 TV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가 처음 방송됐을 때, 일부 전문가들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각 및 청각 자극에 아이의 인지가 매몰되어 교육 효과가 전무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러한 극단적인 우려와는 달리 아이들의 주의력과 인지능력은 연령대에 따라 달라지며, 그렇기 때문에 이에 부합하게 TV를 시청하는 것이 필요하다.

출처: http://www.sesamestreet.org

18개월 미만의 어린아이가 시선을 고정하는 타이밍은 내용의 변화와 상관없이 가변적이다.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프로그램 속 대화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으며 장면 변화의 조합으로부터도 의미를 도출하지 못한다.

 

3세 이전의 어린이는 TV의 상징적인 성격을 이해하지 못한다. TV에 나오는 이미지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만 실재하는 사물은 아니다. 이를 표상(表像, representation)이라고 하는데, 장난감 소방차를 가리켜 '소방차'라고 부르지만 '진짜' 소방차는 아닌 것과 같은 이야기다.

 

표상과 현실을 구분하는 능력은 2~3세에 발달하기 시작해서 유치원에 들어가는 4~5세에 안정된다. 4세 어린이는 TV 속의 팝콘 이미지를 보고 현실을 '반영'한 이미지임을 인지하는 반면, 3세 어린이는 TV를 거꾸로 하면 팝콘이 쏟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표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두 살 반 미만의 아이가 TV를 보고 뭔가를 이해하고 배운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조기교육의 꿈

아이를 세상에 길이 남을 천재로 키우고 싶은 한국 어머님들의 조기교육의 꿈은 젖먹이의 영어, 중국어, 수학 교실을 탄생시켰다. 미국에도 '베이비 아인슈타인(Baby Einstein)'이라는 기업이 4세 미만 아이들을 위한 교육용 DVD를 판매한다. 이제는 스마트 기기로 이용하는 디지털 콘텐츠까지 더해져서 조기교육의 꿈을 이뤄줄 길은 더욱 다양해졌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이 교육용 영상을 얼마나 이해하고 학습하는지는 확실치 않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아이들이 두 살은 되어야 TV를 통해 단어를 배우기 시작하고, 세 살이 넘으면 교육용 TV에 나오는 행동을 어렵지 않게 따라 할 수 있다.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는 어머님들의 믿음은 아무래도 틀린 듯하다.

 

부모(보호자)와 같이 보며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경우 어느 정도 학습효과가 있다고는 하나 말도 잘 못하는 어린아이가 '최대한 일찍, 남들보다 한발 앞서서 한글, 알파벳, 숫자를 접하면 뛰어난 아이가 될 것'이라는 주장에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

중요한 건 내용

TV가 어린이의 인지발달과 학습능력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우려의 목소리는 늘 있어왔다. 화려한 색깔과 빠르게 변하는 화면의 움직임,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각종 음향 때문에 주의력이 저하될 것이라는 비판이 그중 하나다.

 

하지만 어릴 때 TV에 노출되는 것과 이후의 주의력 사이에는 일정한 관계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프로그램이 빠른 페이스로 전개된다고 주의력에 해가 되는 것도 아니다. TV를 보는 시간이 길면 공부를 못한다고 할 근거도 없다.

중요한 건 내용이다.

어린 나이에 폭력적인 영상이나 비교육적인 단순 오락물에 노출될 경우, 나중에 주의력 결핍 증상이 나타나지만 반대로 교육적인 영상을 본 아이들에게는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학습내용을 중심으로 긴밀하게 설계된 프로그램일수록 교육 효과는 더욱 높다.

 

1996년부터 10년간 미국에서 방송된 '블루즈 클루즈(Blue's Clues)'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우리나라도 KBS에서 '수수께끼 블루'라는 이름으로 방영됐다고 하는데 1년 만에 중단된 걸로 봐서는 별 인기가 없었던 모양이다.

출처: http://www.nickjr.com/blues-clues

이 프로그램은 주인공 소년이 '블루'라는 이름의 파란색 강아지와 함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내용으로 꾸려지는데, 중간중간 시청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생각할 시간을 줘서 참여를 이끌어 낸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오랜 기간 반복적으로 본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제해결능력이 뛰어났고, 특히 프로그램에서 직접 다루지 않은 문제에도 잘 대처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를 주기적으로 본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 후에 공부도 잘 하고 적응도 더 잘 한다고 하니 교육용 TV의 교육 효과는 확실히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아가 같은 행동과 단어만 반복하는 '텔레토비(Teletubbies)'는 교육 효과가 거의 없었다.

교육 효과 극대화하기

TV로 보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로 보든, 교육용 영상의 교육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좋은 교육용 영상은 앞서 말한 것처럼 구체적인 학습능력 및 사회능력 습득을 목표로 설계되고 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야기 전개와 교육 내용 전달이 서로 겉돌거나 충돌하지 않고 결합되어 있어야 좋다. 예를 들어, 이야기가 계속되기 위해서는 이야기 속 인물들이 특정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식으로 말이다. 또 동일한 스킬을 다양한 상황과 맥락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주면 적응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재미있게도 아이들은 자기 목소리와 비슷한 목소리에 가장 잘 반응하고 성인 남성의 목소리에 가장 관심이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몰입과 학습이 필요한 내용은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이런 요건을 충족하는 양질의 콘텐츠를 골랐다면 그다음으로 가장 필요한 것은 역시 부모의 손길.

부모가 함께 보면서 중요한 내용으로 아이의 관심을 유도하고, 더 상세하게 설명도 해주고, 질문도 하고 피드백도 주면 오가는 상호작용 속에서 가장 풍부하고 효과적인 교육이 이뤄진다.​

 

기술이 계속 발달하면서 교육용 영상뿐만 아니라 각종 앱, 게임, 소프트웨어 등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 교육 효과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이러한 콘텐츠의 홍수 속에 어떤 혜안이 필요한지 뉴 미디어와 신종 콘텐츠에 대해 다시 한번 글을 준비해 보고 싶다.

 


참고 문헌

• Kirkorian, H. L., Wartella, E. A., & Anderson, D. R. (2008). Media and young children's learning. The Future of Children, 18(1), 39-61.

• Mares, M. L., & Pan, Z. (2013). Effects of Sesame Street: A meta-analysis of children's learning in 15 countries. Journal of Applied Developmental Psychology, 34(3), 140-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