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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또 도전만이 창조를 낳는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

도전, 또 도전만이 창조를 낳는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

빛과 콘크리트의 건축가

Editor's Comment

- 본 글은 <위클리비즈>가 2010년 6월, 2017년 11월 두 번에 걸쳐 게재한 안도 다다오와의 인터뷰를 재구성했습니다. 원문 기사의 게재일과 필자는 본 글 최하단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상단 이미지 ©Mith Huang/Unsplash

안도 다다오, 건축가

 

1941 일본 효고현 출생

1966 유명 건축물 보려 60만엔 들고 7개월간 세계 여행

1968 제도권 교육 없이 건축사 자격증 취득

1969 오사카에 안도다다오건축연구소 설립

1976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스미요시노나가야 설계

1987 나오시마 프로젝트 설계 작업 담당

1995 건축학계의 노벨상 '프리츠커상' 수상

1997 도쿄대 공학부 건축학과 교수

그는 오사카大阪 변두리 출신의 권투선수였다. 열일곱 나이에 프로복싱에 뛰어들어, 대전료를 받아 생계에 보탰다. 함께 사는 가족이라고는 외할머니밖에 없는 결손 가정의 청년에게 권투는 희망이었다. 한 경기 3회전에서 4회전, 6회전까지 점점 실력이 늘어갔다. 언젠가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두르리라는 꿈도 커져갔다.

 

하지만 최고와의 수준 차이를 절감하는 순간, 모든 희망이 날아가 버렸다. 권투에 입문한 지 2년 만이었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회상했다.

당대 최고 복서의 스파링을 보고 기가 질려버렸다. 스피드, 파워, 회복력 나와는 차원이 달랐다. 나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글러브를 벗고 취직을 했다. 공고를 졸업한 스무살 청년에게 주어진 일자리는 별볼일이 없었다. 불 같은 성미에 답답한 회사 생활을 견디지 못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며칠 밤낮을 고민하다 집 짓는 일이 떠올랐다. 어려서부터 동네 목공소는 그의 놀이터였다. 문득 목수가 외할머니집 지붕에 만들어 준 창문을 통해 쏟아지던 새하얀 빛과 창문 너머로 펼쳐진 파란 하늘이 떠올랐다.

 

'빛과 콘크리트의 예술가'로 유명한 일본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77)의 인생 드라마는 이렇게 시작한다. 1960년대 초반 뒤늦게 건축업에 뛰어든 그는 건축에 대한 모든 것을 현장에서 독학으로 익혔다. 동네 가게의 인테리어나 가구를 만드는 일로 기초를 닦았고, 유명 건축가의 책을 닳도록 반복해 읽었다. 도면 하나하나를 베껴 그리기도 했다. 스물네살 되던 해에는 전 세계를 유랑하며 유명 건축가들의 작품을 둘러봤다.

 

이렇게 성장한 그는 1970년대 중반부터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노출 콘크리트 기법*과, 실내에서 자연광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건물이 자연환경과 지역적 특색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하는 신선한 건축 양식을 내세워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그만의 독특한 건축 설계에 반대하는 정부 규제 당국이나 건축주와 잦은 승강이를 벌이면서 '투쟁하는 건축가'라는 이름도 얻었다. 1969년부터 2010년까지 그가 휩쓴 세계적 건축상은 150여 개. 그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건축가 중 한 사람이다.

* 외장재 없이 건물의 콘크리트벽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오사카 외곽 이바라키에 위치한 빛의 교회에서 찍은 안도 다다오. 빛의 교회는 안도 다다오의 1990년 작품이다. (사진 제공: 조선일보)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

1995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안도는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다. '빛의 교회', '포트워스 현대 미술관', '아와지 꿈의 무대', '베네통 아트스쿨' 등 그의 대표작을 설명하려면 책 한 권도 부족할 정도다.

안도가 건축 설계를 맡았을 때 최우선으로 삼는 기준은 자연과의 조화 여부다. 인간과 자연의 만남, 빛과 그림자의 조화, 고요와 명상의 접점에서 건축미의 본질을 발견하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건축학계에선 그를 '빛과 콘크리트의 예술가', '동양의 가우디*'라고도 부른다.
* 사그라다 파밀리아, 구엘 공원, 카사 밀라 등을 설계한 스페인의 유명 건축가

특히 건물 외벽에 별도 자재를 덧대지 않고 콘크리트를 그대로 드러내 콘크리트가 외장재 역할까지 겸하게 하는 노출 콘크리트 기법과 실내에서 자연광 효과를 극대화하는 독특한 건축 양식은 안도의 트레이드 마크다. 안도는 단 한 번도 제도권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1997년엔 도쿄대 공학부 건축학과 교수직까지 맡았다.

안도의 건축 세계에 가장 큰 영감을 준 인물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였다. 그는 스무 살 때 오사카 번화가 도톤보리의 고서점 덴규天牛에 진열된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집을 보곤 혹여 다른 손님이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집을 사갈까 봐 매번 서점을 방문해 작품집을 진열대 밑에 숨겼다.

간신히 돈을 모아 작품집을 손에 넣고 나선 보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일일이 손으로 도면을 베꼈다. 그는 "어떤 강펀치도 그렇게 충격적이지는 못했다. 평생을 바쳐서 해야 할 일을 찾은 것 같았다."고 회고한다. 작품집을 손에 넣고 4개월 후엔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 60만엔으로 유럽 여행도 떠났다. '롱샹 성당', '사보아 저택' 등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을 실제로 보기 위해서였다.

국내에도 안도의 작품이 여럿 있다. 제주도에 있는 '지니어스로사이', '글라스하우스', '본태박물관'과 강원도 원주에 있는 '한솔뮤지엄', 그리고 '서울 재능문화센터' 등이 대표적이다. 오는 2020년 서울 역삼동에서 마곡지구로 이전하는 'LG 아트센터'의 새 건물도 안도가 설계를 맡았는데, 그는 인터뷰에서 "(좋은 건물을 만들고자 하는) 고객의 의지가 남달랐다."고 밝혔다.

2010년 여름, 그와의 첫 번째 만남

<위클리비즈>는 2010년 6월 9일 그를 만나기 위해 오사카 시내 우메다梅田 인근의 '안도 다다오 건축연구소'를 찾았다. 낡은 서민형 주택들 사이에 자리 잡은, 콘크리트 원통을 세로로 잘라놓은 것 같은 건물. 불과 100㎡(30평) 남짓한 대지에 5층으로 쌓아올린 건물은 사방 벽면에 빽빽이 꽂혀 있는 책들이 점령했다.

 

이렇게 좁은데도 건물의 3분의 1쯤은 1층부터 5층까지 천장이 뻥 뚫려 쭉 이어져 있는 구조다. 그 밑바닥에 안도 다다오의 책상이 있다. 이 툭 터진 공간을 통해 건물 전체가 완전히 통해 있다. 목소리를 조금만 높이면 1층에 있는 사람이 4층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뒤따라 올라온 안도 다다오는 인터뷰가 무척 익숙해 보였다. "어디서 왔느냐." "이번 인터뷰의 주제가 뭐냐."며 역질문공세를 펼쳤다. 유심히 보니 그의 모습은 귀와 이마를 완전히 덮는 덥수룩한 머리에, 셔츠 위에 헐렁한 재킷을 걸친 것까지 평소 사진에서 보던 것과 똑같았다. 외모에 신경 쓰는 시간이 아까워 똑같은 옷,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고집한다는 한 물리학자의 얘기가 생각났다.

 

안도 다다오의 사무실 구조는 자신의 일하는 철학과 조직관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일례로 그의 책상은 건물 출입구 바로 앞에 있어서 직원 중 누가 외출을 하고, 어떤 손님이 찾아오는지를 모두 알 수 있다.

 

30여 명의 스태프는 따로 업무용 전화가 없다. 5대의 공용 전화가 있는데, 모두 안도 다다오의 책상 위에 있다. 전화를 걸거나 받으려면 안도 다다오가 지켜보는 앞에서 해야 한다. 한 직원은 "가끔 전화 통화가 길어지면 안도씨가 전화기를 빼앗아 들고 직접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사무실 안에서는 개인적인 이메일이나 인터넷, 휴대폰 사용도 제한된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갤러리 레스토랑 '글라스 하우스'. 제주 서귀포시 '휘닉스 아일랜드' 리조트 내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해변 언덕에 있다. 인간과 자연, 공간의 조화점을 찾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 양식이 잘 드러나 있다. ⓒ휘닉스아일랜드위클리비즈(이하 생략): 직원들 입장에서는 답답할 것 같은데, 왜 이런 식으로 사무실을 운영하나.

안도 다다오(이하 생략): 나 역시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직원들에게 노출되어 있으니까 사무실이 팍팍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가 창조적 예술가 조직으로서 계속 기능하려면 이런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름의 생각은, 우리처럼 창조하는 조직은 '게릴라 집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휘관 한 사람과
그의 명령을 따르는 병사로 이뤄진
군대 같은 조직이 아니라,
공통된 이상을 내걸고
신념과 책임감을 가진 개인 하나하나가
목숨을 걸고 움직이는
게릴라 집단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나와 스태프들 사이에 인식 차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 서로 혼이 통해야 한달까. 나는 우리 조직뿐만 아니라 구성원 개개인도 게릴라처럼 행동하기를 요구한다. 자기 혼자 힘으로 정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신속하게 실행하며, 돌발사태에도 냉정하게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 같은 것 말이다.

개인이 조직의 일부로 기능하는 것이 군대다. 일본과 한국의 회사 조직도 대부분 비슷하다. 그래서 회사가 크면 클수록 개인이 부품화되기 쉽다. 안도 다다오는 자신의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의식을 가진 게릴라처럼 움직이기를 바랐다.

그래도 인터넷이나 이메일 정도는 해도 되지 않나.

물론 해도 된다. 하지만 최대한 절제하고 있다. 인터넷이나 이메일을 하다 보면 여기저기서 자꾸 연락이 와 시간을 뺏기게 된다. 내가 우리 스태프들에게 자주 강조하는 것이 있다. 모든 사람이 반드시 자기 의견을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또 듣자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의 의견을 확실하게 이해하자는 거다.

이 회사는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 같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인터넷과 컴퓨터 때문에 오히려 우리 사회가 소통의 부족을 겪고 있다고 본다. 지금의 인터넷 사회에서는 다들 상대의 의견을 안 듣고, 자기의 의견만 이야기하려고 하니까.

그는 많은 일본인이 그런 것처럼 요즘도 편지나 엽서를 주된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이용한다. 그의 책상 위엔 세계 곳곳에서 온 엽서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는 통역이 자신의 말을 통역해 주는 짧은 짬에도 엽서에 일일이 에펠탑 같은 그림을 그리면서 사인을 했다.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포트워스 현대미술관. 콘크리트와 유리로 만든 5개의 직육면체 건물이 얕은 연못으로 둘러싸여 있다. 지붕의 차양을 열면 빛이 쏟아진다. ⓒ포트워스 현대미술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패배가 창조력의 원천

독학으로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었는데, 비결이 있는지. 

각자가 자기 나름의 방법을 찾아가니까 독학獨學인 거다. 뭘 공부해야 할지,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도 모른다. 뭔가 의문이 생겨도 이를 물어볼 선생님이나 의견을 나눌 동료가 없다. 비결이란 게 있을 수가 없다.

한때 건축학과 교과서를 잔뜩 사다가 밤에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면서 책을 읽었고,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집은 달달 외울 정도로 열심히 보기도 했다. 일본 일주에 나서 일본 근대 건축의 영웅인 단게 겐조丹下健三의 건축과 일본의 전통 건축물을 둘러봤고, 유럽 여행을 하면서 고대로부터 중세를 거쳐 근현대에 이르는 수많은 건축물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가 서로 다른 개성을 갖고 있다. 나를 따라하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곤란하다.

 

지금까지 150건이 넘는 수많은 건축 작품을 선보여 왔는데, 마르지 않는 창조력의 원천은 무엇인가?

계속 도전하는 정신! 지난 40여 년을 되돌아 보면, 내 생각과 현실의 여러 조건이 맞지 않아 항상 괴로워했다. 건축 공모전에서도 대개 낙선을 하고, 돌이켜 보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패배를 체험했다. 연전연패連戰連敗였다. 쓰러졌다 일어나기를 거듭해왔다. '이제는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닐 정도다.

하지만 도전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이 과정을 통해서 다양한 아이디어가 축적되어 나가는 것이다. 이런 사고의 축적이야말로 창조를 가능케 하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창조는 역경을 이겨내기 위한 싸움,
즉 도전을 계속 하는 정신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매번 '이 기회를 놓치면 끝장'이라는 심정으로 작업마다 안간힘을 다했다."면서 "그런 역경 속에서 지속되는 긴장감을 견뎌낼 수 있는 강인함도 길러졌다."고도 했다.

그의 새로운 도전 대상은 지구 환경 개선이다. 지난 2007년부터 일본 도쿄만의 쓰레기 매립지에 나무를 심어 푸른 숲으로 재생하자는 '우미노모리海の森*'라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는데, 1인당 1000엔씩, 총 50만 명에게 기부를 받아 비용을 댈 계획이다. "왜 건축가가 나무를 심느냐."고 묻자 그는 건물 짓기도, 숲 가꾸기도 다 환경에 개입하여 그 장소에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작업이라고 했다.
* 바다의 숲

제주 서귀포시 섭지코지에 자리한 명상 갤러리 '지니어스 로사이(Genius Loci)'. 안도 다다오 특유의 노출 콘크리트 건물을 제주의 상징인 돌담이 둘러싸고 있다. ⓒ휘닉스아일랜드

자연과 역사를 포용하는 건축

치열했던 70년 인생만큼이나 그의 작품 세계도 고정관념에 끊임없이 도전해 왔다는 점에서 게릴라적이었다.

 

선생님의 건축을 '도시에 도전하는 건축'이라고 표현한다. 

도미시마 주택이나 스미요시 나가야住吉の長屋(1976) 등 내 초기 작품은 출입구를 빼놓고는 사방을 콘크리트벽으로 에워싸 완전히 밀폐된 공간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폐쇄된 벽 사이에서 풍부한 삶의 공간을 만들어내려고 했다.

폭 3.6m, 길이 14.4m의 좁은 공간에 중정中庭을 만들어 햇빛과 바람, 빗물 같은 자연을 집안 깊숙이 끌어들였다. 나는 이 집을 과밀화에 허덕이는 각박한 도시 환경에서 자연과 하나 된 개개인이 강인하게 뿌리내리고 산다는 의미를 담아 '도시 게릴라의 주거'라고 이름 붙였다.

 

도쿄東京의 오모테산도힐즈表參道ヒルズ(2006)도 같은 선상에 있다. 1927년 지어진 일본 최초의 아파트 단지 도준카이아오야마同潤會靑山를 재개발한 것인데, 이곳의 유서 깊은 풍경이 도쿄의 무자비한 재개발 붐에 맞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였다. 그래서 새로 짓는 건물의 높이를 이 거리의 상징인 느티나무 가로수보다 낮게 설계하고, 건물 남동쪽 끝에 있던 아파트 1개 동을 복원해 남겼다. 

도쿄의 패션 거리인 오모테산도힐즈. 유서 깊은 아파트 단지를 허물고 재개발한 쇼핑센터로, 300m에 이르는 느티나무 가로수 등 예전 풍경을 보전하기 위해 낮고 길쭉하면서도 화려하지 않은 외형을 택했다. ⓒ안도다다오건축연구소 제공

자연과 역사, 지역과의 조화를 유난히 추구하시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인간과 자연은 일체다. 이 세상엔 인간만이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물, 바람, 나무, 동물, 곤충 등 다양한 것들이 인간과 함께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다. 서양의 문화는 그 모든 것 중에 인간만을 중시하는 문화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만물이 함께 공생共生하는 공간이며, 인간이란 그중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와의 연속성도 마찬가지다. 내 건축은, 그런 가치를 추구한다.

이런 고집 때문에 상업적인 요구를 하는 건축주와도 자주 마찰을 빚었고, '건축주를 교육시켜야 한다'는 발언을 해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오모테산도힐즈 건축 당시 100여 명의 아파트 소유주들과 충돌하고, 설득하느라 4년이 걸렸다.

그는 자신의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건축주가 원하는 대로 그저 기능만을 충족하려고 하면 따분한 짓밖에 하지 못한다. 예산 제약은 어쩔 수 없어도, 그 밖의 사항은 안이하게 타협하려 하지 않았다. 건축주와 다투더라도 상대가 진저리를 내며 체념할 때까지 내 고집을 밀고 나갔다. 현장 시공팀에 대해서도 시공 결과가 나쁘면 멱살을 잡아서라도 재시공을 요구했다.

2017년 여름, 그와의 두 번째 만남

암 투병 중 어렵게 <위클리비즈> 인터뷰에 응한 안도 다다오(75)를 만난 곳은 병상이 아니었다. 오사카 번화가 우메다梅田에 있는 그의 건축 사무소였다. 숨이 찰 정도로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하는 4층 서재였다.

 

안도는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이름 날리던 2014년 암 선고를 받았다. 정기검진에서 '쓸개와 췌장의 합류 지점에 악성종양이 생겼다'는 진단이 나왔다. 건강을 자신했고 몸 관리에도 각별했던 그로서는 충격이었다. 가족과 직원들에게 급하게 유언장까지 쓰고 종양 제거 수술에 들어갔다. 수술이 성공적이어서 고비는 넘겼지만 몸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안도 다다오의 대표작인 나오시마 프로젝트 중 하나인 지추(地中) 미술관 내부 모습. 건물의 공간과 전시품이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어우러지도록 꾸몄다. ⓒ안도다다오건축연구소이번에 만났을 때 그의 목소리엔 날카로운 쇳소리가 섞여 있었다.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했다. 발음까지 새는 통에 첫인상은 말 걸기조차 힘든 환자였다. 그와의 만남이 '생전 마지막 인터뷰'가 될 것이라는 짐작도 해봤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몸 상태를 묻자 별거 아니라는 듯 껄껄 웃음소리부터 냈다.

쓸개도 빼고, 쓸개관도 빼고, 비장도 빼고, 십이지장도 빼고, 췌장도 빼고. 내장 기관 5개를 제거했어요. 덕분에 몸이 좀 가벼워졌죠. 허허허.

팔을 드는 것조차 힘겨워할 정도였지만, 안도는 2017년 9월 도쿄에서 열릴 전시회를 직접 지휘하는 등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인터뷰 직전에도 '할 일이 쌓여 있다'며 시간을 10분만 내주겠다고 하는 바람에 가벼운 실랑이까지 벌였을 정도였다. 무엇이 죽음을 문턱에 앞둔 그의 열정에 불을 지피는 것일까.

 

암 투병 중인데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최근엔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평창에도 건축물을 만들었다. 이 사무실도 작년에 직접 개조했다. 2017년 9월 도쿄에서 열릴 전시회에선 오사카에 있는 '빛의 교회'의 실물 크기 모형을 만들려 한다.

 

일보다는 건강을 챙겨야 하는 것 아닌가.

10대 후반부터 일을 시작한 이래 큰 병을 앓았던 적이 없다. 남보다 건강에 두 배는 더 신경을 써왔기 때문에 (암 선고가) 충격적이었던 것은 맞다. 9시간 넘게 수술을 받았지만 다행히 예기치 않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도 매일 5㎞씩 걷고, 5㎏짜리 아령을 드는 운동을 반복하며 건강을 챙기고 있다.

 

일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직도 더 많은 것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건축도 삶도 끊임없이 투쟁하는 것이다. 재능은
20대, 30대가 아니라
모두에게 잊힐 때쯤 꽃을 피운다
올해 일흔다섯인데 아흔 살까지는 살고 싶다. 그러니 15년은 더 일할 수 있지 않겠나.

 

인생에 트러블이 없으면 그게 더 문제

건축으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비결은.

나는 대학을 가지도, 전문교육을 받지도 못했다. 무엇을 어떻게 공부하면 되는지도 몰랐다. 대학에서 4년 걸려 이해하는 것을 1년 만에 독파하자는 마음이었다.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오로지 책과 싸웠다. 그것이 최선이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젊었을 때 전기傳記를 많이 읽은 것도 도움이 됐다.

 

성공한 인물들의 성장 과정을 보면 결국 재미를 느끼는 일에 자신의 모든 걸 쏟은 경우가 많다. 사진도 그림도 건축도 마찬가지 아닐까. 본인 의지가 제일 중요하다. 그것에 재밌어하고 꼭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는 그런 의지다. 나는 건축이 너무 재미있었다. 그만큼 만들고 싶은 것의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그 아이디어 개수만큼 내게 기회가 찾아왔다.

 

본인 작품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것을 꼽는다면.

스미요시노나가야住吉の長屋라 불리는 주택이다. 폭 3.6m, 길이 14.4m의 매우 작은 건축물이다. 1975년 설계했다. 연립주택을 3등분해 가운데 공간을 지붕 없는 마당으로 만들고, 창문이 없는 콘크리트 벽을 쌓아 외부와 차단시켰다. 이 집은 냉방도 난방도 없다.

 

오로지 태양과 바람으로만 생활하도록 꾸몄다. 빛이나 바람 등 자연 요소가 집 중앙으로 들어오게 함으로써 비좁은 공간 속에 커다란 우주를 만들고 싶었다. 이 집을 처음 공개했을 땐 평판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앞으로의 시대에는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은 건축물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젊은 세대에게도 자신처럼 투쟁하는 삶을 권해주고 싶은가.

우리 세대 때만 해도 모두가 투쟁했던 것과 달리 지금은 사회가 평화롭고 안정된 덕분에 대다수 젊은이가 투쟁하지 않는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안락한 삶만을 바라는 사람이 많아진 덕분에 치열하게 투쟁하는 사람은 군중 속에서 더 강하게 보일 수 있게 됐다.

 

불행히도 한국도 일본도 엘리트는 난관을 극복하려는 대신 공부에만 너무 매달린다. 우리 사무소에 젊은 친구가 30명 정도 있는데 전부 다 약하다(웃음). 인생에 트러블이 발생하지 않으면 그게 더 문제다. '내일은 나를 위해 빛나고 있다'는 마음가짐과 인생의 뚜렷한 목표를 갖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이디어는 조그만 도전으로 쌓아가는 것

일본 시코쿠四國의 섬 나오시마直島는 안도가 지휘한 대표적 프로젝트로 꼽힌다. 과거 산업폐기물 처리장이었던 나오시마는 1987년부터 미술관 등 각종 건축물을 지은 덕분에 지금은 한 해 30만 명이 방문하는 문화와 예술의 섬으로 탈바꿈했다. 안도는 나오시마 이외에도 도쿄·오사카 구도심의 외면받았던 건축물과 시설을 개조하는 작업도 여럿 맡았다.

 

나오시마 프로젝트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던 것인가.

다들 그렇게 먼 곳에는 아무도 안 갈 것이라고 했다. 사실 처음엔 나조차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클라이언트였던 베네세그룹 회장은 '반드시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들겠다'고 했다. 그의 열정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버려진 섬을 사람들이 감동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 분명히 말해 나오시마는 조건이 나쁜 곳이다. 건물이 여기저기 분산돼 있었고, 건축자재를 옮기기에도 매우 불편했다. 그러나 창조는
역경 속에서 탄생한다

오사카, 도쿄, 서울 등 경기 침체로 대도시가 활기를 잃고 있고, 특히 빈집은 사회적 문제로 부상했다.

일본도 한국도 빈집이 잔뜩 생기고 있다. 어떻게 효율적으로 다시 쓸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누가 이미 만든 것 안에 새로운 것을 만든다면 더 재밌는 결과물이 나온다. 젊은 건축가들은 그런 것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젊은이들에게 처음부터 멋지고 큰 일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유머, 의지와 열정을 지니고 살아갈 힘이 있다면 성공할 수 있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온다. 아이디어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그만 도전으로 쌓아나가는 것이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건물들 (출처: 조선일보 위클리비즈)

기자는 그의 주름진 얼굴 위에서 여전히 링 위에서 펀치를 내뻗는 권투 선수의 모습을 보았다. 공식적으로는 이미 40년 전에 끝난 경력이지만, 그는 여전히 매일 '건축'이라는 링에 올라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는 승부사의 삶을 살고 있었다.

  • 기사 게재일: 2010년 6월 19일, 2017년 11월 7일
  • 필자: 정철환 기자, 남민우 기자

#3 도전, 또 도전만이 창조를 낳는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 마침.

외계인 돼야 살아남는다: 산업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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