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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003~2008년, 불황 속 나 홀로 승리

위클리비즈 위클리비즈 외 2명
2003~2008년, 불황 속 나 홀로 승리
단 한명의 승자가 된 비결

Editor's Comment

- 이 리포트는 <조선일보> 주말 프리미엄 경제·경영 섹션 <위클리비즈>의 기사를 PUBLY 팀에서 선별하고 정제한 버전으로, 이번 챕터는 챕터 1 '일본을 입히는 남자, '유니클로' 야나이 회장'에서 이어집니다. 
* 상단 이미지 ©Andre Benz/Unsplash

 

유니클로는 아주 특이한 기업이다. 경제위기가 시작된 2008년 10월 이후에도 성장세를 이어갔다. 하강하던 일본 경제 상황과 정반대 그래프를 그린 것이다. 위기의식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8년 11월에는 매출액이 2007년 11월 대비 무려 32%가 늘었다.그래픽: 김영미

위클리비즈(이하 생략): 일본 언론은 유니클로를 보고, '히토리가치一人勝ち*', 즉 단 한 명의 승자라고 합니다.

야나이 다다시(이하 생략): 아니, 전 그런 표현은 틀렸다고 말합니다. 일단 '승리勝ち'가 아닙니다. 매출이 작년의 2배가 됐다든가, 아니면 30% 성장, 50% 성장이 계속 이어진다면, 승리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우리도 연간 평균으로 볼 때 (매출 성장세가) 10%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소 뜨는 정도이지요. 상대적으로 다른 기업이 너무 (경영 실적이) 나빠서 눈에 띄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가라앉는데 홀로 뜨니까 좋아 보이는 것이지요. 승리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불황엔 가격이 낮은 제품이 역시 잘 팔리지요. 유니클로도 저렴한 제품입니다. 하지만 저렴하기 때문에 '뜬' 것은 아니지요. 수많은 염가 의류업체가 침몰했습니다. 유니클로는 무엇이 달랐습니까?

불황이든, 호황이든 똑같습니다. 소비자의 수요가 현실로 나타났을 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현재화顯在化*'란 말이 있지요. 잠재 수요를 현실로 내보이는 것이지요. 손님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를 여러 각도에서 생각합니다. 우리가 먼저 손님에게 '혹시 이런 것을 요구하시지 않나요? 우리가 제공해 보겠습니다' 하고 제안하는 것이지요. 손님이 광고를 보거나, 매장에서 '그래, 내가 필요한 것이 이런 것이었어'라고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우린 여기에 충실했지요.

* 분명히 눈에 보이는 형태로 표현하는 것

 

2000년 2600만 장이 팔려나간 플리스 선풍이 좋은 예인 듯합니다. 그때도 일본 경제는 불황이었지요.

플리스란 상품은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소비자들 대부분이 들어본 적이 없었을 뿐이지요. 등산을 하는 사람, 윈터스포츠를 하는 사람들 일부가 아는 상품이었어요. 이것을 겨울용 '후단기普段着*'로 만들어 대대적으로 판매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지요. 다른 사람들은 플리스라면 등산 전문점이나 아웃도어 전문점에서만 판매하는 것, 플리스를 패션 매장에서 파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여겼습니다.

* 평상시에 입는 옷을 뜻하는 일본말

 

하지만 사실은 달랐지요. (기존에) 플리스를 사는 수요 역시 등산 수요보다 후단기 수요 쪽이 컸습니다. 플리스의 가치가 알려진 것과 달랐던 것이지요.

우린 진짜 가치를 제공했고
그러니까 팔린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이노베이션'이지요.

유니클로의 지주회사 '패스트리테일링'의 회계연도는 특이하게 매년 8월에 끝난다. 따라서 패스트리테일링의 2009 회계연도는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시작해 위기가 거의 마무리되는 시점에 끝났다고 할 수 있다. 일본 경제는 미국이나 유럽보다 더 가파르게 하강했다.

하지만 2009년 7월 발표한 2009년 8월기 예상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23% 증가한 1080억엔. 2001년 최고 영업이익 기록을 8년 만에 경신했다. 패닉에 가깝던 불황기에 기록을 경신한 이유는 물론 싼 물건에 손이 가는 불경기의 소비 패턴 덕분이기도 하지만, 이런 일반론만으로 유니클로의 '나홀로 승리'를 해석할 수는 없다.

유니클로처럼 SPAspeciali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모델을 추구해 가격 경쟁력을 높인 기업들 대부분이 이 시절 불황기에는 맥을 못췄기 때문이다.
* 대형 의류 제조 소매업. 자가 상표 부착제 의류 전문점의 줄임말로 기획부터 디자인, 제조, 유통, 홍보까지 상품 생산과 판매의 전 과정을 사내에서 모두 해결하는 패션 브랜드를 뜻한다. 미국 의류기업 갭이 1983년 의류 브랜드 바나나리퍼블릭을 인수한 후 자체적으로 상품을 개발하도록 하면서, 이 같은 업태를 SPA라고 명명했다. 자체 브랜드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중간 유통 단계를 최소화해 제조 원가를 떨어뜨리고, 그만큼 제품 가격을 낮출 수 있다.

일본 경제지 <닛케이日經비즈니스>는 유니클로의 성공 이유를 강한 제조업에서 찾는다.

"SPA모델로 의류 제조업에 진입한 유니클로는 남들이 모르는 자신만의 모델을 창조해 '강한 제조업'으로 진화했다. 매일 이어지는 유니클로의 '가이젠改善*'은 일본 제조업의 모습 그 자체다."
* 도요타가 만들어낸 경영 용어

유니클로가 최고 영업이익 기록을 세운 2001년과 2009년은 모두 일본에서 최악의 불황기로 기록된다. 하지만 유니클로는 이 두 해에 역사에 남을 히트작을 내놓았다. 2001년엔 '플리스', 2009년엔 '히트텍'를 내놨다. 보온 내의인 히트텍는 작년 한 해 동안 2800만 매가 팔렸다. 플리스의 2600만 매 판매 기록을 능가한 경이적 기록이다. 일본 국민 4명 중 1명이 입고 있다는 계산이다.

<닛케이비즈니스>는 "이 상품의 기반은 일본 화학회사인 도레이Toray의 특수 기술로, 세계 최고의 유연함을 실현한 폴리마 구조의 폴리에스테르"라고 설명했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일본의 제조 기술이 유니클로 성장의 핵심 비결이라는 것이다.

히로시마에서 긴자로, 긴자에서 세계로

4년 전 도쿄에 왔을 때 긴자銀座에 유니클로 매장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저가 의류로 대표되는 유니클로 이미지와 명품 거리로 대표되는 긴자 이미지는 어울리지 않았거든요.

기업은 시대와 성장에 맞춰 변화해야지요. 우리 기업은 원래 제 아버지가 양복 정장을 팔던 기성품점에서 출발했어요. 여기서 남성 캐주얼을 조금씩 팔기 시작했지요. 이것이 캐주얼 전문점으로 변했고, 캐주얼 체인점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처음엔 주로 교외 대로변roadside에서 싼 캐주얼을 파는, 그런 평범한 체인점이었어요.

대로변에서 시작한 첫 유니클로 매장 ©패스트리테일링그러다 '대로변에서만이 아니라 도심에서도 팔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하라주쿠原宿*에 매장을 만들어 진출했지요. 플리스 선풍은 하라주쿠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어, 유니클로도 되네' 이런 확신이 생긴 뒤 긴자에 도전했지요.

* 주로 10~20대가 몰리는 도쿄 쇼핑가

 

도쿄 긴자는 상징적인 곳입니다. 긴자에서 성공하면 세계 어디서든 성공할 수 있다는.

에르메스·구찌·아르마니 등 유럽 브랜드들은 모두 긴자의 가장 좋은 지점에 가장 큰 점포를 냅니다. 우리 회사가 어떤 회사이고, 어떤 것을 파는가를 가장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곳이지요.

유니클로 긴자점 ©패스트리테일링긴자에 진출한 것은 하라주쿠의 성공 직후에 '해외에서도 해보자'는 생각이 들 때였습니다. 갑자기 해외로 가면 될 리가 없으니까 세계적 브랜드가 모인 긴자에서 먼저 해보자는 생각이었지요. 긴자에 들어가면서 유니클로가 비로소 일본의 '내셔널 브랜드'로서 위치가 확립된 것입니다. 그것이 제 1기이지요. 제 2기는 해외 진출입니다.

 

긴자에 진출한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요. 로드사이드 패션이 긴자에서도 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일본 소비자에게 세상의 옷이란 두 종류밖에 없었지요. 값비싼 브랜드 의류와 값싼 노no브랜드 의류. 값싼 브랜드 의류, 결국 싸고 좋은 옷을 제공하지 못하면 도심에서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판매만이 아니라) 기획에서 제조·생산까지 스스로 하는 체제를 시작했어요.

 

유니클로 1호점을 히로시마에서 만든 것은 1984년. 1990년쯤 중국에 생산기지를 만들면서 SPA 체제가 확립됐습니다. 이 체제로 지금까지 19년 동안 '싼 것=나쁜 것' 이미지를 불식시켜 나갔지요. 그러다 보니 교외 로드사이드 점포가 일본 1등이 됐습니다.

 

긴자와 하라주쿠에서 벌이는 스웨덴의 SPA 브랜드 H&M과의 경쟁이 화제를 일으킵니다. 거대한 경쟁자가 나타났는데요.

다른 사람들은 H&M이 오면 내 매출을 빼앗길 거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경쟁이야말로 수요를 환기시키는 중요한 동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비교할 수 있는 곳에서 경쟁이 일어나면 유니클로도 팔리고, H&M도 팔리지요. 우리 업계는 이런 원칙을 잊고 있습니다.

상상력과 실행력을 가진 토털 프로듀서

개인적으로 유니클로 매장엔 꼭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이 있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 계절엔 어떤 물건이 나왔나' 궁금해서 가면 제가 생각하지 못한 제가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을 발견하게 되지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면 기쁘군요. 전문가란 그래야지요. 손님에 관해 손님 이상으로 많이 알아야 합니다. 손님 이상으로 느껴야 하고. 손님과 비슷한 정도의 지식으로, 손님이 요구하는 구체적인 무언가를 제공하려고 하면 전문가가 아니지요. 손님들에겐 이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것이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상행위의 전체 조합을 꾸미는 것이 전문가입니다.

유니클로의 캐시미어 터틀넥스웨터 ⓒ조선DB일본 제품의 문제점은 물건은 좋지만 불황만 되면 팔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009년 일본 경제가 처한 어려움도 그렇지요. 마케팅 기술이 모자라다고 할까.

물론 제조 기술만으론 팔리지 않아요. 고도의 제조기술을 가져도 우선 제품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고, 손님에게 도움을 주는 물건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기 플리스 천이 있어도, 천 자체는 사는 사람 입장에선 의미가 없지요. 그저 따뜻한 천이지요. 이것을 재킷으로 만들어 겨울에 입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 마케팅 기술의 문제가 아니지요.

'손님에게 무슨 물건이 좋은가'는
마케팅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경영자, 장사를 하는 상인
자신이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본엔 원래 직인職人 기질의 사람들이 많지요. 직인 기질보다 상인 기질이 더 필요합니다. 이런 물건을 혹시 이렇게 팔아보면 어떨까, 이런 방식으로 광고를 해서 이렇게 팔면 팔리지 않을까 하는 상상력과 실행력을 가진 토털 프로듀서가 필요한 것이지요.

 

'토털 프로듀서'를 위한 구체적인 방식은?

우리 회사는 기획, 생산, 마케팅, 머천다이징, 판매, 이런 각 분야의 사람들이 원테이블 미팅을 통해 결정하지요. 하나의 크로스 펑크션cross function 공간에서 시장에서 팔리는 것, 우리가 팔고 싶은 것, 팔기 위해 요망되는 것을 늘 함께 이야기하면서 상품을 만들지요.

 

회장님도 직접 참가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참가할 수 있으면 참가합니다.

 

제품 전단지를 만드는 것까지 관여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영자로서 그런 구체적인 관여가 필요할까요?

필요합니다. 전단지는 신문에 끼워 매주 배달되지만 전체 프로세스 가운데 유니클로를 소비자에게 맨 처음 알리는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부서 담당자가 만들면 담당자의 '사정'에 따라 전단지를 만들어요. 자기 부서의 상품, '우리가 만든 것인데 팔리지 않으니 이번 기회에 팔고 싶다'는 부서 사정이 전단지에 투영됩니다. 그런 사정에서 자유로운 입장이 경영자이니까요. 유니클로 전체 입장에서 팔고 싶은 물건, 유니클로 전체의 의도를 전단지에 반영할 수 있지요.

 

그러니 '원맨one man기업'이란 소리를 듣습니다.

좋은 의미의 원맨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회장, 사장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물건은 팔리지 않아요. 직원들이 열심히 할 때 팔리는 것이 상품이지요. 물론 제가 원맨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물건이 시장에서 팔리는 것은 제가 원맨이기 때문이 아니라 직원이 열심히 일하는 회사 물건이니까 팔리는 것이지요. 직원 전체가 참가하는 회사이지요. 다만 누군가 중심에 서 있지 않으면 안 되니까 있을 뿐이지요.

 

2009년에 환갑(1949년 2월 7일 생)을 넘기셨는데, 후계자를 생각하실 때가 아닌가 합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원맨 기업은 '원맨'이 사라지는 순간, 흔들리는 경우가 많지요. 어떤 후계자를 육성하고 계십니까?

65세까지는 지금 하고 있는 현실적 경영, 일상적 집행을 그만두려고 합니다. 결국 후계자는 지금 제가 일상에서 하는 집행이 가능한 사람이어야겠지요. 그런 후계자를 육성하는 것이 지금 제 임무 중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론 한 사람이 끌고 가는 체제는 안 될 것입니다. 여러 팀을 만들고, 팀을 끌고 가는 리더를 육성해야겠지요.

  • 기사 게재일: 2009년 9월 19일
  • 필자: 조선일보 선우정 기자

#3 2003~2008년, 불황 속 나 홀로 승리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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