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은 솔직히 실망이다

Editor's Comment

콜롬비아인 동료와 함께 창업을 시작한 박인 저자가 택한 나라는 에스토니아였습니다. 에스토니아에서 창업을 준비하며 보고, 듣고, 경험한 일들을 글로 기록하는 와중에도 하루하루 다이나믹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e-네이션, 에스토니아를 가다 - 디지털 노마드의 창업기'의 첫 번째 미리보기에서는 에스토니아의 첫인상과 이곳을 택한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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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단 이미지 ©Ilya Orehov/Unsplash

정말 작다
4월 중순인데 제법 춥다
도시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4월 12일. 탈린(Tallinn) 공항에 내려서 숙소까지 택시를 타고 오면서 느낀 첫인상이다. 도시가 워낙 작아서 공항에서 숙소까지 10여 분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그사이 러시아 출신 택시 기사와 나눈 대화 역시 실망스럽다. 언제쯤 날씨가 따듯해지냐는 나의 질문에 택시 기사는 피식 웃으며 답한다. "아마도 내년에?"

  • 전자 거주권(e-residency) 신청부터 최종 발급까지 걸린 시간: 65일
  • 전자 거주권을 활용하여 수수료 납부 후, 법인 설립까지 걸린 시간: 20일

즉, 전자 거주권 신청부터 에스토니아 법인 설립까지 걸린 시간은 총 85일이었다. 법인 설립 소요시간 15분, 완벽에 가까운 창업 지원 시스템을 갖췄다는 떠들썩한 언론 보도*와는 달리, 하나하나 직접 경험한 바로는 거의 석 달이라는 제법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뿐인가. 생각보다 느린 인터넷 속도, 무뚝뚝한 에스토니아 사람들, 오후 7시 이후에는 고요해지는 적막한 도시를 마주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심지어 한 달 동안 묵게 될 숙소 주인은 매우 궁금하다는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여기에 한 달씩이나 머무는 거야?"

e-네이션은 보이지 않고, 중세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도시만 발견할 수 있었다. ⓒ박인

그렇다
난 실망했다

에스토니아는 홍보의 귀재일 뿐인가? 막상 도착해보니 도대체 뭐가 디지털화된 건지, 몰려들었다는 스타트업들은 어디에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상상했던 가장 진보된 국가, e-네이션을 찾을 수 없어 당황했다. 법인 설립을 위하여 에스토니아를 선택한 건 실수였을까? 나는 다시 한번 곰곰이 법인 설립 프로세스와 지금까지 법인 설립을 검토했던 국가들을 되새겨 보았다.

디지털 노마드의 창업을 환영하는 유일한 국가

창업을 맨 처음 고려했던 국가는 당연히 한국이었다. 그러나 나의 공동 창업자는 콜롬비아인이다. 한국에서 외국인과 창업을 하는 것은 매우 까다롭다. 일단 해당 외국인이 외국인등록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 등록번호는 한국에 90일 이상 체류하는 외국인에게만 주어진다.

 

해당 비자는 어떻게 구해야 할까? 사업자 등록을 위한 비자는 D8, D9, F4 비자로 매우 제한적이다. D8, D9 비자의 경우 최소 1억 원 이상 투자를 해야 주어지며, F4 비자의 경우 재외동포에게 한정하여 주어진다. 기술창업비자*, 무역비자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학사 이상의 학위가 필요하며 지적재산권 보유 등 조건이 까다롭다.

* 관련 자료: 기술창업이민 개요 (출처: 하이코리아)

 

홍콩이나 싱가포르의 경우는 다르지 않을까? 미국 델라웨어는 어떨까? 시야를 해외로 돌려 근 한 달간 현지 에이전시를 컨택하며 자료를 조사했다. 그러나 번번이 거주지(residency) 중심의 창업 환경에 가로막히곤 했다. 디지털 노마드는 정해진 거주지가 없는 사람을 뜻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행정·금융기관은 거주지가 명확하지 않은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기에 은행 계좌를 열어주지 않으며, 창업 서류에 승인 도장을 찍어주지 않는다.

에스토니아는 디지털 노마드를 단순히 이해할 뿐만 아니라, 전자 거주권을 제공해 디지털 노마드를 적극적으로 환영한다.(Estonia doesn't just understand digital nomads, but actively welcomes them with an offer of e-Residency.)

'법인 설립 자체가 도전이군…' 중얼거리며 머리를 쥐어뜯다가 마주친 문구다. 전자 거주권은 무엇이며, 에스토니아는 정말 디지털 노마드의 창업에 우호적이란 말인가? 그렇게 구원의 손길처럼 에스토니아는 나타났다. 그렇다. 에스토니아는 날씨도 좋지 않고, 인구수도 100만여 명에 불과한 작은 국가이다. 탈린 역시 디지털화된 도시도, 유럽의 스타트업 허브도 아닐 수 있다.

에스토니아 최초 코워킹 스페이스 Lift 99의 한쪽 벽면. "의료 서비스 웹사이트를 구축할 때 에스토니아인에게 연락했어야 했다."라고 써 있다. ⓒ박인

그러나,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디지털 노마드의 법인 설립을 지원하는 국가가 에스토니아다. 정부 차원에서 전자 거주권을 제공하여 거주지 중심이 아닌 온라인 중심의 창업 환경을 최초로 조성했다. 우울한 날씨 속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여기 잘못 온 건가 고민하던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내가 잘못된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야!'

에스토니아는 한국과 닮았다

우리는 해가 없어, 있다 하더라도 빛나지 않을걸!(We don’t have a sun even if we did, it won’t shine!) 에스토니아인이 되는 건 정말 별로야!(To be Estonian - it sucks!)


- Tujurikkuja 5, 'Olla eestlane on halb'

 

* 에스토니아의 험한 역사와 역경을 묘사하며 조회 수 117만 회를 달성한 에스토니아 인기 힙합 ⓒCatapult Films

 

솔직히 에스토니아는 발틱 국가 특유의 우중충한 날씨와 날로 감소하는 인구로 거주하기에 매력적인 국가는 아니다. 서유럽의 스타트업 허브도 없고, 동유럽처럼 물가가 저렴하지도 않으며, 남유럽의 멋진 기후와 음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북유럽처럼 디자인으로 유명한 것도 아니다. 내가 탈린에 도착해 실망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러나 그렇기에 에스토니아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혁신만이 유일한 해답이었던 것이다.

 

바로 그 혁신이 나를 에스토니아로 이끌지 않았는가? 근 한 달간 머물며 관찰한 에스토니아는 한국과 닮은 구석이 많았다. 국경을 맞댄 강대국 러시아에서 독립을 간신히 쟁취한, 타고난 천연자원도 없는 이 작은 나라는 서유럽으로 빠져나가는 인재를 막아야 하고, 날로 감소하는 출산율과 인구절벽에 대처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메이드인 에스토니아를 매번 강조하며 글로벌 스타트업 '스카이프'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 찬 모습 역시 꽤 한국과 닮았다. 무엇보다 파괴적 혁신만이 살 길이라는 점에서 특히!

Lift 99의 또 다른 벽면. "가장 경쟁력 있는 정부는 싱가포르, 한국, 그리고 에스토니아에 있다."라고 써 있다. ⓒ박인

예고하자면, 이 글은 장밋빛 미래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에스토니아에서 근 한 달간 좌충우돌하며 직접 겪어낸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 이야기다. 내가 겪은 시행착오가 해외 창업을 고려하는 예비 창업가, 디지털 노마드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스타트업처럼 치열하게 고민하고, 재빠르게 행동으로 옮기며, 파괴적 혁신으로 살길을 찾는 에스토니아는 그 자체만으로 놀랍고, 자극이 된다. 그들은 전자 거주권이라는 프로그램 하나만으로 높은 인지도를 형성하였고 돈을 벌어오는 데까지 성공했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유치와 비교해볼 때 투자 대비 효율이 훨씬 높아 보인다. 국가 자체가 열정과 혁신에 대한 의지로 가득 찬 스타트업 국가, 에스토니아에서 경험한 생생한 창업기를 하나하나 풀어내도록 하겠다.

 

[e-네이션, 에스토니아를 가다 - 디지털 노마드의 창업기]

 

창업했다고? 어디서? 에스토니아?! 왜 저자는 많고 많은 국가 중 에스토니아에서 창업을 시작했을까요. 도전과 좌절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생생한 창업 분투기가 당신을 기다립니다.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