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서 나아가 완벽한 서재를 꿈꾸다
Editor's Comment
'완벽한 서재'를 꿈꾸게 된 이유를 되새겨보면 책을 좋아하고 수집하는 습관도 있었지만 아르바이트의 효율을 위해 어쩔 수 없는 탓도 있었습니다. 제가 주로 했던 아르바이트는 글쓰기였습니다. 직장 일과는 별개로 사보나 사외보, 출판사 청탁 원고 쓰는 일을 자주 맡아 했었습니다. 신문이나 잡지에 이런저런 주제로 연재 글을 쓰기도 했죠.
유유출판사와 PUBLY가 함께 진행하는 특별한 프로젝트! '유유출판사 X PUBLY - 완벽한 서재를 꿈꾸다'는 <필사의 기초>, <오토바이로 일본 책방>의 조경국 저자가 헌책방 운영 경험을 녹여 책을 사랑하고, 책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세 번째 미리보기 글에는 헌책방지기로서 조경국 저자가 PUBLY 독자에게 보내는 인사말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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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단 이미지 ©Samuel Zeller
이름을 내고 글을 쓰기도 했고 어떤 경우엔 아예 이름 없이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름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아르바이트가 끊기지 않는 게 먼저였으니까요. 아르바이트의 효율을 높이는 길(특히 직장을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그러니까 글쓰기의 효율을 높이는 방법은 미리 그 분야의 책을 읽거나 자료로 쟁여두는 것 외엔 별다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주제에 대한 책과 자료를 잘 보관하고 분류해두면 그게 바탕이 되어 또 다음 글쓰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더군요.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죠. 잡지에 <영화 속 카메라 이야기> 원고를 오래 썼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모아 두었던 책과 자료들이 나중에 다른 신문사에 <카메라 히스토리아>를 연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직장을 다니며 꽤 오래 아르바이트 글쓰기를 해왔습니다. 유유출판사와 PUBLY의 <완벽한 서재를 꿈꾸다>도 어떻게 보면 아르바이트 글쓰기의 연장선으로 보아야겠군요.
누구나 저자가 될 수 있는 PUBLY의 독자라면 글쓰기에도 많은 관심이 있을 것입니다. 자료를 저장하고 열람할 수 있는 효율적인 디지털 도구들이 많지만 기본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디지털 도구가 발전을 거듭해도 인간의 지식은 오랜 세월 책에 기반을 두었고 그 지위가 당장은 흔들릴 것 같진 않군요.
서재는 독서가의 편안한 안식처이기도 하지만 글쓰기를 하려는 사람에겐 작업실이자 도구상자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서재가 있다 해도 정리하지 않는다면 쓸모가 없습니다.
'완벽한 서재'란
단순히 책을 두는 공간이 아니라
자신만의 글쓰기를 위한
정리된 도구 상자를
갖는 일과 같습니다
어느 애서가의 책 정리법
이 글을 읽는 분이라면 분명 자신만의 특별한 책 정리법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저에게는 정리해야 할 공간이 책방과 서재, 두 곳입니다. 책방은 끊임없이 책이 늘어나는 터라(헌책방이라 어쩔 수가 없어요) 책을 계속 높이 쌓을 수밖에 없는 자유방임형에 가깝고, 약 9제곱미터(2.7평, 한때 창고 방으로 사용)인 서재에서는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여러 정리법을 혼용합니다. 1천 권 정도의 책이 있는 제 작은 서재가 앞으로 소개할 책 정리법을 풀어 가는 중심입니다. 저는 헌책방 책방지기라는 사실만 제외한다면 어떻게든 책을 많이 소장하고픈 애서가와 다름없습니다.
책 정리법의 핵심은 어쩌면 '책 욕심을 버리는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책을 사들이는 일은 애서가에겐 억누를 수 없는 본능과 같습니다. 이들에게 책 욕심을 버리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겠죠. 책에 대한 욕망을 버릴 수 없다면 내가 가진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서 더 많은 책과 더불어 사는 수밖에요.
약 2.7평 되는 저자의 작은 서재 ⓒ조경국
저의 책 정리법은 먼저 공간을 구분하는 겁니다. 책상과 좌, 우, 뒤 서가로 구분하고 여러 가지 기준을 두고 정리합니다. 책상 위는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평소 필사하는 책과 다이어리, 필통, 구독하는 잡지(4종류) 이외에는 가능한 한 올려놓지 않습니다. 작업을 해야 할 때도 깨끗한 책상과 그 위에 항상 제 위치를 잡고 있는 책과 물건은 일상을 보호하는 울타리 역할을 합니다.
왼쪽 서가는 출판사(까치, 민음사 등), 저자(버트런드 러셀), 시리즈(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주제(게으름), 과월호 잡지, 수집용 도서, 문고판 등이 다양한 기준에 따라 경량 랙 서가에 겹으로 꽂혀 있습니다.
책상 앞에 앉으면 바로 손이 닿는 오른쪽 서가는 직접 만들었습니다. 모두 일과 관련한 책들입니다. 서점, 책에 관한 책, 글쓰기에 관한 책, 그리고 만화책과 그래픽 노블, 그림 그리기와 관련된 책들이 주로 꽂혀 있습니다. 원래 헬멧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장식장은 판형이 큰 책을 꽂는 서가로 역할이 바뀌었습니다. 화보, 잡지가 주로 꽂혀 있죠.
뒤쪽 서가에는 현재 관심 있거나 공부하는 주제와 관련된 책을 모아 두었습니다. 모터사이클, 죽음과 범죄, 추리소설, 에세이 그리고 가장 최근에 구입한 책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책을 세울지 눕힐지, 가나다 순으로 꽂을지 크기 순으로 꽂을지, 책싸개를 할지 말지와 같은 세부적인 일은 그다음 문제죠. 가끔 위치가 바뀌기도 합니다. 세부 내용은 제가 보고 듣고 읽고 겪은 걸 바탕으로 쓰겠습니다.
사실 <부생육기>의 주인공 운(芸)처럼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책 정리법은 따로 필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운은 <부생육기>를 쓴 심복의 아내입니다. 청나라 시대 선비 심복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가 생전 책을 사랑했던 일을 회상합니다. 책 정리의 기본은 결국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겠지요. 아래 문단은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부생육기>에서 옮깁니다.
그(운)는 갈피가 떨어진 서적이나 모가 이지러진 서화는 오히려 소중히 여겼다. 서적으로서 갈피가 떨어진 것은 반드시 찾아 모아서 분류 편집하여 책을 엮고, '단장의 편집'이란 이름을 붙였다.
서화로서 찢겨나간 것은 또 반드시 헌종이로 때워 온전한 한 폭이 되게 한 다음 빠진 곳을 나더러 써넣거나 그렇게 하고는, 이것을 말아서 '여운의 감상'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바느질이나 부엌일의 틈을 타서 운이는 온종일 이런 일을 꼬물꼬물하면서 조금도 귀찮게 여기지 않았다.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책을 좋아하는 마음과 게으름이 완벽하게 합체되어 책이 상하지만 않게 잘 꽂아 두고 보관하면 된다는 주의지만 이왕이면 효율적인 방법으로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정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분모가 있더라도 처한 상황은 다를 테니까요.
책을 위해 내어 줄 수 있는 공간이 다르고, 가진 책의 양이 다르고, 좋아하는 장르도 같을 수 없으니까요. 분별없이 책을 사 모으다 결국 헌책방을 열고 계속 책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자의 철없는 고백쯤으로 여기고 가볍게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그러모은 책들 때문에 고생하신 어머니, 옥, 목, 각…… 그리고 무려 세 번이나 빠짐없이 자기 일처럼 책방 이사를 도와준 인식 씨에게 고마움 전합니다.
진주 소소책방에서 조경국
소소책방의 인스타그램 일부 ©_sosobook_/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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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출판사 X PUBLY - 완벽한 서재를 꿈꾸다]
자신만의 서가 만드는 법, 책 정리법, 특별한 책 보관하는 법, 망가진 책 수선하는 법 등 헌책방 책방지기가 책 무더기 속에서 책과 벌인 고군분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