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듯 유럽인 듯 묘한 매력의 상하이

Editor's Comment

이번 프로젝트는 18세기 프랑스 지식인들의 살롱 문화를 재현한 듯한 상하이 문학 페스티벌을 소개하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문수미 저자는 충동적으로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해 회사를 그만두고 상하이로 어학연수를 떠나, 언어도 사람도 낯선 그곳에서 이 문학 페스티벌과 사랑에 빠진 직장인입니다. 저자는 오너 셰프의 철학에서 시작된 한 레스토랑의 이 페스티벌이 문학과 예술, 그리고 만남을 추구하는 가장 성공적인 사례라고 소개합니다. '레스토랑, 책, 그리고 살롱 문화 - 상하이 문학 페스티벌'의 첫 번째 미리보기를 통해 그 분위기를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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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단 이미지 ©M on the Bund

'마흔이면 한창 말 배울 나이다'. 마음을 다잡으며 상하이로 중국어 어학연수를 떠났다. 이유는 단순했다. 몇 달 중국어 학원을 다녀보니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딱히 계획 없이 직장은 그만뒀으며, 베이징은 공기가 좋지 않으니 상하이를 선택한 것이다.

 

상하이는 넓었다. 공식 면적은 서울의 10배.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는 서울의 그것보다 훨씬 멀었다. 시내 쇼핑몰도 과하게 넓어 화장실을 찾으려면 한참 걸어야 했다. 거리와 크기에 대한 중국인들의 개념은 우리와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중국의 어촌 마을이었던 상하이는 1842년 난징조약에 의해 개항한 이후 프랑스, 영국, 미국 등 서양 문물을 수용하면서 급속도로 변화한 도시다. 19세기 말 HSBC를 비롯한 유럽 금융기관이 잇달아 상하이에 진출했고, 1920~30년대 황금기를 맞았다. 이때 상하이에서는 재즈와 아르데코 스타일이 유행했다고 한다.

케세이 영화관(궈타이 띠엔잉위엔, 国泰电影院)은 1932년 개장한 상하이 최초의 영화관이다. 체코 출신 건축가 곤다(C.H. Gonda)의 작품으로 전형적인 아르데코 스타일이다. 내부는 리노베이션을 거쳐 최신 극장과 견줄 만하다. ©문수미

낯선 대도시에서 소외를 극복한 방법

이 넓고 매력적인 도시에서 친구 한 명 없고 말도 제대로 못 했다.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외로움이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유일한 해방구는 스마트상하이(SmartShanghai)라는 웹사이트였다. 나처럼 중국어 못 하는 외국인들에게 이곳은 네이버이자 지마켓이고 중고나라였다. 모든 정보를 구할 수 있었다.

 

이 사이트에서 맛집과 전시회 정보를 찾다가 상하이에서도 영어로 진행하는 출판기념회, 소규모 세미나, 좌담회가 심심찮게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 행사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언어가 익숙하지 않은 타지에서 타인과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큰 위안이 됐다.

문화충격이었다
자국어가 아닌 언어와 다양한 주제로
여러 모임이 열리는 게 신기했다

한국에서 영어로 진행하는 행사는 대상이 해외 진출에 관심 있는 기업인 등 매우 한정적인데, 이곳에서 다루는 주제는 굉장히 다양했다. 현대 중국의 여성 인권, 이슬람 테러리즘과 ISIS, 북한에서 사진 및 영화 촬영하기 등 중국 관련 내용뿐만 아니라 시의적인 국제 이슈도 눈에 띄었다.

 

자국어로 제작된 콘텐츠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즐기는 행사의 종류도 다양할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매우 훌륭하다는 사실이 신선했다. 상하이가 오래전부터 국제화된 도시이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외국인이 많아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콘텐츠에 대한 현지인의 거부감도 비교적 낮았다.

일찍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유럽과 중국의 정취를 동시에 뽐냈던
상하이의 묘한 매력은
지금도 유효하다

상하이는 중국의 다른 도시보다 차라리 뉴욕과 더 비슷하다.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곳이다. 마음만 먹으면 취향에 맞는 문화생활을 즐기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고, 비슷한 성향을 가진 친구를 사귀기도 어렵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중국어를 공부하는 시간 외에도 바빠졌고, 말이 늘었으며,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레스토랑은 문학을 이야기하는 살롱이 된다

상하이는 트렌드에 민감한 도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와이탄의 고급 레스토랑 엠 온더 번드(M on the Bund)에서 매년 3월 개최하는 상하이 문학 페스티벌(Shanghai International Literary Festival)이다. 
 

엠 온더 번드는 상하이 대표 명소인 와이탄에서 처음으로 고급 다이닝을 선보인 레스토랑이다. 국내 매체에서 '상하이 최고의 레스토랑'이라고 꼽기도 했다.* 음식 맛으로만 따지면 다른 훌륭한 곳도 많지만, 와이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 오랜 시간 훈련받은 직원들의 서비스 등을 고려하면 상하이 최고 수준이다.

* 관련 기사: 세계 3대요리 맛보자…상하이 '맛집7' (한국경제, 2010.4.27)

©M on the Bund

오너인 미셸 가넛(Michelle Garnaut)은 문학 페스티벌 역시 정성껏 응대하는 일(hospitality)의 일종이며, 레스토랑은 배를 채우는 공간이 아니라 미식, 지식, 문화 및 교양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 소규모 음악회, 영화 상영회, 출판회 등을 꾸준히 개최하는 이유다.

이곳은 페스티벌 기간 동안
단지 식사하고 술 마시며
그 대가로 비용을 지불하는
공간이 아니다

이곳은 저자의 입을 통해 활자가 생명을 얻고, 수십 명에서 많게는 200여 명의 관객이 지적 호기심을 발산하는 공간이며, 몰랐던 세계에 눈을 뜨는 기회의 장소다. 페스티벌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일종의 연대 의식이 형성돼 새로운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2016년, 처음으로 상하이 문학 페스티벌에 참석했다. 관객이 착석하고 진행자가 마이크를 잡은 순간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현실이 됐고, 그곳은 순식간에 프랑스의 살롱으로 변했다.

영화 &#60;미드나잇 인 파리&#62;의 한 장면. 예술가들이 한데 모여 예술과 문학에 대해 논하는 살롱 문화를 낭만적으로 연출했다. &#169;Sony Classics

나는 어느덧 살롱에서 유명 작가와 마주 앉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떨어져 있는 가족, 친구들과 그 순간을 나누고 싶었다. 그 순간 상하이가 많이 좋아졌고, 처음으로 앞으로 이 도시에서 잘 지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문학 페스티벌을 통해 한 번 더 성장했다

2016년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으로 대한민국이 떠들썩했다. 한강 덕분에 국내에도 맨부커상의 위상이 많이 알려졌다.

상하이 문학 페스티벌에서는 맨부커상 수상자를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올해는 2016년 수상자인 폴 비티(Paul Beatty), 2014년 수상자 리처드 플래너건(Richard Flanagan)이 상하이 문학 페스티벌을 찾았다. 객석은 가득 찼고 그 공간에는 묘한 긴장감과 흥분, 호기심이 넘쳤다.

&#169;M on the Bund

한국에선 오히려 접하기 힘들었던 북한 관련 콘텐츠도 인상 깊었다. 파이낸셜타임스 세션에서 국제 이슈 전문 기자 7명이 북한 관련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이고, 북한 관광 전문 여행사 고려투어의 영국인 대표는 수년간 북한을 드나들며 수집한 아이템을 통해 북한의 그래픽 디자인을 소개했다. 
 

그렇게 이전까지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터키 정부가 학살 위기에 처한 유대인을 대피시킨 이야기를 그 사실에 기초해 소설을 쓴 작가에게 직접 들었고, 이란 출신 소년이 난민 신분으로 호주에서 정착하고 성장통을 겪은 이야기도 접했다. 다양한 주제를 이야기하고 나누며 성장하는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3년째 상하이에서 살면서 다녀본 숱한 행사 중 언제나 상하이 문학 페스티벌을 최고로 꼽는다. 단지 맨부커상 수상 작가가 와서, 베스트셀러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가 아니다.

이 페스티벌은 낯선 도시에 마음을 붙이게 된 계기였고, 상하이가 왜 좋은지 설명할 때 꼽는 첫 번째 이유이자, 중국보다 더 넓고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해 준 창구였기 때문이다.

 

[레스토랑, 책, 그리고 살롱 문화 - 상하이 문학 페스티벌]

 

충동적으로 떠난 상하이 어학연수에서 문학 페스티벌을 만나 이 도시와 사랑에 빠진 문수미 저자가 씁니다. 저자는 오너 셰프의 철학과 고집에서 시작한 한 레스토랑의 문학 페스티벌에서 18세기 프랑스의 살롱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그 분위기를 느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