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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족 같은 회사의 양면

한주희 한주희 외 1명
가족 같은 회사의 양면
회사는 '또 하나의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스포츠팀이지, 가족이 아니다.

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가 조직 문화에 관해 남긴 말입니다. 다시 말해, 회사 구성원은 프로 축구팀처럼 각자의 위치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일하는 팀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그는 회사가 무조건적인 사랑을 바라는 가족이 아니라고 덧붙입니다. 네, 맞는 말입니다. 회사 생활과 사생활을 철저하게 분리하길 원하는 이들은 '가족 같은 회사'를 원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 관련 글: Your Company Is Not a Family (Harvard Business Review, 2014.6.17)

 

많은 회사가 사내 분위기가 '가족 같다'고 내세우지만, 많은 직장인들이 '가 족같은 회사'라 띄어 쓰며 비꼴 정도로 부정적인 인식이 있으니까요. 하물며 하상욱 시인은 이런 시를 짓기까지 합니다.

어쩌다
가족이

이렇게
됐을까

- 하상욱 단편 시집
<가족 같은 회사> 중
그럼 러쉬코리아는 가족 같은 회사일까요? 이 질문에 어떤 동료가 '가족 같은 분위기의 회사'가 더 적합한 표현인 것 같다고 정정해주었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서 바로 동의했습니다. 가족 같은 분위기를 지향하기는 하지만, 완전히 가족과 똑같이 동료들 간의 무조건적인 이해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어찌 됐든 대답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가족'이라 할 때 떠올리는 이미지가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러쉬코리아 사무실 전경 ©쥬시/LUSH누군가는 사생활까지 함께 하는 조직의 모습을 생각할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정서적 안정과 보살핌을 주는 가족을 상상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많은 가족들의 모습을 떠올린다면, 저는 러쉬코리아야말로 바로 '가족 같은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러쉬코리아는 임직원을 '해피 피플'이라고 부르며, 가족같이 배려하고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러쉬코리아가 지향하는 '가족' 같은 분위기가 무엇인지 소개하겠습니다.

회사에서 먹는 아침식사, '얼리버드 밀'

러쉬코리아의 아침식사 제도 '얼리버드 밀'은 조금 독특합니다.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회사는 많습니다. 하지만 한 명이 전담해서 직접, 정성스럽게 아침을 선물처럼 준비하는 회사는 거의 없을 겁니다. 러쉬코리아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빵 혹은 밥을 준비해주는 친구, 비타민 대리가 있습니다. 비타민 대리는 얼리버드 밀의 탄생 비화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처음엔 지각을 없애자는 취지였어요. 늦게 오는 사람에게 경고를 하기보다, 일찍 오는 사람에게 상을 주고 싶다는 대표의 뜻이기도 했고요. 

다시 말해, 얼리버드 밀은 9시 이전에 출근하는 이들에게 주는 일종의 선물인 셈입니다.

러쉬코리아의 아침식사 제도 '얼리버드 밀' ©쥬시/LUSH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식사를 준비하고 내놓는 과정입니다. 피플 케어(People Care) 담당자인 비타민 대리가 직접 빵을 엄선해 구입하고, 가끔은 그녀가 직접 밥을 해 주먹밥을 정성스러운 손길로 꾹꾹 뭉쳐줍니다. 중앙일보 기자가 취재를 왔다가 왜 회사에 밥솥이 있냐고 물은 적도 있습니다. 그럼 우리 해피 피플들은 대답합니다.

네, 맞습니다
러쉬코리아는
함께 밥을 먹는 회사입니다

따뜻한 빵(혹은 밥)을 먹어 본 직원이라면 마음마저 따뜻해지는 '밥 정'에 녹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헐레벌떡 출근길에 오르는 경우가 많은데, 든든하게 아침 식사를 하면 일종의 애사심이 생긴다고 할까요? 실제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87%가 '회사에서 아침을 챙겨준다면 먹겠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또한, 아침 식사 시간은 오물오물 밥을 먹으면서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소통의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 관련 기사: 직장인 54% "아침식사 안하고 출근한다" (이데일리, 2017.8.5)

아이와 반려동물이 공존하는 일터

회사 사무실에 아이나 강아지까지 데리고 올 수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종종 대기업에서 상상할 수 없는 진풍경이 펼쳐집니다. 강아지들끼리 사무실을 운동장 삼아 서로 뛰어다니면서 놀던 날도 있습니다.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직원들이 있어, 임시 공휴일이나 징검다리 휴일 같은 상대적으로 직원 수가 적은 날에만 비공식적으로 반려동물이 함께 출근합니다.

사무실을 방문한 '호두' ©바이올렛/LUSH아이들의 사무실 방문은 모두가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엄마나 아빠가 어떻게 일을 하는지도 볼 수 있고, 무엇보다 아이가 한 번 회사를 방문하면 해피피플 모두가 하이톤이 됩니다. 아이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친근감 지수는 본능적으로 올라가게 되지요.

 

이 글을 쓰고 있는 2017년 11월 24일에는 한 친구가 회사를 방문했습니다. 바로 동료의 아이 하윤이입니다. 삼삼오오 하윤이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꿇거나 앉아서 말을 걸고, 배꼽을 누르면서 장난을 쳤습니다. 서먹했던 분위기도 잠시, 아이가 웃을 때마다 모두의 입꼬리는 자동반사적으로 올라갔습니다. 사무실에 그 누구도 채워줄 수 없는 에너지를 꼬마 친구가 충전해주고 갔습니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육아 문제를 그 어떤 다른 회사보다 편하게 의논할 수 있는 것은 큰 장점입니다. 회계팀의 한 팀장은 "가족 같은 분위기다 보니 상대적으로 집안 문제나 아이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저도 동료의 아이나 반려동물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꼭 안부를 묻게 되더군요. '일하는 엄마'인 동료의 경우, 아이가 아프면 잠도 설치고 회사에서도 걱정을 하기에 따뜻한 위로를 건넵니다. 제가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지만, 함께 걱정하는 마음은 전달이 되는 것 같습니다.

 

업무 효율을 따지는 회사라면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업무로 묶인 사이에 굳이 사생활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경우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일하는 공간은 무엇보다 '팀워크'가 발휘되는 공간입니다.

구성원들이
서로를 배려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일 때,
신뢰하면서
협업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구성원의 특별한 날을 기념하며 파티를 열어주는 문화도 독특합니다. 매달 말이 되면 알록달록 고깔모자 쓰고(조금 민망하긴 합니다), 케이크와 간식을 나누며 서로의 탄생 달을 축하합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비혼식'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5년 이상 근속한 임직원이 독신을 선언할 경우, 축하 파티를 진행한 것입니다. 그 첫 번째 주자는 브랜드 에틱스(brand ethics) 팀의 존 대리였습니다. 5마리 고양이의 아빠이자, 열렬한 캠페이너이기도 한 그를 위해 조촐하지만 의미 있는 축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첫 번째 비혼식 파티 ©허니/LUSH또한, 러쉬코리아는 독신인 직원을 배제하기보다, 오히려 혜택을 줍니다. 일반적인 회사에서는 대부분의 직원 복지가 결혼 축의금, 출산, 자녀 돌, 자녀학자금 등 기혼자 중심으로 돌아가게 마련입니다. 반면, 러쉬코리아는 2017년 6월부터 독신을 선언한 직원들도 10일의 달콤한 휴가와 축의금을 받을 수 있는 복지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독신 선언 후 결혼을 하게 되면 축의금을 반납해야 하는가, 이를 악용하는 직원들도 있지 않을까'라는 우려 섞인 질문도 많았지만, 다행히 서로 믿는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그런 사례는 아직까지 없습니다.

러쉬의 문화에서 '가족 같은 회사'를 다시 생각하다

이런 끈끈한 회사 분위기가 저도 처음부터 편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러쉬코리아의 면접을 모두 통과한 후 입사가 결정되었을 때, 함께 할 동료들과의 첫 상견례 자리가 있었습니다. 남자 친구가 있는지, 결혼 계획은 있는지, 가족 관계는 어떤지 등 사생활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솔직히 그때 저는 입사를 심각하고도 진지하게 다시 고민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저는 회사를 사생활과 철저하게 구분해야 하는 곳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시간을 빌려주고, 이에 합당한 대가를 받는 곳으로 회사를 정의한 것입니다.

 

전 직장에서도 입사 초기에 저녁 식사 자리에서 비슷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어디 사세요? 결혼은 하셨어요? 남자 친구는 있으세요?

흔히 묻는 '3대 질문'에 영혼 없이 대답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피로감이 엄습했습니다.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사적인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한국 사회가 싫었습니다. 누군가의 사적인 영역을 침해하는 무례함이 느껴져서였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보스였던 실장에게 이런 불편함을 호소하자, "한 과장, 아이스브레이킹 차원이잖아. 친해지고 싶은 표시라고."라는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그분은 저를 평범하지 않은 부하직원으로 치부한 것입니다. 반대로 러쉬코리아에서는 저와 비슷한 의견을 가진 팀장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을 서로 공유하고 공감했습니다.

친해지기도 전에
지나치게 사적인 질문을 던진다면,
상대가 불편하지 않을까?

지금의 저는 옛날처럼 민감하지 않지만, 순수하게 저의 과거 경력, 가족 관계, 결혼 여부에 관해서 묻는 친구들에게는 친절하지만 적당하게 둘러대게 되었습니다.

만만치 않은 회사죠. 적응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익명을 요청한 팀장은 자유롭고도 수평적인 조직 문화, 다양한 의견이 정신없이 오가는 가족 같은 분위기의 회사에 처음엔 충격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정치로 말하자면, 극우파에서 극좌파로 넘어온 느낌이라며 웃었습니다. 남중, 남고, 공대, 남성 중심의 기업에서 1년 전 이곳으로 넘어온 그는 아직은 덜 유연하지만, 그래도 제법 회사의 분위기에 녹아든 것 같습니다.

 

일상을 가족보다 더 많이, 그리고 자주 공유하다 보니 카톡도 밤낮없이 울려댑니다. 뉴스나 유튜브 링크를 공유하고, 점심 메뉴를 정하고, 서로의 의견을 묻기도 하고, 회의 시간을 정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주말과 정해진 업무 시간 외의 시간입니다. 퇴근 후 SNS 등을 통해 업무 지시를 하는 소위 '돌발 노동' 제한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대선 후보도 있었습니다. 카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통한 업무가 많아지면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일을 해야 하는 상황도 생기게 됩니다. 사생활 침해라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회사를 경영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회사생활과 사생활을 구분하는 것은 그 자체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 이유로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어떤 회사에서나 긴급 상황은 있습니다. 브랜드 리스크 매니지먼트 차원이나 영국 본사와의 긴급한 의사 결정(시차가 발생) 등의 경우에 해당합니다. 단, 이 역시 임직원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고객과의 최접점인 매장의 근무시간은 밤에도 주말에도 계속될 수 있습니다. 가령 팀장 이상이라면, 매장과 관련된 일들에 대해서는 퇴근 이후에도 감수해야 합니다. 매장에서 일어난 이슈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본사에서 지원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이 점이 다른 화장품 회사와 러쉬가 다른 점입니다. 또한 전 세계 어느 러쉬를 가더라도 매장 중심이라는 점은 동일합니다.

 

셋째, 사생활과 회사생활을 엄밀하게 구분 지을 수 없는 현실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도 업무시간 외, 특히 주말에 카톡을 하는 것은 조심합니다. 최소한으로 하려고 합니다만, 누군가 시험이라도 하듯 입이 근질거려서 말을 걸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이럴 때는 원칙과 예외 사항에서 현명하게 줄타기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사생활을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서로를 배려하고 동료를 가족처럼 챙기는 조직문화. 이 두 가지 토끼를 잡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도달하기 어려운 과제라 하더라도, 이를 목표로 삼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겠지요. 이것이야말로 '가족 같은 기업'인 러쉬가 지향해야 할 가장 이상적인 목표가 아닐까 합니다.

사람 중심 조직에서 리더의 역할이란

저는 우미령 대표가 좋아서 입사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랩의 허니 실장은 14년간 러쉬코리아 '묵은지(10년 이상 된 멤버들을 이렇게 부르곤 합니다)'로 함께 했습니다. '대표의 남자'라고 불릴 정도로 오너의 의중을 귀신같이 아는 그가 입사 과정을 담담하게 회상했습니다.

이런 사장이라면 충성해도 되겠다 싶었습니다. 전에 다니던 회사와 비교가 되었지요. 우대표는 따뜻하게 대해주셨습니다.

당시 유기견으로서 입양된 느낌을 받았다고 농담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보헤미안 대표(우미령 대표)의 무엇이 그렇게 좋았을까요?

 

2016년 여름 어느 날, 누군가 사무실에 소리 없이 사뿐사뿐 들어왔습니다. 작은 요구르트 하나를 손에 들고 책상 구석구석을 돌며 하나하나 나눠주었습니다. 어느 때처럼 환하게 미소를 건네면서요. 네, 바로 보헤미안 대표입니다.

 

일반적인 회사에서는 대표가 사무실을 방문하면, 수행 비서를 대동하고 직원들이 전원 기립(반사적으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러쉬코리아 해피 피플도 몇몇 일어나긴 합니다만, 조금 다른 모습이 펼쳐집니다. 손을 잡거나 어깨를 감싸는 등 회식 자리에서 있을 법한 진한 스킨십이 애정의 온도를 보여줍니다(저의 친정인 두산 잡지의 박용만 회장도 이런 '대표 스킨십'으로 유명한 분이시죠. 잡지 마감 때 오셔서 기자들을 응원해 주곤 하셨죠).

 

러쉬코리아 본사 사무실을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뻥 뚫린 대표의 집무실에 놀랄 겁니다. 그리 넓지도 않고, 유리방으로 밀폐되거나 독립된 공간이 아닌, 확 트인 공간*에서 오고 가는 직원들과 인사하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실제로 나무와 화초들이 많아 이곳을 '보헤미안 가든'이라고 부릅니다.

* 관련 기사: 러쉬가 꿈꾸는 세상 (엘르코리아, 2017.8.10)

대표의 공간인 '보헤미안 가든' ©쥬시/LUSH

또한, 대부분의 오너는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할 말도 많습니다. 듣기보다는 말을 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하지만 해피 피플의 대표인 보헤미안은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말을 끊거나 먼저 지시하기보다는 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짧게 의견을 덧붙입니다. 처음에는 저도 적응이 잘 안 되었습니다. 마음속으로 '과연 하라는 것일까,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 자문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잘 몰라서요. 쥬시 팀장님께서 고민해보시고 공유해주세요.

보헤미안 대표에게 의견을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입니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직원들의 의사결정을 믿고 맡기는 것은 엄청난 리더십일 수 있음을 늦게나마 깨달았습니다. 전문가 영역에서는 큰 그림에서의 방향 외에는 수정을 요청하지 않습니다. 대신 일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 책임의 소지보다는 더 나은 결과를 위해 다음번 기회 요소에 대해서 고려를 합니다. 이는 '실수해도 괜찮다'는 조직 문화를 반영한 것입니다.

 

저 역시 보헤미안 대표에게 감동받은 순간이 많습니다. 사람을 설득하는 것과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다르다고 느낍니다. 논리로는 이뤄질 수 없는 잔잔한 감동이 오는 때 말입니다. 우선 입사 때 직접 쓴 손편지와 함께 제품을 한 가득 선물했습니다. 제품을 많이 써보고 경험을 기반으로 홍보하라는 깊은 뜻이겠죠. '첫 정'의 강렬함 덕분인지 그 카드를 고이 접어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출장 후 여독을 안고 집에 올 때면 우편함에 카드나 엽서가 배달되곤 합니다. 출장 현지에서 직접 손으로 쓴 편지로 잔잔한 감동을 주었지요(그러고 보니 송구하게도 저는 답장을 쓴 적이 딱 한 번뿐입니다). 또, 행사나 봉사 활동 등을 마친 후 해피 피플 한 명 한 명을 안아주었던 것도 인상 깊었습니다. 처음엔 어색해서 엉덩이를 살짝 빼기도 했습니다.

 

보헤미안 대표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직원들 모두와 눈을 맞췄습니다. 성격 급한 제가 닮고 싶은 부분입니다. 한 번은 전 직원 워크샵 때 10년 이상 근속한 직원 한 명 한 명에게 칭찬과 감사의 인사를 한 적도 있습니다.

보헤미안 대표의 손편지 ©쥬시/LUSH이처럼 사람을 중시하는 조직 문화의 뿌리는 리더에게서 오는 부분이 큽니다. 구성원들이 자연스럽게 닮아가니까요.

엄마의 눈빛을 지닌 리더

보헤미안 대표가 영국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던 2001년, 다른 대기업들도 영국 측에 러브 콜을 보냈답니다. 당시 러쉬는 화려한 색감과 향을 자랑하는 힙한 브랜드 중 하나였으니까요. '베이비시터' 이미지 덕분에 영국에서 자신을 선택했을 거라고 보헤미안 대표는 과거를 회상합니다(신년회나 매니저 워크샵에서 '선녀와 나무꾼', '높이 뛰어라 생쥐' 등 잠자리에 들기 전 엄마처럼 동화를 빗대어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생각입니다만, 그 누구보다 따뜻한 시선과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기 때문에 그 에너지와 눈빛에 영국 본사는 매료되지 않았을까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러쉬만의 에너지도 한몫 했을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국가를 막론하고 서로를 알아보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고 할까요? 글로벌 행사 때 호텔 로비에서 서로를 알아보고 '헬로 러쉬'를 외칠 때가 많습니다. 보헤미안 대표는 공동 창립자 중 한 명의 집에 머물면서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윤리 의식이나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비단 내부 임직원만을 '엄마의 눈빛'으로 바라본 것은 아닙니다. 회사 외부인들을 만날 때도 늘 일관된 모습을 보입니다. 예를 들어, '젤러쉬' 행사* 때 고객에게 직접 요리를 해준 적도 있습니다. 다른 브랜드 행사에서는 '대표님 말씀', 일방적인 스피치가 끝난 후에 조용히 행사장을 떠나거나 형식적인 인사를 나누는 경우가 있습니다. <얼루어> 9월 창간 기념호의 인터뷰 촬영 때 보헤미안 대표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쥬시 팀장님, 떡이 갈 거예요." 사진가와 에디터, 헤어, 메이크업 스탭들을 위해 간식을 준비한 것입니다.

* 관련 기사: 러쉬코리아 우미령 대표, 홍보대사 '젤러쉬'에 "제가 한 요리 맛보세요" 환영 만찬 (매일경제, 2017.6.1)  

젤러쉬 창단식에서 요리를 시연 중인 보헤미안 대표 ©베어/LUSH

리더가 브랜드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때로는 리더의 아이덴티티가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보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유니타스 브랜드>에서 위 구절을 읽을 때 크게 공감했습니다. 내가 일하는 회사의 오너가 폭행 사건에 연루되거나* 성매매 의혹**에 휩싸이거나, 배임 및 횡령 의혹***을 받는 등의 상황에 처했다면 어떨까요?

* 관련 기사: 폭행당한 변호사들 "한화 3남 처벌 원하지 않는다" (조선일보, 2017.11.24)

** 관련 기사: 검찰 '이건희 동영상' 수사, 영상·성매매 의혹 '투 트랙' (연합뉴스, 2017.3.9)

*** 관련 기사: '하락세 지속' 롯데지주, 오너리스크에 발목 잡히나 (조선비즈, 2017.11.24)

 

우리가 흔히 부르는 '오너 리스크'의 경우, 직원들의 애사심은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회사의 규모, 복지, 연봉, 정년 보장, 기업의 네임 밸류, 평균 근속 연수, 비전 등의 입사 고려 요소에 '오너'도 추가로 넣을 만합니다. 직장 생활의 햇수가 늘어날수록 대표와 의견을 나누거나 비전과 가치 등을 공유할 기회는 더 많아질 테니까요.

 

단, 보헤미안 대표는 비서가 없습니다. 장점이면서도 단점일 수 있습니다. 누구든 대표에게 언제든지 미팅을 요청할 수 있고, 의견을 피력하거나 회사 생활에서의 어려운 점을 토로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대기업에서 비서에게 줄을 서는 진풍경도 여기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비선실세도 당연히 없고요.

 

한 번은 출장을 함께 갔었는데, 일정이 달라 보헤미안 대표 혼자 공항에 먼저 보내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뭐 어때?'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에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좀 불편했습니다. 가끔은 대표의 스케줄을 챙기거나 강연 준비를 하거나 비용을 챙기는 등의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보헤미안 대표는 직원들에게 교육과 배움의 기회를 아낌없이 베풉니다. 소셜 운영이나 영상 촬영 등과 관련된 전문가 교육은 물론, 일부 팀장들은 경영 수업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현재 제조팀의 써니 팀장은 교육을 받으면서 자신의 열정과 의지를 회사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아웃 소싱이라는 단어가 막 나오기 시작하던 그 시절부터 물류에 관한 교육은 전부 받았던 것 같습니다. 매장이 명동과 코엑스 두 곳뿐일 때 물류 팀장을 맡게 되었는데요, 당시 꽤 비싼 교육이었는데 덕분에 주경야독을 이어나갔습니다.

실제로 러쉬 리더들은 소프트 스킬* 교육을 1년에 두 번 이상 받습니다. 이 교육 역시 영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리더 그룹을 중심으로 진행된다고 합니다. 어떻게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지, 업무 우선순위를 선정하는지 등 '업무 시간 관리(Time Management)'부터 팀워크의 기본이 되는 '피드백(Feedback)', '바디 랭귀지(Body Language)'와 같은 커뮤니케이션 스킬, 러쉬의 '진정성 있는 리더십(Authentic Leadership)', 팀원들을 이끌 '코칭(Coaching)' 등을 학습하고 이를 실제로 업무에 적용합니다.

* 기업 조직 내에서 커뮤니케이션, 협상, 팀워크, 리더십 등을 활성화할 수 있는 능력

 

비슷한 교육이 다른 회사에서도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습니다.
러쉬의 교육은 
'서로 이해하기'를
강조합니다

일을 하는 과정, 커뮤니케이션 방식, 개인의 성격(실제로 MBTI 테스트도 합니다)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몇몇 팀장들을 인터뷰해보니,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기회', '개인 성장의 발판'이라는 긍정적인 반응도 있지만,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내재화하려면 의식의 전환, 무수한 연습, 긴 여정이 있어야 한다'고 하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소프트 스킬 교육을 담당하는 호피 주임은 "변화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는 것은 러쉬만의 문화입니다."라고 설명합니다.

MINI INTERVIEW: 보헤미안 대표

러쉬의 해피 피플이 아닌 전직 기자로 변신하여 보헤미안 대표에게 민감한 사항들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미령 러쉬코리아 대표 (닉네임 보헤미안)
Woo Mi Ryoung, President at LUSH Korea

쥬시(이하 생략): 입사 초기, 승진과 연봉과 관련된 평가 시스템이 없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습니다.
보헤미안(이하 생략): 예전보다 조직이 커져서 평가 제도를 만드는 것에 대해 2~3번 고민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러쉬코리아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전 직원이 함께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개인을 단순히 정성적으로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팀장이 팀원을 평가할 경우, 오히려 불공평하게 평가받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해피 피플의 인재상은 긍정적인 마인드, 무엇이든 먼저 하려는 자세 등이 있습니다. 이런 점을 채용 과정에서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가능한 면접자를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판단하려는 순간, 오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 인터뷰 시간을 최대한 넉넉하게 둡니다. 최소 1시간 이상, 가능하면 2시간 정도 충분히 이야기를 나눕니다. 1시간을 넘게 되면 꾸미고 포장했던 것도 어느 정도 드러나지요. 편안해지는 것과 흐트러지는 것은 엄연히 다릅니다. 해피 피플은 무조건 웃고 긍정적인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에요. 열심히 일할 준비가 되었는가, 다른 팀원들과 행복하게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등을 본답니다.

러쉬코리아는 카톡으로 의사결정을 하거나 의견을 묻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많은 휘발성 대화로 인해 피로할 수도 있는데요.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영업 본부는 러쉬코리아의 중심이며, 다른 부서들은 영업을 지원하는 역피라미드 구조입니다. 해피 피플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뛰는 영업 본부 구성원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많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매뉴얼대로 문서로만 진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특히 본사의 업무 시간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라면, 영업은 밤 10시가 넘어서 끝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3 가족 같은 회사의 양면 마침.

독자 리뷰

현재까지 326명이 읽은 콘텐츠입니다

  • 한**

    러쉬 애용자입니다.
    샴푸부터 트리트먼트, 샤워젤, 바디밤, 향수, 립밤까지.
    필요한 코스메틱 제품이 생기면 제일 먼저 러쉬부터 기웃거려봅니다.

    마케터로 일해온 6년의 시간 동안 '러쉬'라는 브랜드는
    언젠가 꼭 일해보고 싶은 회사로 자리잡아 있었지요.

    러쉬 매장에서 직원들을 마주칠 일은 종종 있었지만
    본사 직원들은 좀처럼 마주치기 어려웠던터라,
    퍼블리에서 리포트 소식을 듣자마자 서슴없이 구매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렇게 오늘 발행 문자를 받자마자 마자 리포트를 열어봤는데
    정신없이 읽다보니 7개 글이 후딱 지나갔네요. (시간 순삭!)

    러쉬 외부에서 러쉬를 바라보는 러쉬 애호가로서,
    제가 러쉬를 사랑하는 이유는 '좋은 일에 동참한다는 기분', 그리고 '제품력'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리포트를 다 읽은 지금, 그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될 것 같네요.
    바로, '도전 DNA를 찾아주는 브랜드 분위기'입니다.

    사회생활 경험이 켜켜이 쌓여 갈수록 도전의식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어 고민이었는데,
    완벽해야한 한다는 강박 속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겠다, 하고 생각하던 요즘이었습니다.

    러쉬처럼 '실수해도 괜찮다'라는 말은 웬만한 기업에서 하기는 힘들죠.
    개인적은 러쉬 코리아 SNS 채널들도 모두 팔로우해서 받아보고 있는데요,
    작가님께서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하셨지만,
    생각해보면 전 오히려 콘텐츠들이 풋풋한 점이 좋았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아도, 진심과 자부심이 느껴졌거든요.
    그리고 운영진들이 정말 '도전'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그 원동력이 어디서 나왔는지 리포트를 통해 알게 되었고, 그래서 러쉬가 더 좋아졌습니다.
    조만간 제가 러쉬의 문을 두드린다면 이 리포트 얘기를 꼭 할 것 같아요.

    업무와 리포트 제작을 병행하기가 매우 힘들었을텐데,
    고생해서 지식과 경험을 나눠주신 한주희 팀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러쉬 사랑해요! 해피 피플 멋집니다! :)

  • A********

    스타트업 회사를 꾸려가는 입장에서 앞으로 조직문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에 관하여 많은 고민을 할 수 있게 하는 유익한 내용이었습니다.
    평소에도 관심이 있었던 주제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다만 대부분의 내용이 조직 문화에 관련된 이야기여서 애초에 화장품에 관련된 이야기를 기대하며 결제버튼을 눌렀던 저에게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운 내용이었습니다.

브랜드 파워를 이끄는 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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