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의 가치는 원가와 상관없다

Editor's Comment 

미술 시장에선 '핫함'에 따라 어제까진 큰 평가를 받지 못하던 작품이 갑자기 집 몇 채의 가격이 되기도 합니다. 미술 시장에서 '핫함'을 결정하는 건 누구일까요? 그리고 '핫함'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독립큐레이터로 활동하며 RP' Institute 서울팀을 이끌고 있는 허유림 저자가 '미술품 가격에는 이유가 있다'의 첫 번째 미리보기를 통해 알쏭달쏭한 이곳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전문이 실린 리포트는 1월 26일(금) 오후 5시까지 할인된 가격으로 예약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 가기]
* 상단 이미지 ©Ståle Grut

똥 30g, 만 배의 수익이 되어 돌아오다

1961년 5월 이탈리아의 예술가 피에로 만초니(Piero Manzoni)는 자신의 대변을 통조림 캔에 담아 <예술가의 똥(Artist's Shit)>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모두 90개가 제작된 이 작품의 표면에는 1번부터 90번까지의 번호와 함께 '정량 30g, 신선하게 보존됨, 1961년 5월 제작'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만조니는 당시 이 작품을 30그램의 금 시세와 같은 가격인 37달러, 한화 약 4만 원이라는 가격을 매겨 팔았고, 작품은 2007년 16만 8천 달러(약 1억 8천만 원)의 경매가를 시작으로 2015년에는 24만 7천 달러(약 2억 6천만 원), 2016년 8월 밀라노 미술 경매에서는 37만 2천 달러(약 4억 원)를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1961년 금과 동일한 가치로 거래되었던 캔은 50년이 지나 다이아몬드보다 높은 가격으로, 그것도 무려 만 배의 상승률을 보이며 되돌아온 것이다.

Piero Manzoni, Artist's Shit(1961) &#169;DACS, 2018

21만 원짜리 클립과 10만 원짜리 돌멩이, 소비자를 우롱했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프라다가 길이 6.25cm, 폭 2.25cm인 대형 클립을 소비자에게 185달러(약 20만 원)라는 가격으로 공개한 날 언론과 소셜미디어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CNN에 따르면 프라다는 한정판으로 상품을 제작했으며, 클립 한쪽에는 브랜드 명이 새겨져 있고 머니클립의 기능을 한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CNN은 프라다의 상품에 대해 185달러의 가격이면 일반 문구점에서 클립 13,300개를 살 수 있는 가격이라고 지적했고, 일부 트위터 사용자들은 "이 클립에 1달러의 지폐를 끼우고 다닐 경우 최소 186달러를 들고 다는 격", "클립을 구매하고 나면 클립에 끼울 돈이 없을 것"이라고 비아냥댔다.

 

사실 이런 논란은 프라다뿐만 아니라, 여러 명품 브랜드들이 지나치게 비싸게 판매하는 제품들을 통해 이미 여러 번 문제시되어왔다.

 

스페인의 명품 브랜드 발렌시아가는 가구 브랜드 이케아의 99센트짜리 쇼핑백을 재질만 가죽으로 교체한 후 디자인을 그대로 카피해 2,150달러(약 230만 원)에 판매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은 아무 쓸모도 없는 가죽으로 감싼 돌멩이를 85달러(약 10만 원)에 팔아 완판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어떤 소비자들은, 이 명품 브랜드들이 그들을 우롱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이 정말 소비자를 우롱한 것일까? 잠깐 생각을 바꾸어 보자. 대형 클립에 프라다의 로고 대신 피카소의 싸인을 집어넣고, 마르셀 뒤샹이 샘* 대신 돌멩이를 전시장에 작품으로 진열했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아마 18만 5천 달러(약 2억 원)에서 185만 달러(약 20억 원) 사이에 가격이 형성되어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고, 돌멩이를 귀걸이라 칭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 Fontaine. 마르셀 뒤샹의 1917년 작품. 그는 평범한 소변기에 샘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R.Mutt(뉴욕의 화장실 용품 제조업자의 이름)'라고 서명했다.

미술품의 가치는 물가 상승률과 다르게 움직인다

그가 없었다면 우리는 살아남지 못했을 거야.

세계적인 화가 모네(Claude Monet, 1840~1926)가 그의 작품을 구매한 화상 폴 뒤랑 뤼엘(Paul Durand-Ruel)을 가리켜 한 말이다. 18세기 말 프랑스의 화상 폴 뒤랑 뤼엘. 그는 당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헐값으로 사들여 이십여 년 후에 수십 배의 이익을 창출하고, 다시 십여 년 후에는 수백 배의 이익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라 단순한 시작에 불과했다는 것을 당시에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비단 뤼엘 뿐만 아니라 한국의 현대화랑 대표 박명자, 영국의 사치갤러리 대표 찰스 사치(Charles Saatchi) 등도 안목 하나로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의 재산을 만든 화상들이다.

결국 그리는 눈과
보는 눈은 다르다는 것,
여기에 판단하는 눈 또한
다르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할까?

 

고교 중퇴한 거리 미술가의 작품이 1,246억 원에 팔린 까닭은?

2017년 5월 뉴욕의 소더비(Sotheby's) 경매장은 탄성과 환호로 가득 찼다. 검은 피카소라 불리던, 27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미국의 천재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1960-1988)의 작품 <무제(Untitled, 1982)>가 치열한 가격 경쟁 끝에 1억 1천50만 달러(한화 약 1,246억 원)에 낙찰된 것이다. 이것은 1980년대 이후에 그려진 미술 작품으로서는 최고가의 기록이다.

Jean Michel-Basquiat, Untitled(1982) &#169;Jean-Michel Basquiat

바스키아는 이 그림을 21세에 그려 1만 9천 달러(약 2천만 원)에 팔았다. 피카소, 모네, 반 고흐, 앤디 워홀 등의 작품도 1천억 원을 넘기기 쉽지 않은데, 제작한 지 35년밖에 안 된 그림이 기록을 세운 것이다. 35년에 걸친 기간 동안 이 작품은 약 6천 배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쯤 되면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금과 같은 가격을 책정했던 똥은 50년 만에 4억 원이 되어 돌아왔고, 20대에 요절한 천재 작가의 작품은 6천 배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제 예술은 재테크의 꽃이자, 시대를 비판하고 대표했던 아름다움이 '재화'로 변하는 우아한 과정을 즐기는 하나의 수단이 되었다.

미술품의 가치와 가격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 

전 세계의 수많은 여자들이 열광하는 샤넬 백에서부터 대기 번호를 받는 것조차도 몇 년씩 기다려야 한다는 에르메스의 백까지, 대부분의 명품 브랜드들이 갖는 공통점은 신상품 가격에 비해 중고품의 가격이 훨씬 더 저렴하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수익률 측면에서는 마이너스 성장률을 나타낸다는 뜻이다.

그러나 미술품의
경우는 어떨까?
미술품의 경우 가격이 떨어지기는커녕,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예측 불가능한 성장률을 가지고 수직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계 경제 버블의 절정을 누리던 2006년, 언론은 미술품의 가격 상승과 이에 따른 새로운 창조산업의 등장을 전면에 보도했다. 20세기 후반 들어 순수미술이 경제구조 속으로 완전하게 편입된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작가들의 경매 기록은 주기적으로 갱신되고 있었고, 사람들은 점점 미술사 강의실과 미술품 구입에 몰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경제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가격 상승률에 단 한 번도 미술관에 가본 적 없는 사람들조차 구입 문의를 위해 전문가를 찾았으니, 가히 열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일까?

 

실제로 미술품은 수 배에서 수십 배의 수익률을 보이는 토지개발이나 부동산 투기보다도 종종 더 높은 수익률을 보였다. 가장 영향력 있는 아트 딜러 중 하나인 마리안 굿맨(Marian Goodman)은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사랑이 두렵지 않다(Not Afraid of Love, 2000)>를 35만~50만 달러(약 4~5억 원)에 팔았는데, 실제 크기의 코끼리를 시트로 덮은 이 작품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크리스티(Christie's) 경매에서 275만 달러(약 30억 원)에 팔리게 된다.*

* 아담 린데만, <컬렉팅 컨템포러리 아트>, TASCHEN(2013)

 

2006년 당시 최소 7개의 새로운 아트펀드가 자금 유치에 힘쓰고 있었고, 금융 전문가들은 투자자에게 보유자산의 최대 10% 이상을 새로운 상품 자산 유형에 투자하라고 권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미술시장에는 흥미로운 명제가 드러났다. 바로 '컨템포러리 아트 작품의 가격은 꾸준히 오른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새로운 시대 가치를 반영하는 현대미술이 금융시장의 새로운 대안으로 등장하는 대목이다.

 

이것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사례로, 최근 골드만삭스의 파트너 발렌티노 칼로티(Valentino Carlotti)가 세계 최대의 미술품 경매회사 소더비의 글로벌 사업개발 부문장으로 영입된 사건을 들 수 있다. 20년 넘게 기업금융(Investment Banking)과 머천트 은행(Merchant Banking)*의 전문가로 활동한 발렌티노 칼로티는 월가의 거물급 인사로 유명하다. 그의 드라마틱한 커리어 변화는 많은 관심과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 과거 상인(Merchant)에게 예금 수신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금융 업무를 제공하던 종합금융회사에서 비롯된 용어로, 산업 분야를 가리지 않고 금융사가 사모 방식 투자로 고수익을 노리는 투자은행 업무를 뜻한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주요 미술품 컬렉터들 중 유독 헤지펀드 오너들이 많다. 유명 컬렉터들 중 금융권 종사자의 비중이 절반에 달할 정도로 높다. 미국의 헤지펀드 매니저 스티브 코헨도 피카소의 <꿈>(한화 약 1,769억 원)을 포함해 1조 원 규모의 아트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뭉크의 <절규>를 한화 약 1,353억 원에 사들여 화제가 된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 회장 리언 블랙도 대표적인 금융권 컬렉터다.

 

투자의 귀재들이 미술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유는 먼저, 미술품이 단순한 사치재가 아니라 '부(富)를 만들어내는' 훌륭한 투자 자산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미술품은 다른 재화와는 달리 감가상각의 영향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작품의 희소성과 역사가 더해져 가치가 더 오르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2017년 경매에서 1,246억 원에 낙찰된 바스키아의 작품의 가격을 2000년도부터 추적해 보면 놀라운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만일 당신이 2000년에 바스키아의 작품에 100달러(약 10만 원)를 투자했다면, 2017년 4월 기준으로 평균 1,098달러(약 117만 원, 수익률 998%)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관련 글: <The Contemporary Art Market Report 2017> 중 The financial appeal of Contemporary Art

 

대체재의 부재, 즉 시간이 지날수록 작품이 가지는 한정성과 희소성 때문에 일반 명품 브랜드의 상품들의 가치가 점점 감소하는 것과는 달리 미술품의 가격은 계속 오르게 된다. 거기에 컬렉터의 안목이 더해져 작품의 가치는 더욱 올라갈 수밖에 없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미술품이 하나의 투자 상품이 되면서 큰 손 컬렉터들은 미술품의 가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돈이 많아야만 미술 투자에 관심을 가지고, 미술에 투자할 수 있는 것일까?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적은 돈으로도 충분히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미술 투자가 가능하다. 또한 적은 돈으로도 향후 큰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작품을 발견하고 구매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미술품 가격에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이제부터 작품을 생산해 내는 작가부터 이를 알아보는 딜러, 작품에 근사한 옷을 입혀주는 미술관 등 미술품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과 요소들을 함께 살펴볼 것이다.

 

[미술품 가격에는 이유가 있다]

 

미술 시장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누가, 어떻게 미술 시장과 미술품의 가격을 움직이고 있는지 안다면 당신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눈으로 미술 시장을 볼 수 있을 겁니다. <3만 원으로 시작하는 현대미술 투자 이야기> 및 <서양미술사> 강의를 통해 대중과 만나고 있는 독립큐레이터 허유림 저자가 미술 시장과 미술품의 가격이 움직이는 원리를 속 시원하게 공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