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과 잡담
실리콘밸리 발 코워킹 스페이스가 서울에 들어온 지도 꽤 됐다. 이런저런 기회로 두 달 정도 경험해본 결과, 좀 느끼했다. 음식도 아닌 공간이 느끼하다는 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을 못 찾겠다.
테이블 구조상 각자의 몰입이 이루어지되 모르는 이들과도 사소한 잡담을 나누다 협업이 이루어지는 게 공간의 의도였을 텐데, 샌프란시스코가 아닌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에서 내 앞에 앉은 모르는 사람과의 스몰토크란 아무래도 어색하다.
ⓒ전소영
코워킹 스페이스는 소속이 없거나 아주 작은 조직이 여럿 모여 공간을 공유한다는 점이 기존 사무실과 다를 뿐, 어쨌든 '일하는 장소'다.
마치 고등학생 때 집에서 공부하면 될 텐데 굳이 독서실에 등록하거나 공공 도서관에 줄을 서서 열람실에 들어가 공부를 하는 것처럼 각자 자신을 어느 정도 구속할 수 있는 공간에 가서 능률을 높이고자 이렇게 모이는 셈이다.
심지어 같은 사양의 컴퓨터가 있다 하더라도 굳이 PC방에 가서 게임을 하는 이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사방에서 게임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단축키 누르는 속도라도 올라가지 않을까.
그런데 재밌는 건 IDEO, Google, Pixar처럼 크리에이티브를 중요시하는 회사에서는 사내 공간을 코워킹 스페이스처럼 조성해둔지 오래다. IDEO는 사무 공간 한 쪽을 아무것도 없어서 마치 허허벌판 같은 화이트 큐브로 해두었고, Google 본사는 키즈 카페가 아닌가 싶을 만큼 알록달록한 색깔에 여러 가지 프로그램으로 '어른들을 위한 놀이터'로 사무실을 만들었다. 그리고 Pixar는 각 애니메이터들에게 자기 마음대로 꾸밀 수 있는 방을 주었지만, 방에서 나오면 언제든지 널찍한 공간에서 동료들과 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두었다.
위 세 회사와 여럿 코워킹 스페이스는 각기 구조나 인테리어 톤만 다를 뿐 공간 구성의 목표는 모두 같다.
각자의 몰입과 쓸모 있는 잡담을 이끌어내는 것.
이를 위해 독방을 주면서도 개방적인 공간을 남다르게 두고, 아니면 아예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제공한다.
런던디자인페스티벌에서도 스위스 가구 회사 비트라(Vitra)와 아일랜드 가구회사 토마스 몽고메리(Thomas Montgomery)가 발표한 오피스 가구 플롯(Float)에서도 '몰입과 잡담'을 함께 이끌어내기 위한 구조를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테이블 n개를 모아 하나의 테이블이 될 수 있게끔 되는 토마스 몽고메리의 미팅 테이블은 마치 사람 n명이 물에서 구명튜브를 끼고 만난 모양 같다. 테이블 조합과 방향에 따라 서로 마주 볼 수도 있고, 등을 돌리고 각자 일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비트라의 경우, 파티션을 이용한 유기적인 사무공간과 함께 혼자 갇혀서 일할 수 있는 개방형 요람을 선보였다.
업무공간이란 곳이 그렇다. 다 같이 일하기 좋아야 하면서 혼자 일하기도 괜찮아야 한다. 특히 코워킹 스페이스에 모인 사람들은 자유로운 환경에서 각자 몰입이 가능해야 하고, 서로 다른 소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간의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을만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의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필요한 건 비트라의 가구, 토마스 몽고메리의 테이블, 구글 사무실 같은 훌륭한 하드웨어나 프로그램보다도 자연스러운 스몰토크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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