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Comment 

'오슬로 이노베이션 위크(OIW)'에서 연사들의 강연이나 기술 시연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노르웨이 정부와 모든 참가자가 기술의 철학적 가치를 진지하게 논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인간과 환경, 미래에 대한 책임 의식, 양성평등이 구현된 노르웨이식 정부 주도형 테크 페스티벌, 'NORWAY WAY, 지속가능성에 주목하다 - OIW 2017'의 두 번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바다를 위해 혁신한 바이킹의 후예' 파트의 일부를 발췌하였습니다.

전문이 실린 리포트는 1월 25일(목) 오후 5시까지 예약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 가기]
* 상단 이미지 ©Christian T Joergensen/EUP-Berlin GbR

오슬로 이노베이션 위크(OIW)에서는 어떻게 하면 돈을 잘 벌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하면 윤리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를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노르웨이는 해안선 길이 2만 5,000km를 자랑하는 해양 강국답게 바다에 대한 책임감이 특히 눈에 띄었다. (중략)

 

OIW의 연사 소개 팸플릿에는 '농화학 기업이 지속가능성을 고민한다'라고 돼 있어 무심코 넘겼던 야라 인터내셔널(Yara International)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25일 OIW 공식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이 회사 관계자가 간단히 브리핑하는 걸 보고는 '아차!' 싶었다.

바다의 테슬라내년 운항을 목표로 개발 중인 세계 최초 자율항해 전기 컨테이너선 '야라 비르셸란(Yara Birkeland)'의 애칭이다. 노르웨이의 글로벌 농화학 기업 야라 인터내셔널(이하 야라)과 방위산업체 콩스베르그 그루펜(이하 콩스베르그)이 함께 개발 중이다. 그런데 1905년에 설립된 100년 역사의 비료 회사가 왜 전기 선박 제조에 뛰어들었을까.

테리예 크누셴, 야라 인터내셔널 전무

Terje Knutsen, EVP, Crop Nutrition at Yara International (©Christian T Joergensen/EUP-Berlin)

우리에겐 전 세계의 기아를 해결하기 위해 농부들을 도와 농업 효율성을 높이면서도 환경오염을 줄이고, 동시에 사업을 성장시켜야 한다는 미션이 있다. 이를 실행하는 방법의 하나가 운송의 효율성을 높이는 무인 전기선이었다.

야라는 연간 컨테이너 2만 개 분량의 물품을 글로벌 시장에 수출한다. 이를 위해 디젤 트럭이 매년 4만 차례 운행한다. 육로 운송 및 기존의 디젤 선박에서 나오는 매연과 소음을 줄이고 무인 청정 해상 운송으로 물류 혁신을 한다는 게 야라의 구상이다.

 

* 관련 영상: <The world's first autonomous, zero emission container feeder> ©KONGSBERG Gruppen

 

기자회견에 이어서 열린 공식 오프닝 행사에서는 야라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프로세스 매니저(업무 과정 관리자)인 메르테 오스트비가 발표를 맡았다.

 

오스트비가 맨 처음 전기 컨테이너선을 떠올린 뒤 한 일은 구글에서 '자율 항해 전기 컨테이너선'을 검색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어쩌면 그런 상품이 있을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이미 구상해 실행에 옮겼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검색 결과 아무런 단서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콩스베르그 그루펜에 전화를 걸었다. '혹시 당신들 전기 컨테이너선도 만들 수 있겠어?'라고 묻자 '안 만들어봤지만 할 수 있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콩스베르그가 원격, 자율 운항을 위한 센서와 모니터링 기술, 전기 구동 시스템, 제어 시스템 등 선박 관련 전반적인 작업을 한다. 야라 인터내셔널은 자금 지원과 자문을 맡는다.

 

야라는 이를 통해 운송료를 절감하고 육상 컨테이너 화물 트럭 수요를 상당수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교통 혼잡, 배기가스는 물론 소음 문제도 해결할 것으로 본다. 선박 건조비는 여느 화물선의 몇 배가 들지만 인건비와 기름값 등의 유지비는 훨씬 저렴해서 장기적으로는 경제성이 높다는 게 야라 측의 계산이다.

 

야라는 OIW 마지막 날인 29일 전기선의 최종 디자인을 반영한 6m짜리 모형의 첫 수조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밝혔다. 정부 기관인 에노바(ENOVA)*는 건조 비용의 3분의 1에 달하는 1억 3360만 크로네(약 192억 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녹색 에너지와 이를 위한 기술 혁신을 지원하기 위해 노르웨이 석유·에너지자원부가 2001년 설립한 기관이다. 녹색 기술과 산업에 연간 20억 크로네(약 2,850억 원)를 지원한다.

 

* 관련 영상: <Testing the YARA Birkeland> ©KONGSBERG Gruppen

 

노르웨이 정부가 금전적 투자를 비롯한 지원 사격에 나섰다는 신호인 셈이다. 무인항해 선박에 대한 국제 규정은 아직 없다. 야라 앞에는 전기 컨테이너선 개발과 함께 관련 해상 운송 표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과제가 놓여있다. 야라는 일단 긍정적으로 전망하는 듯하다.

 

오스트비는 OIW 무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메르테 오스트비, 야라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프로세스 매니저

Merete Østby, Business Process Manager at Yara International (©Christian T Joergensen/EUP-Berlin)

우리는 선박 회사가 아니라 기아를 해결하기 위해 곡물의 생산성을 높이는 비료를 만드는 회사다. 우리는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비료를 나르고 싶었다. 해양 규제는 아직 이런 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찾은 방법은 일단은 짧은 거리만 나르자는 것이었다.

이렇듯 혁신을 할 때엔 장애물에 부딪히게 된다. 사람들은 말한다. '아직 디테일이 부족해. 불가능해.' 맞다. 디테일이 부족하다. 인정한다. 하지만 모든 게 완벽한 상태만을 원한다면 혁신은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전혀 없었던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가 큰 회사라서 이런 도전이 가능한 걸까? 우리는 최첨단 기술을 믿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새로운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믿었다.

맨 처음 콩스베르그에 전화를 한지 이제 겨우 1년이 됐을 뿐이다. 그럼에도 크게 진전했다. 2018년에는 유인 전기 컨테이너 화물선을 선보이고, 2019년엔 원격 운항 테스트를 한다. 그리고 2020년엔 완전 자율 운항을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운송과 환경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다.

야라 비르셸란은 120TEU*의 소형 화물선이다. 3000TEU급 이하는 소형으로 분류되는 해상 물류 세계에서 야라 비르셸란은 초소형이라 할 만한 작은 체급이다. 선박이 완성되면 공장이 있는 포르스그룬에서 비료를 싣고 57.5km 거리의 라르비크 항구까지 운항할 예정이다. 국내 연안 간 해상 운송으로 첫발을 내딛는다는 의미다.

* Twenty Feet Equivalent Unit. 120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20개를 적재할 수 있는 규모를 가리킨다.
 

야라와 콩스베르그의 꿈은 단순히 작은 화물선 하나 만드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이 성공을 바탕으로 글로벌 화물 운송의 게임 체인저가 되겠다는 포부로 이어진다.

 

야라의 포부는 허황된 것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공공의 가치에 먼저 투자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는 전략은 야라와 노르웨이 정부 입장에선 익숙한 그림이다.

 

야라는 아프리카에 비료를 보내기 위해 도로를 건설한 공유가치창출(Creating Shared Value, CVS)의 사례로도 유명하다. 아프리카의 낮은 곡물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비료가 필수적이었지만 이를 수송할 인프라가 없었다. 야라는 지역 정부와 노르웨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클러스터 개발 사업을 진행했고, 항만과 도로 설비 개선에 투자해 아프리카의 농업 클러스터를 구축했다.

 

그 결과 모잠비크에서만 영세 농부 20만 명 이상이 개발로 인한 혜택을 받았고, 일자리 35만 개가 창출됐다. 클러스터 개발로 신시장을 확보한 덕분에 2004년부터 2013년까지 야라의 아프리카 지역 수익은 연평균 2.3% 증가*했다.

 

국제해사기구(IMO)에 따르면 국제 화물운송선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2.2%를 차지*한다. 해상 수송이 다른 운송 방식에 비해 경제적이고 효율적이긴 하지만 오염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를 향해 전 세계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은 제외하고, 달려가는 와중이다. 야라의 혁신이 성공한다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기회는 얼마든지 열려있다. (이후 내용은 본 리포트로 이어집니다.)

 

[NORWAY WAY, 지속가능성에 주목하다 - OIW 2017]

 

일주일간 무대에 오르는 연사만 250명, 총인원 1만 명이 참석하는 행사. 한국에선 잘 모르지만 벌써 12회째 열리고 있는 노르웨이 최대 테크 페스티벌 '오슬로 이노베이션 위크(OIW)'입니다. 아시아 언론으로는 유일하게 취재한 중앙일보 이경희 기자의 경험담을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