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시장은 정말 이대로 끝난 걸까요?

Editor's Comment 

'사면초가 한국 편의점 - 일본과 대만에서 길을 묻다' 리포트의 미리보기 글입니다. 편의점 업계를 다년 간 취재해온 노승욱 저자가 일본과 대만 편의점 업계 현지 취재를 통해 한국 편의점의 나아갈 길을 물었습니다.

전문이 실린 리포트는 11월 28일(화) 오후 5시까지 예약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 가기]

1,600만 명 이상. 4만여 개에 달하는 한국 편의점에 방문하는 일평균 고객수 추정치입니다.

 

편의점 프랜차이즈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의 박재구 대표는 2016년 6월 CU가 1만호점을 돌파했을 때 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현재 CU는 하루에 매장을 찾는 고객이 400만 명이 넘는다."고 말했습니다. CU 1만 점포에 400만 명 이상이라면, 현재 4만 개 편의점에는 단순 계산으로 하루에 1,600만 명 이상이 방문할 것입니다. 이대로라면 대한민국 국민 3명 중 1명은 매일 편의점에 들르는 셈입니다.

 

매일은 아니지만 저도 편의점에 자주 갑니다. 출퇴근할 때나 집 앞에서, 또 길을 가다가도 갑자기 목이 마르거나 출출하면 가까운 편의점을 찾습니다. 단언컨대 어디서든 '편의점을 가야지' 마음먹고 1분 이상 두리번거려 본 적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도처에 있으니까요. 편의점이 많다는 건 고객 입장에선 참 편한 일입니다. 그런데 과연 점주 입장에서도 그럴까요?

 

답 대신 이 분 이야기를 들려드리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2014년에 서울에서 편의점을 13개나 운영하는 다(多)점포 점주 A를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본인 명의로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편의점을 운영하는 사례였죠. 가정주부이자 서예가로 25년을 살아오셨지만 사업을 해보고 싶어 2008년 편의점을 하나 내봤더랍니다. 생각보다 잘 돼서 매년 1~2개씩 더 늘리다 보니 13개까지 하게 됐죠. 당시 저한테 "20개까지 늘릴 생각이다."라고 당당히 얘기했습니다.

 

3년이 흐른 지금, A는 어떻게 됐을까요? 현재 5개를 운영하고 계시답니다. 주변에 편의점이 너무 많아져서 적자를 내는 점포가 급증한 때문이라고요. 이미 2016년 중반부터 하나둘 폐점을 시작했고 나머지도 곧 정리할 거라며 제게 그러시더군요. "노 기자, 이제 편의점은 끝났어!"

편의점 시장은
정말 이대로 끝난 걸까요?
물론, 저는 점주의 이야기도 십분 이해합니다. 그러나 아주 끝났다고 하기엔 유통업계에서 편의점만큼 급성장하는 시장이 또 없습니다. 다만, 편의점이 너무 많이 생겨 공급이 수요를 초과한 데다, 모든 편의점이 구멍가게 수준이어서 편의점 간 차별화가 안 되다 보니 점주들의 수익성이 하향 평준화되고 있는 게 문제입니다. 즉, 주변의 수많은 경쟁 점포들과 확실히 차별화만 할 수 있다면, 급성장하는 수요를 혼자 독차지해 크게 성공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편의점 차별화는 어떻게 할까요? 다른 편의점에선 안 파는 상품과 서비스 콘텐츠를 제공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먼저 기존 편의점보다 규모를 확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려면 하드웨어를 먼저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2016년 국내 미니스톱이 신규 가맹점은 30평 규모로만 여는 '매장 표준화 전략'을 들고 나온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미니스톱은 하드웨어만 키웠지, 그 공간을 채울 소프트웨어, 즉 차별화된 상품과 서비스는 부족했습니다. 가맹점 수가 적어 규모의 경제 효과가 부족하다 보니 신규 콘텐츠 개발에 부담을 느꼈다고 합니다. 이런 식의 대형화는 그야말로 '앙꼬 없는 찐빵'입니다.

 

그나마 상품 차별화 가능성을 보여준 편의점으로 저는 이마트24를 주목합니다. '피코크', '노브랜드' 등 1인 가구 증가와 가성비 트렌드에 걸맞은 것으로 '검증된' 이마트 PB 브랜드를 독점 유치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편의점들도 자체 PB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지만, 상품 경쟁력과 인지도, 고객 충성도 측면에서 피코크나 노브랜드에는 비교가 안 됩니다.

 

물론 이마트24도 약점은 있습니다. 피코크와 노브랜드 전용코너를 수용할 만한 공간 부족입니다. 후발주자로서 편의점을 하나라도 더 늘리려는 본사 정책상 직영점이 아닌 가맹점을 대형 매장으로 출점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즉, 매장 대형화(하드웨어)와 상품 차별화(소프트웨어) 중 미니스톱은 전자, 이마트24는 후자만을 달성해 반쪽짜리 경쟁력을 갖고 있는 상황입니다.

 

편의점 4만 개 시대의 성공적인 차별화 전략의 답도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미니스톱처럼
매장을 키우고,
이마트24처럼
상품을 차별화하는 것이죠
신세계가 지난 2013년 이마트24를 처음 선보일 때 진작에 이런 전략을 폈더라면 지금쯤 이마트24의 성장곡선은 확연히 달라졌을 겁니다.

우리 생활에 가장 밀접한 가게, 편의점 시장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1인 가구 증가 때문에 수요가 급증할 거란 장밋빛 전망을 믿고 매일 15개 안팎 편의점이 '순증'하고 있습니다. 한편 앞서 언급한 다점포 점주 A의 이야기처럼 정작 편의점 점주들은 시름이 깊습니다. 특히, 편의점을 여럿 운영하는 다점포 점주들은 점포 정리에 나섰습니다.

 

비단 A만의 사례가 아닙니다. 2015년부터 편의점 5사(CU, GS25, 세븐일레븐, 미니스톱, 이마트24)의 다점포율*을 직접 조사해온 결과, 2015년 말에는 5개 브랜드가 모두 증가했지만, 2016년 말에는 CU와 GS25만, 2017년 8월 말에는 세븐일레븐을 제외한 4개 브랜드가 모두 감소했습니다.**
* 한 점주가 2개 이상 운영하는 다점포가 전체 가맹점의 몇 %인지를 나타냅니다. 한 점주가 2개 이상 운영한다는 건 장사가 잘 되어서 추가 출점한 것일 테니, 다점포율이 높을수록 기존 점주의 창업 만족도가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관련 기사: '최저임금 인상 눈앞 편의점 폭풍전야 "남는 게 없다" 야간영업 단축·사업 정리 부심' (매경이코노미, 2017.10.16)

한국 편의점의 나아갈 길

저는 한국 편의점이 제대로 발전하고 있는 건지 알아보기 위해 우리보다 먼저 편의점 문화가 발달한 일본과 대만 편의점 업계를 취재했습니다. 제 순수한 호기심이었기에 명절이나 휴가 때마다 자비로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이웃나라들과 비교한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한국 편의점은 포화도와 점포 경쟁력 면에서 상황이 가장 열악했습니다.

 

포화도를 나타내는 '편의점당 배후인구'는 일본과 대만이 2,200명대인 반면, 한국은 1,300명이 채 안됐습니다. 중국은 편의점이 가장 밀집한 지역인 상하이도 2,500명대였습니다. 한국 편의점이 이웃나라에 비해 2배 가까이 포화돼 있는 겁니다.

 

반면, 평균 점포 면적은 일본의 절반도 안 되고, 중국과 대만에 비해선 약 70%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국내 편의점은 갈수록 작아지고 있습니다. 생활플랫폼으로 진화는커녕, 동네 구멍가게로 회귀하고 있는 겁니다.

 

일본과 대만 편의점 업체 임원들에게 한국 편의점 수를 얘기하면 요즘 말로 "헉! 실화냐?"라는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편의점이 너무 많고 작아서 장사가 되겠냐며 그들이 대신 걱정해줬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내내 부끄럽고 속상했습니다. 이 리포트를 쓰기로 결심한 이유입니다. 물론, 그동안 관련 기사를 써왔지만, 기사에 담지 못한 제 생각과 뒷이야기를 더해서 엮었습니다.

왜 한국 편의점만
이렇게나 많고 작은 걸까요
일본과 대만은 어떻게 포화도를 조절하고 대형화에 성공했으며, 그 공간을 어떤 콘텐츠로 채웠을까요. 또, 무인 편의점과 카페형 편의점의 새로운 모델은 무엇일까요. 출점 방식부터 운영 주체까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일본과 대만 편의점에서, 한국 편의점의 나아갈 길을 물었습니다.

 

[사면초가 한국 편의점 - 일본과 대만에서 길을 묻다]

 

한국 편의점은 갈수록 작아지고 많아집니다. 1979년 처음 생긴 한국 편의점이 2016년 3월 3만 개를 돌파하기까지 27년이 걸렸지만, 이후 4만 개에 도달하는 데에는 2년이 채 안 걸렸습니다. 시장이 포화됐는데도 출점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는 기현상입니다. 점포 크기도 점점 작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편의점은 진정한 생활플랫폼으로 진화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 편의점의 오늘과 내일을 일본, 대만과의 비교를 통해 살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