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are you, 오영주?

내가 9년째 다니던 직장은 간판이 좋은 직장이었다.

적당히 모르고 적당히 알려진, 별 근거는 없지만 간혹 '신의 직장' 축에 끼기도 하는 그런 곳. 똑똑하고 능력 있고 점잖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가진 것의 최대한을 발휘하지 않아도 되고, 혹여 그런 의도를 갖고 임한다면 무척 피곤해질 수 있다. ​실질적인 시급을 생각하면 내가 왜 그 대학 나왔나 싶고,​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을 위해 일상의 행복을 바쳐야 하는 게 헛헛하기 짝이 없었다.

 

무엇보다 원칙 없는 처우에 개인의 운명이 요동치는 것은 가장 참기 힘들었다. 해외근무, 복지혜택, 안정성, 사명감... 그저 '해피'하게 사는 것이 내 가치관과는 맞지 않았다고 해두자. 9년간 나이를 9살 더 먹은 나는 아무리 간판이 좋다 한들 내 스스로 느끼는 자부심과 그를 원천으로 샘솟는 내적 동기가 더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그래도 사람 일이란 게 재미있는 것이 그 회사 덕에 인생의 짝을 만나 결혼하게 됐다. 그 회사 덕에 뉴욕으로 오게 됐고, 그 회사 덕에 휴직이 아닌 퇴사의 결정을 내리며 새롭게 시작하게 됐다.

행복

어릴 때부터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돈 벌고, 자식 키우고, 살림 늘리고... 규모와 수준의 차이일 뿐 고만고만한 인생살이의 틀을 깨기 위해 크고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몇 살 더 먹으며 남들과 다르게 살기보다 나답게 사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자유, 이해, 교감, 온정, 그리고 영혼을 갉아먹지 않을 물질적 환경만 유지할 수 있다면 나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잘 하면 될 일이다. 돈이 걱정이라면 과외라도 뛰면 되지 뭐, 이런 하한선을 긋고. 그래도 가능하면 일을 하는 게 좋겠다. 

한 인간으로 세상에 나서 남(자)들이랑 똑같이 교육받고 돈 벌고 제 앞가림하며 잘 살아왔는데 내 정체성의 일부는 여전히 독립적인 사회적 주체로서 존재감을 잃지 않기를 희망한다.

재미

9년간 한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재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잘 하지도 않고 잘 하고 싶지도 않은 일로 평가받는 것이 괴로웠다. 내가 진심으로 관심과 흥미를 느끼는, 그래서 더 알고 싶고, 더 해보고 싶고, 특히 더 잘 하고 싶어지는 일을 찾고 싶었다. 철밥통을 꿰찼지만 그게 내 평생의 업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냥막너무계속완전' 잘하고 싶어서 스스로 가진 것 다 꺼내 쓰게 하는 그런 일 좀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일하는 재미와 더불어 자부심 같은 거, 그런 거 한번 느껴보고 싶었다. 내가 만났던 탁자 너머 사람들처럼 단단하게 빛나는 눈을 갖고 싶었다. 같은 중국어권 선배님들 중에 '전문가'로서 성취를 이룬 훌륭한 롤모델도 계셨지만, 내가 가고 싶은 길은 아니었다. 부러움 정도의 열망도 없는 일을 끌고 갈 자신은 없었다. 

열정

운명을 걸고 뛰어들 일이 뭔지 계시를 받지 못한 나는 늘 고민했다. '열정을 가지라'고들 외치지만 열정이란 게 가져서 가져지는 것인지 의아했다. 덮어놓고 덤벼들 용기 있는 성격도 못 됐다. 그보다 열정이 있는 곳을 찾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편견 없이 이것저것 경험해보는 게 열정을 찾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막연히 품었던 느낌을 검증해 볼 기회도 되고, 그러다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더 알고 싶어지는 것도 생기고, 그 분야 사람들도 자꾸 만나게 되고.

꼭 본격적인 직접경험이 아니어도 된다. 책, 다큐, 강연, 술자리 등도 좋은 채널이다. 대신 진지한 성찰과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

뻗어나가는 줄기들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더 굵고 단단하게 키워보면 좋다. 그러다 보면 꽃망울이 맺히기도 한다.

의미

나는 더 잘 팔아서 더 많이 남기는 것 이상의 가치 밖에 없는 일로는 '일의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

결국 나 먹고살려고 하는 일이긴 해도 세상에 좋은 일을 하고 싶다. 안락한 삶을 보장하는 '돈'과 목적과 방향을 부여하는 '의미'가 만나는 지점. 

내 소질과 경력을 고려하니 환경과 교육이 그런 분야로 꼽혔고, 과학 공학적인 이해가 필요한 환경보다는 인문사회적인 요소가 강한 교육이 내게 더 잘 맞아 보였다. 

게다가 교육, 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 태어난 조건에 상관없이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있게 해주는 거의 유일한 통로가 교육이라 믿는다. 

인지, 음악, 자연, 감정, 비언어적 소통 등 내가 좋아하는 분야들과 엮기에도 제격이고, 언젠가 엄마가 될 내게 가정과 따로 놀지 않는 업이라는 건 현실적으로 매력적인 덤이다.
 

두려움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싶다는 생각은 오랫동안 품었지만, 30대에 들어선 시점에 두려움은 많았다. 남들은 중국어 배우겠다고 없는 시간 쪼개서 학원도 다니고 중국 근무 한번 해보려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마당에 십수 년간 공부해 온 중국어와 중국을 버리겠다는 게 무슨 짓인가 회의가 들기도 했다.

 

새 공부를 하려면 돈, 시간, 에너지도 많이 들고, 공부하고 경력 쌓고 자리 잡으려면 최소 5년은 걸릴 텐데, 차라리 그 시간에 적당한 데 취직해서 경력 쌓는 게 돈도 벌고 낫지 않을까. 거기다 유아교육이라니. 내가 유치원 선생님이 꿈인 적이 있었던가. 결혼한 여자라 결국 이런 진로로 가는 건가. 사람들이 쉽고 뻔한 결정이었다 생각할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고 혼란스러웠다.

가장 힘든 건 사회의 눈앞에 당당하지 못할까 스스로 의심하는 마음이었다.

엎치락뒤치락 지난한 마음고생 끝에 결국 처음의 생각으로 돌아왔다. 결혼해서 남편과 같이 있고, 한국 밖이라 생각과 마음이 자유롭고, 좋은 교육 기회가 있고, 많진 않지만 벌어놓은 돈도 있고, 아직 아이도 없고. 이렇게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지는 기회가 인생에 다시 올까? 지금 또 주저하고 저지르지 못하면 나중에 뼈저리게 후회할 것 같았다. 

 

30년의 일을 5년 때문에 그르칠 순 없었다. 

희망

몇 해 전 겨울 뉴욕에 들른 고등학교 친구 생각이 난다. 친구는 고등학교 때 '공부를 왜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느라 좋은 대학을 가진 못했는데, 곧 미국으로 건너가더니 서부의 명문 공대를 졸업하고 나중에는 아이비리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그 대학 의대를 들어가서 고등학교 친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치과의사가 되었다고 해서 나는 우리나라에서 치대 가듯 그런 선택을 한 건가 했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게 불편한 성격인데 소수의 사람(환자)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니 좋고, 다른 의사들이 두 손 두 발 다 드는 어려운 환자를 받아 자기가 가진 지식을 총동원해 치아를 재건하는 창의성의 여지가 너무 재미있고, 또 힘들게 치료한 환자들이 '네 덕분에 내 인생이 더 살만해졌다'고 말하는 걸 들으면 그렇게 보람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렇게 행복해하는 치과의사라니, 왠지 낯설면서도 친구에게 잘 맞는 좋은 직업이라는 생각이 진심으로 들었다.

 

어떻게 공대를 가게 됐고 왜 치대로 전향했냐는 질문에 친구는 공학이 좋아서 공부해보고 싶었는데 실제 졸업하고 일을 해보니 맞지 않았고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를 알기 어려웠으며 이런저런 생각과 조건 등을 고려해서 치대를 선택하게 됐는데, 의외로 잘 맞고 즐거워서 행복하다고 답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공대를 가지 않았으면 치과 일이 이렇게 재미있다는 것도 잘 몰랐을 거야. 그러니까 너도 뭐든 마음에 들면 해봐. 혹시 나중에 아닌 것 같더라도 그것 때문에 또 더 잘 맞는 길을 찾을 수 있고 그게 왜 좋은지도 더 잘 알게 될 거야." 

 

실로 연애와 진로를 관통하는 한 줄기 찬란한 진리의 빛이다. 아, 또 울컥하네.
 

이런 게 나의, 우리 인생의 희망인 것 같다. 내일 당장 죽지만 않는다면, 설사 좀 돌아가더라도 결국 행복에 가까워질 테니까. 아니, 내일 당장 죽는다 해도 그런 마음을 먹었던 스스로가 너무 자랑스러울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널뛰는 내 마음을 따라 같이 널뛰어 준 남편이 늘 말하듯 놀면서, 쉬면서, 부담을 버리고 최대한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생각한 거니까, 진실일 거다. 진실이긴 했으나 길이 아니라면 진실이 다시 거기서부터 길을 찾을 테니 그냥 가볍게, 재미있게, 즐기면서 가자. 희망이라는 게 있어 얼마나 좋으냐.

시작

올해 5월이면 컬럼비아 교육대학원 Teachers College 발달심리 석사과정을 마치고 졸업한다. 

첫 학기 등록금을 내며 '이게 정말 잘 하는 짓인가'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했지만 1년 반이 흐른 지금 나는 출발점이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떠나왔다. 매 학기마다 세상에 있는지도 몰랐던 문을 하나씩 열면 그 문은 또 다른 문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길이 나는 대로 걸은 것 같다.

시작할 때의 두려움과 회의가 무색하게도 고되지만 짜릿하고 행복하게 공부했고, 이제 취업의 문턱에서 다시 한번 겁이 덜컥 나는 도전을 앞두고 이번에도 그저 다 잘 될 거라고 믿고만 있다.
 

전 직장에서 만난 – 역시 그곳을 떠나신 – 멘토 선배께서 하신 말씀을 인용하고 싶다. 산을 오르는 것은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산을 오르면서 보게 되는 경치, 나무들, 바위들, 신선한 공기들, 구름, 정상에서 느낄 성취감... 그런 것들이 산을 계속 오르게 한다. 

결코 쉽지 않은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그 길을 찾는 것이 나를 살아있게 하고 나를 건강하게 한다. 그걸 느끼고 볼 줄 아는 눈을 잃지 않기 위해, 퍼블리에 발달과 교육에 대한 글을 쓰는 것도 깊이를 더하는 좋은 산행이 될 것이다.

발달과 교육. 지금의 나를 만든, 내게는 최고의 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