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핀란드의 온도 차

핀란드에서 직장도 구하고 아이도 낳아 '엄마와 아이에게 좋은 나라'를 누리려고 했던 꿈은 경제위기 앞에 무너졌다. 2011년 그리스 국가 부도 고비에서 시작한 유럽의 경제위기 앞에 핀란드도 무너졌다. 핀란드 GDP의 1/4 정도를 차지하던 노키아가 한 해에 두세 차례 대규모 구조조정을 감행했다.

 

노키아에 다니던 싱가포르 친구 클라라(Clara)는 구조조정을 앞두고 매번 가슴을 졸이다 6개월간 급여를 받는 조건으로 퇴직했다. 그 시기 해고된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헬싱키의 중국집에도 노키아 출신 중국인 아르바이트 지원자가 줄을 섰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을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안 그래도 불황인데 외국인에게 기회가 찾아오기란 더 어려운 일이었다. 핀란드어를 구사하지 않으면 확실히 불리했다. 아무리 핀란드인이 영어를 잘한다고 해도 자국어를 하지 않으면 분명 한계가 있다.  

뜨거운 사우나가 고프다

"계좌를 없애려고요?"

 

귀국을 앞두고 계좌를 없애려고 은행에 갔을 때 직원이 물었다. 고객 하나를 잃는 은행 입장에서 지극히 사무적인 질문인데 나는 쓸데없이 진지했다. 사무적인 대화에도 감정이입을 할 만큼 핀란드를 떠나는 게 아쉬웠다.

 

"공부가 끝나서요. 이제 고국으로 돌아가요."

"그렇군요. 핀란드 어땠나요?"

 

핀란드 생활을 끝내려고 하는 순간까지 들어야 하는 이 지긋지긋한 질문. 그러나 도무지 싫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할 기회를 주는 그들에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좋았죠.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요."

"그럼 좀더 있지 그래요?"

"직업을 구해봤는데 잘 안되네요."

"저런, 아쉽네요. 그래도 좌절하지 말아요. 어려운 경제 탓에 핀란드인 제 친구도 직업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경기가 좋아지면, 꼭 다시 오세요."

 

상황이 조금은 낫지 않을까 기대했던 한국의 현실은 핀란드보다 더 냉랭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까지 하게 된 내가 일할 곳은 없었다. 채용하기로 했다가도 임신 사실을 알리자 무산된 곳도 있고, 면접을 보러 갔다가 중간에 나와야 했던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