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빌려드립니다

핀란드 학생 신분이 혜택이 많다고 해도 수입이 없는 유학생 형편이 넉넉할 리 없다. 학생식당 말고는 외식하는 일이 없고, 교통비를 줄이기 위해 동선과 시간을 계산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배고픔을 참기 힘들어서 남편에게 서로 아무 말도 하지 말자고 날을 세운 적도 있다. 이뿐인가. 환승 시간 때문에 뛰어가다 코피를 흘린 적도 있다.

 

그렇게 궁색하게 사는 데도 어디론가 풍요로운 구석이 있었다. 음악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한국에선 학생 신분으로 쉽게 즐기지 못했을 음악과 공연을 가까이에 두고 살 수 있었다.

 

헬싱키 오페라 하우스에는 무료 공연 프로그램이 있다. 핀란드에 산 지 1년이 지났을 즈음, 헬싱키 안내 책자를 읽다 알게 되었다. 마침 그 주 토요일에 공연이 있었다. 무려 핀란드 국립 교향악단 소속 피아니스트와의 협주 공연이었다.

 

공연장 앞 로비에 앉아 연주를 감상했다. 오페라 하우스가 바다와 면하고 있어 로비에 앉아 있으면 바다가 훤히 보였다. 겨울이었는데, 허옇게 언 바다를 보며 듣는 음악은 공연장 안에서 듣는 것과 다른 매력이 있었다. 연주가에게는 무례한 일이지만 자꾸 창밖을 보게 되었다. 선율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창밖 풍경과 창가에 앉아 음악을 감상하던 이들의 옆모습은 사진처럼 남아 있다.

ⓒ류진

무료 공연이 아니더라도 학생은 저렴하게 오페라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공연 직전 남는 티켓을 학생에게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기 때문이다. 남편과 시험이 끝난 날 <마술 피리>를 본적이 있다. 아주 수준급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저렴한 가격에 오페라를 볼 기회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