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운 자연

헬싱키 도심의 단조로운 선. 이런 풍경을 눈에 담고 사니까 올곧게 살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류진

핀란드의 풍경은 단조롭다. 도시는 단순한 선과 색을 변주한 건축물뿐이다. 수심이 얕고 좀처럼 파도가 치지 않는 발트 해는 선이 곧다. 수면 위로 바람이 스치며 만드는 섬세한 물결을 응시하고 있노라면 호수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숲을 돌아봐도 단조롭기는 마찬가지. 자작나무가 쭉쭉 뻗어 있을 뿐이다.

 

'내가 먹는 음식이 나'라고 말하는 것처럼 '내가 본 것이 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단조로운 핀란드의 풍경을 눈에 담고 있으면 어느새 곧고 착해지자는 마음이 진짜 들었단 말이다.

좋은 자연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지어진 기숙사
핀란드엔 숲이 많다. 숲으로 떠나자고 작정해야 숲에 닿는 게 아니다. 걷다 보면 어느새 자작나무 숲을 지나고 있다.  

 

비행기가 헬싱키에 다다랐을 때 상공에서 보이는 건 나무뿐이었다.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면 착륙 직전 소인국이 된 마을풍경을 구경하는 게 재미있었는데, 핀란드에서는 아니었다. 나무가 어찌나 많은지 사고가 나더라도 뭉실뭉실한 녹색 덤불이 완충재 역할을 해줄 것 같다는 안심이 들었다. 

ⓒ류진오타니에미 캠퍼스 산책로. 바다를 따라 자작나무 숲길을 걸을 수 있다. ⓒ류진알토대학교 오타니에미 캠퍼스는 가장자리를 따라 산책로가 둘려 있다. 캠퍼스와 마을로 이어지는 산책로다. '여기가 끝'이라는 경계도 없어 걷다 보면 어느새 캠퍼스를 벗어나 있었다.

 

나는 이곳 기숙사에 살았다. 이 캠퍼스가 지어질 당시, 학생에게 가장 좋은 자연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기숙사 위치를 정했다고 한다. 캠퍼스를 설계한 알바 알토는 학교라는 집단에서 가장 열세한 위치에 있는 학생에게 가장 자연과 가까운 터를 할당했다. 그 덕분에 나는 바다와 자작나무 숲이 감싸고 있는 기숙사에서 살 수 있었다. 그것도 저렴한 비용으로 말이다.

 

기숙사를 배정받고 가구를 들인 후 남편과 가장 먼저 한 일은 숲을 산책하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숲에 가려고 한 건 아니다. 거주지를 옮기면 통과의례처럼 도는 '동네 한 바퀴'가 핀란드에선 숲이었다.

 

감탄사를 끊임없이 내뱉으며 걸었다. 얕은 바다와 작은 숲일 뿐이지만 눈에 들어오는 광경이 바뀔 때마다 왠지 모르게 숨이 턱 막혔다.

 

그 후로 여러 번 같은 길을 걸어보니, 처음 그토록 감탄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인위적이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이 낯설었다. 산책을 할 수 있는 길.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운동기구도 없고 돌멩이가 박힌 지압 길도 없다. 늪지대에 놓인 나무 발판만이 사람 손이 닿은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