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그 자리가 분실물 보관소

핀란드인은 양심적이다. 나는 물건을 잘 잃어버리니 핀란드인과 찰떡궁합이다. 아니, 그 반대인가? 덤벙대는 성격을 도무지 고칠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핀란드 거리엔 떨어진 물건이 많다. 주인이 찾아갈 때까지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 잃어버린 그 자리가 분실물 보관소인 셈이다.

 

물건을 사라지게 하는 것은 오직 눈뿐이다. 핀란드의 겨울은 길다. 11월부터 눈이 쌓이기 시작해 4월이 되어서야 녹는다. 겨우내 냉동 신세가 된 분실물은 봄에서야 물에 푹 젖은 모양새로 다시 주인을 기다린다.

 

장갑 한 짝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 날이 한결 따뜻해진 때였다. 시내에서 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올 때 조금 추워 장갑을 찾았더니 없었다. 여유가 없는 유학생이라 장갑을 잘 챙기지 못한 후회가 밀려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바닥만 내려봤다. 어디선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장갑 한 짝을 생각하며, 버스에서도 나오는 길에 앉았던 그 자리에 앉았다. 좌석을 살피고 바닥을 헤집어보았지만 장갑은 없었다.

 

버스에서 내리면서 운전기사에게 진짜 분실물 보관소가 어딘지 물어보려 말을 꺼냈다.
"헬싱키로 가는 버스에서 장갑을 잃어버렸는데 어디로 가야 찾을 수 있나요?"

 

운전기사는 "혹시 이게 당신 건가요?"라며 장갑을 꺼냈다. 손끝이 헤지고 손목 부분에 얇은 금장 끈이 달린 까만 가죽 장갑. 호주머니에서 나머지 한 짝을 보여주며 그 장갑이 내 것임을 증명했다.  

비싼 핀란드 물가
싸구려를 용납하지 않는 사람들

장갑을 찾지 못했다면 정말 속상했을 것이다. 다시 장만하기엔 가격이 부담스러웠다. 핀란드의 물가는 확실히 높다. 저가 상품들, 이른바 '싸구려' 시장이 없기 때문이다. 노동에 정당한 가치를 부여하므로 '사람 품이 든 것'은 우리 기준에서 모두 비싸다고 봐야한다.

 

이런 사고방식이 모범답안처럼 올바르기도 하지만, 가끔은 급한 대로 대충 쓰고 버릴 물건을 살 수 없다는 점에서 답답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