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브랜드의 본질에 접근하는 바른 방법

도시의 브랜드라니, 독자들은 어떤 이야기를 상상했을까? 'I ❤ NY' 같은 전설적인 로고를 만드는 방법? 별 볼일 없는 도시가 관광업 마케팅으로 대박 낸 사례? 또는 도시를 하나의 상품으로 보고 브랜드 홍보 전략을 세우는 이야기 등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나 역시 이 매력적인 주제를 어떤 각도에서 다룰 것인지 고민했다.

 

우선 도시 브랜드에 관한 일반론을 펼치기에는 연구할 자료가 많지 않았다. 국가 브랜드와 비교하면 지역 브랜드(destination brand)를 다루는 역사도 길지 않다.

 

도시 브랜드에 관한 이야기는 최근 마케팅 저널, 관광업 컨퍼런스에서 떠오르는 신선한 주제이다. 이는 논의가 아직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도 상품이나 기업의 브랜드를 논하는 방식에 도시를 끼워 맞추는 것은 적절한 방법 같지 않았다.

 

흔히 브랜드를 만든다고 하면 먼저 그 대상인 상품의 정체성을 파악한다. 그리고 시장에서 어떻게 포지셔닝할지 전략을 세우고, 시각적 상징을 만들어 고객에게 전달해야 마땅할 것 같다. 그런데 도시 브랜딩 사례를 찾아보면 앞 단계를 건너뛰고 상징물부터, 즉 로고나 거창한 랜드마크부터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나는 역으로 거슬러 도시가 정체성을 찾는 이야기, 세계 시장에서 자기 위치를 영리하게 찾아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다. 역사와 문화가 얽힌, 언뜻 보기에는 응용 가능성이 적어 보이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도시 브랜드의 본질에 접근하는 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한편 지나치게 전문적인 논의는 피하고자 했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특정 독자층을 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쩌면 온라인 콘텐츠의 특성이기도 하다.

 

환대 업계 전문 저널이라면 관광업종의 수익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브랜딩 사례를 분석했을지 모른다. 공공기관이나 비정부기구(NGO)를 위한 장이라면 지속 가능한 브랜드 구축을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본 방법론을 제시했을 수도 있다. 새로운 여행지나 삶의 터전을 찾는 독자를 위해서라면 일반 시민 입장에서 각 도시를 분석하는 편이 유용했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독자층을 정하기 어려운 점은 역으로 매력적이기도 했다. 어떤 독자가 읽든, 글에서 제시한 마이애미, 멜버른, 우붓과 두브로브니크에 관해 어떤 지식을 얻는 데 그치지 않고, 머릿속에 각 도시의 이미지를 새길 수 있기를 바랐다.

 

도시든 사람이든 제품이든, 브랜딩을 한다는 것은 결국 뉴요커나 파리지엔을 떠올리듯 상대방의 머릿속에 선입견을 새기는 작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 네 곳의 이미지가 각각의 캐릭터로 그려지도록 썼다. 나아가 이러한 캐릭터를 구축한 과정까지 떠올릴 수 있다면 내 글의 목적은 다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심 도시의 캐릭터를 만드는 일에는 내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나는 대학에서 법학을 배우고 변호사로 근무하기까지 10여 년을 법의 세계에서 살았다. 그 후 환대 산업에 특화된 MBA를 택했다. 엄숙하고 무거워 보이는 법의 세계와 정반대에 있는, 소프트 파워의 정점이라 할 세계를 몸소 익히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도시의 뼈대라 할 법과 제도를 파악하고, 꾸밈새라 할 관광 마케팅을 꿰뚫어 보고 그 사이에 살을 붙이는 작업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 리포트에서 각 지역과 분야를 망라하는 사례를 선택했다. 독자 입장에 와닿는 실용적 사례가 한두 가지는 있을 것이다. 이를 상황에 맞게 적용하고 실행하는 것은 각자의 자리와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독자의 몫이다.

한국의 도시 브랜딩은 어떻게 해야 할까

리포트를 발행하고 살롱과 강연, 두 차례의 모임을 가졌다. (오디오 듣기, 리포트 구매 고객 전용) 직업, 출신 지역 등 다양한 독자 사이에 공통 관심사가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바로 한국의 도시 브랜딩에 대한 것이었다. 서울의 브랜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국의 작은 도시들이 성공적으로 브랜딩 할 수 있을지 질문이 반복되었다. 답변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난감했다.

 

나 역시 서울이 고향이고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종묘이다. 세상 어디에 간들 서울이 눈에 밟히지 않을 수 없었다. 외국 사람이 서울을 도쿄의 '저렴이(값싼)' 버전, 동남아보다 재미는 없지만 삼성 전자제품이나 한국 화장품을 살 수 있는 곳 정도로 취급하는 것을 접할 때마다 답답했다. 한국 사람에게는 영리한 풍자곡인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외국 사람에게는 서울의 B급 이미지를 굳히는 쐐기가 된 것은 아닌지 아쉽기도 했다.

 

무엇보다 세계 다른 도시와 견주어 성공적인 도시 브랜딩 사례로 자랑스럽게 내놓을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서울 사람으로서 분통 터지는 일이다. 역사가 길고 문화가 두터운데, 게다가 이처럼 브랜딩에 관심있는 사람이 많은데, 왜 결과물이 'I Seoul U'인가.

I SEOUL U ©손현

서울의 브랜드는 아직 과도기에 있다. 이것이 토론을 거듭하며 떠오른 답이다. 구, 동, 골목 단위로 브랜딩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정적 영향을 줄이고자 도시 당국과 주민이 힘을 합치는 사례도 들리고 있다.

 

게다가 국제무대에서 서울이라는 도시의 성장세는 브랜딩 과정에서 몇 번의 실수나 실패가 있다 해서 꺾일 정도가 아니지 않은가. 조만간 서울이 작은 규모의 브랜딩 성공사례를 쌓아서, 메가 도시로서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가지 않을까 낙관하고 있다.

 

작은 도시의 경우, 도시의 캐릭터가 비슷하다는 점이 약점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1950년대 광고인을 다룬 미국 드라마 <매드 맨(Mad Men)>에는 주인공이 '시리얼이나 담배가 광고인에게는 최고의 기회'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비슷한 회사가 비슷한 제품을 만들다 보니, 이미지를 선점하는 자가 승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리포트를 통해 도시를 브랜딩 할 때에는 시민을 염두에 두고 시민에게 먼저 물어보라고 했는데, 그 결과가 I Seoul U 아닌가?

도시 브랜딩 오프라인 행사 전. 영상 속 인물이 프레드릭 스니처이다. &#169;손현

나는 마이애미 미술계의 터줏대감인 프레드릭 스니처(프레드릭 스니처 갤러리 대표)의 말*을 다시 인용하고 싶다.
* '미술계의 메트로폴리스, 마이애미' 중 프레드릭 스니처 인터뷰 참고

아프면 의사에게 가듯,
전문가에게 맡기라

도시의 주인은 시민이다. 그렇다고 시민이 모든 일을 직접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브랜딩 전문가를 섭외하여 시민 의견을 수렴하고 그로부터 브랜딩 방향을 뽑아내도록 일을 맡겨도 된다. 그 제안을 놓고 도시 당국과 시민 대표를 포함하는 이해 관계자가 장기적 관점에서 논의하고, 다시 방향을 확립해야 한다. 그리고 브랜딩 방향에 맞는 로고를 만드는 작업은 다시 전문가에게 맡기자.

 

말은 쉽지만 모호하고, 실행은 구체적이어야 하니 어렵다. 나도 글을 쓰면서 생각이 추상적으로 흐를 때면 도시를 사람으로 생각하고 물어보곤 했다. 의외로 구체적인 답변이 나왔기 때문이다.

 

올림픽이나 국제행사로 도시 이미지 변화를 꾀하는 방법은 왜 먹히지 않을까? 이는 소개팅에 나갈 때, 실제보다 유식한 척, 부유한 척하는 것이 나쁜 이유와 같다. 이미지를 유지하는 데 불필요한 힘이 들고, 실체가 노출되었을 때 피해가 더 크기 때문이다.

 

도시 당국과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훌륭한 브랜드를 구축해도 일반 시민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는 왜 발생할까? 자기계발서 백 권을 읽어도 버릇 하나 고칠 수 없는 이유와 같다. 브랜드를 유지하려면 디테일까지 일관성을 지켜야 하는데, 사람이든 도시든 살아있는 유기체를 통제할 수는 없다.

사람들이 아무리 원해도
마이애미는 뉴욕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

역시 스니처의 말이다. 사람이든 도시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될 수 있는 한 최고를 향해 천천히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내가 글을 쓰면서 얻은 교훈이었다.

부록: 함께 읽으면 좋은 추천도서

  • 'Future of cities: Brand of gold' (The Guardian, 2008.10.1): 가디언의 2008년 기사이다. 도시 브랜딩의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 그리고 실무적 팁을 간단히 정리하고 있다. [기사 보기]
     
  • 「관광지 브랜딩 핸드북 (Handbook on Tourism Destination Branding)」, ETC & UNWTO (2009): 유럽 관광위원회(European Travel Commission, ETC)와 세계관광기구(World Tourism Organization, UNWTO)가 지역 마케팅을 담당하는 실무자를 위해 펴낸 책이다. 국가 브랜딩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기는 하나 지역 브랜딩의 이론부터 실무까지 잘 정리한 책이다. [책 보기]
     
  • 데이비드 오길비, 「광고 불변의 법칙(Ogilvy on Advertising)」, 거름 (2004): 고전 음악의 아버지가 바흐라면 현대 광고의 아버지로 오길비를 꼽을 수 있다. 이 책의 초판은 인터넷은커녕 TV 광고조차 생소한 1985년에 나왔지만, 여전히 브랜딩과 광고에 관한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오길비가 푸에르토 리코의 브랜딩을 새로 한 대목은 국가나 지역 브랜딩에 관한 고전 중 고전이다.
     
  • 잭 트라우트, 앨 리스, 「포지셔닝(Positioning)」, 을유문화사 (2002): 브랜딩에 대한 일반 이론을 제대로 알고 싶은데,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를 구독하기는 귀찮고, 시중에 널린 브랜드, 마케팅 관련 책에 질릴 지경이라면 이 책 한 권만 읽고 실무로 넘어가자. 국가 브랜딩 사례이기는 하지만, 벨기에 브랜딩을 다룬 장도 있다.


[도시 브랜딩 - '성격' 있는 도시가 좋다]

아래의 링크에서 지금 바로 리포트를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