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이를 한 살 더 먹을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과 함께 해온 시간이 쌓여 간다. 그럼에도 나의 취향은 희미해진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과 사고의 폭을 넓힌 덕분에 취향이 변화무쌍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을 가지고 상상조차 못했던 선택을 매년 하게 되는데, 어떻게 나의 취향을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얼마 전에 서로의 취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자신의 취향을 정의하기보다 좋아하는 것들과 그 마음에 대해 설명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고, 꽤나 따뜻한 기억으로 남았다. 최근 몇 년 동안 내가 가진 성향 중 그나마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자신이 누구인지 몇 마디 단어로 설명해내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내가 사는 지금은 바야흐로 취향의 시대다. 정확히 말하자면 '취향 주장'의 시대랄까. 보여지고 싶은 자기 자신을 기획 및 전시하는 SNS가 우리네 시공간을 점령한 후 자신의 취향을 호들갑스럽게 내보이는 사람들이 많아진 느낌이다.

 

이렇게 모두가 소리 높여 취향을 외치는 시대에 결연히 반기를 들고 나선 조직이 있으니, 바로 클럽 안티 버틀러다. 이수진의 장편소설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의 주인공 한은 이별 통보 후 사라진 여자친구를 찾기 위해 애묘인들이 모인 고양이 카페에 간다. 언제나 한의 취향 없음을 비웃던 여자친구처럼 애묘인들은 한이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얕보고 배척한다. 한은 이에 발끈하고 이후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김B 등이 속한 클럽 안티 버틀러의 회원이 된다.

 

이 소설은 클럽 안티 버틀러(butler, 집사, 애묘인들은 자신들을 집사라고 지칭한다) 회원들이 고양이 애호가들을 타도하려고 꾸민 계획을 따라 전개된다. 클럽 회원들은 모두 자신의 취향이 최고라고 고집하는 집사들에게 상처받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회원들이 애묘인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애묘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렇지 않은 이들을 무시하는 사람들, 취향이 곧 수준이며 자신의 취향이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바로 클럽의 공격 대상이다.

사람들은 그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나열을 들을 때마다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취향이 다양하시네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김A에게 '취향이 없으시네요'라고 말했다. '취향이 없는 뮤지션은 쓰레기나 다름없지'라고도 말했다. 그것은 김A에게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렇다고 무언가를 억지로 좋아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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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취향이 존중받는, 심지어 취향이 수없이 많거나 없는 것조차도 인정받는 인류 취향의 역사를 위하여 클럽은 대대적인 작전을 수행한다. 과연 그들의 작전은 성공하고, 나의 희미해지는 취향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직접 확인해보시기 바란다. 여자 천명관을 보는 듯 구수하고 천연덕스러운 문장을 술술 풀어내는 작가 덕에 페이지도 술술 넘어가니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전에 없이 감질맛 낸 마무리는 필자의 취향이니 존중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