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과 기술기업 투자
아래는 2017년 6월 2일 기준 버크셔 해서웨이 보통주 투자 포트폴리오 상위 40 종목 리스트이다. 2016년 대비 변화가 있는 종목은 색으로 표시했다. (노란색: 신규 편입, 파란색: 비중 증가, 빨간색: 비중 축소)
눈에 띄는 변화는 애플과 4개 항공사 신규 매수다. 버핏은 항공사와 기술기업 투자를 기피해왔다. 1989년 US에어 매수를 자신의 실수 올림픽 금메달이라며 항공사 투자를 크게 후회했다. 그리고 혁신 기술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투자를 기피했다.
그랬던 버핏이 2011년 재무 건전성과 자사주 매입을 근거로 IBM 주식을 매수해서 큰 논란이 되었는데, 이와 관련한 질문에 IBM이 애플과 구글보다 낫다며 IBM을 두둔했다.
10년 후 애플과 구글의 가치가 훨씬 커진다고 해도 우리는 사지 않을 것이다. 기술이 어떻게 발전할지, 잠재적인 경쟁자와의 싸움에서 누가 최종적인 승자가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애플과 구글은 대단한 회사지만 이들이 잘못될 가능성보다 IBM이 잘못될 가능성이 훨씬 적기 때문에 IBM이 훨씬 안전한 투자다.
- 워런 버핏, 2012년 주주총회 Q&A 중
버핏은 투자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잘 바꾸지 않는다. 그런 버핏이 4년 전에는 절대 사지 않을 것이라 했던 애플 주식을 2016년부터 2017년까지 200억 달러 어치를 샀다. 우리나라 주식 중 포스코나 SK텔레콤의 전체를 산 것과 마찬가지 규모인데, 기술기업에 대해서 평생 일관적인 기조를 유지해 온 버핏이 태도를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워런 버핏과 기술기업 투자
아래는 2017년 6월 2일 기준 버크셔 해서웨이 보통주 투자 포트폴리오 상위 40 종목 리스트이다. 2016년 대비 변화가 있는 종목은 색으로 표시했다. (노란색: 신규 편입, 파란색: 비중 증가, 빨간색: 비중 축소)
눈에 띄는 변화는 애플과 4개 항공사 신규 매수다. 버핏은 항공사와 기술기업 투자를 기피해왔다. 1989년 US에어 매수를 자신의 실수 올림픽 금메달이라며 항공사 투자를 크게 후회했다. 그리고 혁신 기술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투자를 기피했다.
그랬던 버핏이 2011년 재무 건전성과 자사주 매입을 근거로 IBM 주식을 매수해서 큰 논란이 되었는데, 이와 관련한 질문에 IBM이 애플과 구글보다 낫다며 IBM을 두둔했다.
10년 후 애플과 구글의 가치가 훨씬 커진다고 해도 우리는 사지 않을 것이다. 기술이 어떻게 발전할지, 잠재적인 경쟁자와의 싸움에서 누가 최종적인 승자가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애플과 구글은 대단한 회사지만 이들이 잘못될 가능성보다 IBM이 잘못될 가능성이 훨씬 적기 때문에 IBM이 훨씬 안전한 투자다.
- 워런 버핏, 2012년 주주총회 Q&A 중
버핏은 투자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잘 바꾸지 않는다. 그런 버핏이 4년 전에는 절대 사지 않을 것이라 했던 애플 주식을 2016년부터 2017년까지 200억 달러 어치를 샀다. 우리나라 주식 중 포스코나 SK텔레콤의 전체를 산 것과 마찬가지 규모인데, 기술기업에 대해서 평생 일관적인 기조를 유지해 온 버핏이 태도를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경로에 얽매이지 않는 투자자기존에 했던 말을 바꾸는 능력은 투자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이런 능력을 「블랙 스완」의 저자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경로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표현했다.
경로에 얽매인다는 것은 기존의 말과 투자 포지션에 영향을 받아 정확한 투자 판단을 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예를 들어, 5억 원일 때부터 지켜본 아파트가 8억 원으로 올라서 투자하기를 꺼리거나, 3억 원에 샀던 아파트가 9억 원에서 5억 원으로 내려서 팔기를 꺼린다면, 모두 경로에 얽매이는 것이다.
내가 평생 만나본 사람 중 최고의 트레이더는 나이젤 배비지인데, 자신의 과거 신념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다. 어떤 통화가 약세가 될 거라고 강하게 주장했으면서도, 불과 몇 시간 뒤에는 전혀 거리낌 없이 충동적으로 그 통화를 매수한다. 왜 생각이 바뀌었을까? 그는 설명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이런 특성을 타고난 유명한 인물이 조지 소로스다. 그가 지닌 강점 중 하나가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순식간에 자신의 견해를 뒤집는 것이다. (중략) 소로스 같은 진정한 투기꾼들의 특징은 경로에 전혀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과거 행동에 전혀 구속받지 않는다. 하루하루가 백지상태에서 시작한다.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행운에 속지마라」 중
투자자는 기존의 말과 투자 포지션을 뛰어넘어 새로운 정보와 금융시장의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속도와 빈도의 차이가 있을 뿐 조지 소로스는 빠르게 자주, 버핏은 느리게 드문드문 자신의 투자 포지션을 바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잘 움직이지 않는 버핏을 움직이게 한 동인이다. 이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토록 특정 산업군에 투자하기를 꺼린 이유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기술기업 투자를 기피한 이유
1999년은 IT 버블의 해였다. 기술과 인터넷 관련 회사는 매출과 수익에 상관없이 주가가 엄청나게 상승했다. 하지만, 이듬해 나스닥 지수는 폭락했고 이후 무려 14년 동안 1999년의 고점을 회복하지 못했다. 2017년 현재 기술기업군의 4대 기수인 IBM,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시스코 중 유일하게 마이크로소프트만이 1999년 당시의 주가를 회복했다.(1999년 52 달러, 2017년 71 달러)
이런 미래를 모른 채 모두가 기술기업을 신봉하던 1999년, 버핏은 반기를 들었다. 그 해 7월 비공개 CEO 모임인 선 밸리 컨퍼런스(Sun Valley Conference)의 연설에는 버핏이 혁신에 투자하지 않는 이유가 잘 나와 있다.
비록 혁신이 세상을 빈곤에서 건져 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혁신에 투자한 사람은 나중에 웃지 못했다. 한때 미국에 있던 자동차 회사의 이름을 적은 목록은 70쪽이나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 쪽도 다 채우지 못한다. 자동차 회사는 무려 2,000개나 있었다. (중략)
하지만 그 2,000개 기업 가운데서, 몇 년 전 기준으로 오로지 3개밖에 살아남지 못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이 회사들의 주식은 장부 가격보다 싸게 팔리기 시작했다. 장부 가격이 무엇인가? 여태까지 그 회사에 들어간 돈이며 또 그 회사에 남아 있는 돈이다. 요약하면, 자동차가 미국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엄청난 충격과 변화를 가져다주긴 했지만, 투자자들에게 준 충격은 그것과 반대 방향이었다.
때로는 패배자를 찾아내는 게 훨씬 쉽다. 그때 해야 할 선택은 분명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때 사람들이 선택해야 했던 것은 말을 공매도하는 것이었다.(중략)
그리고 20세기 전반기를 장식했던 또 하나의 위대한 발명품은 비행기다. 1919년부터 1939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비행기 산업과 관련해서 약 200개의 기업이 있었다. 자, 한번 상상해 보자. 여러분이 그 옛날 키티 호크에서 항공 산업의 미래를 볼 수 있었다고 하자.*
* 1903년 12월, 노스캐롤라이나의 키티 호크에서 인류 역사상 최초로 오빌 라이트가 동력 비행에 성공했다. - PUBLY
아마도 그때까지 꿈도 꾸지 못한 세상을 봤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모든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 보기를 바라고 친척과 친지를 만나러 혹은 이들에게서 도망치려고 비행기를 손쉽게 이용하게 될 것이라는 날카로운 예측을 한다고 하자. 그러면 바로 여기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2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항공 산업 분야의 전체 주식에서 수익이 한 푼도 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만일 내가 키티 호크의 그 역사적인 자리에 다시 설 수 있다면, 오빌에 대해서 공매도할 것이다. 미래의 어떤 자본주의자에게서 확실하게 배운 게 있기 때문이다.
- 워런 버핏, 1999년 선 밸리 컨퍼런스 연설 중
버핏은 기술기업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기업의 경쟁과 그려지지 않는 미래를 싫어한 것이다. 경쟁은 승자를 남기지만 더 많은 패자를 양산하고, 버핏은 2,000개의 혁신 기업 중 살아남을 3개의 기업을 골라낼 자신이 없었다.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다. 그래서 좋은 기회를 놓친다 할지라도 본인이 세운 원칙을 지키는 쪽을 택했다.
버핏이 놓친 우주선
강조하건대 미국 시민으로서 찰리와 나는 변화를 환영한다. 참신한 아이디어, 신상품, 혁신적 공정 등이 미국의 생활 수준을 높여주며 이는 분명히 좋은 일이다. 그러나 투자자로서 (부글부글 거품이) 끓어오르는 산업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우주탐사를 보는 관점과 같다. 우리는 우주탐사에 박수갈채를 보내지만 우주선에 타고 싶지는 않다.
- 1999년 주주 서한 중
버핏은 혁신 기술은 필요하지만 타고 싶지는 않은 우주선에 비유했다. 그러나 모든 우주 탐사가 실패하는 것은 아니기에 놓쳐버린 투자 기회의 찬란한 성공을 지켜보는 것이 마음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버핏도 조금은 후회를 했을 것이다. 특히, 세계적인 기업의 설립 초기에 투자할 기회를 놓친 1968년을 떠올린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버핏은 새롭게 형성되고 있던 신기술 회사들과 관련해서는 특히 구식이었다. 그는 그리넬 대학의 이사회에 참석했다가 동료 이사이던 밥 노이스가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떠나고 싶어서 안달하는 모습을 보았다. 노이스, 페어차일드의 연구 책임자 고든 무어, 그리고 연구 개발 부서의 부책임자 앤디 그로브는 결국 캘리포니아의 마운틴뷰에서 무명의 새로운 회사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고 그저 회로 기술을 '보다 높은 수준의 통합으로 이끈다'는 모호한 계획뿐이었다. 조 로젠필드와 그리넬 대학 재단은 각각 10만 달러씩 내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12명이 이 새로운 회사를 위해서 250만 달러의 자금을 모으기로 했다. 그 새로운 회사의 이름은 곧 '통합된(Integrated) 전자공학(Electronics)'이라는 의미의 인텔(Intel)로 정해졌다. (중략)
비록 버핏이 노이스를 존경하긴 했지만 버핏 파트너십 이름으로는 인텔에 투자하지 않았다. 이로써 생애 최대의 투자 기회가 될 수도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 앨리스 슈뢰더, 「스노볼」 중
인텔의 초기 투자자가 될 기회를 놓쳤지만, 버핏이 기술기업으로 큰 돈을 벌 기회는 또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즈 3.1이 출시되기 직전인 1991년 버핏은 빌 게이츠를 처음 만났다. 버핏은 게이츠에게 IBM의 향후 전망은 어떠한지, IBM이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쟁자인지 물었다.
게이츠는 이에 대한 답변과 더불어 버핏에게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 두 종목에 투자하라고 추천했다. 그러나 버핏은 투자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더 중요한 기준이 있었다. 그리고 두 회사는 그 당시 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버핏이 투자 기준을 낮추면서도 단 한 가지 절대로 타협하지 않은 것은 안전 마진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안전 마진은 포기하지 않았다. 위험 범위를 제한할 수 있다면 아무리 많은 돈을 벌 가능성이 있더라도 포기한다는 원칙, 이 특별한 원칙이 바로 워런 버핏을 있게 한 기본적인 힘이었다.
- 앨리스 슈뢰더, 「스노볼」 중
버핏의 애플 투자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 서한에는 그들이 인수하고자 하는 회사의 조건이 명시되어 있다. 아래는 핵심 파트의 번역이다.우리는 아래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회사의 수장 혹은 대표로부터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를 희망한다.
1. 대형 인수(세전 이익 7,500만 달러 이상)
2. 지속적인 수익력을 입증한 기업(미래이익 추정이나 '턴어라운드'가 예상되는 기업에는 관심 없음)
3. 부채가 없거나, 있더라도 낮은 비율일 것. 자기자본수익률(ROE)이 높은 기업
4. 경영자가 있는 기업(우리는 경영자를 발굴하지 못함)
5. 사업 내용이 단순한 기업(기술 요소가 많은 기업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함)
6. 매도가격 명시(가격을 모르는 상태에서 거래를 협의하느라 우리의 시간 혹은 판매 의향자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음)
더 큰 기업일수록 더 많은 관심이 있고, 50~200억 달러 규모의 인수를 하고자 한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 주식 시장에서 내릴 수 있는 매수 결정과 관련한 판매 의향에는 관심이 없다.
적대적 인수는 하지 않는다. 비밀유지를 보장한다. 상기 조건을 만족시키는 회사는 언제든지 우리에게 연락하면 길어도 이틀, 짧으면 5분 안에 회신하겠다. 현금 거래를 선호하며 우리가 지불한 만큼의 본질적인 사업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주식 발행을 고려할 것이다. 경매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버핏은 기업 인수와 보통주 투자에 같은 원칙을 적용하기에 투자 포트폴리오 변화에도 같은 기준이 적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10년간 매년 자기자본수익률(ROE)이 15% 이상, 총자본이익률(ROI) 10년 평균 12% 이상인 회사가 훌륭한 회사라 언급했다.
야후 파이낸스의 Stock Screener를 이용해 그가 최근 인수를 시도한 유니레버와 비슷한 기준을 만족하는 기업을 찾아보았다.
1. 세전 이익 7,500만 달러 이상
2. 자기자본수익률(ROE) 30% 이상
3. 부채비율(D/E) 100% 이하
4. 수익 마진 10% 이상
5. 대형주 이상
이 조건을 만족하는 미국 기업 상위 19개는 다음과 같다.
빨간 칸에 들어있는 애플, 유니레버, 마스터카드, 델타 항공이 버핏이 투자했거나 인수를 시도했던 기업이다. ROE를 25%로 낮추면 사우스웨스트 항공도 포함되는데, 버핏이 왜 아마존, 페이스북, 구글과 같은 기술기업 대신 애플과 항공사를 선택했는지 조금은 수긍할 수 있다. 자신이 매년 제시하는 투자 요건을 이들이 통과한 것이다.
혁신 기술은
높은 수준의 경쟁을 수반하는데,
낮아진 수익을 견디며
10년 후에 누가
최종적인 승자가 될 지 알기 어렵다 이것이 2012년 버핏이 애플을 매수하지 않은 이유이다. 그러나 경쟁이 끝난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100년 전에는 항공, 철도, 자동차 회사 역시 현대의 인터넷, 바이오, 스마트 기기 회사처럼 기술기업으로 분류되었지만, 이제는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해자 분석 측면에서 애플은 필수 소비재 주식에 더 가깝다.
- 워런 버핏, 2017년 주주총회 Q&A 중
생활의 일부가 되면 소비재로 분류한다. 버핏에게 소비재 기업이란 코카콜라, 질레트, 듀라셀, 크래프트 하인츠처럼 강력한 브랜드와 충성 고객을 확보한 기업이다.
애플 역시 이런 해자와 IBM의 매수 이유였던 건전한 재무 지표를 갖췄다. 그리고 대규모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2011년 이후 실시하고 있다. 여기에 10년째 기록하고 있는 경이로운 투자 지표와 전세계 스마트폰 이익의 90%를 차지하는 수익률이 더해진 애플은 매력적인 투자처이다.
하지만 애플은 버크셔 해서웨이 회사 인수 조건 중 '5. 사업 내용이 단순한 기업 (기술 요소가 많은 기업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함)'을 만족시키지 못하는데, 버핏은 개인 비행기를 샀을 때의 조언처럼 애플을 소비재로 규정하며 합리화한 것 같다.
"월터, 개인 소유 비행기를 사는 걸 어떻게 정당화(justify)할 수 있죠?"
"워런, 정당화할 필요 없습니다. 그냥 합리화(rationalize)하면 됩니다."
- 앨리스 슈뢰더, 「스노볼」 중
여기까지 오면 마지막 남은 문제는 가격이다. 위에서 소개한 버핏의 투자 요건을 만족하는 기업들의 주가가 52주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듯이, 좋은 회사의 주식은 비싸다. 그래서 버핏은 가격이 내려갈 때까지 기다린다. 부동산 대출 비중이 높았던 웰스 파고가 캘리포니아 부동산 폭락으로 흔들릴 때 투자했다. 그리고 무분별한 보험 계약으로 존립 자체가 위협받은 가이코의 주가가 60 달러에서 2 달러로 폭락했을 때 투자했다.
우리가 은행주를 산 것이 이례적이었듯이, 투자 등급 미만 채권을 산 것도 이례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흥미를 느끼는 동시에 버크셔 해서웨이 실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만큼 큰 기회는 흔치 않다. 따라서, 우리가 이해하는 기업이면서 가격과 가치의 차이가 크게 벌어진 경우라면, 우리는 어떠한 투자 유형이라도 주목할 것이다.
- 1990년 주주 서한 중
버핏이 애플을 처음 매수한 2016년 5월의 상황 역시 좋지 않았다. 중국에서 특허 소송을 당해 판매 금지 위기와 미국, 일본 시장 판매부진, 애플 워치 판매 저조 등으로 고점 대비 주가가 30% 하락했던 때이다. 버핏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지분을 점차 늘렸다.(2016년 5월 10억 달러, 6월 15억 달러, 12월 70억 달러, 2017년 3월 192억 달러)
버핏이 기술기업 주식 매입에 나서지 않은 것은 그가 기술기업들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기업들에 대해서 소상히 잘 알고 있었다. 여기서 그를 애먹인 것은 이런 기업들의 경우, 미래의 현금 흐름을 예측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기술 산업의 고유한 특성인 끊임없는 파괴와 혁신으로 인해서 기술 독점 판매권의 수명은 매우 짧은 편이었다. 버핏은 코카콜라, 웰스 파고,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존슨 앤 존슨, P&G, 크래프트 하인츠, 월마트 등과 같은 기업이라면 얼마든지 그 미래를 자신 있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 시스코, 오라클, 인텔, IBM 같은 기술 기업들의 미래를 예측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 로버트 해그스트롬, 「다시 워런 버핏처럼 투자하라」 중
버핏은 코카콜라와 IBM을 매수할 때 50년치의 연차보고서를 다 읽었다. 애플의 경우에도 이미 누구보다 많은 공부를 끝내고 매수 시점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버핏이 애플과 IBM의 기술을 이해하는지 아니면 기술기업이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알 수 없으나 2000년대 이후 매수한 기업을 참조한다면 경쟁을 끝내고 해자의 이익을 누리는 기업으로 판단했다고 볼 수 있다.
시대에 역행하는 버핏의 투자 패러다임
Q. 철도와 유틸리티 산업에 매달리는 대신에 미국 시가 총액 상위 5개 기업(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페이스북)처럼 자본은 적게(light-capital) 들지만 총자산수익률(ROA)이 높은 곳에 투자했어야 하지 않았나?
A. 멍거: 세상은 많이 변했고, 이런 사업에 뛰어든 사람은 아주 잘 해냈다.
A. 버핏: 많은 사람들이 벤처캐피털로부터 많은 돈을 버는 것을 쫓는다. 멋진 시장이지만, 모두가 크게 벌긴 어렵다. (많은 사람이 돈을 잃는다)
- 2017년 주주총회 Q&A 중
위 질문에서 언급된 자본이 적게 들지만 많은 수익을 얻는 기업 5개가 미국 시장 전체의 10%를 차지하며 주도하고 있다. 이런 시대 흐름에 역행하듯, 버핏이 1999년 이후 투자한 주요 기업은 정반대인 자본이 많이(heavy-capital) 들어가는 기업이다.
버핏이 파워하우스 6이라 부르는 기업 6개는 1999년 이후 버핏이 인수했고, 분명한 장점이 있다. 자본이 적게 들어가는 기업은 그만큼 새로운 경쟁자의 출현도 많다. 반면, 끊임 없이 자본을 투입해야 하는 철도, 발전, 제조업군의 기업은 많은 자본이 진입장벽이 되어 새로운 경쟁자의 출현이 적고 투입 자본 대비 합리적인 수준의 수익을 꾸준히 가져다 준다.
버크셔 해서웨이 자회사인 BNSF철도, BHE(Berkshire Hathaway Energy) 두 회사에 투입된 설비 자본만 2016년 88억 달러, 2015년 115억 달러, 2014년 118억 달러이고, 두 회사가 벌어들인 세전 수익이 2016년 88억 달러, 2015년 96억 달러, 2014년 89억 달러였다.
버핏에게 맞는, 버핏만이 할 수 있는 선택버크셔 해서웨이는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져 왔다. 초기에는 파트너십 형태의 투자회사였다가 보험회사를 주축으로 한 지주회사 형태로 바뀌었다. 한때는 총자산 대비 보통주 투자 비중이 60%를 넘었지만, 2016년 기준으로 보통주 투자 비중은 20.6%, 수익 비중은 26.9% 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현재 버크셔 해서웨이를 이끌고 있는 것은 아래 도표의 붉은 부분인 철도(14%), 에너지(9%), 그리고 제조/서비스업(23%)이다. 이들이 전체 수익의 46%를 차지한다.
영구적인 해자란 경쟁자가 아무리 돈을 많이 쏟아 부어도 도저히 따라오지 못하는 그 무엇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자본주의는 높은 수익을 가져다 주는 사업에 경쟁자들이 계속 진입하도록 자유롭게 둔다.
따라서, 성공하는 기업은 저비용 생산자(가이코, 코스트코)이거나 압도적이고 세계적인 브랜드(코카콜라, 질레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라는 탄탄한 장벽을 갖추는 것이 필수다. 역사는 장밋빛 전망으로 가득한 기업이 해자를 갖추기는 커녕 사상누각처럼 금방 무너지는 것을 잘 보여준다.
- 2007년 주주 서한 중
버핏은 돈을 쏟아 부어도 따라오지 못하는 해자를 가진 기업을 선호했지만, 현대의 이런 기업은 시즈캔디(See's Candies)* 같은 초콜릿 회사가 아니라 기술기업이다. 기술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에 적은 자본을 들여 높은 수익을 내는 기업을 버핏은 찾기 어렵다.
* 버크셔 해서웨이의 자회사이다. 1921년에 설립된 캘리포니아 소재 초콜릿 및 캔디 제조 회사로 1972년에 인수했다. 찰리 멍거는 시즈캔디 인수를 버크셔 해서웨이 최초의 고도화된 사업 인수라고 칭했다. - PUBLY
경제 성장률은 낮아졌고, 저금리 덕분에 시장에 돈은 넘쳐난다. 그리고 버핏의 자회사는 매년 240억 달러 이상의 세후 이익을 벌어들인다.
버핏은 이러한 경제 및 시장 상황을 고려하여 버크셔 해서웨이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강점을 더욱 발전시키는 방향을 택했다. 버크셔가 매년 만드는 자본과 시장에 넘쳐나는 자본을 흡수해줄 자본이 많이 필요한(heavy-capital) 기업을 선택한 것이다. '엄청나게 쏟아 부을 수 있는 돈'과 이 돈을 '흡수해줄 수 있는 기업'을 조합해서 새로운 해자를 만들었다.
그 결과 수익률이 높지는 않지만, 엄청난 자본을 쏟아 부었을 때 이에 비례하는 수익을 가져다 주는 기업들이 버크셔 해서웨이 수익의 반을 꾸준히 책임지게 됐다. 헤지 펀드가 수익률과 위험이 낮은 차익거래에 대규모 차입을 진행해 수익을 극대화 하는 것의 사업적 구현이라 할 수 있다.
수익관점에서 보면 규제를 받는 에너지 업체에 대한 투자는 엄청난 이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합리적인 수준의 수익을 꾸준히 가져다 준다. (중략) 버크셔 해서웨이 인수합병 기준을 보면 첨단기술 관련 사업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알기 쉬운 비즈니스를 선호한다고 적혀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단순함에는 워런 버핏의 개인적인 선호를 뛰어넘는 무엇인가가 있다. 바로 사업의 영속성이다. 기초산업은 농업, 에너지, 어업, 임업, 광업, 그리고 화학, 금속가공, 운송처럼 수백 년을 견뎌오고 앞으로도 그 이상을 헤쳐나갈 비즈니스라 정의한다.
- 로렌스 커닝햄, 「버크셔 해서웨이」 중
좋은 투자란 무엇인가?
2,000년 전의 바둑 도사와 현대의 프로 기사가 대국을 펼친다면 그 모양은 영락없는 바둑 하수와 고수의 게임이 될 것이다. 바둑 도사가 천 년에 한 번 나올법한 천재라고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텐데 그 이유는 2,000년 전의 바둑과 현대의 바둑이 승리를 위해서 추구하는 바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춘추전국 시대에서 전쟁의 초점은 생존하느냐 멸망하느냐에 있었으며, 영토의 획득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전쟁은 생존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였다.
- 문용직, 「바둑의 발견」 중
춘추전국 시대의 바둑처럼 하수는 싸움을 즐긴다. 단수를 쳐서 상대의 돌을 따먹는 희열과 곤마(미생의 말)를 살리려고 고군분투 하나 9할이 패배다. 반면, 고수는 효율을 추구한다. 이들은 상대의 곤마를 적당히 몰면서 더 큰 이익이 있는 전장 너머의 집을 어느새 선점해 승리한다.
집을 중심으로 바둑을 이해하면 돌을 죽이고 살리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가 되고, 그때 비로소 효율의 관념이 탄생할 기반이 마련된다.
- 문용직, 「바둑의 발견」 중
그리고 고수가 한 판도 못 이길 프로 기사가 있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치열한 승부를 거치며, 모든 지식과 정석을 뛰어넘어 자신의 류를 정립한 이들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류를 정립한 이들을 뛰어넘는 것은 어떤 경지일까? 2,500년 넘는 바둑의 역사를 통틀어 신이라 불릴만한 사람이 둘 있는데, 17세기 도사쿠와 20세기의 우칭위엔이다. 그들은 기존 관행과 제도의 허점을 깨부수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어떤 투자가 좋은 투자인가?
어떤 수가 좋은 수인가? 이는 각자가 이미 알고 있던 바에 따라서 이해와 설명이 달랐다. 도사쿠와 우칭위엔 두 천재 덕분에 더 좋은 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됐고, 바둑은 급격히 진화했다.
바둑에서는 두 번의 패러다임 변혁이 있었다. 17세기 일본의 도사쿠가 구조주의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이 첫 번째요, 20세기 초 우칭위엔과 기타니가 중앙을 중심으로 하는 구조를 재발견한 것이 두 번째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바둑을 두어야 할 것인가, 어떠한 수가 좋은 수인가라는 의문에 대해서는 각 패러다임 하에서 서로 답이 달랐다. 단순히 시대가 변하여서 다른 것이 아니라, 알고 있던 바가 달라서 이해가 달랐고, 설명이 달랐던 것이다.
- 문용직, 「바둑의 발견」 중
어떤 투자가 좋은 투자인가? 코스피가 100에서 2,000이 되던 때와 2,000에서 6년 머무르다 2,300을 넘기는 때의 이해와 설명은 다르다. 그러나 코스피와 다우존스 지수가 최고치를 경신하는 시점에도 버핏이 합리적이라 부르는 심심한 투자를 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곱씹을 필요가 있다.
무조건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데 열중하는 중고차 딜러 같은 투자와 정밀한 확률 계산과 투자 비중을 조절하는 포커 플레이어 같은 투자를 버핏도 거쳤다. 버핏은 프로를 뛰어넘어 이제 자동차 박물관장으로 진화했다. 엄청난 수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100년 후에도 살아남을 기업을 골라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박물관을 채운다. 이들 기업은 버크셔 해서웨이 안에서 100년 된 명차처럼 가치를 높이고, 여기서 나오는 수익으로 더 좋은 기업에 투자하는 선순환을 만든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목표는 일류 기업들의 지분을 늘려가는 것이다.
- 2011년 주주서한 중
이제 버핏이 투자를 결정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고, 사후에 어떤 경제 상황이 닥칠지 모른다. 그러나 이에 상관없이 좋은 자동차를 좋은 가격에 한 대라도 더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박물관에 채워 넣는 일, 이것이 버핏이 자신을 믿고 투자해 준 사람들과 후손을 위해 하고 있는 마지막 일이다. 그리고 수많은 대박 투자의 유혹에도 혹하지 않는 불혹의 투자, 이것이 투자의 신이 된 버핏이 제시하는 마지막 메시지다.
참고 자료
- 로렌스 커닝햄, 「버크셔 해서웨이」, 이레미디어 (2016)
- 워런 버핏, 「워런 버핏의 주주 서한」, 서울문화사 (2015)
- 문용직, 「바둑의 발견」, 부키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