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구 공사장에서 홍콩 '중경맨션'까지

홍콩에 처음 간 십여 년 전, '중경맨션(重慶大厦, Chungking Mansions)'이라는 건물을 둘러봤다. 항구에서 가깝고 큰 도로에 자리 잡아 관광객이나 상인의 출입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외부는 서울의 옛 대우빌딩(현 서울스퀘어)처럼 상자 모양에 꼬질꼬질한 창문이 촘촘히 붙어 있었다. 내부는 상점부터 민박까지 미로처럼 얽혀 건물 자체가 하나의 마을 같았다. 그 독특한 분위기는 1994년에 개봉한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重慶森林, Chungking Express)>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홍콩 거리 ©이유진

건물 옆의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니 손 본 지 수십 년은 된 듯한 벽면에 전선줄이 가득했다. 길에는 사람들이 버린 음식물 쓰레기 때문에 눅눅한 악취가 났다.

 

그리고 골목 끝에서 고개를 들었을 때 정면에 페닌슐라 호텔(The Peninsula Hong Kong)이 보였다. 손님을 위한 최고급 자동차인 롤스로이스가 항시 대기 중이고, 유럽 궁전 같은 로비에서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를 즐길 수 있는 아시아 최고 수준의 호텔이다.
* 영국에서 식사 시간 사이인 오후 3~5시경 다과를 즐기며 휴식을 즐기는 생활 문화 - PUBLY

 

그 골목에서 호텔을 보며 궁금해졌다. 형편이 좋지 않은 아이들은 저 건물을 볼 때마다 무슨 마음이 들까? 홍콩처럼 고층건물이 밀집한 대도시가 아닌 지역이라면 호화로움을 매일 마주하며 살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내가 도시라는 공간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하나의 생명체로 보고, 도시 안에서 벌어지는 상호작용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이런 장면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나도 도시 출신이다. 처음 접한 도시는 태어난 서울이다. 열 살까지 마포구 노고산동에서 자랐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인근 대학생들이 주기적으로 데모를 해서 최루탄 연기가 골목을 채우던 동네였다. 당시 시위로 분위기가 험악한 파출소 바로 옆에 놀이터가 있었다. 나는 놀이터 대신 주위 공사장에서 친구들과 삽질을 하며 놀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