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쟁이가 버핏을 만나다

Editor's Comment

'2017 버크셔 해서웨이 - 투자가의 해석을 더하다'는 황준호 투자가와 이기원 채권 펀드매니저가 2017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를 Q&A 세션 중심으로 정리하여 만드는 리포트입니다.

'자본가들의 우드스톡'이라 불리는 3일 간의 자본주의 축제에서 2017년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가 무엇을 말하는지 한국인의 관점에서 해석한 시사점을 리포트에 담습니다.

본 리포트는
5월 4일(목) 오후 6시까지 기간 한정 할인이 진행 중이며, 6월 23일(금), 6월 26일(월)에 진행하는 오프라인 행사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바로 가기]

"PUBLY가 뭐야? 걔들이 워런 버핏을 왜 만나는데?"

 

여의도 채권쟁이는 정말 우연히 워런 버핏(이하 버핏)을 만났다. 2016년 봄, PUBLY에서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이하 주총) 프로젝트를 진행하니 어서 결제하라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버크셔 해서웨이 주총이 열리는 오마하에는 선착순 3명만 갈 수 있단다.

 

PUBLY라는 이름은 생소했고, 나는 주식투자를 즐기는 사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버핏, 두 글자를 듣자마자 카드를 긁었다. 이름만으로 설렘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 최고의 투자자라고 불리는 '버핏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꼭 한번 뵈어야 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자본주의의 축제'로 불리는 버크셔 해서웨이 주총에 함께 갈 사람들과의 만남이 기대되었다.

 

돈 굴리는 일로 월급을 받지만 부끄럽게도 버핏을 깊이 알지 못했다. 전 재산을 기부하기로 약속한 거부라는 겉모습만 알았다. 몰락하는 살로먼 브라더스를 구제하기 위해 직접 회장을 맡아 진두지휘한 위대한 경영자이자, 평생에 걸쳐 주주 자본주의를 실천한 자본가로서의 철학은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의 부자가 개최하는 자본주의 파티는 나를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신용카드는 나를 오마하로 이끌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 앙드레 말로(프랑스 작가, 정치가)
주총을 한 달 앞두고 부랴부랴 공부를 시작했다. 버핏의 자서전, 주주서한, 투자기법 등을 쌓아두고 밤낮으로 읽었다. 그의 인생을 복기하고 그가 투자했던 회사의 정보를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책 속의 위인이었다. 적어도 그때는 버핏과 나의 삶이 유리되어 있었다. 이 만남이 내 인생 궤적을 살짝 바꾸어 놓을 줄 누가 알았을까.

 

여든여덟 고령의 할아버지는 6시간 동안 흔들림 없는 자세로 행사장을 가득 메운 수 만 명의 주주 앞에 서 있었다. 회사의 경영실적과 철학을 묻는 주주들에게 그는 진심을 담아 또박또박 답했다. 운용 규모가 커져서 예전처럼 높은 수익을 올리기 힘들다고 털어놓았고, 저금리 때문에 투자가 힘들다고 인정했다. 좋은 회사를 찾기가 어려워서 투자 계획을 수정한다고 했다.

 

평생을 함께한 투자 파트너 찰리 멍거와 나란히 앉은 회장님은 소박하고 솔직했다. 자신의 모든 생각과 철학을 주주들에게 전하고 싶어하는 듯 했다. 경청하는 주주도, 질문하는 사람도, 대답하는 회장도 모두 행복해 보였다.

 

버크셔 해서웨이 주총은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증명하는 자리였다. 이 시간과 공간을 만들기 위해 버핏은 평생동안 원리원칙 위에서 기업을 경영하고 주주 자본주의를 지켜냈다. 그는 더 이상 동화 속 인물이 아니었다. 위인이 책에서 걸어 나와 내 눈 앞에 서 있었다.

 

50년 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가 사기사건에 휘말려 채권자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치게 되었을 때, 보상금 지급을 가로막는 다른 주주들의 반대에도 피해자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요구하던 젊은 버핏의 모습이 생생히 그려졌다. 모두가 버핏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유를 이제야 깨달았다.

신뢰가 부(富)를 가져오다

버핏의 투자 전략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유능한 경영자가 운영하는 좋은 기업을 적정 가격에 사는 것이다. 경영은 경영자에게 맡기고 일체 간섭하지 않는다. 버핏은 인수한 기업에서 발생한 현금흐름으로 새로운 매수 대상을 찾아서 투자를 반복한다.

 

매우 직관적이라 많은 사람이 모방했지만 누구도 버핏만큼 성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를 둘러싼 모든 이해관계자가 그의 성공을 바랐기 때문이다.

 

투자 대상을 탐색하는 일은 고되고 힘든 작업이다. 투자자들은 좋은 기업을 찾는데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들인다. 하지만 많은 훌륭한 기업이 스스로 버핏을 찾아왔다. 기업가들은 버핏이 위대한 투자자이며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람인 것을 알기 때문에 기꺼이 회사를 팔고 버핏 밑에서 기업을 경영하길 바랐다. 사람들은 버핏이 회사를 크게 키워줄 것을 굳게 믿었다.

 

경영자가 투자자의 성공을 바라는데 누가 그를 이길 수 있을까? 버핏은 존경받는 삶을 살아왔고, 그로 인해 신뢰를 쌓았기에 금전적으로도 더 성공할 수 있었다.
 

버핏 곁에는 항상 뛰어난 조력자들이 있었다. 컴퓨터 황제 빌 게이츠, 평생의 투자 파트너 찰리 멍거, 버핏보다 주식을 잘한다는 루 심슨 같은 고수들이 함께 했다. 모두 버핏 이상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서로 모였을까? 해답은 간단하다.

한 분야에 깊이가 생기면 수준 높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수준 높은 네트워크가 형성되면 서로가 서로를 끌어당긴다

버핏은 성공한 투자자이자 경영자라는 명성으로 사람들을 매료했고, 그를 찾아온 조력자들은 다시 서로의 능력에 끌렸다. 버핏 주변에는 최고 수준의 펀드 매니저들이 몰려있었고, 서로 투자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면서 시너지를 만들었다. 훌륭한 사람 곁에는 훌륭한 사람이 모인다.
 

2016년 주총이 끝나고 벌써 1년이 흘렀다. 변함없이 투자와 인생을 고민하지만 투자 철학은 아직 어설프고, 가치투자는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이제 진짜 투자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남에게 존경 받는 삶을 살면서 내 곁을 자연스레 뛰어난 사람들로 채워 넣는 것이 진정한 투자가 아닐까?

 

어쩌면 '부'는 신뢰받는 삶을 사는 과정에서 얻는 부산물일지 모르겠다. 나도 자신에게 떳떳한, 그리고 타인에게 존경받는 철학을 실천하며 살고 싶다. 그러면 설령 '부'가 따라오지 않더라도 내 인생은 충만할 것 같다. 버핏을 만난 뒤 얻은 작은 깨달음이다.

 

버크셔 해서웨이 프로젝트로 닿은 인연이 이어져 2017년에는 저자로 참여하게 됐다. 2016년 프로젝트 저자 황준호님과 공동 작업이다. 내 삶이 좋은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증거인 것 같아 행복하다. 나는 금리와 거시경제 관점에서 버핏의 말과 글을 해석하려고 한다. 채권 펀드매니저로서 쌓은 경험과 지식을 버핏의 생각에 녹여보고 싶다.

 

올해 주주서한과 주총에서 투자자에게 도움이 될만한 거시적인 단서를 찾아서 분석하고 살을 붙여 먹기 좋게 만들어 볼 것이다. 황준호님이 풀어낼 가치투자와 기업 이야기도 기대된다.

 

독자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더 많은 사람이 버핏의 삶을 접하는 첫걸음이 되길 바란다.

 

[2017 버크셔 해서웨이 - 투자가의 해석을 더하다]

가치투자가들의 축제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를 Q&A 세션 중심으로 정리하고, 주요 시사점을 현직 투자가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리포트를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