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온라인에서 뭔가를 만들어본 경험

난 모뎀을 사용해본 적이 없다. 1996년 처음 인터넷에 접속했을 때 사용한 것은 모뎀이 아니라, 내가 태어나고 자란 대덕연구단지에 초고속 인터넷 시범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보급된 광케이블 단말기를 통해서였다. 모뎀과 달리 전화요금이 나오지도 않았고 그때 기준으로는 '초고속'이었기 때문에 인터넷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마음껏 할 수 있었지만 딱히 뭘 한 건 아니었다. 그땐 그냥 인터넷이라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흥미로웠던 것 같다.

 

모니터 앞에 죽치고 있던 내가 걱정되셨는지 어느 날 아버지가 두꺼운 책 한 권을 던져줬다. 나모 웹에디터로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것에 관한 책이었다. 나모 웹에디터는 당시의 나와 같은 초등학생도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였다. 그때 처음 홈페이지라는 걸 만들어봤다.

 

딱히 뭘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있던 건 아니고, 그냥 홈페이지라는 걸 뚝딱뚝딱 만드는 게 즐거웠다. 홈페이지를 '재미삼아' 만든다는 건, 이를테면 학교에서 취미를 써서 내라고 하면 '홈페이지 만들기'라고 써서 낸다던가 하는 것이었다. 온라인이라는 공간에서 뭔가를 만드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그때 처음 느꼈다.

 

지금 생각해보면 놀라운데, 홈페이지를 재미삼아 만들던 내 또래가 나 말고도 꽤 많았다. 지역을 초월한 인터넷과 PC 통신 덕분에 나와 같은 내 또래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지금 스티비라는 이메일마케팅 서비스를 함께 만들고 있는 동료 두 명을 이때쯤 처음 알게됐고 그 중 한 명은 15년이 넘게 지난 지금 이 프로젝트, 2016 TEDC Boston를 함께 하고 있다.

창작욕에 불을 당긴 직장생활 시절

나의 첫 직장은 삼성전자였다. 취업이라는 현실을 마주했을 때 삼성전자와 같은 제조업 기반의 회사는 생각하지 않았다. 온라인에서 뭔가를 만드는 회사를 가고 싶었다. 그런데 가까운 선배 중 한 명이 삼성전자의 MSC(Media Solution Center)라는 곳에 가게 됐는데, 삼성전자 안에도 제조업 기반이 아닌 다른 사업을 하는 곳이 많으니 한 번 지원해보라고 했다.

 

MSC는 삼성전자의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강화하고, 삼성전자 제품에 탑재할 콘텐츠와 서비스를 만드는 조직이다. 대부분의 동기들은 MSC의 존재 자체를 몰랐고, 무선사업부나 VD(Visual Display) 사업부처럼 삼성전자의 핵심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사업부를 선호했다. 하지만 나는 고민하지 않고 MSC에 지원했다. 이렇게 스스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삼성전자라는 조직의 조금은 특이한 MSC라는 곳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MSC는 삼성전자 안에 있지만 삼성전자 같지 않은 특이한 곳이었다. 경력직으로 온 사람이 많았고 그 중 대단한 경력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 사람들과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좋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더 좋았던 건, 제조업 기반의 대기업에서 콘텐츠와 서비스 사업을 하는 조직, 특수한 환경이긴 하지만 어쨌든 온라인에서 새로운 뭔가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었다.

 

MSC에서 나는 콘텐츠와 서비스에서 수익을 발생시키기 위한 디지털 광고플랫폼을 만드는 사업팀에 배치됐다. 나에게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커넥티드 TV에 탑재할 광고 상품을 만드는 일이 주어졌다. 내가 제작에 참여한 상품의 사용자를 직접 만나고 싶었지만 광고 상품에서는 그럴 여지가 거의 없었다. 광고플랫폼 사업을 하는 팀에서는 당연히 제품 자체보다는 매출을 발생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두 번째로 맡았던 TV와 모바일을 연동하는 세컨드스크린의 광고 상품의 경우, 사용자 인터뷰를 하거나 개발 및 디자인 담당자와 직접 협력하는 등 제품을 만드는 일에 비교적 더 가까웠다. 하지만 광고라는 특성 때문인지 스스로 한계를 많이 느꼈다.

 

조직에서의 나의 한계도 많이 느끼던 때였다. 마침 딱 흔히 말하는 위기의 3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퇴사하는 동기들이 하나 둘 늘어가던 시점이었다. 마침 느슨하게 인연을 유지하던 슬로워크에서, 그것도 15년 전에 초고속 인터넷으로 알게 됐던 사람으로부터, 새로운 걸 만들려고 하는데 같이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결혼을 앞둔 시점이었고 안정적으로 보이는 직장을 그만두는 것에 대한 부모님의 걱정도 있었지만, 지금의 배우자가 지지해준 덕분에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었다.

만드는 즐거움, 지지받는 즐거움

내가 해왔던 일을 돌아보는 글을 쓰면서 다시 떠오른 사실인데, 나와 관련된 많은 것들에 'S'가 들어가있다. 대학교도 S대(국립대가 아닌...)를 졸업했고, 다녔던 회사들의 이름, 심지어 배우자의 이름에도 S가 들어가있다. 모두 나의 삶에 좋은 영향을 준 것들이다. 스티비에도 S가 들어가있다.

 

스티비를 만들면서 사용자로부터 좋은 피드백을 듣곤 한다. 부끄럽지만 제품을 만들면서 사용자로부터 직접, 좋은 피드백을 직접 들어본 건 처음이다. 내가 만든 걸 사용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때 정말 즐겁다. 내가 만들고 있는 걸 누군가 사용하고 지지해준다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얻고 싶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의 이메일마케팅이라는 판에도 많은 사람들이 기대와 흥미를 갖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다.

 

프로젝트를 지지해준 사람들에게는 이메일마케팅이 역동적이고 혁신적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제품을 만들고 피드백을 듣는, 지지받는 즐거움을 나누고 싶다.

 

[2016 TEDC Boston]
이메일마케팅 컨퍼런스의 왕중왕

- The Email Design Conference (TEDC) 보고서가 궁금하시다면?